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HOME | 로그인 | 회원가입 | 자료찾기
 
   
 
 
 
 
[활동가 정신건강] 개기식 - PTSD 겪은 한 활동가의 수기
레프트119(준)
3946 1325  /  356
2012년 01월 21일 11시 04분 52초
[활동가 정신건강] 개기식 - PTSD 겪은 한 활동가의 수기 2012·01·21
 
 

레프트119(준)

 

▒ 소개글: 이 글은 ATS(Activist Trauma Support)의 기관지에 실린 글로, 경찰 폭력에 의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던 활동가의 수기이다. 이메일 주소로 필명을 대신한 지은이는 개기식(total eclipse)이란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삶을 완전히 가려버린 절망적 상황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활동가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상호지원의 필요성에 대해서 보다 많은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기를 바란다.[레프트119(준)] 



개기식(total eclipse)

desertfish@riseup.net

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중인가를 알 수가 없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붕괴되었다. 난 세계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으며 결코 다시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는 항상 이렇게 머무를 것이며, 난 다시는 춤을 출 수가 없을 것이다. 난 다시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을 다시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난 다시는 웃지 못 할 것이다. 나의 세계는 고통과 눈물들로 채워져 있다. 나의 세계에서 난 혼자다. 나의 세계는 어두운 바다에 떠 있는 검정색 탑 모양을 한 감옥이다. 내 삶은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삶이 아직도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외롭다. 고통이 예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왜 난 거기에 갔을까? 왜 난 그 거리의 중간에서 멈추지 않았을까? 다리 아래를 내려다본다. 난 멈출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너무 외롭다. 너무 외롭다. 난 혼자다. 고통의 바다에서 비명을 지르는 난 혼자다. 외로움이 날 갈기갈기 찢는다.

누구도 내게 관심이 없다. 난 사람들이 무섭다. 어느 누구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난 몸을 급히 숨긴다. 만약 사람들이 내게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다면, 난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내게 단어는 사라지고 단지 눈물과 비명만이 남았다. 난 사람들 앞에서 나의 아픔을 비명 지를 수조차 없다. 그래서 난 숨는다.

내 집은 더 이상 나의 집이 아니다. 어떻게 내 친구들이 내가 무서워하는 사람들로 변했을까? 난 나의 방을 떠날 용기도 없다. 복도에서 누군가를 만날 위험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난 혼자고, 난 다시는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무언가가 날 조종하고 있다. 검은 유령이 날 따라오면서, 그가 원할 땐 언제라도 날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이러한 일은 어느 순간에도 일어날 수 있다. 

난 더 이상 밖에 나갈 수 없다. 난 언제라도 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땅바닥에서 통곡과 발작을 할 수 있다. 만약 그러한 일이 길거리에서 일어난다면 어찌할 것인가? 침대에 머무르는 것이 낫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울 수 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난 마치 이전에는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운다. 무언가가 내 위장에서 몸 밖으로 나오려 한다. 토할 것 같다.

난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난 모든 사람이다. 모든 죄수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경찰에게 폭행당했다. 모든 사람들이 고문을 당했다. 이러한 느낌은 몇 주에 걸쳐서 멈추지 않는다. 난 부끄럽다. 난 남들에게 약해 보이고 싶지 않다. 난 그들이 우리들에게 자행했던 것들이 내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난 강한 여자였다. 그러나 이제 난 아무것도 아니다. 누구도 날 과거의 나로 보지 않을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그 일은 몇 년 전에 일어났지만, 지금 그 일에 대해서 쓰려니 토할 것 같다. 그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 일에 대해 내가 쓴 것을 읽노라면 괴상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내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에 있는 것 같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내 파트너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그러나 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다. 당신의 곁에 있는 누군가를 당신이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친구’라는 말은 날 울게 만든다. 난 어떤 친구도 없다. 사람들은 나를 보살피고 나를 걱정한다. 그러나 난 그들을 볼 수가 없었다.

삶을 가치 있게 하였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으며, 그 빈자리에 고통이 채워졌다. 외로움이 가장 힘들었으며, 살아가는 것에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이러한 감정들을 추스르는 데 수 개월이 걸렸다. 난 심리치료사를 찾아 갔다. 그녀는 내가 자살충동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 행동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심리치료를 받는 동안 난 그녀에게 당장 꺼져버리라고 말하는 대신에 그녀를 믿었으며, 시간당 50유로(400유로까지 지불한 적도 있었다)를 지불했다. 

마지막으로 난 “우리들”중의 한명인 활동가 X를 만났다. 그는 내게 매일 일정시간에 10분 동안 울라고 말해 주었다. 난 매일 아침에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0분이 지나 알람이 울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삶을 이어갔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게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 이것이 어떻게 내가 나의 삶과 나의 눈물에 대해서 통제를 다시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내 등 뒤에서 언제든지 검은 유령이 나를 덮치리라는 느낌은 사라졌다.

난 모든 것을 통제해야만 했다. 집을 나서기 2시간 전부터 준비를 한다. 아무것도 잘 못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내 자신에게 확신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난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일도, 요리도, 청소도 할 수 없었으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난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난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었으며, 훌훌 털고 일어서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었다. 사람들이 내 상처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내가 다리가 부러졌다면, 난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파트너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금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말할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으며, 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거나 혹은 사람들에게 실망할까봐 두려웠다. 그보다는 혼자 있는 게 나았다.

난 경찰과 마주치는 것이 무서웠다. 왜냐하면 경찰을 보면 내가 겪은 일들이 다시 생각나고, 내가 겪은 모든 것들이 또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X는 나에게 매주 경찰 3명에게 길을 물어보라고 하였다. 처음엔 경찰에게 길을 묻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그 경찰은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 서서히 난 나의 뇌를 다시 프로그램화 하였다.

난 2주에 한번 바하플라워(bach flowers) 요법을 받았으며, 이 역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난 학습도 했으며, 이러한 학습은 내가 무언가 유용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으며,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책은 나를 공격하지도 않았으며, 나를 실망시키지도 않았다.

그 일이 있은 지 1년 후에 열린 재판이 있기 전에 난 심리치료를 받았다. 왜냐하면 나를 죽이려고 했던 자들을 법정에서 마주칠 때 내가 이성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난 EMDR 치료과정을 가졌으며. 이 치료는 내게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난 법정에서 침착할 수 있었다.

무엇이 내게 필요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도심지는 내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는 데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난 내가 믿고 교감할 수 있으며, 나를 돌볼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필요했다. 그리고 내게는 나의 배경을 존중하고 트라우마 치료에 있어서 경험이 있는 전문가의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트라우마와 관련된 보다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절망적인 몇 주가 지난 후에야, 난 인터넷을 통해 트라우마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고 나의 징후들과 거의 일치하는 트라우마 징후들의 체크리스트를 발견했다. 

왜 트라우마에 대해 생각지 못했던 걸까? 거기에는 내가 고통 받는 것의 이름이 있었다, 난 미친 것이 아니었다. 안심이 되었다. 난 부끄럽게 느낄 필요가 없었으며, 내가 겪은 것은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안다는 것이 극복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내 고통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은 날 견딜 수 있게 한다. 내가 겪은 것은 질병처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이며,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길은 있었다.

난 지금 삶으로 돌아왔다. 난 다시 사람들에게 갈 수 있다. 시간은 걸렸지만 난 돌아왔다. 예전처럼 정치적 행동을 활발히 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내겐 가야할 길이 남아있지만 ... 난 많은 것들을 배웠다. 내 자신에 관해서. 사람들에 관해서. 우리들의 투쟁에 관해서. 내가 겪은 일들은 날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난 내가 누군지와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난 내가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지를 안다. 난 내가 강하다는 것을 알며, 가끔은 내가 나약하다고 느낄 때도 내가 괜찮다는 것을 안다. 난 우리가 올바르다는 것과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 

* 번역: 레프트119(준)
이 글은 사회실천연구소 간 월간 이론번역지 ‘실천’ (2012.1 통권62호)에 실렸습니다.  


2012. 1. 20

(가칭) 레프트119 준비모임 - 활동가 정신건강 긴급지원시스템
http://cafe.daum.net/left119

 

‘레프트119 준비위 결성을 위한 모임’은 활동가의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가칭)레프트119 준비위 결성에 정파. 소속, 입장의 차이들을 뛰어 넘어서 함께 할 것을 노동운동을 포함한 범사회주의운동진영의 단위들과 활동가들에게 제안합니다.

▒ 레프트119(준) 제안서 전문 바로가기


  
이름 비밀번호
도배방지
아래 보이는 문자열을 마우스로 복사 또는 직접 입력하세요.
DCGSGK 직접 입력
쓰기 목록 추천 수정 답글 삭제
3514
쌍용자동차
2012.02.01 1557/365
3513
노건투
2012.02.01 1444/394
3512
3개 조직
2012.01.31 1671/454
3511
노사과연
2012.01.31 1228/394
3510
5주년
2012.01.30 1710/410
3509
이글스
2012.01.30 1388/370
3508
노동자혁명당(추)
2012.01.30 1172/333
3507
마오주의자
2012.01.30 1390/354
3506
변혁산별
2012.01.30 1299/352
3505
노동자 공화국
2012.01.29 1041/326
201 202 203 204 205 206 207 208 209 210
CopyLeft By Jin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