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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정당 건설로 대공황을 돌파하자!(2012년 10월 22일)
노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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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04일 16시 27분 36초

노동자계급정당 건설로 대공황을 돌파하자!

(2012년 10월 22일)

 

10월 22일자로 제출된 이 글은 현 시기 정세 속에서의 핵심 과제로서 전투적 노동자당(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설명합니다. 

 

1. 밀려오는 대공황 - IMF시기를 되풀이 할 것인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 것인가?

 

지난 몇 년 동안 세계를 휩쓴 대공황의 거센 파도가 이제 우리의 무릎을 휘감고 있다. 무릎을 넘어 허리춤으로 또 그 위로 대공황의 파도가 얼마나 빠르게 우리를 휘감아 갈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그러나 허리춤을 지나 목젖까지 대공황의 파도에 휘감길 날이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점만큼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당연히 우리는 지난 ‘IMF시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리해고로 명예퇴직으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삶의 터전마저 송두리째 빼앗겼던가? 얼마나 많은 현장이 빨라진 컨베이어에 두려움과 침묵만이 지배하는 죽음의 공장으로 내몰렸던가?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또 하나의 사슬을 차고 더 서러운 임금노예로 전락해야 했던가? 그렇다. ‘IMF시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시작되었던 희망의 역사를 빼앗기고, 패배와 절망의 한숨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물론 우리는 다시 반격에 나섰고, 얼마간 우리의 희망을 되찾기도 했다. 그러나 ‘IMF시기’의 상처는 우리의 몸과 마음 깊숙이 지금도 전혀 아물지 않은 생채기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로, 그 앞에 너무나 무기력한 노동자운동의 초라함으로, 나아가 노동자운동 전반을 휘감고 있는 패배주의와 관료주의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제 대공황의 거센 파도가 우리의 삶을 본격적으로 두드리기 시작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가장 먼저 비정규직부터 곡소리가 날 것이다. 계약해지 통보 한마디에 파리 목숨처럼 잘려나가는 노동자, 하루아침에 임금 30%를 삭감당하는 노동자, 급증하는 중대재해로 죽어나가는 노동자, 더욱 못되고 더러워진 놈들에게 상처받으며 눈물 흘리는 노동자로 이 땅이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대공황이 일단 본격적으로 밀려오기 시작하면, 그 파장은 끝없이 펼쳐질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번 대공황의 특징이 무엇인가? 바로 위기의 장기화다. 대공황이 시작되고 5년째를 지나고 있지만, 대공황의 진원지라 할 미국·유럽·일본의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은 대공황에서 빠져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막대한 경기부양 자금을 거듭 퍼부었지만, 기껏해야 전면적인 파국을 간신히 미룰 수 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천문학적으로 부풀어 오른 국가부채 때문에 경기부양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형편이다. 파국을 피하려고 경기부양 자금을 퍼부으면 국가부채가 더욱 엄청나게 팽창하고, 감당할 수 없는 국가부채를 줄이려고 긴축정책을 시행하면 경제가 파국을 향해 곤두박질하는 악순환이다. 한 겹 두 겹 거듭되는 악순환과 함께, 위기는 끝없이 계속되고, 모순은 엄청난 규모로 축적되고 있다.

그래서 일단 대공황이 본격적으로 밀려오기 시작하면, 그 파장은 끝없이 펼쳐질 것이다. 비정규직을 넘어 정규직에까지 그 파장이 심각하게 밀어닥칠 것이다. 일정한 시차를 두고 노동조합을 가진 대기업 정규직에게도 정리해고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다. 임금과 복지혜택도 앞 다투어 삭감될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더욱 강도 높은 노동과 더욱 억압적인 현장질서가 강요될 것이다. 청년, 장년, 중년, 노년을 가리지 않고 사회 전반에 실업자가 넘쳐날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의 파산도 줄을 이을 것이다. 임금과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공공요금과 먹거리를 중심으로 물가는 치솟을 것이다. 사회보장과 공공복지는 축소되는데, 세금은 턱없이 오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IMF시기에 우리가 겪었던 모든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고통이 지속적으로 우리를 덮칠 것이다.

이것은 허황된 얘기가 결코 아니다. 대공황 아래서 미국·유럽·일본의 노동자들이 지금 어떤 현실을 겪고 있는지 언론을 통해 접하지 않는가! 한국은 한마디로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인데, 일단 대공황에 휩쓸리고 나면 선진자본주의 나라들보다 그 파장이 덜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이처럼 암담한 미래만 남아있는 것인가? 대공황이 초래하는 모든 비극과 고통을 노동자민중이 고스란히 짊어지는 것, 이것은 숙명이요, 필연인가?

물론 IMF시기 노동자운동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지금 노동자운동의 상태 그대로 다가오는 대공황을 상대한다면, 암담하고 끔찍한 미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필연이 되고 말 것이다. 세상의 큰 흐름을 보지 못하는 안일한 정세인식과 비좁은 시야에 갇혀 있다면, 자본가들의 공격에 수동적으로 고립된 방어전을 펼칠 뿐이라면, 썩어 문드러진 관료주의와 패배주의를 혁파하지 못한다면, 사활적인 위기 앞에 미쳐 날뛰는 자본가들의 공격을 노동자운동은 결코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다른 운동을 만들어낸다면,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정리해고를 다 막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정리해고제도 자체를 없애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우선 해고를 막아낼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제도 자체를 없애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임금과 복지의 삭감을 막아낼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생활임금과 무상의료·무상교육·무상주거를 실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시간을 주 30시간으로 단축하고 야간노동을 폐지하여 실업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완전한 노동3권을 보장하고 모든 종류의 노동악법과 비민주악법을 폐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위해 재벌 대기업을 몰수·국유화하여 노동자가 통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투쟁하는 노동자의 힘에 의존하고 그 의지를 실현하는 정부를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다른 결과를 만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자기 한계를 만천하에 드러내며 수십억 인류에게 말로 못할 고통을 안기고 있는데, 왜 자본주의와 자본가들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이 불가능하단 말인가? 아니, 자본주의와 자본가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서 이 대공황의 진정한 해결책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좋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좋겠다. 그런데 그처럼 좋은 일이 가능하려면, 그와 같은 새로운 노동의 역사가 실현되려면, 도대체 어떤 운동을 만들어 내야 한단 말인가?

 

2. 새로운 역사는 어떻게 가능한가?

 

만일 모든 노동자가 한날한시에 손을 놓고 거리로 달려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노동자가 내건 요구목록은 곧바로 이 사회의 법이 될 것이다. 모든 노동자가 한날한시에 떨쳐 일어선다면 그에 대적할 수 있는 힘은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노동의 역사가 단번에 완성되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투쟁은 언젠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가 서 있는 현실에서 목표로 삼을 수 있는 투쟁은, 아직 아니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시킬 현실적인 투쟁방법은 무엇일까?

모든 노동자가 한날한시에 떨쳐 일어서는 투쟁이 아닌 한, 노동자들이 만드는 모든 투쟁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질서 전체의 힘보다 강할 수 없다. 그렇다면, 투쟁이란 힘과 힘이 부딪치는 것인데, 노동자들이 벌이는 거의 모든 투쟁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아흔아홉 번 패배하더라도 단 한번 승리”를 노래하지 않는가!

그러나 실제 노동자들의 투쟁이 모두 패배하는 것만은 아니다. 때때로 노동자들은 분명히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왜 그럴까? 노동자들이 벌이는 모든 투쟁마다 자본주의 질서의 모든 힘이 동원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그 단초가 있다. 결국 하나의 투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그 투쟁에 노동자들이 결집해 낸 힘과 자본가들이 동원한 힘 사이의 우열이다.

여기서 힘은 물리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의 종합물이다. 승패를 가르는 데는 물리적 요소 못지않게 정신적 요소도 중요하다. 특히 노동자들의 힘은 투쟁대오가 가진 정신력에 크게 좌우된다. 이를테면 자기 정당성에 대한 확신,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 대오의 결속력, 어떤 희생과 헌신도 불사하겠다는 태세 등이 얼마나 강력한가에 따라,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의 힘은 크게 달라진다. 반면 자본가들은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나 있는가에 따라 힘을 행사하려는 의지가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자본가들이 양보할 수 있는 여지를 어느 정도 갖고 있는데, 투쟁하는 노동자대오의 정신력이 강력할 경우, 승리는 노동자의 편이 된다. 사실은 노동자들이 승리했다기보다 자본가들이 흔쾌히 패배를 감수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1987년 대투쟁 이후 IMF시기 이전까지 대략 10년가량 우리는 이런 투쟁을 수없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가들에게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어지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자본가들은 스스로 가진 모든 힘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자본가계급 전체로부터 힘을 끌어와서 강력한 공세를 편다. 투쟁하는 노동자대오의 강력한 정신력만으로는 이제 자본가들을 절대 이길 수 없다. 과거엔 승리할 수 있었던 자본가들에게 결정적 패배를 당한 노동자들은 크게 당황하고 위축된다. IMF시기 이후 우리는 수없는 패배를 겪어야 했다.

그렇다면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진 자본가들이 사실상 계급 전체의 힘을 동원해서 필사적으로 공격을 퍼부을 때, 노동자들은 어떻게 승리의 길을 열 수 있는가? 투쟁하는 노동자대오의 강력한 정신력은 물론 기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해답은 간단히 말해서 노동자계급 전체로부터 힘을 끌어내는 것, 즉 더 많은 노동자들을 투쟁대오로 묶어내고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위기에 빠진 자본가들은 어차피 사실상 계급 전체의 힘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에, 확전을 하면 할수록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진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자본가들의 힘이 우위에 있다. 하지만 확전이 끊임없이 거듭된다면, 다시 말해서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투쟁대오로 보충된다면, 자본가들은 다른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금 이 투쟁에서 손을 들어야 할 만큼 우리의 힘이 밀리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는 이 투쟁이 지속되도록 하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일까? 지금도 버거운데 더 많은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다면, 너무 힘들어지지 않을까? 이러다가 너무 많은 노동자가 투쟁으로 일어서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지는 않을까? 지금 이 투쟁에 우리가 손을 든다면, 분명 큰 손실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노동자에게 투쟁의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에, 그래서 훨씬 더 큰 손실을 입기 전에, 지금 이 투쟁을 중단시키는 것이 분명 이득이지 않겠는가?”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노동자들은 위기에 빠진 자본가들의 필사적인 공세에 맞선 투쟁에서 승리의 길을 열 수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프랑스와 미국에서 펼쳐졌던 거대한 노동자투쟁들 또한 기본적으로 이러한 원리를 구현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고, 그래서 눈에 띄는 성과들을 쟁취할 수 있었다. (물론 한계도 있었지만, 그것은 다른 기회에 다루자.)

그렇다면, 어떤 투쟁이 노동자계급 전체로부터 힘을 끌어낼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투쟁의 정당성에 대한 공감, 희생과 헌신이 일으키는 감동, 상징적 대표성에 대한 인정 등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연대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연대를 넘어, 수많은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체로 일어서게 해야 한다. 특히 미조직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체로 일어설수록 파괴력은 강력해진다. 그러려면 광범한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체로 뛰어들 수 있도록 애초부터 요구가 보편적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 또한 미조직 노동자에게 다가가고 자극하며 용기를 불어넣는 효과적인 행동들을 투쟁대오가 목적의식적으로 조직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정리해 보자. 대공황이 초래하는 모든 비극과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지는 패배의 길이 아니라, 대공황의 책임을 자본주의와 자본가에게 묻는 새로운 노동의 역사를 만들어 내려면, 우리에게는 지금과는 매우 다른 새로운 노동자운동이 필요하다.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핵심은 새로운 지도력으로 무장한 선진노동자 집단의 형성이다.

새로운 지도력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강철 같은 정신력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정당성과 자신감을 불어넣을 실력을 갖춰야 한다. 앞장서 헌신하고 희생함으로써 신뢰와 소통을 끌어낼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또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연대가 넘쳐나도록 투쟁을 진정성 있게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들이 떨쳐 일어서도록 자극하고 용기를 불어넣는 효과적인 행동들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새로운 지도력으로 서기 위해서는, 대공황에까지 이른 자본주의 모순을 간파하고 자본주의 체제 변혁과 노동해방 사회주의의 관점을 갖추고 나아가 대중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강철 같은 전투성을 바탕으로 노동자계급 전체로부터 힘을 끌어냄으로써 승리의 길을 열어나가는 투쟁을 조직하는 관점과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지도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변혁적·계급적 노동자투쟁을 이끌어 내는 관점과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대공황이 본격적으로 밀려오려 하는 지금, 이러한 새로운 지도력으로 무장한 선진노동자 집단을 대규모로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자계급의 시급하고 절실한 당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이 과제를 수행할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을 제대로 조직해 내는 것이다.

 

3. 노동자계급정당?

 

‘노동자계급정당’은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해서 노동해방 사회주의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선진노동자들이 결집하는 정당이다. ‘노동자계급정당’은 개량주의 거부와 자본주의 체제변혁의 관점을 분명히 하지만, 높은 수준의 혁명적 강령으로 무장하는 정당은 아니다. 이론적 명확성은 떨어지더라도, 자본주의 체제변혁과 사회주의에 동의하는 선진노동자를 폭넓게 규합하여, 변혁적·계급적 노동자투쟁을 선도적으로 조직해 내고, 젊고 활기찬 노동해방 투사들을 대규모로 육성해 내는 것을 자신의 주된 사명으로 하는 정당이다.

‘노동자계급정당’은 이념적 지표가 미완성인 만큼, 장차 다양한 발전 가능성을 갖는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노동자들이 중심에 서서 민주집중제를 바탕으로 운영해 나가되, 그 안에서 다양한 정치적 입장들이 자유롭게 선전·선동하고 공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정한 시점에 이르면, 본격적인 사회주의 노동자당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다양한 이념적 조류에 따라 분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성격을 갖게 될 ‘노동자계급정당’이 2012년을 거치면서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떠오르고 있다. 10월 13일 결성된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모임>(변혁모임)은 그러한 추세를 상징적으로 대표한다.

‘노동자계급정당’이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떠오르는 것은 객관적 근거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대공황 정세에서 변혁적·계급적 노동자투쟁을 이끌 지도력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것은 시급하고 절실한 당면 과제다. 또한 대공황 초기부터 요구되었던 과제지만,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했다. 그래서 대공황이 5년째를 지나가는 지금까지 한국의 노동자들도 상당한 고통을 겪어 왔지만, 제대로 된 변혁적·계급적 투쟁 하나를 거의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제 지금까지와 또 다르게 대공황의 거센 파도가 이 땅에 본격적으로 밀려오려 한다. 대공황 정세에서 변혁적·계급적 노동자투쟁을 이끌 전투사령부가 될 당을 건설하는 것은, 그만큼 더 절실한 과제로 나서고 있다.

둘째, 자멸하고 파산한 개량주의 정치세력화를 대신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올바른 대안을 시급히 가시화할 필요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개량주의·의회주의·관료주의 정치세력화는 자본가세력과 몸을 섞은 통합진보당을 거치면서 자멸하고 파산했다. 민주노총이 지지를 공식 철회할 만큼 그들의 자멸과 파산은 확실했다. 그러나 대안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개량주의 정치세력화가 파산함으로써, 현장은 노동자정치에 대한 환멸로 가득하고 노조관료들은 서슴없이 자본가정치로 투항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독립적인 정치세력화’라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1기가 남긴 최소한의 성과마저 유실하지 않으려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올바른 대안을 시급히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사회주의 정치조직들의 재편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하려는 시도들이 실패한 상황에서 새로운 모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사노련과 사노위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운동은 실패했다. 만일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 시도가 성공했다면, 그 자체로 변혁적·계급적 노동자투쟁을 이끌 훌륭한 전투사령부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통합진보당의 자멸과 파산은 지금과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을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고 교훈으로 삼아야겠지만, 분명한 것 하나가 있다. 현존하는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재편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실패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진지한 반성적 평가 속에서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열린 자세가 사회주의 정치조직들에게 불가피한 시점이다.

 

4. 노동자계급정당, 어떻게 건설해 갈 것인가?

 

많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지금 ‘노동자계급정당’이 명백하게 존재의의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대공황 정세에서 변혁적·계급적 노동자투쟁을 이끌 선진노동자 집단을 대규모로 형성해 내는 가장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한, ‘노동자계급정당’은 강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어떤 이유에서든 그러한 역할을 해낼 수 없게 된다면, ‘노동자계급정당’의 생명력은 급격히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이 점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변혁적·계급적 노동자투쟁을 이끌 선진노동자들을 규합하고 훈련시키며 복제해 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또한 변혁적·계급적 노동자투쟁을 작은 규모에서나마 실제로 조직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러한 경로를 달릴 때에만,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은 당 건설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은 당 건설의 실질적인 동력을 형성해 내기 위해 젊고 활기찬 투사들을 최대한 발굴하고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규합할 수 있는 선진노동자들만으로는 전투사령부로 기능하는 당을 꾸릴 만한 활력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의 분투 속에서 노동자투쟁이 어느 정도 활성화되면, 젊은 투사들을 발굴하고 끌어들일 기회가 폭넓게 열릴 것이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은 개량주의와 뒤섞이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물론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 수준에서 엄밀한 이론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변혁과 노동해방 사회주의에 대한 동의조차 분명하지 않은 수준과는 스스로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은 의회주의에 대해서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지난 시기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의회주의로 점철된 것은 무엇보다 현실의 강력한 유혹 때문이었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 또한 그 유혹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에 필요한 것은 조급한 성공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우직스럽게 지켜내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은 선진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만큼 노동조합의 습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테면 충분한 정치적 토론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실무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든가, 다수가 실제 정치활동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이론적 명확성을 높이 두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은 엄연히 정치운동이다. 정치운동다운 성격을 지켜내고 그만한 비중을 부여해야 당 건설을 향해 전진할 수 있다.

 

변혁모임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의 주체를 자임하고 나섰다. 변혁모임은 지금까지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선진노동자들을 규합해 내면서 일정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결성과 함께 채택한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의 기조와 방향” 또한 그런대로 무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변혁모임이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의 주체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토론모임을 넘어서서 스스로 채택한 “기조와 방향”을 실제로 실천하는 조직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구성원들로부터 실질적인 소속감과 활동력을 끌어낼 수 있을지, 지역과 현장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활동력을 가진 조직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에 따라 변혁모임의 운명은 달라질 것이다. 대선투쟁을 치르게 될 경우 개량주의나 의회주의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애초 변혁모임의 기조를 지켜낼 수 있을지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변혁모임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겠지만,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의 운명이 변혁모임의 성패에만 좌우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만일 변혁모임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반성적 평가를 바탕으로 새로운 주체를 형성해 내야 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제대로 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을 세워낼 수 있다면, 현 시기 노동자운동의 핵심 과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기회를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대공황이 본격적으로 밀려오려 하는 지금, 변혁적·계급적 노동자투쟁을 이끌어 갈 선진노동자 집단을 대규모로 형성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바로 나부터 그러한 선진노동자가 되기 위해 과감하게 도전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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