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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아큐파이 뉴욕'- 2008년 뒤 미국에 일어난 계급투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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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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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31일 06시 34분 59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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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아큐파이 뉴욕'- 2008년 뒤 미국에 일어난 계급투쟁 |
2011·12·31 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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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실천연구소
▒ 2008년 뒤 미국에 일어난 계급투쟁 / 로렌 골드너 (Loren Goldner)
배 경
2007-2008년 금융 붕괴 이후 미국에서의 계급투쟁을 이해하려면, 그 이전의 역사, 특히 비공인파업(wildcat) 반란이 끝났던 1960년대 후반 또는 1970년대 초반으로부터 40년 동안의 역사를 간단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1973년부터 미국 노동계급의 역사는 (잘 알려진 것처럼) 패배와 후퇴가 거의 중단 없이 계속된 과정이었다. 이 시기는 “오로지 한쪽만이 전투를 수행하는 계급전쟁”으로 묘사되어 왔다.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실질임금은 보수적인 추정치로도 15% 하락했다. ‘한 개의 급여봉투로 살아가는 블루칼라 가족’은 이미 1960년대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전형적인 노동계급 가정에는, 두세 개의 급여봉투가 필수적이며, 그 가운데 적어도 한 개는 오로지 주택비용을 감당하는 데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주택비용은 가구 소득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전업적 일자리를 갖고 있는 노동자들의 1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적어도 10% 늘어났다. 실제로 노동력 구성은, 소수의 “전문직 종사자”들은 1주에 70시간을 노동하는데 다수의 주민은 비정규직이 되어 불규칙하게 파트타임 노동을 하는, “모래시계 사회”를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다.
같은 기간 소득 증가분의 대략 70%를 상위 10%가 차지했다. 북동부의 산업지대 대부분은 “사양지대”(rust bowl)로 전락했으며, 적당히 임금을 받고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기존의 블루칼라 일자리들이 (월마트 같은) 저임금의 막다른 “서비스” 일자리들로 대체되었다.
미국은 “선진”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작업장들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경쟁하고 있는데, 날마다 14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 주민의 2%, 즉 7백만 명이 (그 대부분은 흑인과 라티노인데) 감옥 안에서 또는 가석방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대부분은 “마약과의 전쟁”에 따른 결과다.
일자리를 잃은 뒤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쫓겨나는 이들이 몇십만 명에 이르면서 집 없는 노숙자가 폭증하자, 경찰의 괴롭힘, 감옥이나 다름없는 냄새나는 보호소로 몰아넣기, 노숙자의 범죄인 취급 등으로 “빈민에 대한 전쟁”이 강화되고 있다.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사회적 실상이 보여주는 단면이다.
파업 활동의 축소
1970년대 이후 자본가들의 공격에 직면하여, (비공인 파업은 말할 것도 없고) 고전적인 파업조차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줄어들었다. 1970년대에는 해마다 미국 노동자들 가운데 20%가 파업하거나 직장폐쇄에 연루되었지만, 2009년에는 그 수치가 0.05%뿐이었다.
기존의 산업별 노동조합들은 탈산업화 때문에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1955년의 조합원 수는 전체 노동력의 35%를 차지했으나, 오늘날에는 12%로 떨어졌다. 그나마 남아 있는 조합원의 다수는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에 속해 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1973년까지 주요 노동조합들의 다수는 자본가들이 아니라 비공인파업으로 반란에 나선 평조합원들을 상대로 싸웠다. 그들이 조합원을 잃어버린 것은 어떻게 보자면 “노사협조주의”(business unionism)를 계속해 나갈 능력조차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임금을 받는 정규직 일자리를 갖고 있는 노동자들은, 파업에 들어갈 경우, 거의 예외 없이 합법성의 틀을, 그리고 협소하게 규정된 “교섭단위”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것은 투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확실히 패배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소비자들이 쌓아올린 빚
미국의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은 1970년대 이후 실질임금 하락을, 소비자 신용의 계속된 확장을 통해 부분저적으로 보상받았다. 소비자 신용은 1990년대부터 확장되기 시작했는데, 대중매체가 “주택가격 불패”라는 신화를 떠들어 대면서 주택거품이 부풀어 오르자, 더욱 확장되었다.
2000년대에는 “서브프라임” 거품을 통해 소비자 신용이 더욱 확장되었는데, 그 시절에는 사실상 누구나 모기지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었다. 나아가 모기지 대출을 한 번 더 받고, 심지어 이 가공의 “재산들”을 담보로 새로운 신용대출까지 받을 수 있었다. 2000-2003년 닷컴거품이 붕괴한 후 이루어진 “회복”의 대부분은 주택건설 또는 (가전이나 가구 같은) 그 관련 산업과 연계된 것이었다.
이처럼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를 떠나 노동자들이 소비자 부채를 쌓아올리고 있을 때, (연방정부와 주 정부 그리고 지방정부의) 국가부채도, 그리고 최소한 10조 달러에 이른 (해외에서 보유한 달러 총액에서 해외에 있는 미국의 자산을 뺀) 대외부채도, 전례 없이 함께 늘어났다.
그러므로 2007년의 부동산 거품 파열 그리고 2008년의 금융부문 발작과 함께 현실로 터져 나온 공황은, 1970년대 이후 부채를 쌓는 대신 시간을 벌어 왔던 오랜 과정의 최종 귀착점이었다. 그 밑바닥에는 “실물” 경제에서의 이윤의 위기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마르크스가 사용한 의미에서 가치의 위기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 글의 목적에서 너무 멀리 나가는 것이니 여기까지 하겠다.
정치적 동학
[1930년대 대공황의 초기인] 1929-1934년에 그랬던 것처럼, 미국인의 대다수는 초기에 망연자실한 침묵으로 공황에 반응해 왔다. 그와 같은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2008년 11월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사실이 미친 영향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오바마의 당선은 사실상 선거 몇 주 전인 10월에 떠진 공황 덕분이었다.) 오바마는 “우파”(공화당, 그리고 지난 2년 동안에는 공화당의 급진우파인 티파티 분파)에게서 “사회주의자”로 (또한 무슬림“으로, 심지어는 ”마르크스주의자“로) 비난받았다. 하지만 사실 그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조지 부시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우파적인 정책을 수행했다. 그런데 오바마의 정책에 대한 반응은 조용했다. 오바마의 (미국적인 어법에서) 자유주의적인 기반 덕분에 오바마 정부는 모든 사안에서 좋게 해석을 받았다.
오바마는 “테러와의 전쟁”을 강화했으며, 이는 점점 더 국내의 반대파들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다. 오바마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에서 패배하고 있는 전쟁들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강화했다.
오바마의 “경제팀”에는 악명 높은 용역업자들(hatchet men)이 포함되었다. 이를테면 로렌스 서머스(미국 재무부 국장으로서 1997-98년 동아시아 위기 때 한국 때리기를 지휘했다) 폴 볼커(연방준비은행 총재로서 1979-82년의 깊은 불황을 관리했다), 팀 가아티너(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전 총재) 등이다.
오바마의 경제팀은 무너지고 있는 금융부문과 부동산부문에 거대한 구제금융을 안겨주었다. 몇 조 달러를 퍼부어 악성부채에 대해 100% 보증해 주었다. 반면 블루칼라든 화이트칼라든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또는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집을 빼앗기는 민중이 계속 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바마의 전체주의적인 의료“개혁”안은 (이 또한 “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받았지만) 실제로는 퇴행하는 미국의 의료체계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 민영 의료보험회사들이 작성한 것이었다.(*현재 의료보험에 들어있지 않은 5천만 명은, 2014년부터는 만일 어떤 민영 의료부험에도 들지 않을 경우 상당한 벌금을 내야 한다. 민영 의료보험에 가입하면, 현재로서는 개인의 경우 한 달에 대략 500달러 정도, 가족의 경우 1,000달러 이상이 든다.)
2010년 12월 오바마는 의회와 “협상”해서 실업수당을 연장했다. 그러면서 부자들에 대한 감세도 마찬가지로 연장했다. 미국 정부는 부자 감세로 줄어든 세입을 메우느라 2001년 이후 해마다 2천억 달러를 충당해야 했다. 반면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 때문에 1조 5천억 달러를 지출했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뒤 추방된 불법체류 이주자 수는 부시 집권기간 전체보다 더 많았다. 추방된 이들은 대부분 2007년 이전 주택경기가 호황일 때 건설부문에서 일하려고 미국에 왔다가 공황이 닥치면서 일자리를 잃었던 라틴 아메리카 출신 이주자들이었다.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를 둘러싸고 6월과 7월 워싱턴에서 거짓 다툼이 벌어졌을 때, 하원을 움직이는 거대한 지렛대를 갖게 된 소수의 급진우파(티파티)는 오바마가 훨씬 더 오른쪽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위장막을 제공했다.
오바마는 “수급권자들”에 대한 거대한 삭감을 준비하고 있는데, “수급권자들”이란 빈민과 노인을 위한 의료체계, 그리고 퇴직자 사회보장 시스템을 위한 의료체계의 수혜자들을 공격적으로 가리키는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용어다.
이 모든 것들은 민주당의 역사적 역할이란, 만일 공화당이 수행했으면 심각한 반대를 불러일으켰을 정책들을 실현해 내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정치체계는 우파 정당과 극우파 정당으로 구성된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적어도 1880년대 이후, 두 지배적인 정당은 “당근과 채찍”이라는 양면책을 펼쳐 왔다. 전체 주민 가운데 가난한 50%는 투표하지 않았고, 공식 정치는 가식과 허위에 함몰되면서 전반적인 수동성과 냉소주의를 더 부채질했다.
이러한 맥락들은 오늘날의 티파티같이 이상한 현상들을 설명해 준다. 사람들이 결집할 때, 우파 포퓰리즘과 (오늘날에는 덜 두드러지지만) 좌파 포퓰리즘은 (즉 “보통사람들”의 반란은) 체제의 첫 번째 안전밸브인 것이다. [이하 생략]
(옮긴이: 이경수)
- '실천' 2011년 11월호 목록 -
편집자 글 3 또 다른 시작을 위하여
[특집] 다시 마르크스에게 길을 묻다 (23) : 자본주의와 삶(3) 11 일상생활 비판 / 리차드 곰빈 31 일상생활에 대한 지식 / 앙리 르페브르
[기획1] 욕망과 혁명 43 외로움과 제도를 넘어 (3) / 닐스 크리스티
[기획2] ‘아큐파이 뉴욕’ 79 2008년 이후 미국의 계급투쟁 / 로렌 골드너 96 월가 점거운동의 다음 발걸음 : 빌딩을 점거하라! 작업장을 점거하라! / Insurgent Note 100 토론을 위한 테제들 / 로렌 골드너
▒ 사회실천연구소 간 월간 이론번역지 ‘실천’ (2011.11 통권60호)

[사회실천연구소의 말] http://spri.jinbo.net/
실천(Praxis)
"일상적으로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고 자본주의와 늘 전면에서 투쟁하면서 자본주의 타도의 길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의욕은 강하나 이론적 천착이 부족하고 현장에서 맨날 투쟁 속에 살다보니 이론적 감각이 무디어졌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실천은 이론적 작업을 요구합니다." (어느 실천활동가의 말)
우리는 지금 여러 '유령'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개혁과 신우익의 정치적 우세, 지구적 자본주의의 극적인 전진, 사회주의의 종말 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겸허하게 이론을 다시 꼼꼼히 살피고 국제정세를 분석하면서 사유를 넓히고 운동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번역의 시대'를 거치려 합니다. 사회실천연구소와 함께 할 자료/후원회원을 모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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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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