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불빛과 그늘진 죽음
- 통신 노동자들의 죽음
도시의 화려한 불빛과 고층건물이 높아갈수록 그 그림자는 더 깊어갑니다. 2000만명이 스마트폰으로 소통하고 수 천만명이 인터넷 정보에 접속하는 이 때 많은 사람들이 소외당하고 고독 속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이 선진국들이 모였다는 오이씨디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이는 ‘소통’이 아니라 ‘불통’입니다. 장시간 노동과 노동재해 속에서 노동자들은 착취당하고 있고 수많은 민중들은 금융자본의 수탈체제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한국통신은 민영화된 이래 수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자회사를 통해 비정규직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민영화가 아니라 투기자본에게 주식을 내다팔았고 결국 뉴욕월가 금융투기자본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있습니다. 연간 1조원이 넘는 순이익은 바로 노동자 정리해고와 임금삭감 그리고 노동강도 강화를 통한 착취의 결과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해남 지부장이 죽음으로 내몰렸고 한 달이 훨씬 넘었는데도 장례조차 치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 장례문화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3일장인 법인데 지금 우리는 인륜의 도를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통신 자본이 한 노동자들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입니다. 자본은 인간성조차 짓밟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1995년 정보통신부장관을 하면서 한국통신과의 악연을 맺어 온 이석채 회장은 지금 노동자들의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투기자본의 이익을 위한 경영만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낙하산 인사로서 자본과 권력이 결탁하여 노동자를 착취하고 민중을 수탈하는 전형적인 야만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년 전 3000명에 달하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와 이명박 정권의 폭력적 진압 이후 19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해고된 노동자의 비극은 곧 그 가족 전체의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해고된 아빠가 막노동으로 전전하는 사이 엄마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는데도 12살, 5살 난 아이는 이틀 동안 엄마가 잠 든 줄 알고 있다가 아빠에게 연락하는 비극이 발생한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사회가 이렇게 야만적인 사회란 말입니까? 노동자와 그 가정을 송두리째 내팽개치는 사회에서 이 아이들을 어떻게 되겠습니까?
1%가 99%를 지배하는 사회는 1%가 99%를 모래처럼 분열시켜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당연히 힘은 99%에 있지만 99%가 단결하지 못함으로써 1%의 지배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99%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자본의 전략전술에 맞서는 길은 연대하는 것입니다. 전해남지부장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연대하고 투쟁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2011.11.16.수, 희망연대노조 KTcs 지부, 촛불문화제, 광화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