482559 아프칸과 제국주의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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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카니스탄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일 뿐 아니라, 자칫하다가는 ‘미국이 바라는 바’대로 사태가 흘러갈 염려마저 높아지고 있다. 탈레반은 “우리가 조바심을 내서 인질들을 서둘러 다 죽이기를 아프카니스탄 (꼭두각시) 정부가 바라고 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거니와, 이 바람은 사실 미국의 속내를 반영한 것이라 봐야 한다. 미국은 ‘돈 주고 타결짓기’마저 반대하고 있다지 않은가.
* 주된 측면은 아니지만, 한국의 수구 보수세력도 ‘탈레반과는 절대로 타협해서 안 된다’는 기조를 슬슬 드러내고 있다. 동아일보는 자기 지면에서 진작에 그런 속내를 드러냈고, 최근에는 (자본을 직접 대변하는) 중앙일보도 ‘군사적 해결을 염두에 두라’는 속내를 표현했다.
분당 샘물교회라면 기득권세력의 한 부분이고 ‘뉴 라이트’ 지향의 단체인데 그런 구성원들(즉 ‘강남’ 사람들)을 희생시키고서라도 ‘미국의 패권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나서는 판이니, 지배세력이 위기 국면에 접어들면 ‘막가파’로 놀게 된다는 사실을 섬찟하게 확인한다.
* 이 사태에서 우리는 ‘인질이 풀려나느냐’ 여부만 주목할 일이 아니다. 미국의 뜻대로 관철될 경우, 인질은 희생될 가능성이 높고 이를 빌미로 하여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침략은 더 강화될 것이다. 미국은 지금 연말쯤 철병하기로 되어 있는 한국군의 ‘철군 연기’를 은근짜 부르꾀고 있는 판 아닌가. 그런 그들의 침략전쟁에 우리가 계속 들러리를 설 것이냐, 그래서 앞으로 이슬람권 무장단체들의 ‘테러 대상’으로 완연히 확정될 것이냐, 하는 문제까지 살펴야 한다. 그래서 이 문제로 하여 우리는 ‘제국주의 반대’의 소리를 널리 모아낼 것이냐, 아니면 “小 제국주의 국가”의 길로 거침없이 치닫도록 방치할 것이냐 하는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 아시다시피 그동안 ‘자주파’ 운동가들은 민족의 자주 통일의 관점에서 ‘반미’의 깃발을 내걸어 왔다. 분단문제가 불거질 때에는 ‘민족’과 그에 따른 ‘반미’의 외침을 계속해야 하겠지만, 이제는 세계 민중의 관점에서 ‘반-제국주의’의 문제를 깊이 성찰할 때도 되었다. 한국의 지배세력은 이제 ‘희생자’가 아니라 제국주의의 패권에 편승하여 권력과 재화를 누리는 ‘하위 파트너’가 된지 오래이고, 제3세계 민중의 처지에서 이들을 냉철하게 비판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는 이들과 두루뭉수리로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약간의 유의 사항 =-미국의 패권적 침략에 대해 ‘반미’를 말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 ‘감성-과잉적’ 반미 구호가 너무 넘쳐나서 설득력을 잃었던 사실을 감안해서라도 ‘미국을 반대한다’는 민족적 규탄보다 ‘제국주의 정치행태’를 비판한다고 언명을 하는 게 낫다.)
* 우리는 작년에 민주노동당 안에서 ‘북핵 논란’이 소모적으로 넘쳐난 데 대해서도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북 정권에 대해 지적할 것은 비판적으로 지적하더라도, ‘제국주의의 횡포’에 맞설 수밖에 없었던 사정조차 감안하지 않고 과잉비판으로 흘렀던 것은 누구에게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어둠이 깊어져가는 21세기에, ‘제국주의 반대 전선’을 세우는 문제는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될 과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 엊그제 각 정당대표가 텔레비전에 불려나가 ‘아프칸 사태’에 대해 자기들의 의견을 표명했다. 내 알기로, 문성현 대표는 ‘아프칸에서 미군은 물러나라’는 주장을 감히 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이 이렇게 ‘단호한 발언’을 자꾸 뒤로 숨기다 보면, ‘제국주의에 맞서는 과제’는 점점 유실되어 버릴 것이다. “인류 사회에 책임을 지겠다. 할 말을 한다”는 자세가 회복되지 않고서는 민노당의 ‘존재 가치’가 점점 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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