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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사 읽기]여성,그들의 반역 - 알렉산드라 콜론타이(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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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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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3월 01일 14시 12분 53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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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사 읽기]여성,그들의 반역 - 알렉산드라 콜론타이(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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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사회실천연구소)
[실천] ‘인류사를 거스른 반역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3) -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틀을 만들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본질적으로 중요한 임무들 가운데 하나에 관해 우리의 용서할 수 없는 무관심, 냉담의 기원은 무엇인가? 어떻게 우리는 집단적 노력을 요청하지 않고, ‘집안 일’을 나중의 일로 미루는 것과 같은 성적 문제들에 대한 위선적 추방을 설명할 수 있는가? 마치 사회적 투쟁의 끊임없는 요소로써 성들 사이의 관계들에 알맞은 도덕적 코드의 확립이 역사를 통털어 관철, 나타나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결정적 사회 그룹의 제한들 내에서 성들 사이의 관계들이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사회 계급들 사이 투쟁의 산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처럼! -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새로운 도덕과 노동계급』(1918년)
러시아 혁명은 러시아 여성의 삶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시민적·정치적·법적 권리에서 여성의 평등이 선언되었다. 여성은 선거권을 얻었다. 이혼법이 느슨해졌으며 종교결혼과 신고결혼 사이의 구별이 없어졌다. 낙태가 합법화되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생겼다고 해서 여성은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이 문제를 둘러싸고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콜론타이 사이의 반목이 시작되었다. 레닌과 볼셰비키당은 이런 업적을 맑스주의가 여성들에게 약속한 천년왕국에 이르는 첫 단계로 보고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콜론타이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법적 조치들이 실제로는 선진 부르주아 국가들 대부분에서 이미 취해진 법적 조치들을 넘어서지 못했는데, 법적인 선언만 가지고 잘못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비난했다.
콜론타이는 혁명이 일상적인 삶에서, 그리고 일상적인 사회관계에서 여성의 신분에 영향을 미쳐야한다고 주장했다. 일상생활에서 혁명적 변화야말로 그녀가 생각하는 여성해방의 핵심이었다. 보기를 들면, 남편의 폭력에 평생 시달리던 여성들은 이혼의 자유를 환영했지만 남편을 ‘생계수단’으로 여기는 여성들은 이러한 자유를 두려워했다. 결국 진정으로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여성들이 전담하는 가사노동이 사회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콜론타이는 1920년 1월 정부가 여성을 포함한 모든 인민에게 노동징발령을 포고했을 때 참으로 반겼다. 콜론타이는 이를 여성의 역사에서 가장 뜻 깊은 날로 여겼다.
“여성에게 가장 위대하고 해방적인 날은, 남성과 같은 법적 권리를 얻는 날이 아니라 남성과 마찬가지로 ‘노동하도록’ 강요받는 날이다. 여성은 이제 남편이거나 가족보다 집단에 귀속할 것이며, 자신의 노동에 따른 자신의 장부를 가질 것이고, 독립 존재로서 사회 활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 사회는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볼셰비키조차 여성을 억압하는 내용이라고 반대한 법이었지만 콜론타이만은 여성의 지위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그만큼 콜론타이가 지닌 생각은 참으로 달랐다. 콜론타이가 다른 사회주의자들에게 ‘이상주의자’라는 딱지를 받게 된 것도 어찌 보면 마땅한 것으로 보인다.
똑같이 인간해방을 실현하려 한 사람들 사이에 왜 그런 견해차가 생긴 것일까. 왜 콜론타이는 같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이상주의자’이거나 ‘급진파’로 인식되었을까. 그런 차이를 낳게 한 하나의 까닭은 여성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레닌이 여성의 노동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새로운 공산주의 사회를 위하여 여성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콜론타이는 그 반대였다.
그녀는 새로운 사회가 여성구성원을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강조했다. 여성은 생산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재생산 분야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한다. 출산, 즉 대중을 위한 새로운 노동자의 공급이 틀림없는 사회적 봉사라면, 산모의 보호는 마땅히 정부의 주요 관심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1918년 11월 16일 모스코바에서 열린 제1차 ‘러시아 여성 노동자·농민대회’에서 콜론타이는 ‘가족’의 장래에 대한 청사진을 밝히는 중요한 연설을 했다.
남성에게 기댈 필요가 없는 새로운 인생의 가능성에 마음을 여십시오. 가정은 여성을 종속시킬 뿐 아니라 비생산화함으로써 집단의 발전을 방해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노동자 국가는 남성과 여성, 두 평등한 노동자가 자유롭게 결합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국가는 여성에게 일자리를 주고 아이를 돌볼 것입니다. 유치원과 탁아소에서 집단 활동은 아이들로 하여금 ‘내 것’ ‘네 것’보다 ‘모두의 것’을 깨쳐 사유재산 관념을 갖지 않도록 해줄 것입니다.
콜론타이는 끓어오르는 열정과 확신에 찬 어조로 말끝을 맺었다. “대표들이여, 새로운 의식을 가지고 돌아가십시오. 여러분은 더는 바바가 아닙니다.”
콜론타이가 보기에 부르주아지가 자랑스럽게 찬양하는 ‘출산의 신성함’은 프롤레타리아 여성에게는 하나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에게 임신기는 초조하지만 감미로운 기대의 시기가 아니라 ‘형극’의 시기이다. “빈곤에 쫓기고 가혹한 작업감독”에게 쫓기는 프롤레타리아 여성 임신부는 할 수 있는 한 마지막까지 공장에서 일을 했다. 산모가 임신기간 동안 건강에 나쁜 환경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아기가 ‘파리처럼’ 죽어갔던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콜론타이는 폭넓은 산전(産前) 보호체제를 세우려고 싸웠고 끝내 이를 얻어냈다.
또한 노동하는 어머니의 어깨에서 자식을 보살피는 육체적 짐을 벗겨준다면, 그녀는 어머니된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여성의 일’을 사회가 떠맡기 위해 공동식당, 보육시설, 세탁소 같은 공공시설들이 세워졌다. 여기서 그친 게 아니다. 콜론타이는 『공산주의와 가족』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결코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우리의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역사의 과정에서 가족의 구조는 여러 번 달라졌다. 한 때 가족은 오늘날의 가족과 꽤 달랐다... 새로운 삶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들은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래 되고 낡은 모든 것, 지배와 예속의 저주받은 시대, 지주와 자본가의 시대에서 나온 모든 것들은 착취하는 계급 그 자체와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민의 다른 적들과 함께 사라져야 한다.
콜론타이는 새로운 사회에서 가족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설계했다. 이 설계도는 맑스의 낡은 슬로건에 형태를 넣은 것이다. 그녀는 ‘가족의 소멸’에 대한 맑스의 요구를 지난날 가족기능을 사회 전체가 떠맡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행복한 대가족 사회가 모든 일을 돌보게 될 것이다.”
여성해방에 대한 콜론타이의 관심은 그저 사회적 지위에만 머무르지는 않았다. 그녀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새로운 성 윤리를 주장했다. 그것은 콜론타이가 세운 이론 가운데 가장 뒤틀린 형태로 알려졌다. 이른바 ‘물 한 잔 이론’으로 폄하된 “자유로운 사랑”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랑”에서 콜론타이가 말하려 한 것은 섹스라는 것도 인간의 본능적 욕구라는 점이었다.
콜론타이는『새로운 도덕과 노동계급』(1918년)에서 ‘에로스적인 동지애’를 통해서만 사랑과 동지의 연대로 형성된 공동체가 만들어 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완전한 자유와 평등하고 동지적인 연대라는 두 가지 원칙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녀는 이 책에서 전통적인 혼인관계를 맺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했다. 새로운 여성은 결혼에 얽매이지 않는 노동력의 일부이자 소비에트의 한 성원을 말한다.
그녀는 여성이 종속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까닭을 ‘가사 노예’가 아니라 여성을 그저 아내나 연애 대상으로 여기는 ‘감정적 종속에 의한 제한성’으로 여겼다.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며 사회주의를 만들려면 여성은 먼저 가정을 떠나는 ‘죄’를 이겨내야 한다. 이것이 콜론타이가 주장한 내용이다.
남녀 사이에는 예전 관계 대신에 새로운 관계가 발전하고 있다. 애정과 동지애의 결합. 더는 여성에게 가사의 굴레는 없다. 더는 가족 안에서 불평등은 없다. 더는 여성이 아무런 지원 없이 남아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더는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고 그녀의 일에 의존한다... 결혼은 서로 사랑하고 믿는 두 사람의 결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콜론타이를 비롯한 러시아 여성 볼셰비키들의 노력은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만다. 그이들이 너무 일찍 태어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낡은 관습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남성 중심의 사회에 도전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반증한 것일까. 어쨌든 완전히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고 한 이상은 그 때 러시아가 부닥친 현실(경제 붕괴, 대외적 고립 등) 때문에 정부를 이끈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었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그녀가 남긴 것
“러시아 혁명의 붉은 장미”,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소련 역사에서 아주 특이한 인물이다. 그녀는 스탈린 정권이 휘두른 테러에 숙청당하지도 처형되지도 않은 “구 볼셰비키”였고 공산당에 대한 중요한 공개적 비판가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그녀가 천수를 누렸다는 것보다 그녀가 새로운 사회를 세우려고 내놓은 계획안과 열정 때문에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는 게 아닐까.
그가 경험한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성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사회와 개인을 통해 여성에게 강제된 도덕적 잣대와 물질적 빈곤을 없애버리지 않는다면, 여성은 이른바 ‘부르주아적 권리’를 얻어냈지만 여전히 불평등에 시달릴 것이다.
여성은 이야기했다. 여성의 눈은 삶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듯 보였다. 당신은 여성 스스로 독립하려는 열망과 일자리를 잃는 것에 대한 공포, 절망에 빠진 듯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잡을 수 있다.
콜론타이는 그 여성들을 잊지 않았다.
사랑 때문에 여성이 개성을 파괴당하고 날개를 결박당할 수는 없다. 사랑이 그녀를 노예로 삼으려 한다면, 그녀는 스스로 해방을 선언하고 사랑의 모든 비극을 딛고 일어서서 자기의 길을 가야 한다... 한 남자를 향한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치려 하지 말고, 본질적이고 창조적인 일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콜론타이는 전혀 새로운 사회,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가 온다는 이상주의적이고 급진적인 바람을 지녔다. 그녀는 지난날 그 어떤 사회주의 사상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주의 이상에 형식과 내용을 넣으려 했다.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이 실질적으로 가지게 될 의미를 규정하고, 그것의 상세한 모습을 실천적 차원에서 제시하려 했다. 그녀가 레닌에 맞서 당내 자유와 민주주의를 주장한 것도, 여성문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려 한 것도 그러한 바람을 ‘실천’하려 한 것이다.
러시아 혁명은 영원히 인류의 바람을 제기해놓았고 지구 전체에 걸쳐 ‘반역’을 실천하려는 사회주의 운동에 계속해서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혁명의 영향은 여전히 오늘날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또한 혁명의 주요한 빛 가운데 하나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어디서나, 모든 곳에서 여성은 완전한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살았던 것처럼.
여기에 낡은 생활방식에 맞서 싸우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그녀는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그녀는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그녀는 사회주의 혁명과 여성해방이 서로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억압받는 모든 이여, 투쟁, 그것은 해방 그 자체이다. 타고난 선동가, 이론가,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열정적인 건설자,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억압에 맞서 몸소 실천하라는 것이다.(끝)
▒ 출처: 사회실천연구소 발행 '실천' 2007년 11월호
[사회실천연구소의 말] http://spri.jinbo.net/
실천(Praxis)
"일상적으로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고 자본주의와 늘 전면에서 투쟁하면서 자본주의 타도의 길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의욕은 강하나 이론적 천착이 부족하고 현장에서 맨날 투쟁 속에 살다보니 이론적 감각이 무디어졌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실천은 이론적 작업을 요구합니다." (어느 실천활동가의 말)
우리는 지금 여러 '유령'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개혁과 신우익의 정치적 우세, 지구적 자본주의의 극적인 전진, 사회주의의 종말 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겸허하게 이론을 다시 꼼꼼히 살피고 국제정세를 분석하면서 사유를 넓히고 운동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번역의 시대'를 거치려 합니다. 사회실천연구소와 함께 할 자료/후원회원을 모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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