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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정세에 대비하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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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03일 14시 13분 52초

 

10월 3일자 중앙일보에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논설이 실렸다.

중간제목은 <‘누가 될까’ ‘누구 찍는 게 좋아?’보다 ‘누가 자격 있나’를 따지자. ‘중국을 주목하라’는 세계 석학들의 경고가 대선 필수 고려사항>이라고 되어 있다. 이들의 관심을 민중의 처지에서 읽어 본다.

 

 

한때 진보세력의 대통령 후보가 나간 적 있다. 백기완, 권영길. 별로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지만, 지금 대선판은 더 황량하다. 이정희나 노회찬이 잠깐 대통령후보로 나선다 해도 아무 ‘존재감’도 없고, “그 사람들, 쇼하러(다시 말해 야권연대에서 자기 몫 챙기러) 나왔을 뿐”이라는 비아냥만 듣는다. 박근혜와 안철수와 문재인, 보수세력 세 사람이 온통 관심을 독점하고 있으니 지배세력 처지에서는 이렇게 편안한(!!!) 선거가 없다. 한때 노동운동가 일부가 ‘김진숙이나 김상곤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으면...’하는 얘기를 꺼내서 진보동네에서 잠깐 고민한 적이 있는데 당사자들이 기겁을 하고 거절을 해서 없었던 얘기가 됐다. 김진숙이나 김상곤 만큼의 ‘호감’을 줄 사람(후보감)도 별달리 없을 터인데, 대선후보 옹립운동은 계속되고 있으니 곁에서 쳐다보기가 심란하다.

 

 

노동운동하는 아무개라도 대통령후보로 나선다고 치자. 정리해고(쌍차, 한진)와 비정규직 문제(청년유니온) 등을 문제제기하는 것만으로 민중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노동자 처지를 절절하게 대변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그 의제들만 갖고서는 민중에게 뚜렷한 ‘대안 지도자’ 인상을 심어주기에 불충분하다. 중앙일보가 단언하듯이 세계정세와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민족국가가 지향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서는 ‘아, (우리 눈을 퍼뜩 뜨게 만드는) 대통령감이다!’하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 이를테면 텔레비전 후보토론회에 나와서 남북 대결과 관련해 토론이 붙었을 때, 거침없이 또 유려한 말솜씨로 남북 대결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사자후를 토할 만한 민중운동 후보가 과연 누가 있을까? 진보개량운동 20년이 총체적으로 사그라든 지금, 그럴 만한 후보는 없을 것 같다.

 

 

정치 정세 중에 가장 큰 정세는 ‘전쟁’이다[전쟁상황으로 긴박하게 진입하면 이 정세가 다른 여타 사회운동의 의제를 죄다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소멸시킨다]. 이것과 관련해 길게 앞날을 내다보고 비전을 가꿔나갈 줄 아는 정치세력이라야 집권을 넘볼 수 있다. 그런데 ‘전쟁’과 관련해 앞날을 내다보는 “관심”은 눈앞의 정리해고나 희망사항으로서 비정규직 철폐만을 골몰해온 노동운동세력보다는 이 사회의 지배세력이 더 크다. 그들 지배세력보다 더 큰 눈길과 비전을 품게 됐을 때라야 변혁이든 집권이든 넘볼 수 있다.

 

 

영국 왕실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8년 전, ‘독일이 전쟁을 일으킬까?’ 질문을 던졌다. 얼마 전 키신저는 “100년 전 독일처럼 오늘날 떠오르는 중국이 미국과 전쟁을 초래할 것인가?”하고 질문을 던졌다. 물론 이 질문은 패권국가의 자기중심적 입장에서 표현된 것이고, 실제로는 미국이 중국에 대해 봉쇄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기들이 전쟁을 저지르고 있으면서 상대방에게 ‘죄’를 덮어씌운다. 아무튼 간에 내 말의 요지는 “우리 민중운동은 전쟁에 대비하고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키신저는 자기 질문에 확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전쟁 발발’의 불안감을 곳곳에서 드러냈다고 중앙일보는 전한다. 누구도 미래를 족집게처럼 예언하기는 어려운 법이지만, 우리는 미래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서도 어떤 식으로든 실천을 해야 한다.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면 “미래에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라 여기고서 그에 대비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키신저는 골 때리는 반동부르주아세력이다. 그가 중국이나 여타 세계의 정세는 훤히 내다볼줄 몰라도 정작 자기 자신이 속한 제국주의 지배세력의 진면목에 대해서는 맹목이다. 제국주의 지배세력이 얼마나 맹렬한 권력충동에 사로잡혀 있고, 비합리적이며 막가파인지 분별하는 눈이 없기 때문에 그는 훨씬 얌전하게/낙관적으로(?) 정세를 내다볼 것이다. 팔레스타인 민중과 더불어

 

살 길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기어이 그들을 말려죽이려는 이스라엘 지배세력은 얼마나 소름끼치는 존재인가! 이 괴물이 미국의 오른팔이다. 요즘 센가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대결에서 우리는 (머지 않아 패권적 야욕을 드러낼지 모르는) 중국의 내셔널리즘도 (미리) 경계할 일이겠지만 당장 ‘급한 불’은 미치광이처럼 날뛰는 일본 우익지배세력이다. 이들이 미국의 왼팔이다.

 

유럽도 제국주의 본색을 점점 키워가는 중이다. 30년 전에는 ‘유럽 단일국가 구상’이 엉뚱한 잠꼬대로 들렸지만 지금은 그 잠꼬대가 어엿한 현실로 탈바꿈했다. 그리스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긴축에 대한] 민중저항이 터져나오는 공황 정세가 이 잠꼬대를 현실로 만들었다. 단일국가는 비상한 국면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외적(外敵)을 겨냥한 대결구도를 강화할 때라야

 

가까스로 유럽 민중을 꼬드길 수 있다. 그 외적(外敵)은 러시아[와 더 멀리는 중국]이다. 작년 리비아침략때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영국이 얼마나 광분해서 날뛰었는지를 떠올려 보라. 이 유럽도 미국의 막강한 오른팔이다.

 

그러니까 ‘제3차 세계대전’은 키신저처럼 막연히 불안감을 자아내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훨씬 더 큰 개연성으로 다가올 미래라 봐야 한다. 제국주의 지배세력이 주판알을 정확히 튕길 줄 아는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세력이라면 [때로는 자기 욕심을 포기하는 결단도 내리면서] 엄청난 재앙을 낳는 전면전쟁은 극력 피하려고 하겠지만, 그들은 유럽백인세력의 인종주의적 우월감으로

 

똘똘 뭉쳐 있고, ‘지배자의 위치’에서 추락하는 것을 몸서리치면서 거부할 것이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행동도 얼마든지 일삼는다[탄산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국제적 합의도 한사코 거부하는 미국 정부!]. 그렇다면 전쟁은 일어난다! 지금은 이 미래가 까마득한 비현실이겠지만, 당장 이스라엘 이란 간의 전쟁만 터져도 이는 곧장 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다! 한두 달 전인가, ‘서울신문’ 사설에 ‘중동전쟁 발발 가능성, 꽤 높아진 것 같다’는 예측보도가 나기도 했다.

 

이 정세와 관련해, 중앙일보는 “강대국의 흥망에 따른 패권전쟁에서 전쟁터는 엉뚱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염려했다. 그 전쟁터는 한반도를 가리킨다. 훨씬 호전적인 조선일보에 비해 중앙일보는 [전쟁을 꺼리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알겠는데, 우리는 이 전쟁 가능성에 정말로 신심을 다해 대비하고 있는가?

 

천안함 사태때 민중운동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돌아보면 부정적인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저 손놓고 지냈거나 고작해야 ‘좌초설[즉, 북한도 남한과 미국도 아무 잘못 없다]이 아닐까?’하는 소극적인 의심뿐이었다. 현실에서는 남북대결의 훌륭한 구실로 버젓이 작용하고 있는데, 수상쩍은 결론을 현 정권이 내렸다면 끝까지 진실을 캐고, 전쟁 도발을 일삼은 현 정권을 끝까지 징치해야 옳은 일이 아니었던가?

 

한반도가 전쟁의 불길에 휩싸인다면 이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겠지만 한편으로 전쟁 가능성은 전화위복의 기회도 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전쟁 위험에서 빠져나올 길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을 취할 길뿐이고, 그러려면 남북이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은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주장이 아닌가. 20년 전의 ‘연방제 주장’은 단순히 “북한을 보위하자”는 협소한 정치적 목적에만 봉사한 것이어서 그 지지기반을 넓혀 가기가 어려웠지만, 전쟁을 앞둔 상황에선 “남한 민중이 살 길도 통일이다.

 

서로 체제가 달라도 서로 한 발씩 양보하고 서로 상대를 포용하고 사는 쪽으로 결단하자”는 얘기가 큰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그 숨어 있는 메시지는 “남한의 양극화된 자본체제도 변혁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사회주의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할 것 아니냐”하는 권유다.

 

 

중앙일보는 “세계 전쟁정세에 대비할 줄 아는 자라야 대통령 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조중동’이라며 경멸과 분노를 퍼부었던] 그들이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남한 민중운동이 훨씬 앞서서 전쟁 정세에 대비하는 능동성을 발휘했어야 하지 않은가? 우리는 그들의 스케일보다도 훨씬 협소한 안목만 갖고 지내오지 않았던가? NL과 PD와 R은 일찍이 재결합되고 복구됐어야 하지 않았는가?

 

아직도 그 재결합은 먼 얘기인가? 아, 노파심에서 말하건대, 지금 정세에서 ‘통일문제’는 단순히 민족의제로서 재탕되는 것이 아니고, 세계 제국주의세력(미, 유럽, 일본, 이스라엘, 호주와 캐나다)과 그 나머지 나라(민중들) 간의 대결구도, 곧 10억 명 대 50억 명의 전쟁의 한 고리로서 의미를 갖는다. 평화 수호와 민족해방문제와 사회변혁문제가 하나가 된 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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