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교조 활동가입니다.
중고교 인문사회분야 교과서가 송두리째 바뀌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한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눈을 틔워줄 책을 하나 써봤습니다.
한번 훑어봐 주시고, 주변의 어린 사람들에게 권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중고생뿐 아니라
대학생들에게도 [인문사회 소양이 뛰어난 소수 빼고는] 도움될 책입니다.
이 책이 좀 팔려야 출판사쪽에다가 ‘내 책 좀 더 내자’고 요청할 엄두가 날 것 같아서,
우는 소리[?] 좀 섞어서 sale을 합니다.....
책 제목은 ‘교과서 밖에서 배우는 인문학 공부’[‘살림터’에서 펴냄].
아래에, 책의 목차와 ‘머릿글’을 첨부합니다.[인터넷 교보문고에 들어가서 ‘정은교’를 클릭하십시오]
머리말 :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을’이다!
1부 : 문학 고전을 통해 통합교과 공부를
1. 문학의 힘을 보여준 ‘허클베리 핀의 모험’
2. 김시습, 귀신을 빌어 세상을 말하다
3. 근대 자본주의의 챔피언 파우스트
4. 죽어서 살아간 불멸의 여인 안티고네
5. 별을 우러르며 길 떠난 돈키호테
6. 로빈슨 크루소를 우려먹지 마라
7. Nobody와 돼지가 된 오디세우스의 부하들
8. 아, 바틀비여! 아, 사람이여
9. 낭만에 대하여
2부 : 교과서는 왜 읽고 싶어지지 않을까?
1. 아주 공갈 사회책
2. 도덕책은 씩씩하게 이웃 사랑을 외쳐라
3. 국어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
3부 : 우리가 정작 알아야할 것들은
1. 그 몸이 그 사람이다
2. 집값의 정치경제학
3. 사람은 지배받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4. 게으를 권리
5. 경제공부, 숲부터 먼저 봐라
6.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
7. 근대는 어떻게 첫 밑천을 마련했는가
8. 권력은 통계를 속이고 싶어한다
4부 : 어떤 앞날을 그려야 할까?
1. 바울이 걸어간 길로 나아가라
2. 우리가 바라는 세상
3. 거기서 미래를 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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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을’이다!
1970년대 이전에도 드물게나마 훌륭한 교육자가 있었다. 내가 늘 거울로 삼았던 분은 헐벗은 농촌 어린이들을 온 마음으로 부둥켜 안고 살아간 이오덕 선생이다. 그분이 알뜰살뜰 모아낸 농촌 어린이들의 시집 한 권으로, 나는 세상을 알았고 교육자가 가야할 길도 깨쳤다. 온갖 박식한 이론을 늘어놓는 사범대학 수업에서, 또 내리먹임뿐인 초중고 시절의 교실에서 내가 배운 것은 많지 않다.
옛날의 학교는 사실 암울한 곳이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초중고 교사는 대부분 국가체제의 나팔수이거나 부속품에 불과했다. 위기철의 소설 ‘아홉 살 인생’에는 교육에 대해 아무 고민도 없는 선생 얘기가 하나 나온다. 부업으로 돈 벌 궁리나 하고, 군대 조교가 신입 졸병들을 다루듯 능숙하게 아이들을 패는 기술만 터득한 선생 이야기. 영화 ‘친구’에도 그런 파시스트 교사에게 학생들이 얻어맞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어두웠던 1970년대에 참교육을 고민하기 시작한 젊은 사범대학생들이 여럿 생겨났다. 최루탄가스 희뿌연한 길거리에서, [학생들끼리 둘러앉아 세미나를 한] 어두컴컴한 짜장면집에서 민주주의의 세례를 받은 대학생들이 새내기 교사로 하나둘 학교에 들어가서 끼리끼리 소모임도 만들고, ‘학교 자치[自治]’도 부르짖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일으켜 세웠다. 1987년 민주항쟁의 시대 분위기에 고무된 젊은 교사들이 곳곳의 교실에서 열정을 다해 아이들과 씨름했다. 교단에서 쫓겨날 지언정 옳은 얘기를 억누를 수 없었던 교사도 있었다. 온힘을 다해 학생들과 만나다가 탈진해 이승을 떠난 교사도 있었다. 한 편의 역사 드라마가 태어난 것이다.
이러구러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첫 참교육 주체들이 한 세대[30년]를 마감해 가고 있는 요즘, 그 드라마는 변함없이 상연되고 있는가? 쓰디쓴 한숨을 내뱉으며 우리는 고개를 떨군다. 지금도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선생들이 곳곳에 있지만[‘살림터’ 출판사에서 펴낸 귀한 책들을 보라], 한국의 민중에게 그것이 감동을 선사하는 ‘드라마’로까지 비치고는 있지 않다. ‘참교육 교사들이 저기 있구나!’ 하는 존재감[存在感]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나는 많이 들었다. 교육학자 엄기호는 최근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고 하는 섬뜩한 제목의 책을 펴내기까지 했다.
왜 열정의 드라마가 막을 내렸을까? 젊었던 교사들이 나이를 먹어서? 교사들이 배 부르고 등 따시니까 게을러져서? 아서라, 섣부르게 교사들을 탓하지 마라.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해도, 그런 답은 우리 현실을 보는 눈을 더 흐릿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것은 빗나간 오답이다.
지난 2013년을 돌아다 보자. 한국의 지배세력 주류는 이승만의 명예 회복과 박정희 찬양에 부쩍 열을 올렸고, 그들이 세운 ‘원칙’에 ‘아뭇 소리 없이 따르기만 하라.’고 민중을 다그쳤다. 이 불통[不通]의 정치에 시민사회가 변변히 맞서지 못하자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소시민으로 살아가던 젊은이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안녕들 하십니까?’하고 걱정스레 묻는 대자보[大字報]를 붙였다. 정말 우리 모두, 안녕하게 살아가고 있냐고!
요컨대 ‘민주화 시대’가 가라앉고 있다. 사회과학자 박노자는 한국의 지배세력 주류가 꼭 히틀러까지는 아니라 해도, 절반쯤의 파시즘을 들여오고 싶어하지 않겠냐고 짚었다. 답은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뒷걸음질 치고 있는데, 학교에선들 무슨 드라마가 탄생하랴. 우리는 사회 전체가 나아갈 길을 내다볼 때라야 우리가 갈 길도 가까스로 찾는다. 이 뒷걸음질을 함께 막아내지 못한대서야 학교도 다시 어둠의 터널 속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길은 어디에 있을까? 박정희 시대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박정희 시대를 넘어선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박정희를 다시 불러낸 데에는 우리의 책임이 크다. 우리의 생각이 좁았고, 열정이 모자랐다. 그 생각을 한껏 넓히고 그 열정을 다시 불러내지 않고서 우리 갈 길은 찾아지지 않는다.
우리의 실천을 깡그리 부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동안 ‘참교육’ 교사들이 일궈낸 진전이 없지 않았다. ‘진보 교육감’도 나왔고, ‘인권조례’도 빛을 봤다. 생각 있는 수많은 교사들이 ‘교과 모임’이나 ‘독서 모임’에서 활발하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혁신학교’ 입소문이 학부모들 사이에 빠르게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이 결국엔 역[力]부족이었다. 시대 전체는 피지배 세력의, 내일을 향한 열망과 지혜와 의기[義氣]가 지배 세력의, 지금 이대로 살고 싶어하는 욕망과 지략과 자기애[自己愛]를 훨씬 넘어설 때라야 비로소 전진하는데, 우리의 의기[義氣]는 그렇게 담대하지 못했고, 지혜도 별로 깊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일컫는, 고유명사로서의 ‘참교육’, 무엇이 문제였던가? 거칠게 간추리자면 이렇다. 선생들이 눈앞의 교실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는 많이 궁리하고 실천했지만, 정작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가슴 떨리게 고뇌하지는 않았다. 모둠 학습을 어떻게 꾸릴지 궁리하고, 아이들에게 솔깃한 예화[例話]가 무엇일지 찾는 노력은 할 만큼 했다. 생태환경과 민족통일과 양성평등과 인권[人權]옹호 교육에 주목한 선생들도 많다. ‘무엇을’에 대해 왜 고민하지 않았겠냐고, 뜨악해 할 분도 있겠다.
하지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보자. 전교조가 탄생할 때에는 그 선생들에게 감명 받아 세계관을 바꾸고, 사회운동의 주체로 나선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이 우리 눈에 선명히 보였다. 그들을 ‘전교조 [교사들에게 배운] 1세대’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그뒤 2세대와 3세대가 나왔는가? 꼭 교사들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지금의 20대와 30대는 성인이 되어서야 가까스로[떠듬떠듬] 현실에 눈떠 가고 있지 않는가? 생태와 통일과 인권을 가르친 교사들도 있겠으나, 학생들이 ‘소시민[小市民]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할 만큼 [그들에게] 교육적 영향력을 끼친 경우는 무척 드물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을’이라는 씨름의 샅바를 한껏 더 힘을 주어 움켜쥐어야 한다. 우리의 후퇴는 현실의 ‘일부’[가령 학교, 민족, 생태, 소수자 등등의 영역 하나하나]만을 건드려서는 되돌릴 수 없고, 현실의 총체를 넘어서겠다는 담대한 목표를 세울 때라야 가까스로 변화의 전망이 열린다.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
수많은 민중이 피부로 느끼고 있듯이, 지금 지구촌 정치경제의 사정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한국의 제도언론이나 학계는 그 심각성과 원인을 솔직하게 밝혀내고 대결하기를 회피하고 있지만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2013년 11월의 한 머리기사에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의 위험성을 단단히 경고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그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거니와, 이는 인플레이션[물가 앙등]보다 민중 삶에 더 치명적인 타격을 초래한다. 그 디플레이션을 막으려고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헬리콥터로 돈다발을 퍼붓는 눈먼 ‘통화 팽창’ 정책을 써왔더랬다. 그런데 이것의 본질은 자기나라 경제를 보호할 속셈으로 이웃나라들에 경제위기를 떠넘기자는 짓이다[근린궁핍화]. 그래서 파괴적 디플레를 억누르는 대신, 각국 간의 정치군사적 긴장이 높아진다. 또 그렇게 몸부림친다 해도 디플레가 다락 같은 인플레로 돌변할 가능성을 막아내지도 못한다. 이 길이든, 저 길이든 민중의 삶은 전혀 안녕하지 못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누군가는 지금의 20~30대를 ‘공포 세대’라 일컬었다. 젊고 어린 세대가 온통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는 얘기다. 우리의 학생들을 암울한 미래와 대담하게 대결할 씩씩한 주체로 북돋우려면 우리 자신부터 세상 보는 눈길을 더 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인류 역사 전체를 내다보는 눈길로 인류의 고전[古典]을 읽어내자고 권한다. 당장 학교의 시험 점수를 얻으려고 잡다하고 시답잖은[!] 지식을 쌓는 일을 잠깐 내려놓고, 인류가 어떻게 살아 왔으며 현실에서 고통스런 문제가 무엇인지, 더 절실한 앎부터 마주할 것을 권한다. 기존의 교과서들이 얼마나 허튼 내용인지, 눈을 부릅뜬 넋두리도 한 웅큼 보탰다. 미래의 길잡이가 될 얘기를 살짝 내비치기도 했다.
이 책을 어여삐 여겨 손에 쥘 분은 우선 학구열 높은 몇몇 교사들일 게다. 하지만 이 책 곳곳에서 나는 건방지게도 ‘사부[師父]’라고 자칭했다. 이 책이 [몇 안 되더라도] 눈망울 초롱초롱한 학생들에게 건네지기를 갈망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떠올리며 썼으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책 내용’이 좀 어렵다고 느끼는 학생들도 있겠으나, 고등학교 교과서는 훨씬 어려울뿐 아니라 한가로운 관조[구경꾼 넋두리]와 잡동사니 같은 사변적[思辨的]인 지식들로 가득차 있다. 공부할 맛 나지 않는 교과서를 다들 ‘울며 겨자 먹기’로 상대하려니 그렇게 학업 실패가 많은 것이다. 오히려 이 책은 당장의 시험에 써먹지는 못한다 해도, 길게 보면 인문 공부의 눈을 틔워주는 절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교과서는 저리 가라!”
이 책이 생각 깊은 학생들에게 부디 가 닿기를 바란다. 학생 여러분에게 큰 절을 하고,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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