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큐파이 뉴욕'- 2008년 뒤 미국에 일어난 계급투쟁(2) |
2012·01·02 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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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실천연구소
▒ [번역] 2008년 뒤 미국에 일어난 계급투쟁(2)
로렌 골드너 Loren Goldner (Insurgent Notes 편집장)
“불황”과 침묵의 저항
2008년 가을 이후, 미국의 공식 실업율은 9.1%에 이르렀다. 하지만 실제로는 15%에 가까울 것이다. 이 통계에서는 한 달에 한 시간을 일하더라도 “취업자”로 간주한다. 일자리 찾기를 완전히 포기한 몇 백만 명은 아예 배제된다.
몇 십만 명은 일자리를 잃은 뒤 집까지 잃었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센트럴 벨리, 라스베가스, 플로리다 등 이전의 “호황” 지역들에서 그랬다. 몇 백만 명은 집값이 떨어져서 모기지 대출액이 집값보다 더 많은 상태에 놓여 있다. 빈 집들이 몇 년째 팔리지 않으면서, 부동산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1년 89월 초순에, 세계 주식 시장이 또 자유낙하 중이다. 여기에 거론한 모습들이 며칠 안에 낡은 것이 될지 모르겠다.)
주택시장 붕괴와 관련된 하나의 눈에 띄는 현상은 압류와 퇴거에 대한 집단적인 저항이 거의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1930년대 초와 중요한 차이를 보여준다. 그 때에는 (보기를 들어) 뉴욕 시에서 퇴거를 위협당하는 이웃을 지키려고 몇 천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농촌 지역에서는 은행의 압류조치로부터 농장 부지를 지키려고 농부들이 (종종 무장하고서) 달려들었다.
경제적으로 가장 파탄난 도시들 가운데 하나인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에 살고 있는 한 동지가 전하는 바로는, 압류나 퇴거당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는 자신들의 상황을 단순히 “부끄러워하고”, 이웃들에게 감추며, 밤에 조용히 떠난다고 한다.
의료보험과 연금에 대한 공격
2007-2008년 이후, 명시적인 계급투쟁은 작업장으로부터 (연방정부, 주정부, 시정부의 모든 수준에서) 파산한 국가와의 대결이라는 영역으로 상당 정도 이동되었다. 이러한 이동은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을 비롯해서 거의 모든 블루칼라 산업부문에서 노동자들이 예상보다 일찍 패배한 데 따른 결과였다.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사유화의 우월성에 관한 몇 십 년에 걸친 선전 이후, 특권적이고 돈만 많이 받아먹은 기생충들로 악마화 되었다. 이는 실제로는 그들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과 임금이라는 혜택을 누리는 마지막 남은 노동자들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러한 대결에서 거의 어디서나 나타나는 요소는, 미국의 퇴행적인 민영 의료보험 “시스템” 아래서, 의료보험료를 둘러싼 것이다. 공황이 충분히 분출하기 전에도, 터져 나온 파업들 가운데 다수는 의료보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가족을 가진 이들에게는, 일자리와 연계된 민영 의료보험이 임금 그 자체만큼이나 또는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이 되어 있다.)
공황 때문에 주 정부와 시 정부의 세입이 대폭 줄어들면서, 각 정부들은 퇴직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의료보험과 연금을 지급할 능력을 점점 상실해 왔다. 모든 수준에서 정치인들, 선동꾼들, 씽크탱크들은 “급상승하는 의료비”를 한탄한다. 그러나 민영 보험회사들은 의료부문을 통제하게 된 진짜 이유나 거대 제약회사들이 부풀린 약값에 관한 진지한 토론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몇 달 전 플로리다의 어느 남성이 감옥에서라도 의료혜택을 받으려고 일부러 은행 강도짓을 해서 붙잡힌 사례가 있다.) 거의 모든 주류 정치인들이 거듭 밀어붙임으로써, 가장 부유한 10% 또는 1%가 내는 세금이 점점 줄었던 장기적 추세 또한, 많은 주 정부와 시 정부들을 파산으로 내몬 이유였다.
의료보험 위기와 함께, 민간부문과 공공부문 모두의 연금이 위기에 빠져 있다. 1990년대부터, 점점 더 많은 고용주들은 완전한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에서 “401K형” 퇴직연금으로 연금적립 방식을 바꾸었다.
401K형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과 달리 고용주와 노동자 둘 다 기금을 적립하며, 주식시장에 투자된다. 물론 주식투자를 중개하는 브로커들이 수수료를 받아 챙긴다.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401K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퇴직자들은 기존의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이 지급하던 액수의 10~33%만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확정급여형 퇴직연금 가입자 수는 한창 때에 비해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러한 추세는, 의료지원과 사회보장에 대한 의회의 예상되는 공격과 결합되어, 노인들의 빈곤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공황 때문에 예산이 대폭 줄면서, 주 정부와 시 정부는 퇴직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연금을 지급할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2009년 11월 필라델피아 운송노동자들은 연금 수당을 늘리려고 6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최후의 산업 “노동자 요새”, 전미자동차산업노조(UAW)의 몰락
전미자동차산업노조(UAW)가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 쓰리” 완성차업체들과 2007년에 ‘이중임금제 협약’을 맺은 것은, 미국 노동자계급에게 퍼부어진 몇 십 년에 걸친 공격이 거둔 핵심적인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현장 노동자들로부터 폭넓은 반대가 올라왔지만, UAW는 저돌적으로 밀어붙여 이 협약을 관철시켰다.
‘이중임금제’ 협약에 따라, 빅 쓰리에 새로 취업하는 노동자는, 기존 나이든 노동자들이 시간당 27달러를 받는 것과 달리, 시간당 14달러를 받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UAW가 맺은 협약은 다른 많은 산업부문들을 “선도”하는 협약으로 작용했다. 2007년 UAW가 협약을 맺은 뒤 3년이 지나는 동안, 미국에서 이중임금제 협약을 맺은 노조의 수는 2%에서 12%로 늘었다.
2009년 금융 붕괴의 한복판에서,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을 선언한 뒤, 미국 정부에게 인수되었다. 파산 선언은 간단히 말해서 자신의 부채 의무를, 특히 퇴직한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에게 지고 있던 부채 의무를 벗어던지려는 전략이었다. 몇 주 뒤, 두 회사가 파산으로부터 소생했을 때, UAW는 두 회사 모두에서 주요 주주가 되어 있었다. 파산 절차를 통해, 회사는 퇴직 노동자들을 위한 의료보장 기금에 지고 있던 500억 달러의 빚에서 벗어났다.
VEBA(노동자와 수혜자의 자발적인 연합)라고 불리는 새로운 기금이 UAW에 의해 관리될 예정인데, 그 운명은 오로지 GM과 크라이슬러 주식의 시장 가치에 달려 있을 것이다. 만일 주식가격이 폭락하거나 두 회사 가운데 어디든 또 파산을 겪게 될 경우, 2백만 명의 UAW 퇴직자들과 그 가족들은 아무런 의료보장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연금은 삭감되거나 헐값으로 미국 정부에게 인수될 것이다.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한 공격: 위스콘신
60년 동안 미국 산업계에서 임금 협약의 모델로 존재해 왔던 노조(UAW)를 KO시킨 뒤,* 자본은 2011년 들어 공공부문 노동자들과 공공부문 서비스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공세를 강화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위스콘신 주에서 있었지만 오하이오, 인디애나, 일리노이, 캘리포니아, 코네티컷, 뉴저지, 뉴욕 주 그리고 뉴욕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 빅 쓰리의 미국 공장들에 고용된 총 노동자 수는 몇 십 년 동안 감소했지만, 외국의 자동차기업들은 엄청난 금액을 투자해서 미국 남부에 무노조 공장들을 속속 건설했다.)
위스콘신에서는 새로 당선된 공화당 소속 주지사 스콧 워커가 단체교섭을 폐지하려고 시도했다. 이 때문에 2008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그리고 가장 오래 계속되는) 노동자계급의 결집이 지금까지 이루어졌다.
2010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전반적으로 압승을 거둔 와중에, 스콧 워커와 공화당은 위스콘신 주 정부를 장악했다. (워커가 극우 성향의 억만장자 코흐 형제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는데, 코흐 형제는 명확하게 위스콘신을 다른 모든 곳에서 사용될 전략과 전술을 실험하는 곳으로 여겼다.) 권력을 잡자마자, 그들은 부자와 기업이 내야 할 세금을 대폭 줄여 주었다. 그리고선 주 정부의 예산이 적자라고 선언했다. 자신들이 단행한 부자감세 때문에 예산적자가 훨씬 악화되었는데도 말이다.
주지사 워커는 사회적 서비스를 대폭 감축시키고, 주 정부가 마음대로 사유화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서 단체교섭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입법을 제안했다.* 즉시 주 전역에서 교사들이 학교를 뛰쳐나오고 “드러눕기”에 들어가면서 비공인 파업으로 발전했다. 메디슨에 있는 주 의회 의사당 건물을 수천 명이 몇 주 동안 점거했다. 대중 집회가 주말마다 열렸는데, 가장 정점에 이르렀던 3월 12일에는 12만 5천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이 운동의 신호와 슬로건은 명백히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점거를 그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집트와 달리, 위스콘신의 운동은 워커를 몰아내는 데 실패했다.)
위스콘신의 운동에 나타났던 기본적인 문제는 민주당과 노동조합이 이 운동을 통제할 능력, 특히 주 전역의 총파업을 향한 실질적인 감성이 자라나는 데 찬물을 끼얹을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패턴은 다른 주들에서도 다시 또 다시 되풀이되었다. 결국 다른 어떤 곳에서도 위스콘신 정도의 운동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민주당과 노조는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노조는 민주당이 모금하는 정치자금을 채워주는 주요 기부자인데, 그 돈은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뉴욕, 미네소타, 코네티컷 주에서 노조의 강력한 재정적 후원을 업고 당선된 민주당 주지사는 워커가 한 것과 비슷하게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삭감을 밀어붙이면서도, 단체교섭의 겉모양만은 그대로 남겨놓았다. 공화당이 지배하는 다른 주들은 뒤죽박죽이었는데, 몇몇 경우에는 주 정부가 위스콘신의 대결이 준 충격 때문에 전면적인 대결에서 후퇴하기도 했다.
위스콘신에서는, 대중운동이 3월에 정점을 지난 이후, 민주당과 노조가 이 운동을, 여러 공화당 정치인들을 소환하고 민주당 인사들을 선출하려고 시도하는, 선거주의의 길로 몰아넣었다. 2010년 11월 선거에서 권력을 잃기 전에 민주당 주 정부가 이미 심각한 긴축을 부과했으며, 더 많은 긴축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감추면서 말이다.*
(* 8월 초순, 이 소환 캠페인은 위스콘신 주 상원에서 공화당의 다수적 지위를 끝내는 데 실패했다. 엄청나게 비용을 쓰고 사람들을 동원했지만 허사였다.)
간단히 말해서, 민주당과 노조는, 자본의 공격에 대한 저항을 사회적으로 통제한다는, 자신들의 역할을 미국 전역에서 잘 수행했다.*
(* 미국의 노동조합들은 오바마의 2008년 선거운동 자금으로 4억 5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러한 후원에 보답하는 큰 선물 가운데 하나로, ‘노동자 자유선택법’을 제정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 법이 제정되면 1970년대 이후 입법된, 노동조합 조직화를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 가운데 일부가 없어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오바마가 이 법을 지지한다고 선언했지만, 당선되고 몇 달 만에 잊혀지고 말았다.)
작은 투쟁들과 패배들
미국에서 벌어진 작은 투쟁들 또한 부분적 또는 전면적 패배로 귀결되었다. 2008년 11월, 시카고에 있는 리퍼블릭도어스앤윈도우스 공장의 노동자들은 밤새 공장에서 기계들이 사라지는 것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공장 폐쇄가 임박했음을 말해주는 확실한 신호였다. 2008년 12월 2일, 주로 흑인과 라티노로 구성된 240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해고수당과 의료보장 혜택을 요구했다. (이들은 다른 노조들에 비해 약간 더 전투적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 전미전기산업노조(UE)에 소속된 조합원들이었다.)
12월 10일, 노동자들은 1인당 평균 7천 달러의 해고수당과 두 달 치 의료보장을 받아들였다. 경영자는 신용거래를 중단한 뱅크오브아메리카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전에 가까이 있는 아이오와 주에 노조가 없는 창문공장을 인수했다. 점거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은행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고,다른 곳에 있는 노동자들이 식량, 담요, 침낭을 보내왔다.
리퍼블릭 노동자들은 일정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일자리를 잃었다. 이 투쟁을 떠들썩하게 떠벌였던 다수의 “진보적” 노동운동과 좌파 세려들 가운데 다수는 이 작은 사실을 간과했다.
노동자들에게 훨씬 더 끔찍한 결과가 나온 다른 투쟁은 뉴욕시에 있는 스텔라도로비스킷 회사에서 벌어진 파업이었다. 2008년 8월 13일, 제빵사노조에 속한 135명의 노동자들은 단체협약 교섭을 벌이다가 파업을 시작했다. 원래 스텔라도로는 제빵 분야에서 몇 십 년을 일한 노동자들을 다수 고용하고 있는 가족경영 기업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를 인수한 헤지펀드가 임금을 28% 삭감하고, 토요근무에 대한 특근수당을 폐지하며, 의료보험료 20%를 노동자들이 분담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노조는 합법주의 전략을 고수했다. 파업파괴자들이 공장에 들어가고, 트럭운전사들이 밀가루를 배달했지만, 이를 막으려는 어떤 노력도 전혀 하지 않았다. 파업을 다른 제빵 회사로 확산시키려는 노력 또한 전혀 없었다.
2009년 5월, 노동자들은 단체협약 없이 일터로 돌아가겠다고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 노조는 노동자들에게 미국 정부의 “중재”기구인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가 우호적인 판정을 내릴 것이라고 믿게 했다. 파업은 2009년 6월말까지 계속되었고, NLRB는 헤지펀드가 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함으로써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있다고 판정했다. 7월초, 스텔라도로 노동자들이 일자리로 돌아가던 그날, 경영진은 공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했고, 그렇게 실행했다.
2010년 1월 하순, 캘리포니아 주 보론 시에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광산회사인) 리오 틴토에 소속된 5백 명의 광산 노동자들은 연금을 없애고, 임금을 삭감하며, (“세계적 경쟁”에 의해 정당화된) 노동“유연화”를 도입한다는 단체협약을 거부한 뒤 직장폐쇄를 당했다.
5월 중순, 국제항만노조(ILWU) 제30지부는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 노동자들에게서 3대 1의 차이로 승인되었다. 새 협약은 1년에 2.5%의 임금 인상을 포함했다. 대신 새로 들어오는 노동자들의 경우, 회사가 납입하던 확정급여형 연금을, 노동자가 납입하되 4%만 회사가 부담하는 401K형 연금으로 바꾸기로 했다. 유급병가는 1년에 14일에서 10일로 줄었다.
[새 단체협약을 받아들이기 전에] 국제항만노조는 다시 한 번 완전히 합법주의적이고 지역주의적인 기초 위에서 파업을 실행했었다. 파업파괴자들과 관리자들이 경찰의 대대적인 호위아래 파업 기간 내내 일을 했다. 보론의 노동자들은 그들을 막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보론 지역에서 그리고 인근의 로스엔젤레스에서 폭넓은 지원을 조직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다. 대신, 노조는 리오 틴토의 주주총회에 가서 무기력한 호소를 하고, 영국 영사관 앞에서 미국 민족주의 집회를 열 뿐이었다.
리퍼블릭의 경우에 그랬던 것처럼, 노조와 “진보적” 좌파세력들은 승리를 선언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미국 북동부의 통신 노동자 4만 5천 명이 베리존 사를 상대로 막 파업에 들어갔다. 노동자들은 전미통신노조(CWA)와 국제전기산업노조(IBEW)에 속해 있다. 베리존 사는, 유선전화 서비스가 계속 감소하는 대신 휴대폰과 인터넷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이유로, 연금을 삭감하고, 작업규칙을 바꾸며, 노동자들이 의료보험료를 더 분담하도록 단체협약을 “조정”하기를 바란다.)
공교육에 대한 공격과 학생들의 저항
교육은 국가의 긴축이 대중적 저항을 불러일으킨, 사회적 재생산의 또 다른 요소다. 모든 교육은 본질적으로 계급 차별과 위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금융, 보험, 부동산 같은) 일자리에서 작업장 규율과 사회적 규율을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고안된 거대한 학벌 장치다. 공산주의 사회는 교육을, 그리고 “노동”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혁명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어쨌든 이 점은 잠시 제쳐 놓자.
(주로 사립이며 요즘에는 대개 1년에 4만 달러가 들어가는) 엘리트 학교 밑에 “콘크리트 블록”으로 지은 주립 단과대학과 지역 전문대학은, 탈산업화의 여파 속에서, 노동자계급 청년들이 맥도널드 수준보다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주된 경로로 남아 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공교육이 거의 무료였다. 그런데, (종합대학, 주립 단과대학, 지역 전문대학 등) 모든 수준에서 수업료가 해마다 몇 천 달러씩 올랐다. 대다수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려면, 졸업할 때까지 총 10만 달러를 빌려주는 학생대출을 통해 빚을 쌓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 파트타임 노동을 해야 한다.
1978년 이후 우파 포퓰리즘의 “세금 혁명”에서 부분적으로 기인하는, 초중등교육에 대한 삭감 때문에, 미국 내 1위를 기록하던 캘리포니아 주 (초중등교육) 공립학교들의 질은 지난 몇십 년을 지나면서 거의 꼴찌로 떨어져 미시시피 주나 루이지애나 주와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학교들은 계속 늘어나는 학급당 학생 수, 부적합한 교육자재, 교사노조들에 대한 공격, 미국에서 가장 낮은 학생 1인당 재정지원액 등과 씨름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현실과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 된) 치솟는 투옥률이 결합되면서, 캘리포니아 주는 1990년대에 감옥에 있는 흑인 숫자가 대학에 있는 숫자보다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오명을 얻었다.
부시 정부와 오바마 정부는 공히 이러한 장기적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점점 더 크게 커리큘럼을 재편하고, 교사 수를 줄이며, 모든 수준에서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보게 하는 시도를 했다. (미국 고등학생들의 성적은 국제적인 비교시험에서 최하위권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2009년 가을, 캘리포니아 대학(UC) 로스엔젤레스 캠퍼스와 버클리 캠퍼스의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에 반대해 시위에 나섰다. 버클리에서는 몇천 명의 학생들이 경찰과 부딪치기도 했다. 이것이 서곡이 되어, 2010년 3월 4일에는 전국적인 학생 시위가 벌어졌다. 이 날도 캘리포니아 주는 첨단에서 있었다. 이번에는 운동이, 상대적으로 엘리트 교육인 캘리포니아 대학을 넘어, 주립 단과대학과 고등학교까지 멀리 뻗어나갔으며, 교사들과 학생들이 같이 학교를 박차고 나갔다. 오클랜드 주와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몇 백 명의 학생들이 여러 시간 동안 주요 고속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시위는 3월 4일 시위가 일어난 20여개 주 가운데서 가장 큰 규모였다. 이날 벌어진 시위 가운데 어떤 것도 삭감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캘리포니아 감옥에서의 단식투쟁
대량 실업, 경찰과 교도관의 공공노조*, 감옥 체계 안의 흑인과 라티노 청년들이 창고에 저장되듯이 갇히는 것 등등 찌그러지는 사회적 재생산의 모든 추세들은 2011년 7월 캘리포니아 주에서 벌어진 커다란 감옥 반란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 교육, 교도관, 공공노조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제1호에 실린 John Garvey의 “철광산에서 쇠창살까지”를 참조하라.(http://insurgentnotes.com). 캘리포니아 노조운동은 조사를 중단했다. 교도관들이 전미공무원노조(AFSCME) 조합원들이었기 때문이다. * 캘리포니아 교도소의 조건과 단식투쟁에 관한 정보들은 트로츠키주의 신문 <노동자 전위>의 2011년 8월 5일자로부터 얻은 것이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감옥과 법 집행에 관한 전반적인 개관을 하려면, Christian Parenti가 쓴 책 Lockdown Ameica(1999)를 보라.)
여러 해 동안,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보안이 철저하고 “감시가 엄중한” 감옥을 짓는 데서 “전위”적인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시설들 가운데서도 가장 악명 높은 것 가운데 하나가 펠리컨 만에 있다. 7월의 첫 세 주 동안, 펠리컨 만에 있는 SHU 교도소의 콘크리트 독방에 갇힌 수감자들이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그들은 집단체벌 중지, 교도소 당국에 의해 강제되는 “밀고”*의 폐지, 교육적 프로그램, 인간적 접촉, 주마다 전화통화, 햇빛에 대한 접근권, 식사 질 개선 등을 요구했다. 단식투쟁은 13개 교도소로 퍼져 나갔고, 결국 6천 6백 명의 죄수가 참여했다. SHU 교도소의 죄수들은 창문도 없고 형광등이 계속 켜져 있는 작은독방에 날마다 22시간 30분씩 갇혀 있다. 단식투쟁은, 교도소 당국이 7월 21일, SHU 수감자들이 벽걸이 달력을 가질 수 있게 하고 (난방이 되지 않는 독방에서) 겨울철에 양털 모자를 쓸 수 있게 하며 강제적인 밀고를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끝났다.
(* 밀고: 여기서 밀고란, 다른 수감자들에 관한 정보를 교도관이나 교도소 관리에게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적정 인권의 200%을 수용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 교도소들의 조건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반동적인 미국 대법원마저 이 교도소들이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형벌”을 금지한 미국의 수정헌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을 정도다.
결 론
이 글을 쓰는 동안, 주류 언론들은 미국에서의 “더블 딥”과 “불황”에 대해 점점 더 많이 떠들고 있다. 앞에서 분석한 바를 놓고 볼 때, 우리는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불황”은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더 악화되려는 참이라고 어렵지 않게 결론 내릴 수 있다.
2007-2008년 이후 공황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은 단지 자본을 위해 이전 상태를 회복시켜 주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었다. 은행과 부동산의 부채를 처리할 수 있도록 몇 조 달러를 퍼부어 주면서 말이다. 미국의 기업들은 몇 조 달러 이상을 보유하고 있지만, 투자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임금, 의료보험, 연금, 주택압류, 교육 등 총체적 임금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시작했다. 미국의 허물어진 사회기반 시설을 수리하거나 새로 지으려면 2조 3천억 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사회적 지표들”*은 1930년대 세계대공황 직전에 그랬던 것처럼 더 심하게 양극화된 사회임을 보여준다.
(* 사회적 지표: 보기를 들어, 미국은 기대수명에서 세계 42위로, 다수의 개발도상국들보다 뒤에 있다. 그리고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 가운데 가장 높은 유아사망률을 갖고 있다.)
1966-1973년 노동자계급의 파업물결 이후, 미국의 노동자들은 몇 십 년 동안 방어적인 투쟁들에서 차례차례 패배하면서 후퇴를 겪어 왔다. 이러한 “천천히 이루어진 경착륙”에서, 그리고 특히 2007-2008년의 붕괴 이후에, 1945년 이후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는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이 언제 어떻게 뒤집어질 것인가는 전적으로 열려 있는 문제다.(끝)
(옮긴이: 이경수)
- '실천' 2011년 11월호 목록 -
편집자 글 3 또 다른 시작을 위하여
[특집] 다시 마르크스에게 길을 묻다 (23) : 자본주의와 삶(3) 11 일상생활 비판 / 리차드 곰빈 31 일상생활에 대한 지식 / 앙리 르페브르
[기획1] 욕망과 혁명 43 외로움과 제도를 넘어 (3) / 닐스 크리스티
[기획2] ‘아큐파이 뉴욕’ 79 2008년 이후 미국의 계급투쟁 / 로렌 골드너 96 월가 점거운동의 다음 발걸음 : 빌딩을 점거하라! 작업장을 점거하라! / Insurgent Note 100 토론을 위한 테제들 / 로렌 골드너
▒ 사회실천연구소 간 월간 이론번역지 ‘실천’ (2011.11 통권60호)

[사회실천연구소의 말] http://spri.jinbo.net/
실천(Praxis)
"일상적으로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고 자본주의와 늘 전면에서 투쟁하면서 자본주의 타도의 길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의욕은 강하나 이론적 천착이 부족하고 현장에서 맨날 투쟁 속에 살다보니 이론적 감각이 무디어졌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실천은 이론적 작업을 요구합니다." (어느 실천활동가의 말)
우리는 지금 여러 '유령'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개혁과 신우익의 정치적 우세, 지구적 자본주의의 극적인 전진, 사회주의의 종말 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겸허하게 이론을 다시 꼼꼼히 살피고 국제정세를 분석하면서 사유를 넓히고 운동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번역의 시대'를 거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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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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