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위기와 인간의 위기, 그리고 사회적 이행의 필연성
<진보평론> 제51호는 “자본주의 위기, 진보의 재구성에서 사회적 전환으로”란 특집주제를 통해 최근 심화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운동 차원의 대안들을 중점적으로 고민해보려 했다. 그러나 애초 특집의 기획 단계부터 논의의 주된 대상은 경제위기라는 객관적 정세의 분석보다는 운동의 활성화와 대항 헤게모니의 창출이라는 한국사회 안의 주체적 조건을 중점적으로 검토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순에도 새로운 사회적 주체를 발견하거나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운동부문의 오래된 정체현상이 대안의 설정과 모색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특집에 세 편의 논문과 전문 연구자들의 좌담을 게재하였다. 소개된 글의 내용과 주장들이 독자들의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을지 다소 걱정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시도된 <진보평론>의 기획이 좌파 혹은 진보진영 내부에 가로 쳐져 있던 자폐적인 이론적 벽을 허물고 서로가 직면하고 있는 공통의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정주는 “신자유주의의 파산과 세계경제 위기”에서 2008년 이후의 금융위기와 경제위기가 세계적 수준에서 전개되어 온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위기의 원인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김정주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초중반부터 나타난 서구 자본주의의 장기침체와 이윤율 저하에 대응한 정책적 반작용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신자유주의 정책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정책적 모순으로 인해 애초에 지속불가능한 성장모델이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초한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성장은 ‘허구적 정책’에 기초한 ‘허구적 성장’으로 그것의 실패는 예정된 것이었다. 또한 김정주는 미국의 달러 헤게모니와 경제의 대외적 조건들이 어떻게 신자유주의 정책이 갖는 모순을 은폐해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단순한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종전 이후 성립된 미국의 달러 헤게모니 하에 작동해온 자본주의 체제의 최종적 위기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관점이니 만큼 앞으로 이와 관련된 보다 많은 논쟁을 기대해본다.
김윤철 또한 “사회의 ‘전환’과 새로운 주체의 ‘발견’에 관한 단상”이라는 글에서 기존의 운동방식에 대한 다소 도발적이면서 흥미로운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김윤철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보수와 진보 간의 상호 배타적인 쟁투를 체제 안에서 ‘자기 몫을 가진 자’들이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싸움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체제 그 자체가 아니라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체제의 특성을 파악하는 방법에 관심을 갖고, 체제 자체의 전환보다는 인간이 처한 상태에서 사회 전환과 주체의 문제를 고민해보자고 제안한다. 또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인간의 위기로 파악하면서, 이 때 인간의 위기는 그것이 무슨 이유이든 간에 주어진 틀에서 탈주를 감행, 자신을 해방시킬 줄 아는 ‘역능을 상실한 인간’의 위기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프롤레타리아트 개념을 기각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자계급과 동일시되는 어떤 선험적 주체가 아니며, ‘시민사회의 시민이기를 그친 시민’, ‘부르주아 사회의 계급이기를 그친 계급, 그런 계급적 체제에서 벗어난 외부자들이고, 부르주아적인 포섭의 체제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집합, 따라서 부르주아 사회와는 다른 사회로의 지향을 가동시키려는 그런 사람들의 집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실 이는 이미 한국사회 내에서 ‘꼬뮌주의’라 불리는 일단의 이론적 그룹에 의해 제시되었던 것이기도 한데, 인간을 특정한 목표와 의도에 따라 바꿔내고자 하는 혁명보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역능’을 발견하고 회복하는 것이 주체형성 과정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는 이러한 관점이 대중적으로 어떻게 수용될 수 있을지 기대해볼 일이다.
서영표는 “사회주의, 생태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삶의 정치로부터 사회주의 정치로”라는 글에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아무리 좋은 복지시스템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물질적 필요와 욕구에 기초해 있는 한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와 맹목적 성장주의를 동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 삶의 방식 그 자체를 뛰어넘는 녹색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사고해야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체제로서 녹색사회주의를 제안하고 있는 셈인데, 이를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양식의 변화, 시장과 국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자율적인 경제-생활 영역으로서 제3영역의 확대, 그리고 직접 민주주의의 확장을 통한 민주주의의 급진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글에서 흥미로운 것은 녹색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전략으로서 지역 및 지방정치와 지역에서 시도되는 다양한 공동체적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적 수준의 풀뿌리에 기초한 다양한 실험과 시도야말로 좌파 정치가 “구체적 정치 기획 없이 급진적 담론만을 가진 정치세력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런 주장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시도된 몇몇 성공적인 실험과 경험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전체 구조와 지역이 갖는 연관성이 다소 애매하기는 하다. 이 또한 앞으로 더 많은 논쟁과 논의를 기대해본다.
“자본주의 위기와 격변하는 운동, 그리고 주체를 논(論)하다”라는 제목의 대담은 지난 1월 18일 <진보평론> 사무실에서 있었다. 김정주의 사회로 각 분야의 전문 연구자인 박승호·서영표·조정환·지주형 등이 참석해 5시간이 넘는 토론을 진행했다. 지면 관계상 장시간 진행된 모든 토론 내용을 소개할 수는 없었고, 토론의 흐름을 끊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축약 정리된 내용만을 소개하였다. 독자들의 이해를 바란다. 토론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위기의 원인, 위기의 진행과 관련된 향후 전망, 주체에 대한 개념 정의, 주체 형성과 관련해 기존 운동 방식에 대한 평가, 경제위기에 대응한 좌파적 요구 등 굉장히 광범위한 문제를 다루었다. 토론에서 위기를 파악하고 현실을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개념이나 인식 상의 차이가 분명했음을 확인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몇몇 주제에 대해서는 논의가 다소 겉돌면서 쟁점이 형성되지 못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현실을 분석하는 이론과 입장의 차이를 감추기보다는 드러내면서, 이를 연구자들의 육성을 통해 독자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이번 대담을 통해 독자들은 최근의 변화하는 정세에 대해 연구자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비교적 일목묘연하게 확인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대담에 참석해준 네 분의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한다.
국제정세를 다루고 있는 문이얼의 “페르시아(아라비아) 만에서의 미국과 이란 간의 긴장고조: 국제 통화 패권의 숨은 전장”
일반논문으로 신희영의 “미국 경제위기와 월스트리트 점거운동, 그리고 미국 경제학계의 동향”은 경제학의 역사에 해당하는 매우 복잡한 이론적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의 문제점과 현실의 경제위기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성민의 “맑스의 ‘미학’”은 부르주아적 숭고함이란 결국 화폐의 힘을 통해 추함을 추하지 않게 하는 논리로 이성민의 글은 이러한 부르주아적 미적 기준을 비판하고 있다.
장경호의 “먹거리 위기, 패러다임의 전환은 필수적이다”은 지역, 생태, 민주주의의 과제, 그리고 그것을 통한 거대자본에의 저항을 다루고 있고, 일반논문인 윤수종의 “8.15 이후 농민운동의 전개과정”을, 앞의 서영표의 글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윤삼호의 “한국 장애운동의 어제와 오늘”은 한국 장애운동을 ‘장애-민중주의’와 ‘장애-당사자주의’로 구분해 살펴보고 있다. 정세글로 재능투쟁 1500여일을 맞아 엄진령은 “시선은 처음의 그 곳에 두자. 그것이 방향을 밝히는 등불이다: 재능교사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본 특수고용 노동권 투쟁의 의미와 과제”에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과정에서 등장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문제를 다룬다. “희망버스에서 희망발걸음까지”에서 임천용은 작년 한해 뜨겁게 달구었던 희망버스를 둘러싼 쟁점을 제시하고 있다.
◇ 목차 ◇
□ 편집자의 글 자본주의의 위기와 인간의 위기, 그리고 사회적 이행의 필연성
□ 특 집 자본주의 위기, 진보의 재구성에서 사회전환으로
* 신자유주의의 파산과 세계경제 위기김정주
* 사회의 ‘전환’과 새로운 주체의 ‘발견’에 관한 단상김윤철
* 사회주의, 생태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 삶의 정치로부터 사회주의정치로/ 서영표
□ 대 담
* 자본주의 위기와 격변하는 운동, 그리고 주체를 논(論)하다/ 김정주·박승호·서영표·조정환·지주형
□ 국 제 : 페르시아(아라비아)만에서의 미국과 이란 간의 긴장 고조: 국제 통화 패권 다툼의 숨은 전장/ 문이얼
□ 정 세
* 먹거리 위기, 패러다임의 전환은 필수적이다: 농업과 먹거리 정책의 방향전환/ 장경호
* 시선은 처음의 그 곳에 두자. 그것이 방향을 밝히는 등불이다: 재능교사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본 특수고용 노동권 투쟁의 의미와 과제/ 엄진령
* 희망버스에서 희망발걸음까지/ 임천용
□ 일반논문
* 미국 경제 위기와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 그리고 미국 경제학계의 동향/ 신희영
* 맑스의 “미학”/ 이성민
* 8.15 이후 농민운동의 전개과정/ 윤수종
* 한국 장애운동의 어제와 오늘: 장애-민중주의와 장애-당사자주의를 중심으로/ 윤삼호
□ 서 평: 위기와 저항의 글로벌 정치경제 이야기(<글로벌 슬럼프>)/ 김광호
*가격 : 15,000원/ 1년구독료 5만7원/ 2년11만/ 3년 16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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