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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앞날은 어찌?
민주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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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6월 01일 16시 41분 14초
 


위기의 한 복판에서 ; 이명박 탄핵투쟁의 앞날을 그린다


----한참 읽을 ‘여유’가 없는 분은 건너뛰어서 “8번, 9번‘의 글만 읽으시기를---


1. “집권세력은 최근의 대중투쟁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배경에는 유가/물가폭등에 따른 민생불안 등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본다”고 6월 1일자 언론은 보도한다. 그들도 알고 있고, 더 잘 알고 있다! 기름값 물가 폭등에 따른 흉흉한 민심에 대해 주목할 일! 그런데 원인에 접근해야 운동의 방향도 나온다. 그 물가폭등은 어디서 왔는가? 세계자본주의 자체를, 전체를 직시해야 한다.


2. 서브프라임모기지론... 금융위기가 터지더니 이와 맞물려 유가, 금값, 농산물값이 뛰고 대불황이 닥쳐왔다. 70년대말부터 시작된 장기적 구조적 위기가 한층 가열되어 나타났고, 그 원인은 과잉축적된 화폐자본/생산자본이다. 그래서 ‘이윤’의 출구를 찾아서 자본들이 미친 듯이 미친 듯이 헤매다니고 있다. 자, 그러니 세계자본주의가 어느 길로 가야 할까? 명박이나 이건희나 등등은 ‘세계자본주의 전체’ 차원에서 전략을 짜고 결행하지 못한다. 자기의 협소한 밥그릇만 챙긴다. 미국과 유럽 자본의 수뇌부 차원에서, 가령 올봄 금리를 잇따라 내린 중요한 전략행동기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같은 곳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다. 


3. 흔히 ‘케인즈주의만 돼도 감지덕지 아니냐’하고 타협적으로 전망하는 진보학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인데, 1950-70년대 유럽 자본주의가 ‘한때 좋았던 시절’을 누리게 된 원인은 루즈벨트의 참신한 ‘뉴딜’ 덕분이 아니라 2차대전을 통해 과잉자본들을 대거 숙청, 제거해 버렸던 덕분이다.

 양심적인 학자들 중에는 ‘선진국이 후진국들에게 빚도 탕감해주고 그러면 세계경제가 소생하지 않겠냐?’는 부처님 말씀을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것이 유식한 말로 ‘국제케인즈주의’다. 그러나 올해 농산물 가격이 두 배이상 폭등함으로써 그런 이야기는 감히 입에도 낼 수 없게 되었다. 제 잇속들만 차리는 선진국 무역정책으로 하여 후진국 농업들이 기형화, 파괴된 까닭에 ‘식량위기’가 폭발한 것이 아닌가.


4. ‘세계자본주의는 미국/유럽 제국주의가 주름잡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니 미국/유럽 수뇌부들이 선택하는 방향으로 세계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굴러간다. 타국의 자본이나 민중운동은 그에 ‘반대경향’을 산출할 뿐이고, 그 반대경향들이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었을 때라야 비로소 세계 자본주의는 크게 방향을 선회할 수 있다.

미국 유럽의 수뇌부는 어떤 선택을 할까? 경제정책이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면 고도의 정치행위가 된다. 가령 ‘환율’이 당장은 시장의 수급상황 등을 반영하여 책정이 되지만 어떤 중요한 순간에는 ‘고도의 정치적 결정’이 이뤄진다. 어떤 경우인가?

1985년엔가 ‘플라자 합의’가 이뤄지고 그뒤 ‘역 플라자 합의’가 이뤄진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 ‘환율 결정’은 미국과 유럽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일본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결정이어서 그뒤로 일본은 장기복합불황 시대로 접어들었다. 일본 애들은 그걸 몰랐을까? 대다수 대중이야 잘 몰랐을지 모르나, 지배엘리트 학자들은 잘 안다. 그런데 왜 고분고분 따랐나? 왜 ‘역플라자합의’까지 두 번이나 당했나? 일본이 정치군사적으로 미국에 종속되는 길을 밟아왔고, 일본 지배층으로서는 ‘그 길이 확실하고 편한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요구’에 대해서 저항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한국 지배층은 두말할 것도 없다)

미국 유럽의 수뇌부는 경제위기의 부담을 일본에 대부분 떠넘김으로써 자기들 부담을 덜고 경제를 연명해 왔다. 이것은 마치 밀림에 ‘약육 강식’의 원리가 법칙적으로 통하는 것처럼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에 관철되는 원리적 법칙이다.


5. 지금의 미국 유럽 수뇌부는? 그들은 ‘모순’을 수출하고 싶어한다. 어디로? 아프리카 나라들에 수출해 봤자 아프리카가 감당할 수 있는 분량은 ‘새 발의 피’일 터이고(--그래도 그들은 수출을 한다. 가령 세계는 자유무역이라면서 미국이 자국 농업은 대대적으로 보호 육성함으로써 아프리카 나라들 농업에 타격을 입히고 방향을 규정지어버린다--),

크게 떠안길 대상은 중국(초보적 제국주의), 일본(미국의 꼬붕), 러시아 등이다. 러시아는 경제규모가 작으니 영양가가 적은 편이고, 일본은 자기네 꼬붕이니까 평소에 자주 모순을 떠넘기기는 어렵고 결정적일 때만 이용해 먹을 것이다. 항상적으로 대결을 벌여서 기를 죽일 대상은 바로 ‘중국’이다. 세계의 공장으로서 그 저임 노동력을 착취해 먹은 중국!

왜 미국이 중국을 군사적 정치적으로 계속 압박하는가? 그래서 기를 죽여놔야 중국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국내로는 이 ‘전쟁 분위기’를 구실 삼아 미국 민중을 억압하기가 편리하다.


6. 현황을 살펴보자. “자원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지금 세계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초미의 관심사다. 왜 요즘 미국이 58년만에 ‘제4함대’를 다시 창설하여 남미에 파견하려 하는가? 베네주엘라, 볼리비아 등에 내전을 일으킬 생각이고 그럼으로써 요즘 부쩍 남미에 영향력이 커진 중국의 영향력을 축출할 수 있다. 미국이 왜 이란을 공격하려 하는가? '4월 공격설‘에 이어, ’8월 공격설‘이 나왔다. 이란의 점령까지 목표삼은 공격은 아니고, ’제한된 공습‘이 될 것이다. 왜? 중동 자체를 복속시킬 목적도 있고, 러시아/중국을 견제하는 뜻도 있다.

최근 미얀마 사이클론 이재민이 대거 발생해서 이른바 ‘국제사회’가 ‘우리 구호요원,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는데 미얀마 군부가 거절하여서 한국에서는 보수/진보언론 할 것없이 ‘미얀마 군부’를 비난하고 나왔다. 미얀마 군부의 태도가 답답하고 어리석고 민중을 걱정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인 측면도 없지 않으니, 전혀 무근거한 비난은 아니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을 헤아리지 않고 단순무식하게 비난하는 것’은 서방 제국주의에 놀아나는 꼴이다. (티베트/미얀마 등등의 사태에서 중국정권의 억압적 성격을 비난하는 데 관심이 주로 쏠려 있는 사람은 제국주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사람이고, 그와 대결할 생각은 더더군다나 없는 사람이다. 우리 진보운동 대부분이 그런 지경인데, 그런 온실 속의 자기 앞가림만 열중하는 진보운동은 영락없이 ‘무력해지거나, 심지어 제국주의의 푸들이 되기까지’ 한다)


미국과 프랑스 정권은 미얀마 군부에게 ‘우리 함정과 비행기가 들어가겠다. 그래야만 원조를 주겠다’고 협박했다. 실제로 미얀마에는 ‘돈’만 베풀어주면 되지, 구호물자 수송요원이 갈 이유가 없다. 돈만 원조해주면 그들이 이웃의 중국, 태국 등에서 얼마든지 사다 배급할 수 있다. 그 정권들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할 순진한 사람도 많을까? 배와 비행기가 자기 마음대로 들어간다는 것은, 거기 군사적 발판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럼 뭐냐? 미얀마 군부정권을 축출하고 아웅산 수치 정권을 세우겠다는 뜻! 왜 미국이 미얀마 군부를 쫓아내려 하는가? '비민주 정권이라서...‘라고 말하는 사람은 미제국주의에 단단히 세뇌당한 사람이다. 미국은 비민주적인 박정희, 전두환 등등과 아주 잘 지내왔다. 한때 잠깐 박정희를 불신했던 것은 ’혹시 미국에 반기를 드는 거 아니냐‘는 의구심에서였다. 미얀마군부가 ’친중국 정권‘이기 때문에 억압하는 것이고, 미얀마에 ’친미 정권‘을 세우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속내다. 중국의 ’나와바리(영향권)‘을 뺏겠다는 이야기다.


중국 정부가 미국에 대해 얼마나 ‘경계심’을 발동하고 있는지는 티베트 사태때도 잘 드러났지만 최근 쓰촨성 지진에 ‘일본 자위대로 구호물자를 날라 달라’고 어리석은 결정을 한데서도 분명하다. “왜 일본 자위대가 들어와”하는 중국민중의 반발로 ‘없었던 일’이 되었지만, 중국은 도처에서 들어오는 미국의 압박을 견디기 위해 ‘중/일’ 화해무드를 만들고 싶었던 거다. 중국은 ‘아시아 통화기금’을 만들자고 일본에 제안도 했지만 불과 5천억 달러쯤만 걷혔고, 더 진척이 되지 않는다. 일본이 미국 눈치를 보기 때문인데, 중국은 그렇게 자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여기까지 살폈어도 ‘어딘지 미국보다 중국이 더 밉다..’는 정서를 품는 사람이 사회운동가들 중에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미 제국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한다는 용기, 결기를 품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7. 한국 운동가들이 미국보다 중국을 더 미워하건 말건, 관점이 뒤집혀져서 미국보다 북한을 더 미워하건 말건, 미국과 서방의 (...어릿광대 정치인들을 주목할 일이 아니라....) 자본 수뇌부는, 중국과 일본을 제물로 삼아 경제위기에서 탈출하는 전략을 입안, 결행하려고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워낙 미국이 도처에서 전쟁을 벌여야 하는 통에, 한반도 자체에서는 전쟁위험이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서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릴 일은 아니다. 미국/중국의 대결에 우리가 휩싸일 것이므로.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의 전쟁은 도처에서 (대리인들을 통해) 벌어질 것이다. 그들은 다 노회한 놈들이다. 그래서 중국/러시아 또는 베네주엘라 등을 먹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간접효과를 노린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올 여름에 미국이 이란을 폭격한다면 그 노리는 바는? 미국 국내 정치에 전쟁분위기를 통해 대통령선거에 공화당 메케인이 유리해지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오바마가 아무리 바람을 몰고 와도, 막판에 가서 뒤집기 하겠다는 말이다. 지금의 심각한 자본주의 체제위기는 ‘군사적 도발을 더 강화해서 그 모순을 힘 약한 나라들에 떠넘김으로써’ 풀어야 한다고 미국 자본의 수뇌부는 ‘전략적 선택’을 해갈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째야 쓰것는가?

구체적 답은 더디 나올 것이지만,

‘미 제국주의의 세계 패권’을 직시하고 그에 맞서는 결기 없이는

세계적 위기상황 속에서 한국 민중의 앞날을 경영할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날이 갈수록 더 분명해지고 있다!

언젠가는 ‘중국 민중과 연대하여 파국에 맞선다’는 긴 그림이 요구되고 있다.   


8. 여기까지가 장황한 서론이다. 짧은 본론을 서술한다.

   이명박 정권은 너무나 어리석은 짓거리(미친 소)까지 벌이는 바람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대중의 분노가 터져나와서 궁지에 몰려 있다.

6월초, 대중저항 운동이 계속 이어져 간다면 어찌 될 것인가?


㉠ 혹시 모른다. “쇠고기 재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쥐박이가 머지 않아 꼬랑지를 내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그래 놓고 ‘미적지근한 개선’만으로 덮을 가능성이 높지만, 어쨌든 쥐박이는 ‘병신’ 되는 셈이고 민중이 한 차례 ‘작은’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중동력이 급격히 움츠러들 것이니 ‘다음 싸움’으로 이어가는 것이 고민스러워진다. 광우병은 국민 70% 이상의 지지를 얻는 일이니 싸우기가 쉬웟지만,

에프티에이는 그렇게 만만한 싸움이 아니다.


사실 민중운동 <대부분이 이 싸움을 포기>했던 것을 다시 일으키는 일이고,

국민들의 반대여론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다. 작은 싸움 하나는 얻었지만, 다시 고뇌가 시작되는 문제!

(** 쇠고기싸움의 투쟁목표, 거리에서 외칠 구호는 “재협상 요구, 명박이 반대”이겠으나 집회장에서는 폭넓은 의제가 선전돼야 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안다.

실제로 ‘운하 반대, 미친 교육, 의료민영화, 공공부문 민영화 등’이 선전되었다.


문제는 그것으로 ‘전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폭넓은 선전이 ‘에프티에이반대’로 모아져야만 의미있는 운동이 된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쇠고기 반대가

에프티에이 반대’로 연결될까봐 노심초사하지 않았는가)


㉡ 대중투쟁이 견결하게 이어진다면 6월의 거듭되는 공방을 통해 결국 쥐박이네의 무릎을 꿇릴 수도 있다. 이것은 단지 광우볌문제 만이 아니라

심상치 않게 깊어지는 민생고(기름값 때문에 영업을 포기해야 하는 영세상인, 어민들의 억장이 무너지는 처지 등등)에 대해

조직운동단체들이 치열하게 거들어 나설 때에 아마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실제로, 쥐박이네는 ‘운하’가 시빗거리로 떠오르는 것을 쉬쉬 하며 기를 쓰고 감추고, 민중은 당장 ‘물가 폭등’으로 비명을 지르기 때문에, 이 후자에 대해 치열하게 맞서는 것이 당장 시급하다---)


그럴 때 지배계급의 선택은 무엇일까?

=== ‘쥐박이의 은퇴’가 현실이 될 가능성도 꽤 된다.

이미 18대 국회를 맞아, 중앙일보는 ‘개헌에 서둘러 나서라’고 촉구했는데 그들의 (대통령제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오랜 꿈이 ‘명박이로는 불안하다’는 사정과 겹쳐져서 개헌에 가속이 붙을 수 있다.

관념적으로는 ‘내각제’가 그들 입맛에 맞는다. 그러나 ‘의회’가 안정된 체제로 이어가지 못할 경우, 체제 위기를 어찌 감당하느냐는 차원에서 ‘2원 집정부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꽤 높고, 어쩌면 가장 엉터리 작품으로 이회창이가 들고 나온 ‘연방제’안이 통과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이것이 최악이다).

요즘 이회창이는 ‘쇠고기협상 반대’에 목청을 민주당보다 더 높인다. 쥐박이가 낙마할 경우, ‘대안은 나다’하고 시위하는 것이니 그들의 미친소 반대를 기뻐할 이유가 없다. 지배세력은 그동안 “대통령감으로 경제계급이 나으냐, 정치계급이 나으냐 왈가왈부”했으니 이제는 “그래도 정치계급이 위기 관리에 낫다”는 쪽으로 지배세력 이데올로그들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명박이더러 그냥 물러나라 그러는 것은 지배계급이 망신살 뻗치는 일이 되고, 명박이도 병신 되므로 모양 좋게 은퇴시키자. 개헌이 의제에 오르면 명박이가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도 권력을 교체할 수 있다.”


===이럴 때, 우리의 입장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피지배계급이 정치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는 ‘내각제’보다 ‘대통령제’가 훨씬 낫다. 그래서 지배세력이 수십년 전부터 ‘오매, 대통령제 징한 거, 내각제 좀 되어봤으면...’하고 노래 불러쌓지 않았는가.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정치세력을 내세워서 개헌뒤의 구도에 개입해 갈 것인가?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사이비 대안’은 있어도 진정한 대안이 없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다음에 바로 집권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는 반드시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치열한 태도, 즉 ‘집권할 포부를 품는다’는 그런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에 ‘대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로 집권하겠다는 정치세력은 ‘하나에서 열까지’ 지금의 정치세력들과 다르다. 그런 정치세력이라면 “지도부가” 감옥에 갇히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것이고, 당내에서 지저분한 파벌투쟁이 터져나왔을 리 없고, 국민에게 제시하는 목표가 쪼잔했을 리 없다. 지금의 흐트러지고 뭉그러진 진보변혁세력의 실력으로는 곧 닥칠 ‘개헌 정국’에 개입할 방도가 뾰족이 없다. 그것은 당연한데, 개헌구도가 순순히 관철될 경우, 지배세력의 ‘위기관리 능력’은 훨씬 높아질 것이 아닌가. 어찌할 것인가?


9. 5월 31일(토) 십만이 집결한 서울 시청에는 섬뜻한 플래카드가 한 귀퉁이에 내걸렸다. “<다함께>는 뒤로 물러나라”고 ‘아고라 당’이란 데서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어떤 그룹이 딴 그룹을 비판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토론의 자리에서이지, 대중집회의 자리가 아니다. 투쟁의 전열을 흐트러뜨리는 아주 위험하고 불순한 행동이 될 수 있다.

그들은 큰 태극기도 여러 장 들고나와 시위했고, ‘반자본주의는 안된다. 지도부는 필요없다’는 선정적인 내용의 플래카드와 인쇄물도 갖고 나왔다. 다음 토론방 ‘아고라’의 한 토론모임일 터인데, ‘아고라 전체’를 참칭했다. 조중동 물러가라, 명박이 탄핵을 외쳤으니 애국주의 성향의 우경화된 노빠들이겠다. 이 촛불시위가 그만큼 ‘이명박 반대’만으로 다 모여드는 폭넓은 성격의 집회이고, 그런 곳에서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숙고하게 해준다.

소략하게 귀동냥한 바로는, 어느 800명쯤 되는 시위대열을 다함께 친구가 앞에 나서서 ‘지휘’하다가 ‘다함께’가 나중에 대열을 빠져나갔는데 그뒤 대열 상당수가 연행되었다나? 더 자세한 경과를 말할 수는 없으나 ‘쟁점’은 나와 있다. 첫째,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시위대열을 이뤘는데 누가 시위대열을 지도 또는 지휘할 수 있는가? 아니면 대중의 자발성에 맡겨야 하는가? 둘째, 시위대열을 지휘한 사람은 끝까지 대열을 책임져야 하는가? 내가 보기에는 “앞에서 시위를 지휘한 사람들이 나중에 슬쩍 빠져나가고 남은 사람들이 연행되었다면 그 ‘빠져나감’에 대해 비판받을 구석은 있겠다. 물론 그 비판의 강도는 구체적인 상황을 헤아려 조절돼야 할 것이겠고.

그런데 ‘지도부는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다른 논점이다. 지도 또는 지휘되지 않는 시위가 힘을 가질까? 경찰이 치고 들어왔을 때 ‘오합지졸’로 전락하지 않는가?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에 대해 다함께를 싸잡아 비판하면서 “대중을 지도하려고 하지 마라”고 떠든 글들이 여럿 있었는데, 이 쟁점은 운동론에서 아주 중요한 대목의 하나다.

운동권에는 스탈린주의 흐름과 자율주의/무정부주의 흐름이 있다. 양자가 ‘쌍동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자. 대중들을 ‘관료적’으로 통제, 지휘하려다가 벽에 부닥친 사람들은 그 반발로 “알았어. 대중들에게 그냥 맡겨. 그들은 정말로 창조적이야”하고 대중신비화론으로 경도된다. 그 감탄에 얼마쯤 타당한 면은 있고, 이는 그동안의 집회가 관료화된 운동단체의 관료적 문화를 반영해 왔다는 것을 ‘각성’하게 해준다. 그 대중의 자발성을 살리는 노력은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대중에게 맡기라’고 할 문제는 전혀 아니다. 이것은 대중에 대한 영합이다. 실제로 촛불집회 초기에 참여 시민들이 운동단체들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여 단체들이 깃발 올리기를 삼가고 그랬지만, 시민들이 그 요구만 한 것이 아니다. “왜 운동단체들이 나서서 책임지고 시위대열을 이끌지 않는가?” 비판하는 소리도 곧장 올라왔던 것이다.

대중에게 그저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지휘하는 것은 문제있지만 한편으로 지휘 지도 없이 시위대열은 힘을 얻지 못한다.

게시판에서 ‘다함께’를 비판한 목소리에는 일정한 근거는 있지만 ‘과잉 비판’의 혐의도 있다. 정파 간의 시기심이 발동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다함께의 ‘시위지휘상의 문제’를 평가할 때에는 그동안 촛불집회에 다함께가 열심히 참여해 왔다는 사실이 크게 고려되어야 한다. 큰 공이 있을 때는 ‘허물’에 대해 관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논란은 한편으로

좌파운동 내의 두 경향을 성찰하게 해준다.

사회운동을 강조하는 쪽(또는 자율주의/무정부주의적 성향)과 정치운동을 강조하는 쪽(맑스레닌주의 전통의 하나)가 그것이다.

다함께가 민노당의 한 분파로서 자기 정파의 입지를 위해 때때로 엔엘파의 2중대 노릇을 했던 점은 비판될 일이고,

집회에서 자기 정파 선전에 남다르게 열성인 것도

거슬리는 구석이 없지 않고,

그들이 표방하는 트로츠키주의가 과연 ‘풍부한/변화된 내용’을 담고 있는지도 따질 구석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이 정치운동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중요한 대중투쟁이 벌어질 때 열심히 참여한 것 자체는 인정해줄 일이고,

이는 거꾸로

민노당과 ‘선 긋기’ 하는 데 만족하고,

정치운동에 치열하게 나서지 않은 좌파 그룹들,

또는 사민주의 성향의 정치에 만족한 좌파 그룹들이

올 선거국면에서나 이번 대중투쟁 과정에서

‘무력한 존재’로 낙착돼 왔다는 것을 선명히 대비하게 해준다.

다른 좌파그룹들이 ‘운동론’에 있어서도 큰 허술함을 지녔고,

 ‘치열함’ 면에서도 다함께와 대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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