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찍을 이유가 없다
문 창 호 (해방연대(준) 회원)
1. 총선을 바라보는 노동자계급의 눈 -
위기에 대응하여 스스로를 제대로 쇄신해내고 있는가?
총선투표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숱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여전히 기세를 올리고 있으며, 통합민주당은 한나라당 견제를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보수정당의 틈바구니 속에서 오직 생존을 위한 선거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진보정치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18대 총선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 민주노동당의 대선참패와 분당사태는 진보정치의 위기를 폭발적으로 드러내었다. 또한 이로 인해 ‘진보의 위기’와 ‘쇄신’은 정신나간 듯한 일부 집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과 ‘과제’가 되었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이러한 과제에 대한 답변들의 첫 시험대 즉, (저들이) 스스로를 제대로 쇄신해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진보정치의 위기와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실패
지난 3월 1일 해방연대(준) 회원총회에서 채택된 결의문은 현재의 진보운동의 위기에 대해 다음같이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 민중은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로 인한 사회양극화, 민생파탄으로 심각하게 고통받고 있다. …(중략)… 그러나 노동자, 민중의 삶의 고통과 사회경제적 불만은 자본가계급의 정치적 지배구조에 대한 도전과 자본주의 체제와의 대결로 전화되지 않고 있다. 단적으로 신자유주의 노무현 정권의 몰락은 더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인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2007년 대선은 한국사회의 발전방향을 둘러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각축장이 아니라, 부르주아 보수정당들 사이의 선거놀음이 되었다. 그리고 진보세력은 사회경제적 불만을 진보적 대안을 현실화할 동력으로 조직화할 능력이 없음을 노정시킴으로써, 무능력한 세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진보세력의 위기는 자본주의 모순 심화의 정세에 반자본주의 투쟁기조로 올바로 대응하지 못한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의 진보세력 자신의 오류와 한계 때문이다.”
현재의 상태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미래의 발전을 향한 희망과 투쟁으로 조직화하지 못하는 것, 따라서 삶의 위기와 고통에 대한 왜곡된 분석과 반동적인 대안이 대중을 장악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게 방관하는 것, 바로 이것이 진보정치의 위기를 의미한다.
노무현보다 더한 신자유주의정책과 ‘한반도대운하’같은 시대착오적이고 허구적인 성장정책으로 무장한 이명박의 당선,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떤 진보적 의제도 쟁점화해내지 못하고 오히려 ‘진보적 성장론’같은 것으로 성장주의 담론에 맞장구 친 민주노동당의 행태와 이로 인한 당연한 결과인 대선참패는 진보정치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는지를 증명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여기에 더하여, 민주노동당은 이중의 의미에서 노동자정치세력화에도 실패했다. 먼저는 노동자당원들을 정치주체로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돈만 내고 표만 찍는 존재쯤으로 대상화한 것이며,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능동적으로 대변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배신까지 자행하는 행태를 보여 왔던 것이다. 특히 후자와 관련하여 2005년 현대차 불파투쟁 방기, 2006년 노사관계로드맵 합의, 2007년 권영길 대선후보의 친기업당 발언, 한국노총 사과사태 등의 배신행위는 정치세력화에 대한 노동자의 환멸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노동자정치 실패는 ‘노동자의 도시’라는 울산에서의 연이은 선거패배가 보여준 것처럼 핵심지지층의 이탈을 초래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몰락을 야기했다. (자세한 내용은 김석진, “대안은 제대로 된 노동자정당 건설이다” 참고)
반자본주의 투쟁기조의 강화만이 위기와 실패를 극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진보정치의 위기와 노동자정치 실패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사실 진보정치의 위기와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실패의 원인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앞의 해방연대(준) 결의문에서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 모순 심화의 정세에 반자본주의 투쟁기조로 올바로 대응하지 못한 진보세력 자신의 오류와 한계”가 위기와 실패의 근본원인이다.
반자본주의 정치투쟁기조의 결여는 두 가지 수준에서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야기했다. 민생파탄의 본질적인 원인인 자본가정치세력과 자본주의를 폭로해내지 못함으로써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분노가 한나라당 지지로 이어지는 것(*)을 일부라도 차단하여 진보적 대안으로 흡입해내는 것에 철저하게 실패했다. (*대다수 대중은 현재의 삶의 위기를 신자유주의적인 자본가세력 전체가 야기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무능력이 야기한 것으로 인식하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어떻든 이들보다는 나을 것으로 기대하고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열린우리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하게 됨으로써 동반하락하고 말았다.
여기에 더하여 반자본주의 투쟁기조의 결여는 노자관계의 모순심화로부터 비롯된 노동자정치 급진화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배신하도록 내몰았던 것이다.
따라서 진보정치 위기와 노동자정치세력화 실패의 극복방향은 반자본주의 정치투쟁기조의 강화여야 한다. 또한 ‘반자본주의 투쟁기조의 강화 여부’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총선활동에 대한 유일한 실천적인 평가잣대이다.
그리고 반자본주의 투쟁기조의 강화란 민생파탄의 근본원인이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이고, 자본과 자본가정치세력에게 그 책임이 있음을 폭로하면서, 자본주의를 횡단하는 총체적 대안을 선명하게 제시하고, 이에 근거한 투쟁을 조직하여 자본과 전망투쟁을 벌여내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서 투쟁하는 대중들을 반자본주의 주체로 세워내는 것이다. (경제대안의 필요성과 그 내용에 대해서는 성두현, “사회주의, 진보세력의 경제대안” 참고)
2. 민주노동당 비판 -
분당에 이어 양심과 능력까지 출당시켰나?
먼저 민주노동당 총선 정책공약을 살펴보면, 그 특징을 한 마디로 ‘스스로에게 제기한 질문에 답조차 못하는 무능력과 지난 공약 우려먹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명박에 맞설, 있어야 할 경제대안이 없다!!
민주노동당에게는 무엇보다 한국경제 침체의 원인이 무엇인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폭로도 없고, 당연히 이명박의 ‘7%성장론’에 비견되는 경제대안도 없다. 그리고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랄 수 있는 양극화와 일자리, 빈곤 문제에 대해 정면대결하려는 의식도 없다. 이런 태만으로 ‘기업이 잘 되면 일자리도 늘고, 분배도 개선된다’는 확신으로 무장한 이명박과 맞서겠다는 것은 비웃음을 살만한 일이다.
그런데 경제대안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이다. 즉 정책공약집의 정책총론을 보면, “지금 우리는 기존의 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질서의 태동을 모색하는 시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의 경제 구조를 비롯한 사회 구조 전반에 대한 전환적 대안의 모색이 절실”하다고 옳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처럼 스스로에게 제기하고 있는 질문에 답조차 하지 못한다. 어이없게도 “민주노동당 혁신의 근본 방향 또한 사회에 대한 종합적 대안의 제시”라며 대안의 제시를 이후의 과제로 미루고 있고, “저항도 대안의 하나”라는, 경제담론을 선점하고 있는 MB노믹스에 맞서 진보적이고 총체적인 대안을 책임있게 제출해야하는 당면과제를 제기하고 있는 현 정세에서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한다 싶은 빈 깡통의 비정규직 해소와 고용안전 공약
민생해결이 일자리 문제의 해결에 달려있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현재 일자리 문제는 두 가지 형태 즉, 일자리의 부족과 비정규직 증가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만성적인 실업문제는 자연히 절대빈곤의 증대로 이어지고 있고, 저임금과 고용불안, 차별에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은 열심히 일해도 제자리를 지키기도 힘든, 양극화와 상대적 박탈 심화의 주된 요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핵심적인 쟁점(일자리를 어떻게 늘리고, 비정규직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에 민주노동당은 어떤 수준의 공약과 정책을 갖고 있을까? 한 마디로 ‘빈 깡통’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없는 사회”라는 폼 나는 공약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구체적인 이행의 방안을 전혀 담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기내 비정규직 규모를 절반으로 축소”하고, “1천만 고용 안전 시대”를 열겠다는데, 그 이행방안이라고 적시해놓은 것이 고작 다음과 같다.
“- 18대 국회는 이랜드와 코스콤, 기륭전자 등 불법 파견 문제에 해법을 내놓아야.
- 정규직 전환은 아무리 어려워도 국가가 나서야 하고, 비정규직 양산으로 막대한 이윤을 챙긴 재벌이 책임져야
- 300만 고용 창출과 300만 고용 유지, 400만 정규직 전환을 통해 국민의 희망과 행복을 보장.
- 무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시장 논리가 아니라 연대와 공존의 일자리 정책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잠재력을 모아 일자리 문제를 해결”
즉 일자리 문제를 국가가 나서고, 재벌이 책임지고, 사회 각계각층의 연대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인데, 어느 당의 정책공약집을 펼쳐도 나와 있을 법한 하나마나한 소리인 것이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며 중소기업 사장들 입 벌이지게 할 공약에 갖은 정책을 깨알 같이 적어 넣은 것에 대조되는, 이 정도의 수준이면 아예 일자리 문제의 해결에 대한 의지도 고민도 없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비정규직 해소를 운운하며 비정규직악법 철폐조차 언급안하는 이 당이 과연 이랜드투쟁에 연대했던 당인지 싶다.
반성도, 쇄신에 대한 의지도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민주노동당은 총선에 임하면서 이명박에 맞설 경제대안도, 민생해결의 핵심적인 쟁점에 대한 책임있는 정책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내용 없음’이 현재 민주노동당의 총선 대책을 규정하고 있다. 중앙단위나 지역후보들의 선거활동을 보면 선거공간을 진보적인 방식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민생파탄의 본질에 대한 폭로도, 진보적 대안과 전망의 대중화도, 하다못해 부분적인 진보적 의제의 이슈화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과거에 쌓아놓은 ‘진보’라는 이미지와 철 지난 공약의 우려먹기이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행태는 독자적인 대안과 전망이 부재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것이다. 전망을 파는 정당으로서 실로 지독한 무능력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무능력은 멀리는 2005년 울산북구 재선거 패배, 2006년 지자체선거 패배 그리고 가까이는 대선참패와 분당사태 라는 반성의 계기가 수차례나 있어왔다는 점에서 양심불량이지 않을 수 없다. 대중과 당원들은 민주노동당의 무능에 대해서 수차례나 경고음을 울려왔지만, 민주노동당은 무책으로 일관해왔다. 대중과 당원들에 대한 책임의식도 위기에 대한 감지도 없는, 앞으로도 가망없어 보이는 모습이다.
민주노동당의 이러한 무능력과 양심불량은 반자본주의 기조의 결여에서 비롯한다. 자본주의 모순 심화의 정세에서 반자본주의 입장을 선명하게 견지하지 않고서는 어떤 진보적이고 노동자계급적인 대안도 구성할 수 없다. 모순 심화는 모든 불철저한 개선을 분쇄해버린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갈등이 제로섬 형태의 극심한 투쟁의 양식으로 발현되고 있는 사회적 조건에서, 사회의 발전방향은 자본가들의 길과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계급의 길, 이 두 가지 길로만 한정된다. 따라서 모든 어정쩡함과 중도는 이 편인가, 저 편인가의 선택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무엇도 선택하지 못하는 어영부영 가운데서 부패하고 있다.
대선참패와 분당사태라는 뼈아픈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반자본주의 기조의 강화는커녕 어떤 반성과 쇄신의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당이 진보정치의 위기와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실패를 극복할리는 만무하다. 더욱이 비례대표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노동자정당의 최소한의 정체성조차 벗어던진 것 같다.
국회의원 되어서가 더 걱정인 비례대표 후보들
전략공천된 비례대표 면면을 보면 과연 이 후보들이 진보정당, 노동자정당을 자임해온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에 부합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몇몇은 진보정당운동에서 활동한 역사도 없을 뿐더러,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을 지지했던 사람, 2006년 지자체선거 때 강금실을 지지했던 사람, 아예 미래구상이라는 자유주의 단체를 주도했던 사람 등 당선되어서가 더 걱정인 후보들이다. 또한 노동자후보다운 후보가 없어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의 의회활동을 통해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에서 단련돼왔던 ‘투사’들도 의회에서 자기정체성을 제대로 지켜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하물며 역외에서 수입된 인사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