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라고?
혁명이라면 침략이 아니고, 침략이라면 혁명이 아니다!
* 가다피가 죽었다. 신문마다 ‘겁쟁이 카다피가 비굴하게 죽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도배질을 했다. 폭정의 독재자인데다 '겁쟁이‘였으니 ’잘 죽었다‘고 한 차례 냉소를 보내고 곧 잊어버려야 할 일일까?
* ‘다함께’는, 리비아에서 시위가 처음 일어났을 때 리비아 대사관에 몰려가서 ‘가다피, 물러가라’고 데모를 벌였다.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의 기관지에는 “한때 반제를 외쳤다고 진보적인 정권은 아니다. 그러니 타도되어도 마땅하다”는 내용의 글이 실렸다. 진보언론 ‘참세상’에는 최근, “앞으로 리비아혁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진단하는 글이 번역돼 실렸다. 그밖의 다른 여러 그룹들은 리비아 사태에 대해 침묵했다. 오히려 민노당의 한 간부가 “리비아 사태 발발 배후에는 서방 열강의 개입이 있지 않으냐”하는 진단을 한 적이 있는데, ‘당 전체’의 발언도 아니었고, 더더군다나 ‘서방 열강의 침략을 규탄한다’는 의사표시는 나오지도 않았다.
* 위 사실들에 비추어, 결론부터 먼저 성급하게 내리자면
남한의 피디운동과 엔엘운동은 <둘다, (완전히) 파산>했다!! 이 ‘파산’은 다른 여러 측면에서도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리비아 사태에 국한해서만 말한다.
사회운동이 미약할 때에는 물리력을 발휘하여 저항하는 데까지 나아가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문제가 무엇’이라는 진단만큼은 옳게 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 나침반 역할을 해줄 때라야 ‘운동의 존립 이유’가 그나마도 성립된다. 북아프리카 민중으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사태에 대해 (‘남의 나라’라는 이유로) 침묵했다면 그 침묵만으로도(즉 '의견표시 없음‘만으로도) "그 운동은 방향을 잃어버렸다“고 파산 선고를 내릴 만하다.
긴 이야기가 필요하지만, 리비아 사태를 놓고, 우리는 다음 질문에 답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설명할 수 있다. “리비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던 것일까, 아니면 침략이 벌어졌던 것일까?”
무엇이 어찌 되었든 ‘집권자’를 쫓아내기만 하면 ‘혁명’인가? 그렇다면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인 것도 혁명인가? 단지 집권자를 쫓아내는 게 아니라 적어도 지배층이 상당 부분 교체될 때 (사회혁명 아닌) 정치혁명, 즉 민주혁명이라 할 만하다. 419때는 이승만만 쫓겨간 게 아니라 자유당 정권도 쫓아냈다.
이집트에서는 어떠한가? 무바라크는 민중의 힘으로 쫓아냈지만(그래서 그럴 수 있을 만큼은 ‘정치적 공간’이 열렸지만) 이집트 군부세력은 의연하다. 대중운동을 벌이기에 다소 유리해진 점은 축복할 일이지만, 이것을 ‘혁명’이라 규정짓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왜냐하면 미국이 두목 한 놈 목아지를 날려서 민중의 불만을 김빼기하자고 ‘예방 혁명’ 차원에서 무바라크 축출을 은근히 거들었고, 민중의 자력만으로 성사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권자를 쫓아내기만 하면 다 혁명’이라 말할 경우, 그 ‘혁명’이란 낱말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그래서 수상쩍은 짓거리를 얼버무리는 ‘쓰레기 구호’로 그치게 된다.
리비아 반군에는 가다피 정권의 각료들, 미국 정보기관과 더불어 놀고 지내다가 발탁된 인물, 알 카에다 지부 같은 이슬람세력, 토호세력 등등이 다 결합돼 있다. 그들은 ‘리비아 왕정’때의 깃발을 다시 꺼내 들었다. ‘조선 왕조’로 돌아가자는 세력이 집권했어도 그것을 ‘혁명’이라 부르는가? 미 정보기관의 앞잡이가 권력을 장악해도 혁명이라 부르는가?
이슬람세력은 ‘반제’에 투철한 한에서는 일정하게 의미를 갖지만, 사회해방이라는 점에서는 ‘수구 세력’의 얼굴도 갖는다. 리비아의 봉기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즉 '반제'와 전혀 반대되는 (그러니까 아마디네자드의 이란과 달리 100% '반동'이라 아니 말할 수 없는) 이슬람세력이 '동'을 떴는데, 그것이 혁명인가?
(엔엘파의 이론가 한호석은 이집트 무바라크 축출 과정에서 이집트의 '이슬람형제단'이 좋은 역할을 했다고 썼다. 그는 '민족주의'를 표방하기만 하면 다 좋은 세력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 이슬람형제단이 미국의 환심을 사서, 권력의 일부를 나눠갖게된 것이다. 지금의 한국 엔엘파도 그 이슬람형제단의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다. 그의 담론은 속임수 담론이다...)
누가 가타피를 쫓아내고, 심지어 처죽였는가? 리비아 반군인가, 서방 제국주의 군대인가? 이 부분을 혼동할 분은 없을 터인데, 리비아 반군은 계속 몰리다가 서방국가의 맹폭격에 힘입어 다시 살아났다. 지난 7월에는 트리폴리에서 백만명의 반전 시위가 열렸고, 리비아 수백 개의 부족이 다 ‘반군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얼마전 반군이 트리폴리를 접수했을 때도 아프리카 연합의 여러 나라는 ‘반군,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리비아 반군이 ‘혁명 세력’이 아님은 이것으로써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
명실상부한 혁명이라면 대중의 지지를 받는 것이고, 그럼 그 대중의 지지만으로 가다피를 몰아낼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서방 열강이 7천여 차례 폭격을 가하고, 5만 명 이상을 죽이고 나서야 가다피를 죽일 수 있었다.
(대중이 파도처럼 몰려가서 그리하여 그 집권자를 정치적으로 고립시켜낼 때 혁명이다. 그 압박으로 쫓겨갈 때. 그런데 리비아에서는 대중의 물결 같은 진출은 없었고 무슨 수상쩍은 무장 봉기가 있었다.)
요컨대 리비아에는 혁명이 없었고(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대중시위가 얼마간 있었으나, 혁명이라 부르기에는 턱없이 빈약했다...)
침략만이 있었다.
1930년대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침략했을 때 리비아 민중은 3분의 1의 인구가 도륙당하는 탄압 속에서도 끝내 저항했다. 지금, 리비아 민중은 5만 명이 넘게 죽었고, 그 5만명의 동생과 자식들은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은 극악한 공포에 휩싸여 기가 꺾였다 해도 언젠가는 그 기운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시르테를 완전 초토화한 나토의 폭격은 리비아 인민의 기를 꺾고, 시리아나 중국 등에 '까불지 마'하고 협박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서방 제국주의 언론들은 가타피가 ‘겁쟁이’로 죽었다고 대서특필했는데,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그가 지금까지 국외로 탈출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 싸워 온 기본 사실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리비아의 싸우는 민중들에게 그는
아, ‘북극성’과도 같은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차베스 말마따나 그는 순교했다. (...유럽의 여유로운 삶을 누리던 언론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자살폭탄 테러'를 겪고는 그 테러에 떨쳐 나서는 사람들에 비해 자기들은 얼마나 좀스런 삶을 살아 왔는지, 전율을 느꼈다는 얘기가 있는데, 우리는 떵떵거리는 삶과 여유로운 행복을 보장받은 여타 (외세의 앞잡이로서의) 독재자들과 가타피가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임을 직시할 일이다. 그는 한 나라 민중을 이끌고 어떻게든 제국주의와 (한때는 수그러들었지만) 어떻게든 대결했고, 그 대결로 자신의 혈육도 여럿 잃었다. 그가 가장 존경한 인생의 등불은 '사막의 라이언'이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리비아의 봉기’를 혁명이라고 끝끝내 단언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것이 혁명이라면 가타피는 아무리 처참하게 죽어도 좋고, 리비아 인민은 아무리 많이 폭격으로 죽어도 좋다. 사실상 가다피 정권의 축출은 100% 서방 제국들의 폭격 덕분이라 해도, 용서가 된다. 그 깃발을 들이댐으로써 서방 제국주의를 고발하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운동의 기본은 휴머니즘이요, 인류의 양심이다. 이것을 외면하는 어떤 운동도 살아 있는 운동이 아니다. 그러니 남한의 피디 운동과 엔엘 운동은 애시당초 사망했고,
맥없는 습관의, 버릇같은 관성의 운동만이 비탈길을 넋없이 굴러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