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노동자 죽인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지지할 것인가?
*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또 다시 패배할 것이며 노예적 삶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올바른 노동자 진보정치를 위하여>
몰락, 그리고 새로운 시작
2011년 한해는 민주노동당 12년 역사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기존의 노동자 진보정치가 몰락하는 해였다. 노동자진보정치 노선이 내팽개쳐지고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유린당했다. 민주노조운동의 후퇴와 함께 노동자진보정치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2011년 5월 21일 진보정치 혁신, 신자유주의 극복,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 조직 등 제대로 된 기층민중과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이하 새노추)가 출범했다. 새노추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했던 제1기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실패했음을 선언하고 “보다 넓고 보다 분명하게” 노동자 민중의 정치를 실현할 것을 결의했다. 이는 노동자진보정치가 길을 잃고 몰락해 가는 상황에서 “올바른 노동자 진보정치”를 새롭게 세우자는 열망에서 비롯했다. 새노추가 출범한 지 8개월이 흘렀다. 적은 수의 회원들과 작은 목소리였지만 우경화되고 있는 기존의 진보정당을 비판하면서 신자유주의시대에 고통 받고 있는 비정규불안정노동자와 금융피해자들과 함께 하는 대안적 노동자진보정치를 제안했다.
민주노동당, 신자유주의세력과 통(通)하였는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과 2004년 원내진출 이래 노동현장의 투쟁역량은 대거 정치권으로 이동했다. 15년 전인 1996~97년 노동법개악저지(노개투)총파업 당시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이 아쉬웠으나 노동자 국회의원 10명의 시대에도 노무현 정권에 의한 노사관계로드맵이 강제되고 비정규직법은 개악됐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정치자금을 모으는 창구였고 조합원들은 선거 시기 표를 찍는 대상이었다. 의회주의에 경도되어 현장노동자 정치는 점차 사라졌다. 2008년 내부 권력투쟁으로 분화했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상층 기회주의자들은 진보대통합만이 살길이라며 무조건적인 통합을 추진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 수탈과 착취가 강화되는 상황에서도 반MB·한나라당 정권교체를 위해 신자유주의 보수세력과의 야권연대에만 매달렸다. 자본주의 극복은커녕 신자유주의반대조차 사라져버렸다. 신자유주의자들과의 연대에 집중하면서 올바른 노동자진보정치의 길을 포기했다. 민주연립정부를 꿈꾸기 시작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양당통합이 필요했다. 그들의 통합야욕은 현장 당원들과 노동자들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통합을 추진한 상층부는 대중들의 결정을 짓밟으며 밀실에서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강행했다. 소위 3자 원샷 통합은 진보정당의 우경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가운데 신자유주의 세력에 포섭되는 상황을 연출했다.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통합을 묵인한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창당의 모태였으나 노동운동의 방향과 투쟁력을 상실한 민주노총은 이를 막아낼 힘도 없었고 상층은 이를 묵인 방조했다. 민주노총으로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2008년 취임과 동시에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산 소고기수입에 저항하는 촛불시위로 권력의 위기를 맞이했던 이명박 정권은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통해 자본독재의 길을 분명히 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정리해고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고 외치며 투쟁한 쌍용자동차에 대한 적극적인 투쟁을 조직하고 이명박 정권에 맞서야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집행부는 투쟁보다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이 현장 투쟁을 약화시킨 원인이라거나 국회 내에서 진보정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진보정당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온통 통합논의에만 매달렸다. 결국 내면에는 원내교섭단체를 넘어 민주당과의 선거연대를 통한 반한나라 국회 과반수 의석확보와 연립정부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낸 허송세월 3년 동안 당면 투쟁은 물론이고 현장노동자정치는 실종되었다. 통합논의에 주도적인 역할도 못했다.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통합은 왜 안 되는가?
1997년 말 도래한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이후 14년 동안 노동자 민중들의 고통은 커져왔다. 비정규직 1000만,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가 이를 상징한다. 신자유주의 정권과 다국적기업·재벌의 착취에 의해 비정규불안정노동자들이 증가하고 금융자본의 수탈에 의해 광범위하게 금융피해자가 양산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10년 동안 깔아놓은 신자유주의 금융고속도로 위를 이명박 정권은 4년 동안 무법의 무한질주를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자본독재가 극에 달한 상태다. 그래서 반MB·한나라 민주통합당으로의 정권교체가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민주(열린우리)당 10년 동안 4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늘어났고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화가 확대됐다.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당했고,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분신으로 항거했다. 2001년 대우자동차 1754명 정리해고 당시 폭력적인 경찰진압이 있었고 당시 마지막 화염병 투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당시 김대중 정권 3년차에 정권퇴진 투쟁을 걸고 투쟁했다.
노동자 민중의 삶을 짓밟은 김대중-노무현 10년
김대중 정권은 아이엠에프 프로그램을 그대로 받아들여 4대 부문 구조조정을 강행하면서 대대적인 개방화, 자유화를 통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다. 이 과정에서 저항했던 800여명의 노동자가 구속됐다. 이어 노무현 정권은 동북아 금융허브정책과 FTA추진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완성해 나갔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노동자, 농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한EU FTA를 동시에 추진하는 등 전방위적인 FTA를 통해 자본의 세계화를 추진했다. 한미FTA에 반대해 허세욱 열사가 분신으로 항거하고 많은 노동자 농민들이 구속되었으나 협상은 체결됐다. 당시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았던 노무현 정권을 향해 흔쾌하지는 않았지만 퇴진을 요구했다. 노무현 정권은 중국 상하이 투기자본에게 쌍용자동차를 팔아넘겨 3000여명의 정리해고와 19명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원인을 제공했다. 지금 제동이 걸려 있긴 하지만 미국 론스타 투기자본에게 국책은행인 외환은행을 헐값·불법 매각하여 5조원의 차익을 남기고 먹튀할 수 있도록 만든 정권이다.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평택미군기지 이전과 미제국주의 중동침략전쟁 동맹군으로서 파병을 감행했다. 대학생 등록금 폭등, 새만금 완성, 경부고속철도 강행, 수명 다한 원자력 발전소 가동 연장,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계획마련, 혁신도시 건설을 통한 전국토의 투기장화 등 현재 4대강 사업을 제외하고 이명박 정권이 벌이는 모든 친자본·재벌과 반노동자·민중, 반환경 정책은 민주당 정권의 후속사업이다. 민주노총이 이에 저항하지 못한 탓에 구속노동자는 역대 최저인 400여명에 불과하다.
민주노총,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철회해야
민주노총을 토대로 출범했던 민주노동당은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할 이상조차 내팽개쳤다. 투쟁의 대상이었던 신자유주의 민주당 정권의 핵심세력이었던 국민참여당과 통합하여 통합진보당으로 출발했다. 이제 민주노총은 배타적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 이들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통해 정권교체를 벼르고 있다. 작년 말 한미FTA비준 과정에서 민주당 태도로 볼 때 그들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노무현 정권 당시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금융·주주자본주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착한 자본가가 유력대선후보로 떠오른 지금 다른 대안은 없다. 올바른 노동자진보정치를 위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버리고 뭉칠 수 있는 세력은 뭉치고 그렇지 못한 세력은 좌파정치연대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 역사인식이 결여된 출세주의자들의 조급증을 부러워하지 말고 긴 안목으로 노동자정치를 열어나가자!
(새로운 노동자정당추진위원회 선전물, 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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