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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주년 세계노동절, 노동운동의 상황과 과제
허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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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30일 19시 46분 06초
124주년 세계노동절, 노동운동의 상황과 과제 허 영 구(월간좌파 편집위원장, 좌파노동자회 대표) 1. 8시간 노동제 쟁취 투쟁의 역사 1800년 중반 독점자본가와 국가권력의 결탁을 통해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미국자본주의는 급격하게 발전했다. 노동착취의 핵심은 장시간 임금노예노동이었다. 1866년 제1차 인터내셔널 강령에서 8시간 노동제 법제화를 요구했다. 1869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전국노동조합연합단체인 노동기사단이 설립됐다. 1884년 5월 1일 미국 방직공장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쟁의를 시작했다. 1886년에는 미국노동총동맹이 설립됐다. 드디어 그 해 5월 1일 8만 명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총파업을 전개했다. 이에 자본가 경찰이 발포했고 어린 소녀 포함 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5월 4일 파업은 전국으로 확산됐고 노동자 30만 명이 시카고 헤이마켓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 곳에서 자본가들이 조작한 폭탄이 터졌고(7년 후 확인) 7명의 경찰이 사망하자 발포가 시작됐다. 200여명의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쳤다. 8명이 폭동죄로 체포되어 5명이 처형당했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불꽃은 들불처럼 타 오르고 있다...이 들불을 끌 수 없으리라!”- 오거스트 스파이즈의 법정 최후 진술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폭탄을 투척하라고 지시한 것이 누구인가?...8시간 노동제를 막기 위해 뉴욕에서 파견된 음모가(독점자본가)들이 폭탄을 투척했다. 우리는 그 추하고 악랄한 음모의 희생자일 뿐이다.”- 파슨즈의 법정 최후 진술 1889년 7월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맞이해 파리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설립대회에서 다음 해인 1890년 5월 1일을 ‘노동자 단결의 날’로 정하기로 한 것이 노동절(May Day)의 유래가 되었다. 이 날 요구는 다음과 같다. “1. 기계를 멈추자! 2.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자! 3.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 노동자 권리쟁취 위해 동맹파업을 하자!” 미국노동자들의 8시간 쟁취 총파업투쟁이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노동절의 의미로 전파되었지만 미국(캐나다)의 노동절은 9월 첫째 주 월요일이다. 노동자들이 기억하지 못하게 한 탓인지 매년 날짜가 변동한다. 대신 5월 1일은 자본가들의 ‘법의 날’이다. 한국도 미국을 따라 이 날을 법의 날로 정하고 있다. 일본에는 5.1절 외에 천황이 수확에 감사하는 제를 올리는 11월 23일이 ‘근로감사의 날’이다. ‘추수감사절’과 비슷한 날이라 할 수 있다. 노동자는 365일 노동을 통해 착취당하고 있는데 딱 하루만 감사하면 안 되고 구조적이고 제도적으로 감사할 일이다. 이건 국가나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투쟁을 통해 쟁취할 수 있을 뿐이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UN산하 국제노동기구(ILO)가 설립되고 8시간노동제와 양질의 일자리를 부르짖고 있지만 몇 몇 나라를 제외하곤 양질의 노동은커녕 8시간노동은 요원한 실정이다. 국제노총(ITUC, International Trade Union Confederation)이나 11개 국제산업노조연맹(GUF, Global Union Federations)이 있지만 각 국의 노동자 투쟁 지원은 물론이고 전 지구적 차원의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세계화 속에서 노동조합을 통한 만국의 노동자 단결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국제노동단체들은 1961년 경제성장과 세계무역확대를 목적으로 설립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동자문회의(TUAC, Trade Union Advisory Committee)에 참가해 건의하는 수준이다. 국제행정관료기구로 전락한 국제노동단체들이 다국적기업과 초국적 투기금융의 형태로 세계화된 자본의 장시간 노동을 통한 노동착취에 대응한 전략전술이나 투쟁을 조직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각 국 노동자들은 주체적으로 노동착취를 통한 자본의 이윤극대화가 이뤄지는 산업현장에서 노동시간단축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한편 상당수 노동자들은 자본의 저임금전략을 돌파하지 못한 채 자본주의 소비구조에 깊숙하게 편입되면서 스스로 장시간 임금노예노동을 선택하고 있다. 2. 한국노동자들의 노동절 투쟁 일제식민지배 시대인 1923년 조선노동총연맹 주최로 2000여명이 모여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 요구를 내걸고 5.1 노동절 행사를 개최했다. 그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노동절 행사는 금지됐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주도로 노동절 행사를 개최했다. 전평을 와해시킬 목적으로 1946년 3월 10일 설립한 우파 노동조직인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도 노동절 행사를 개최했지만 참가자는 소수에 그쳤다. 그들이 내세운 반공과 노자협조주의에 동의하는 노동자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전평은 1946년과 47년에 걸쳐 총파업을 전개하였으나 미군정과 친일경찰 그리고 극우 대한노총에 의해 붕괴됐다. 대한노총의 초대 총재 이승만, 부총재 김구(자료에 따라서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이 고문으로 기록)가 말해주듯이 당시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대한노총의 역사를 이어가는 한국노총은 자신들의 연혁에서 ‘1946~47년 전평 총파업 이후 대한노총이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이 되었다며 노동운동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전평이 붕괴되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노동절은 개최되지 못했거나 약화됐다. 이승만은 5.1절이 공산주의자들의 선전도구로 이용된다는 이유로 날짜변경을 지시했고 1959년부터 대한노총 창립기념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했다. 박정희 쿠데타 이후 대한노총은 한국노총으로 개칭되었고 1963년 4월 17일 ‘근로자의 날 제정 법률’에 따라 노동절 날짜에 이어 이름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박정희는 노동절을 대신해 미국자본가 정권이 한 것처럼 1964년 5월 1일, ‘법의 날’을 제정했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역사와 의미를 담고 있는 노동절을 빼앗은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을 거치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착취와 개발독재 경제성장은 속도를 내게 된다. 경제개발5개년 계획에 따른 고도경제성장 정책 10년도 채 되지 않은 1970년 11월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온 몸을 불살랐다. 창씨개명처럼 이름마저 빼앗긴 채 어용노총의 창립일인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기념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전개되면서 투쟁하는 5.1노동절을 되찾았다. 법적으로는 104주년 세계노동절인 1994년부터 5월 1일로 변경됐지만 법은 그대로 ‘근로자의 날’이다. 불완전한 회복조차 35년이 걸렸다. 전태일 열사 분신 44년, 5.1절 날짜를 찾은 지 20년이 지났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근면을 강요당하는 ‘근로자’로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노동재해, 해고, 실업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알바⋅비정규불안정노동자들에 근로기준법은 그림의 떡처럼 지켜지지 않는 법일 뿐이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이트 사람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의 45.5%가 노동절 날도 근무한다고 답했다. 대기업 26.4%, 중소기업에서 49.7%가 근무한다니 영세기업의 경우 많은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한국은 노동절에도 다른 나라처럼 1주일이나 3일 휴가는커녕 온전한 휴가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절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조직된 노동자들의 휴일 내지 간부들이 참여하는 기념행사의 날로 변모했다. 민주노총은 11월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중앙 집중으로 열리는 관계로 노동절은 전국 동시다발로 개최하고 있다. 1998년 민주노총 2기 이갑용 집행부 때 서울 종묘에서 노동절 행사를 개최한 뒤 가두투쟁을 전개하였고 사무총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노동절의 세계 노동운동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중앙에 집중해 투쟁하는 것보다는 현안 요구를 내 건 전국 동시다발 행사로 진행했다. 금년에도 민주노총 16개 지역본부가 16개 지역에서 노동절 행사를 갖는다. 민주노총은 노동절 10대 요구 중 하나로 실노동시간 단축을 내걸고 있지만 산하 사업장의 장시간 노동을 어떻게 하겠다는 정책이나 방침은 없다. 그 동안 한국노총은 5.1절 행사를 마라톤대회로 대체했는데 금년에는 여의도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한국노총의 중앙 집중 전국노동자대회 4대 요구에 노동시간 단축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자본의 노동착취는 노동시간과 노동 강도에 달려 있다. 세계 노동절의 의미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자본의 공세에 맞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를 나누는 일이다. 적게 일하고 모두 함께 일하는 평등사회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정규직, 알바⋅비정규직, 실업자로 갈라치기 당한 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야만적 불안정노동사회로 전락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노동절은 노동자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표출된 처절한 계급투쟁의 역사를 중단 없이 이어가는 과정이다. 3. 주당 35시간이 아니라 60시간 노동착취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사정소위에서 노동시간단축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노동부가 유권해석하고 있는 현행 노동시간은 주당 68시간이다. 법정노동시간 40시간에다 노사합의로 12시간 연장이 가능하고 주말과 휴일은 연장노동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16시간을 추가할 수 있다. 이 경우 연간 노동시간은 최장 3500시간에 달한 유럽노동자의 2배 내지 3배를 일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자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그 잘난 대한민국 노동부는 1주일을 ‘주말 휴일 제외한 5일’이라고 해석한다. 이 집단은 1년 365일 태양력조차 자본의 노동착취가 용이하도록 해석하고 뒷바라지 한다. 민주노총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2020년까지 연간 노동시간을 1800시간까지 단축해야 한다는 노사정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논의되는 노동시간 단축논의는 이처럼 노동부가 앞장서서 자본가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니 진척이 될 리 없다. 박근혜 정권은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임기 중 연간 노동시간 1800시간을 내걸었는데 공약파기는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노사정소위는 크게 박근혜정권⋅새누리당⋅재계의 주당 ‘52시간+8=60시간’과 야당의 주당 52시간으로 갈라진다. 그런데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주당 52시간으로 하되 중소기업을 배려하여 형사처벌을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8시간을 추가하고 거기다 주말 노동 시 할증료를 부과하자는 주장을 한다. 결국 노동시간을 현행 또는 연장하자는 데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형사처벌 면제 주장은 불법을 그대로 용인하자는 논리다. 그나마 소수 야당에서 주장하는 과로사 기준이 ‘발병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 노동’이라면서 노사정소위가 장시간노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과로사를 허용하자는 거냐는 주장은 묻히고 만다. 자본의 노동착취가 사회적 타살인 노동자의 과로사로 이어지는 결과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오직 노동시간이 이윤과 임금에 미치는 상관관계만 논쟁의 지점이 되고 있을 뿐이다. 노사정소위 전문가지원단이 주당 52시간에다 8시간의 특별노동시간을 허용하는 것은 ILO 등 국제기준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지만 이 나라 정부나 정치권에게는 우이독경일 뿐이다. 어차피 ILO 핵심 조약도 비준하지 않는 인권이나 노동권의 후진국가니까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다. 노동부는 1주를 5일이라는 엉터리 해석을 하고 있다. 곧 대법원이 1주를 7일이라는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한다. 정말 한심한 나라다.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을 다시 대법원에서 판결해야 믿는 나라니까 말이다. 대법원이 1주를 7일이라고 판결하면 주 52시간을 넘는 주말과 휴일 16시간 연장노동은 위법이 된다. 잘난 야당은 중소영세업체의 경우 형사처벌을 면제해 주자고 한다. 대법원원이 판결하면 뭘 하나 안 지키면 그만인걸. 정부는 자기 멋대로 법을 행정적으로 유권해석하고 정치권은 위법도 면제해주고. 결국 한국노동자들은 장시간노동을 계속할 수밖에 운명인가? 대통령선거 공약이 임기 중 연간 1800시간 단축 아니냐고 질문하면 노동부 관료는 1800시간이 아니고 1800시간대라고 주장한다. 연간 1800시간으로 단축하려면 현행 주당 법정노동시간인 40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하는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여야 한다. 그런데 52시간이냐 60시간이냐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퇴행이다. 문제는 오늘날 장시간 노동이 한 노동자가 한 사업장에서 노동하면서 임금을 얻는 과정에서 방생하는 노동시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 이상의 직업이나 직장을 다니는 경우(two job)노동시간은 더 늘어난다. 거기다 한 노동자의 임금을 가구당 생계비를 기준으로 산정하고 자본가에게 요구하던 때와 비교한다면 오늘날 노동자 가구당 생계는 전 가족의 임금노동을 통해 충당된다. 민주노총이 조사 분석한 2014년 4인 가구 기준 월 표준생계비는 6,184,645원이다. 2013년 민주노총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합원 1인당 부양가족수는 3.55인이고, 월평균총액임금은 3,716,043원이었다. 연봉 4,460만원을 벌기 위해 주당 52시간 기준으로 연간 2,700시간을 일했다면 시간당 임금은 16,500원이 된다. 만약 주말과 휴일특근으로 주당 68시간의 경우라면 시급은 12,600원으로 하락한다. 그런데 2013년 임금수준으로 2014년 표준생계비를 충족하려면 3.55인 기준으로 32.3%에 해당하는 월 1,772,829원이 부족하다. 만약 가족 중 한 사람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주 52시간 노동을 통해 월 1,772,829원, 연봉 2,270만원을 추가한다면 가구당 소득 대비 시간당 임금은 12,460원으로 하락한다. 가족 중 추가노동이 주당 68시간이라면 가구당 총연봉을 총노동시간으로 나누면 시간당 임금은 9500원이 된다. 만약 한 가구 총 연봉 6,730만원이 맞벌이 노동에다 또 다른 가족의 알바노동까지 포함된다면 시간당 임금단가는 더욱 하락할 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3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 6205달러로, 작년 말일 달러당 1045원 기준으로 2,738만원이다. 4인 기준으로 1억 952만원이다. 기업과 정부 몫을 뺀 가계의 1인당 소득 1만 5천 달러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가구당 평균소득은 6270만원(월 평균 522만원)이 돼야 한다. 자본언론은 작년 철도노동자 파업 당시 19년 근무한 철도노동자 연봉이 5400만원(월 450만원)인데 이를 귀족노동자로 공격했다. 한편 2013년 통계청 및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도시노동자 가구당가족수는 3.36인이고, 5인 이상 상용직 노동자 평균 총액임금은 3,288,477원이었다. 5인 이상 상용직,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가 다수인 민주노총이 이러한데 5인 이하 중소영세사업장이나 시급 5,210원에 허덕이는 알바노동자들에게는 표준생계비는 그림의 떡이고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이 발표한 2014년 1인 가구 표준생계비는 2,248,050원이다. 현재와 같은 낮은 시급 5210원, 월 100만원 수준의 임금으로는 표준생계비를 절반 밖에 충족하지 못한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2015년 최저임금 시급 6700원(월급 1,402,000원)을 요구하였다. 민주노총은 시급 1490원 인상의 근거로 ‘열악한 공단 저임금 노동자 실태조사에서 파악된 요구액인 시급 6,878원에 근접하고 2014년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등 거시지표를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또 ‘임금동향의 특징으로 법정 최저임금 5인 이상 상용직 정액급여의 40%에도 미치지 못하고, 27개 OECD회원국 중 20위에 그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았으며, 여전히 소득분배구조가 개선되지 않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최저임금의 대폭인상은 현재 한국사회의 핵심적 화두인 저임금 노동 및 소득불평등 해소, 나아가 새로운 경제성장 모멘텀을 형성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게 고작 시급 1490원 인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권력과 자본의 시혜가 무엇이 다른가? 1989년 근로기준법이 5인 이상 사업장에 전면 확대된 지 25년이 지났다. 4인 이하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1천만 명도 넘는다.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최근 500만 알바노동자들의 존재를 감안하면 44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다시 되새겨야 할 때다. 이처럼 장시간 노동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는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이 장시간노동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노동시간을 단축을 위한 투쟁을 전면적으로 전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하는 기계처럼 노동에 빠져(workaholic)있거나 더 많은 임금을 획득하기 위해 자본이 쳐 놓은 저임금 단가와 장시간 노동구조의 올가미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야근이나 주말특근에 목매다는 노동자들이 다수이고 이를 제지할 어떤 정책적 대안도 없는 노동운동이 지속되는 한 노동시간단축은 요원하다. 500만 알바노동자와 수백만 실업자들의 임금과 고용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한 노옹운동은 한발자국도 진전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달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해야 선원들조차 저임금 비정규직∙알바노동자로 채워져 있는 참담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고서 일회성 행사인 노동절을 아무리 기념한들 그 정신을 이어받지 못할 것이다. 4. 빼앗긴 노동법과 자본의 공세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수많은 노조가 만들어지고 민주노조운동이 도약하면서 5.1절을 되찾았다. 뿐만 아니라 노동악법을 폐지하거나 노동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10년 정도의 성과는 IMF외환위기 이후 자본의 전면적 공세에 밀려 노동법이 개악되고 노동의 가면을 쓴 자본법이 강화되고 있다. 헌법에서는 노동3권을 보장하지만 하위법에서는 제약하고 있다. 경찰, 소방관, 교도관 등 여전히 노조결성이 금지되어 있다. 교사, 공무원 역시 온전한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전교조, 공무원노조처럼 정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노조아님’을 통보하고 설립을 취소한다. 멀쩡한 노동자를 ‘특수고용직노동자’로 부르며 자영업자로 만들고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한다. 500만 알바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자로서의 정책은 아예 없다. 5월 1일이 ‘노동절’인지 ‘법의 날’인지는 노자간 정세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 한국이 1991년 ILO에 가입하면서 결사의 자유, 차별금지, 강제노동금지, 고용상 최저연령 등 핵심 4대 협약을 약속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여전히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금지 협약은 비준하지 않고 있다. 1996년 OECD에 가입할 때도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한 바 있지만 형식적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와 신경제를 부르짖으며 조기에 OECD가입을 추진했는데 핵심은 노동시장유연화로서 ‘정리해고제 도입’ 약속이었다. 이것이 1996년 12월 26일 노동법개악 날치기 파동이었고 민주노총은 전평 총파업 이후 반세기만에 전국적인 총파업을 한 달간 벌였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통해 정리해고제를 막아냈지만 1997년 말 IMF외환위기에 처하여 경제위기극복이라는 파고 속에 휩쓸려 1998년 2월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와 노동자파견법에 합의하고 말았다. 김대중 정권은 정리해고법을 제도화하고 본격적인 정리해고를 실시했다. IMF프로그램이 착착 진행되면서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의 칼바람 속에 거리로 쫓겨났고 비정규직 증가와 실업, 부채가 증가 그리고 양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근로기준법 23조는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는 ‘해고 등의 제한’ 조항을 두고 있고, 근로기준법 24조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제한’으로서 해고를 위해서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 해고회피노력, 노동조합 등과 해고기준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쌍용자동차에서 보듯이 경영사이유가 아니라 투기자본에 의한 기술먹튀와 회계조작을 통한 불법부당한 정리해고가 발생했고, 정권이 폭력을 자행했으며,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근로기준법 25조는 3년 이내에 해고된 노동자가 일하던 자리에 노동자를 고용할 경우는 해고자를 ‘우선 재고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 역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쌍용자동차 3000명 정리해고자들은 5년이 넘도록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콜트콜텍 부당해고 법정 투쟁에서 대법원은 현재 경영상의 위기는 없지만 미래에 있을지 모르는 경영상의 위기를 생각해 현재 단행한 정리해고는 정당하다며 노골적으로 자본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노동악법도 문제지만 법원이나 검찰은 그나마 법조문에 있는 대로가 아니라 자본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역시 파견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파견노동자에 대한 중간착취를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법일 뿐이다. 특히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직접 고용관계가 아니라 간접고용 형태로 왜곡함으로서 노동조합 활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현대차 자동차 생산라인에 투입된 사내하청 불법파견이 대법원 판결로 확정되자 자본은 이들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파견법 개악으로 통해 파견노동 확대를 기도하고 있다. 한편 2006년 노무현정권이 민주노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정한 비정직보호법으로 불리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역시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것이 자본의 노동착취를 용이하게 하는 법률임이 드러났다. 2년 이상 지나면 정규직도 아닌 준정규직 또는 중규직으로 불리는 무기계약직노동자가 된다고 했지만 기간제 노동자들은 2년이 되기 전 계약해지의 이름으로 정리해고를 당하고 있다. 비극적 참사였던 세월호 선장 역시 기간제노동자였다. 파업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특별법인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거나 해고되는 형사상 처벌이나 징계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노동자들의 파업은 대부분 불법 시 되고 있다. 파업을 업무방해로 규정하고 고발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되고 민사상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아니면 교섭이나 파업의 대상이 안 된다는 억지주장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지난 해 철도노조 사영화 저지투쟁 역시 정부정책에 대한 반대 파업은 불법이라는 게 정부와 철도공사의 주장이다. 일단 징계를 내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법원 재판 결과를 받아오라며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을 약화시킨다. 투쟁을 통해 쟁취한 노동자 단결권은 복수노조의 이름으로 어용(회사)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공공부문 ‘비정상의 정상화’를 내걸고 공공부문노조파괴를 진행시키고 있다. 5. 좌파노동운동의 과제 저곡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통한 박정희 개발독재 경제성장정책에 맞서 1970년대 전태일 열사 분신 이후 여성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이 시작됐다. 19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를 거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다. 수천 건의 쟁의가 발생하고, 수천 개의 노조가 생겼다. 임금이 인상됐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착취를 통해 자본축적으로 해오던 자본가들은 경영과 기술혁신을 꾀하게 되었고 그 결과 고도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노동조합을 통해 투쟁과 쟁취를 경험한 노동자들의 노동생산성도 높아졌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장자주관리 같은 계급적 측면보다 노사협조주의적 애사심(?)도 높아졌다. 자본은 노동자 내부구조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단구조화하면서 분할지배체제를 강화해 나갔다. 한편으로 자본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사업장이나 조직된 노동조합 내에 머물러 있던 노동운동은 급변하는 정세에 대응하는데 실패했다. 1970년부터 시작된 통화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정세에 둔감한 채 노동운동의 전략전술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한 마디로 수세적 국면에 처해 있다. 정세적 측면에서 자본의 공세에 밀리는 것은 자본의 힘이 우위에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체적 측면에서 노동운동이 노동계급 내에서 고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이 치밀하게 구사해 온 전략이 성공한 면도 있지만 소위 민주노동운동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2500만 비정규불안전노동자를 조직할 전략전술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이제 그 운동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다. 먼저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한 노동운동의 역사로서 124주년 세계 노동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다. 그러면서 지금 시기 노동시간 단축투쟁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책과 대안을 마련하고 조직하는 일이다. 자본의 무한착취에 맞선 노동시간 단축뿐만 아니라 조직된 노동자들과 연대는커녕 자본에 의해 적대적 관계를 형성시키고 있는 현실을 타파해야 할 긴급한 과제가 놓여 있다. 실업자∙알바∙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조직된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노동자들의 연대를 구축하지 못하는 한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은 민주노조운동의 기능을 상실하거나 붕괴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먼저 당면한 투쟁과제로서 철도노조 사영화 저지투쟁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200명이 넘는 해고자, 수천명의 징계자, 수백명의 부당전보, 수백억원의 손배가압류라는 탄압을 철도노조에만 맡겨둘 수 없다. 현 시기 철도노조 투쟁은 마지막 남은 민주노조운동의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심폐소생술을 통해서 살려내고 달리게 만들어야 한다. 공공부문 사영(유)화를 저지하지 못하면 다국적,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세계화된 자본의 힘은 더욱 커진다. 그 경우 노동운동은 더욱 지리멸렬해질 수밖에 없다. 철도노조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투쟁하다 해고되고 징계 받은 노동자들에 대한 생계지원 등을 조직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소속 조합원들이 투쟁하다 해고되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투쟁을 집행할 수 없다. 모든 조합원들은 희생자에 대한 1/n을 갹출할 각오를 해야 한다. 지난 해 말 철도노조가 23일 동안 끈질긴 파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노동조합의 초기 전통인 상호부조를 조직적으로 결의하고 실천했기 때문이다. 말로만 비정규직 조직화나 기금모금이 아니라 알바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노동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연대하면서 조직화해야 한다. 대기업정규직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예, 주 40시간 노동시간 상한제)해 일자리를 나누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나아가 자본주의체제내화 된 소비구조에 깊숙하게 편입되어 장시간 노동과 부채증가라는 노동착취와 금융수탈을 스스로 자초하는 노동운동의 약점을 과감하게 탈피하는 새로운 좌파노동운동에 기초한 연대와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124주년 세계노동절,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에 새로운 운동의 전망과 영감이 일어나길 바란다. (월간좌파 13호, 2014년 5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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