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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토론회 발제문]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과 전투적 현장활동가들,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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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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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4월 25일 15시 19분 37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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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사회주의 세력과 전투적 현장활동가들,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동지들! 대중행동강령에 바탕 하여 공동요구와 공동투쟁전술로 진보정당 - 산별노조 양날개 운동에 대한 공동대응을 조직하자!
들어가며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96-97년 총파업 이후 의회주의와 조합주의에 기반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대선 패배와 분당 사태를 계기로 많은 동지들이 “실패”했다고 규정내리고 있다. 그렇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명백히 실패했다. 그러나 대선 패배와 분당 사태라는 현상적 모습을 통한 규정을 넘어서, 10여 년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본류로 간주되어 온 진보정당 운동의 역사적 실패에 대한 평가로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할 때에만 진정한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를 위해 넘어야 할 과제와 그 극복 방안이 무엇인지를 동지들 사이에서 분명히 하고, 함께 뜻을 모아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힘 있게 착수할 수 있다.
우리는 진보정당운동의 역사적 실패가 노동계급운동 내에서 그것의 해체,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민노당/진보신당, 양 진보정당 운동의 뿌리는 강고히 남아 있고, 그 세력은 노동운동 속에서 현재도 재생산되고 있다. 대선 패배와 분당 사태에도 불구하고 양 진보정당은 노동조합 상층부를 통해 노동계급운동 내 장악력과 영향력을 지속하고 있다. 많은 동지들이 “실패”에 대한 대안으로서 진정한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를 말하지만, 그것은 진공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그 같은 진보정당운동의 장악력과 영향력을 극복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극복 과제로서 제기되는 “장악력과 영향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러한 장악력과 영향력이 행사되는 현실 기제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진보정당-산별노조 양날개 체제로 대표되는 개량주의의 득세이다. 90년대 초중반 이래 민주노조운동이 후퇴하면서 노동운동 내 개량주의 정치세력과 노조관료들은 이 진보정당-산별노조를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지상 목표로 내세워 왔고, 그것을 대중적 동의 형태로 만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노동운동 내에 의회주의와 조합주의를 안착시키고 이를 안정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현실 기제로서 서구식 사민주의 진보정당 - 관료적 산별노조의 양날개 체제만한 것이 없었다. 노동조합은 선거․의회주의 정당운동의 인적․재정적 기반이 되어주고, 당은 노조운동 상층부들에게 의회 진출(국회, 지방의회, 지자체 등)의 통로가 되어주는 이 기제를 구축하는 데 개량주의자들과 노조관료들은 사활을 걸었다.
서구에서 이 양날개 운동은 ‘정치투쟁은 당이, 경제투쟁은 노동조합이’라는 식의 관료적 분업체제 하에서 정치투쟁을 선거․의회 운동으로, 경제투쟁은 조합주의 운동으로 각각 축소 왜곡시킴으로써 정치투쟁/경제투쟁의 결합과 혁명적․전투적 노동운동의 발전을 차단하고 개량주의를 정착시키는 역할을 확실하게 해왔다. 서구에서 장기간 계급투쟁이 침체하고 사민주의와 노조관료주의가 노동운동을 장악해 온 것도 이 양날개 체제를 통해서였다. 한국에서 개량주의 정치세력과 노조운동 상층부들이 진보정당과 산별노조 건설을 지상 과제로 내세우며 만들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고, 일정 정도 여기에 성공해 왔다. 이 점에서 민노당은 개량주의자들과 노동조합 상층관료들의 정치세력화였을 뿐, 진정한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는 이들에게 패배당한 것이다.
90년대 이래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들은 당시 이미 대세가 된 이 양날개 전략에 시류를 거슬러 반대해 왔다. 그리고 현실 계급투쟁에서도 양날개 전술에 일관되게 맞서 노동자계급의 전술을 발전시켜 왔다. 같은 시기 동안 전투적 현장활동가들도 양날개 운동에 반대해 왔다. 그러나 전투적 현장활동가들의 반대는 의회주의와 사민주의에 대한 반감의 경향이 강했을 뿐,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대안적 전망으로까지 나아가려 하지는 않았다. 또한 전술에서도 양날개 전술에 맞서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과 비공인 파업/평의회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전술을 명확히 부여잡지 못한 채 관료적 산별노조 건설과 현장권력 쟁취운동 사이를 오가면서 계속 동요했다.
민주노총의 민노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에도 불구하고 전투적 현장활동가들은 의회주의와 개량주의에 물든 민노당에 반대해 민노당에 가입하지 않았다. 현재에도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의 행보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는 것도 여전히 사실이다. 사민주의․의회주의에 기초한 민노당과 진보신당에 반대하는 전투적 현장활동가들이 여전히 현장투쟁과 정치세력화를 대립시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에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이상 진정한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민노당 식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가 분명해진 상황에서도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힘 있게 착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생디칼리즘(전투적 조합주의)을 극복하지 못해서이다.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들과 전투적 현장활동가들 사이의 결합을 강화하여 전투적 조합주의를 극복해야만 한다. 대중행동강령에 바탕하여 공동 요구와 공동투쟁전술로 양날개 운동에 공동 대응을 조직해야 한다. 대중행동강령의 기치 하에 의회주의․조합주의에 맞서는 혁명적․전투적 블록을 이루어 진보정당-산별노조의 양날개 전술을 현장에서부터 쳐내자.
당면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민주주의․의회주의․조합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대투쟁과 함께 20년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전투적 조합주의를 극복해야만 한다. 사민주의-조합주의의 접목으로 더욱 강화되는 진보정당-산별노조의 양날개 전술을 현장활동 --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 평조합원운동/평의회운동의 활성화, 현장에서의 사회주의운동의 강화 -- 으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정치세력화는 그 일보전진도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I. 진보정당과 양날개 전술
지난 10년간 민주노동당은 10만 명의 당원, 200여개의 지역위원회, 1000여개의 분회라는 엄청난 규모의 조직과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등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주요 대중조직, 그리고 국회의원 10명(이후 9명으로 축소됨), 지지율은 한 때 20%를 넘는 정당으로 성장했다. 민주노동당의 지도부는 외형적 성장에 힘입어 자신 있게 2008년 제1일 야당, 2012년 집권 프로젝트를 실현가능한 ‘꿈’으로 제출했다.
민주노동당이 외형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의회주의․조합주의가 강화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내부의 주요 정파들은 외형적 성장에 눈이 멀어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조합주의에 맞서 투쟁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수위의 당권 경쟁에 몰두했을 뿐이다.
이제 대선 패배에 이어 2008년 총선에서의 제 1야당은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외형적 성장이 제 1야당, 집권의 ‘꿈’을 애드벌룬처럼 부풀렸던 것만큼 대선, 총선 패배의 아픔도 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아픈 만큼 성숙해져야 하지만 민주노동당도 진보신당도 성숙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아무리 아파도 성숙할 수 없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
첫째 이유는 뿌리 깊은 의회주의다. 세계노동운동사에서 노동자계급이 정치투쟁에 나서고 난 이후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총파업과 대중봉기, 이를 실현시킬 평의회와 혁명당으로 정치세력화 하는 길과 의회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개량주의 정당으로의 정치세력화이다. 진보정당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두 가지 길 중 후자에 속한다.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로의 정치세력화는 당의 정치, 조직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의회주의 정당은 자본주의체제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덜 착취받는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목적으로 한다. 혹자는 민주노동당이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민주적 사회주의’의 내용을 살펴보면 서구의 복지 국가, 사회민주주의와 똑같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처지를 바꿀 수 있는 집단적 힘을 의회에 종속시킨다. 즉, 노동자계급의 투쟁력 대신 의회를 믿는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척도는 국회의원 숫자에 달려 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들이 정치세력화의 시작을 알렸던 96~7년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투쟁을 패배로 몰아가면서 “단 한명의 국회의원이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동자계급의 정치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총파업을 단 한 명의 국회의원보다 못한 것으로 만들 때부터 뿌리 깊게 박혀 있었던 것이다. 의회주의의 가장 큰 맹점 중 하나는 이것이다. 자본가들의 권력은 의회로부터 나오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의 권력은 생산수단을 독점하여 매일매일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하며 이윤을 뽑아내는 행위로부터 나온다. 더 많은 이윤을 착취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으로부터 그들은 매일매일 자신의 권력을 새롭게 한다. 자본가들은 생산현장에서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함으로써 전사회적 지배를 공고히 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의회의 다수를 점한다고 세상의 단 1%라도 바꿔낼 수 있겠는가!
의회주의는 조직의 성격도 결정한다. 세상을 바꿀 힘이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투쟁이 아니라 국민의 표이므로, 표를 조직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기 때문이다. 표를 얻는 방법엔 지배계급의 의식에 포섭되어 있는 노동자, 민중의 의식을 바꾸거나 아니면 지배계급에 포섭된 노동자, 민중의 의식에 영합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표로 결판이 나는 의회주의는 노동자, 민중의 의식을 바꿀 투쟁을 조직하기보다 국민의식에 영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선거철만 되면 우향우 경쟁을 하는 것이다. 한국노총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공개사과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표를 얻기 위해선 어용과도 손잡고 춤출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일 뿐이다. 이처럼 표를 더 얻기 위해선 국민의 의식에 영합해야 한다. 혁명적 시기가 아닌 일상적 시기에 국민의식은 자본가계급의 의식과 유사하다. 따라서 의회주의는 은연중에 자본주의를 강화한다.
다른 한편, 의회주의 정당은 표를 통한 정치적 지지와 당비만 내면 당원자격을 갖는다. 민주노동당에 표를 주고 월 1만원 재정을 납부하는 자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급격한 성장은 여기에 기인한다. 특히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는 민주노동당의 급성장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급격한 성장은 민주노동당을 더 불구로 만들었다. 급격한 성장은 1만원 납부하는 당원이라면 공장, 직장에서 어떻게 활동하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어용도, 관료주의에 찌든 전현직 노조관료도 대거 당원이 된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당원이 양적으로 많다는 것은 선거정당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은 수백만 당원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정당이라면 당원의 양적 팽창보다 질적 강화를 중요시해야 한다. 현장에서 노동해방 정치운동을 조직하는 당원이 아니라면 한나라당의 수백만 당원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당원 10만 명의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총파업투쟁을 조직할 의사가 없는 것도 당원의 구성과 무관하지 않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 관료의 잘못된 의사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나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사활적 과제로 제출하면서도 현자, 기아 등 대기업지부의 반노동자적 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못하는 것도 어용, 전현직 노조관료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의회주의의 샴쌍둥이인 조합주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의회주의 정당의 토대를 제공한다.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세계 사회민주주의의 사례를 본다면 모두 노동조합에 근거한 의회주의 정당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하물며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에 실패한 사례로 꼽는 미국조차 민주당은 노동조합의 지지를 주요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에 기반한 의회주의 정당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가. 기본적인 문제는 사회주의운동이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인 조합주의가 정당의 골간을 장악한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이 경제투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투쟁도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정치투쟁은 공장에서 벌어지는 경제투쟁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체제를 폐절시키기 위해 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이 개별 자본가의 숨통을 끊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양보를 얻기 위해 하듯이 정치투쟁 역시 자본주의 폐절이 아니라 일정한 양보를 얻기 위해서만 사용한다. 이렇게 노동조합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체제내화 되면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체제의 유지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된다.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넘어서는 투쟁에 대해 일정한 통제를 가한다. 관료의 통제력이 커질수록 조합원들의 사기와 전투성은 약화되고 수동화 된다. 이렇게 되면 자본주의가 가하는 무한착취와 억압에 맞선 사회혁명의 주체가 아니라 관료의 지시에만 따르는 삐에로로 전락하게 된다. 현장의 힘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내고, 현장투쟁으로 개별자본을 무릎 꿇게 하는 것 대신 의회를 통한 정치적 해결에 의존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사회민주주의의 두 축을 담당하는 의회주의 정당과 산별노조는 현장노동자들의 투쟁의 힘에 근거해 쟁취하기보다 현장 밖에서의 합리적이고, 정책적인 해결을 중요시 한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합작한 주 5일제 투쟁과 비정규직 개악법 저지투쟁, 노사관계 로드맵 반대투쟁에서 양자가 한 역할을 되새겨 보면 조합주의와 의회주의 앙상블이 어떤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조합주의는 의회주의를 강화해 주고 의회주의 역시 조합주의를 강화한다. 의회주의 정당-산별노조 양날개 전술이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를 강화한다.
Ⅱ. 중도주의 정치조직의 현실
민주노동당 식의 정치세력화를 넘어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정치세력화의 단초를 놓으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진보정당 노선을 철저히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점에서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단병호 의원의 성명서는 그 의도가 무엇이건 진보정당의 실태를 폭로하는 한편, 현 시기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는 사회주의자에게 정치활동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한다.
단 의원은 탈당 성명서에서 “당 위기의 본질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가 첫째다. 민주노동당 내에 민주노총 조합원은 있지만 민주노총 내에 민주노동당 당원은 없었다”며 “현재까지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문제인식에 충실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당의 강령과 기본정책, 정치방침을 가지고 노동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정치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당원은 없었고, 노동자 대중은 행사와 선거 때, 재정 조달에 필요한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면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당원을 당의 중심에 세우기 위한 재조직화의 노력을 게을리 했다”고 질타했다.
우리는 여기서 단의원이 갖고 있는 정치노선 --강령, 기본정책, 정치방침-- 을 검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의 강령과 기본정책, 정치방침을 가지고 노동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정치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당원이 없었고, 노동자 대중은 행사와 선거 때, 재정 조달에 필요한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평가의 핵심을 다뤄야 한다. 사실 이에 대한 극복 없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란 말장난이다. 강령과 기본정책, 정치방침을 가지고 노동현장에서 일상적인 정치사업을 할 수 없다면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언급해선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제가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푸는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당의 강령과 기본정책, 정치방침을 가지고 노동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정치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당원(정치조직원, 공장세포)의 부재는 의회주의 정당에서만 나타나는 문제점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말하는 모든 정치조직에 해당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회민주주의 의회주의 정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정 혁명적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완수하기 위해선 첫째, 당 강령과 기본정책, 정치방침을 내올 수 있어야 한다. 둘째, 10여년의 민주노조운동의 후퇴로 철옹성이 된 조합주의를 극복할 현장정치활동 --사회주의 정치활동-- 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좌파 노조관료에 대한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독자성을 견지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셋째, 전투적 조합주의에 머물러 있는 전투적 현장활동가를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로 체계적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이미 대중운동이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투적 조합주의는 맥을 못추고 있는 상태이다. 대중투쟁에 기반해 힘이 있었을 때 나타났던 전투적 조합주의의 역동성은 사라진지 오래다. 대부분의 현장에서 전투적 조합주의는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안주삼아 하소연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의회주의․조합주의 대세에 밀려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성공하기 위해선 사회주의자들이 전투적 조합주의 세력을 사회주의운동으로 조직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다. 과연 이 과제를 성공리에 완수할 수 있을 세력은 있는가? 냉철하게 검증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민주주의, 조합주의의 극복이 사회주의자 의지만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20여 년간의 사회주의자의 경험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학습할 땐 사회주의자지만 현장에 들어가면 조합주의자 혹은 전투적 조합주의 세력이 되는 것은 의지 때문이 아니라 강령의 부재, 강령에 입각한 현장 정치활동의 부재에 기인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강령 --예를 들어 비정규직 해법으로 제출하는 사회연대전략, 임금연대전략, 재벌 해체, 공동결정제도 등-- 에 맞선 투쟁을 위해 대중행동강령 --비정규직 철폐, 1800시간으로의 노동시간 단축과 창출된 일자리만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재벌 몰수․국유화, 노동자 통제 등-- 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합주의자에 맞선 투쟁에서도 대중행동강령 없인 전투적 조합주의를 넘어설 수 없다고 확신한다. (대중행동강령에 관해선 사노련이 발간한 팜플렛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주장> 참고)
『노동자의 힘』은 민주노동당에 맞대응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주창했다. 당 건설 초동주체의 형성을 위해 정파테이블 구성을 제기했으나 대부분의 사회주의조직은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노동자의 힘』은 이에 대해 “우리는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을 이끌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지금 당장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과제로 상정하는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현 시기 혁명주의자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있다”는 답변을 통해 『노동자의 힘』의 ‘노동자계급정당’건설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이 혁명주의자가 아니라고 반비판하고 있다. 더 나아가 사노련 준비위 시기부터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강령문제에 대해 『노동자의 힘』은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을 이끌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전제할 때 강령논의가 비로소 현실성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 서로가 지난 과정을 들추고 나오거나 강령 문제를 제기하는 진지한 태도라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과연 『노동자의 힘』의 제안을 거부하고 강령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진지한 태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더 나아가 혁명주의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우리는 『노동자의 힘』이 제안하는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의 내용과 상에 대해서조차 알지 못한다.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사회주의 혁명, 노동자권력기관으로서의 소비에트(평의회)를 제시하지 않는 것으로 미뤄 보아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이 이와는 다른 요소를 담고 있다고 유추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을 지도할 노동자계급정당의 성격조차 알지 못한다. 『노동자의 힘』이 유일하게 보증하는 것은 “우리는 일관되게 ‘정치적 재조직화’를 통한, 그리고 건설하고자 하는 노동자계급정당의 강령과 규약에 동의하는 세력들의 새로운 결집”하겠다는 다짐이다.
스스로 ‘계급적 좌파’의 맏형임을 자부하면서도 1년이 넘게 제기되어 온 강령 --여기서 강령은 완성된 형태의 당 강령을 의미한다기 보다 사노련의 <우리의 입장>, 투쟁전술강령인 <대중행동강령> 같은 당장 필요한 최소한의 내용임 -- 에 대해 무책임하게 대응했다. 현 시기 강령의 중요성은 천 배, 만 배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하물며 개량주의자들조차 강령에 사활을 걸고 있다. 소위 진보신당으로 이전한 진보정치연구소는 자신들의 강령적 입장을 총체적으로 다룬 <사회국가, 한국사회의 재설계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령 중심의 진보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이다.....진보정당에게 프로그램이란 무엇인가? 한국사회를 이러저러하게 바꾸겠다는 프로그램, 즉 사회변혁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중심의 당이되어야 한다는 것은 곧 이러한 구체적 사회변혁 프로그램이 당의 모든 활동 영역에서 좀 더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개량주의자조차 이후 이명박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선 사회전반의 총체적 변혁을 이끌 강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사회민주주의 강령, 전략, 정책 중심의 활동을 통해 노동자, 민중 표심을 잡겠다는 계획이다.
게다가 『노동자의 힘』은 오해까지 하고 있다. 우리가 중도주의라 비판한 것은 말로는 혁명을 얘기하지만 행동으로 개량주의를 실천한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서의 핵심은 『노동자의 힘』의 정치가 현장으로 들어가서는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분명 『노동자의 힘』기관지는 개량주의는 아니다. 하지만 『노동자의 힘』의 정치가 현장에 들어가면 혁명주의보다 개량주의에 가깝다. 조합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현장정치활동--사회주의정치활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지 못한다면 조만간 『노동자의 힘』은 개량주의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노동자의 힘』의 활동을 반추해 보면 좌파 관료주의에 맞서 투쟁할 진지한 태도가 없어 보인다. 대중행동강령에 대한 판단을 계속 회피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린 『노동자의 힘』의 과거보다 현실의 모습에서 중도주의 한계 --계급적 사안인 주간연속2교대 투쟁에 대한 노힘의 태도 등-- 를 적나라하게 목격하면서 과연 현장에서 조합주의에 맞서 현장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조직인지 확신할 수 없다.
Ⅲ 전투적 조합주의 세력의 정치세력화 재편을 꿈꾸며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이든, 사회주의정당 건설이든, 아니면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을 주장하든, 혹은 <우리의 입장>, <대중행동강령> 수준의 강령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사회주의조직들이 겪는 공통의 어려움은 후퇴의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이다. 이는 전투적 현장활동가들이 사기저하로 전투적 현장활동에 소극적으로 되어가는 걸 의미한다. 어느 사업장 할 것 없이 전투적 조합주의 세력이 위축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투적 조합주의 세력을 하나의 당건설 흐름으로 조직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세력이 전투적 조합주의가 스스로 부활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반자본 투쟁의 선봉대 역할을 할 전투적 조합주의 세력을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로 재편하기 위해선 3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단위사업장 차원의 현장투쟁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현장투쟁을 활성하지 않고선 전투적 현장활동가를 양성한다는 것은 신기루를 쫓는 것과 마찬가지다.
둘째, 전국적 사안을 중심으로 사안별 전국활동가 모임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조선활동가 모임, 계급적 주간연속2교대 쟁취를 금속활동가 모임, 사유화 저지! 공공부문 국유화 쟁취를 위한 공공활동가 모임 등 단위사업장에 고립되어 힘들게 투쟁하고 있는 선진노동자들의 전국적 네트워크를 통해 투쟁연결망을 강화하고 자신감을 키워나가야 한다.
셋째, 우리의 역사적 경험으로 본다면 전투적 조합주의의 부활이 자동으로 정치세력화를 담보하지 않는다. 세계노동운동사의 교훈이든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이는 진실이다.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이하 전국회의) 경험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전국회의 주요 목적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결의했지만 전국회의는 정치세력화보다 정치세력화의 기초를 닦을 현장투쟁조직화, 전국투쟁전선 활성화에만 집중했다. 초기 전국회의의 정치적 성향은 민주노동당이라고 할 수 없었다. 소수의 민주노동당, 새정조 일부, 극소수의 혁사진영, 그리고 대부분이 무당파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꾸준한 조직화 작업 --특히 민주노총에서 결정한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지지 정치방침-- 은 민주노조운동의 후퇴, 선진노동자운동의 침체와 맞물리면서 민주노동당으로의 정치세력화로 귀결되었다.
이제 추진하는 선진노동자운동은 처음부터 조합주의․관료주의․개량주의와 투쟁하면서 전진할 수밖에 없다. 현장투쟁에서 전국적 정치투쟁까지 개량주의 노조관료와의 투쟁 --이데올로기 투쟁, 비공인 파업투쟁 등-- 에서 이기지 못하면 우리 운동의 미래는 없다.
Ⅳ. 그럼 무엇을 할 것인가?
1. 정세는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전면화를 통해 위기 극복을 실현하는 것 자체가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집권과 더불어 쏟아내는 친기업 정책과 대조되는 반노동자 정책은 노동자, 민중에게 죽으라는 소리의 다름 아니다. 총선 승리로 모든 권력 --행정부, 의회, 지자체-- 을 장악한 이명박은 이전보다 더 강하게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일 것이다. 공기업 사유화, 민간기업의 구조조정, 쟁의권을 억제하기 위한 노동법의 개악 등. 지배계급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투쟁도 우리의 준비 정도와 무관하게 기정사실이다.
이명박의 대선, 총선 승리의 원인인 경제활성화 요구는 부메랑이 되어 이명박의 뒷통수를 칠 것이다. 지칠 대로 지친 노동자, 민중들은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려우며, 작은 투쟁의 불씨가 전면적 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가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노동자 임금 빼고 다 오르고 있는 현실을 구제할 뾰족한 수단이 없다. 경기침체속의 고물가 현상은 서브프라임 위기, 고유가, 고원자재가, 에그플레이션, 고용 없는 성장 때문인데, 이명박 정부는 이 사안에 대한 개입력과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2.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불가피 하다. 문제는 노동자투쟁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자율과 연대 같은 사회민주주의 세력은 사회민주주의 강령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현장 안으로 강령을 갖고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개량주의 세력들은 강령은 현장 안으로, 투쟁은 현장 밖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삼으면서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것이다.
3. 이명박 정부, 개별자본의 공세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올곧게 발전시키기 위해선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노조관료들의 중재자 역할을 깰 수 있는 현장의 힘이 있어야 한다. 이는 현장투쟁의 힘을 중재자들의 계급타협적 중재내용에 반대할 수 있는 투쟁력으로 만들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선 사회주의자와 전투적 현장활동가들이 사회주의 전망과 대중행동강령으로 무장하지 않고선 어렵다. 사업장별로 벌어지는 투쟁조차 대중행동강령으로 접목시키기 위한 노력 없이 이명박 정부에 맞선 투쟁을 조직할 수 없다.
당장의 사활적 과제로 떠오른 ‘계급적 주간연속 2교대 쟁취’와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와 생존권 쟁취’ 투쟁에서 공동 대응을 조직함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강령적 토대 위에 서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차이를 갖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노골적인 개량주의자들 뿐 아니라 중도주의자들 또한 자본의 공세에 맥없이 쓰러지고 있으며, 앞장서서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생활임금 보장되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는, 노동계급대중에게 대단히 상식적이고 평이한 대중행동강령조차도 현장에서 당당하게 노동자의 요구로 만들고 투쟁을 조직하는 것조차 어려워한다면, 말로만 사회주의 변혁을, 입으로만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외치는 것에 다름아닐 것이다. 최소한의 강령적 토대 위에 선다는 것은, 그 강령에 입각하여 현장에서 당당하게 정치활동을 조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 혁명적 사회주의진영과 전투적 현장활동가들의 공동 대응을 조직해야 한다. 무엇으로 이걸 할 수 있을까? 공동 요구와 공동투쟁전술을 위해 대중행동강령 외에 다른 방안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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