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파의 정치적 생명줄이 타들어가고 있다
0. 선전포고
어제(1/4) 김형탁 당원의 명의로 [당원토론대회 제안서]가 올라왔다.
“만약 민주노동당이 더 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보자. 정말 탁 터놓고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자.”
가히 선전포고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분당파의 예리한 칼끝이 오히려 분당파 자신들을 겨누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1. 분당파의 정치생명을 건 벼랑끝 전술
지난 29일 중앙위는 안건도 없이 시작되었고, 김형탁 중앙위원은 현장 발의로 “종북주의 및 패권주의 청산”을 핵심으로 하는 비대위 구성 안건을 제출했다.
이 안건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나는 ‘모 아니면 도’ 식의 비타협적 발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을 김정일 정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반-남한사회적 꼴통집단으로 공개적으로 전락시키는 자살골을 자주파가 받아들일 리가 없지 않는가? 이는 애초 자주파가 수용할 수 없는, 타협의 여지가 존재할 수 없는 ‘불가능한 제안’이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러한 ‘불가능한 제안’은 부시가 후세인보고 대량살상무기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던 것처럼, 힘 가진 자가 힘 없는 자 주머니 털 때 쓰는 수법이고, 다수파가 소수파를 쫓아내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중앙위에서는 반대로 소수파인 평등파가 다수파인 자주파에게 윽박질렀던 것이다.
이 때문에, 눈치가 느린 나는 김형탁 중앙위원과 그가 소속해있는 ‘전진’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마지노선으로 설정하다니, 뭐하자는 것인지 당혹스러웠다. 더군다나 더욱더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자세가 요구되는 대선참패의 엄중한 시기에 이처럼 비타협적인 안을 던져 비대위는 구성도 못하는 뒷감당은 어떻게 떠안을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이러다가 나중에 자기 안을 무르고, 타협이라도 할라치면 입게 되는 신뢰성의 상처는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한 마디로 정치적 신뢰성을 걸고 불가능한 일을 하려드는 비합리적인 행동이었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행동은 분당이라는 정치기획을 가운데 놓고 생각할 때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분당파는 분당의 전제로서, 화해할 수 없는 분리선으로 ‘종북주의 청산’ 카드를 꺼낸 것이다. 이후에 서술하겠지만, 나는 분당파의 반종북주의 카드는 노동자계급의 대의 아래에서 고심하고, 고심한 결과물이 아닌, 지난날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악수임을 주장할 것이다.
어쨌든 분당파는 반종북주의 카드를 꺼냄과 동시에, 이를 적극적으로 이슈화시켰다. 이슈화의 과정에서는 자칭 진보지식인, 조선일보 등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이 덕에 종북주의를 둘러싼 자주파, 평등파 간 내홍은 신문과 뉴스를 꼬박꼬박 읽고, 보는 대중이라면 모르지 않을 수 없는 화젯거리가 되었다. 분당파로서는 ‘분당’을 이슈화시켰다는 점에서 일면 성공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과정에서 당내갈등을 첨예화시키고,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내놓았다는 점(이제 분당을 진짜 해내지 못한다면 정치적 신뢰성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에서 분당파 자신에게도 크나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말 그대로 ‘벼랑 끝’인 것이다. 그리고 이 ‘벼량 끝’의 처지가 분당파에게서 자기성찰과 미래를 움켜쥐는 역량을 앗아가고 있다.
2. 또 다시 벼랑끝을 향해 일보 전진
사람이나 집단이나 극한 상황에 몰리면 몰릴수록, 침착함과 자기성찰을 잃고 이제까지 자기들이 의지했던 방식에 더욱 매몰되는 법이다. 즉 구태를 반복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 주구장창 반종북주의 선동에만 매달리는 분당파의 모습이 그러하다.
당내의 사회주의자들이 평등파를 향해 대선참패의 본질과 핵심은 종북주의가 아니며, 먼저 분당논의를 띄우기 이전에 반-정체성(반-주사)이 아니라 자기-정체성에 근거한 대선평가와 쇄신방향을 제출할 것을 그토록 주문했건만, [당원토론대회 제안서]는 우정어린 충고에 눈과 귀를 가로막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제안서]는 노동자, 민중의 관점에 근거한 균형있는 대선평가는 온데간데없이, 또다시 종북주의에 대한 반NL코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는 비판으로 얼룩져 있다.
제안서는 말한다.
“당은 지난 4년간 대중들로부터 멀어졌다.” 그리고 그 이유들로 북핵 문제, 일심회 사건, 독도 발언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서 당연히 대선참패와 종북주의라는 말을 꺼낸다.
“이번 대선은 우리에게 너무나 뼈아픈 아픔을 남겼다. 그러나 이 아픔은 오히려 민주노동당에 누적되어 온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드러난 문제는 서둘러 봉합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특히 종북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되었다. 당이 깨지는 아픔이 있다 하더라도 그 근본을 치유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격랑이 이는 대중의 바다를 항해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이게 전부이다. 종북주의, 여기에 패권주의를 빼고 나면 제안서에는 다른 문제제기가 없다. 주구장창 반종북주의 선동이다. 이로써 분당파는 벼랑 끝으로 다시 한 걸음 내딛었다. 앞서 말했지만, 종북주의 청산은 어차피 불가능한 요구이고, 분당파는 당이 깨지는 아픔이 있다 하더라도 종북주의를 청산해야겠다고 하니, 이쯤 되면 분당은 기정사실인 셈이다. 말 그대로 분당파는 반종북주의라는 다리를 건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리고 분당파가 도강을 위해 선택한 반종북주의라는 다리는 그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낙토가 아니라 시베리아의 벌판으로 인도할 것이다.
3. 반-종북주의 선동은 명명백백한 오류이다
나는 분당 자체가 분당파에게 얼어 죽을 추위를 몰고 오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자본과, 또한 개별 자본에게 비정규직을 양산할 것을 강요하는 시장경쟁, 금융자본 수탈 등의 자본주의 운영원리 그 자체와 정면대결하려는 태세를 구조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에게는 정말이지 희망은 없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분화는 필연이고 의무이다. 비정규직화, 사회양극화로 나타나고 있는 자본주의 모순심화의 정세에, 노동자계급의 이름으로 한줌 자본의 소유와 부를 약탈함으로써 노동자의 희망을 채워주려는 노동자급진정치로 대응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민족주의 경향에 맞서 사회주의자는 그들과 갈라서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화의 과정은 왜 노동자급진정치가 요구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시대의 요구에 누가 답을 하고, 누가 의무를 방기하는지가 대중적으로 폭로되는 식으로 전개돼야 한다. 즉 분화는 사회주의 정당의 건설과정, 기회주의 세력의 폭로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분당파의 행동들은 이 두 가지 계기를 철저하게 배신하고 있다. 게다가 자신들의 정파적 이해를 위해 노동자정치운동 전반에 해를 입히는 오류까지 범하고 있다.
- 분당파의 오류 (1) : 종북주의를 민주노동당 퇴보의 핵심으로 추대하다
2004년 총선 이후의 당의 거듭되는 위기와 몰락이, 정치슬로건으로는 “진보개혁세력 대표주자 교체”로 나타나고, 언론에서는 “범여권”으로 호명되는 것으로 드러난 자유주의정치세력(열우당/통합신당) 2중대 노선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는 희한하게도 민주노동당 내 활동가들만이 부정하고 있는, 그러나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권과 함께 무능한 개혁세력으로 도매급으로 넘어간 탓에 민주노동당은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게 되었다. 그리고 도매급으로 넘어간 것은 대중들의 착시가 아니라, 민주노동당 자신의 2중대 노선 오류 때문이었다. 연정대상으로 호명되질 않나, 시시때때로 개혁입법이랍시고 열우당과 공조하고, 원포인트 개헌론이나 남북공동선언을 쌍수 들고 환영하고, 노동악법 통과에 국회의원 배지 던져가며 죽을둥 말둥 덤비지도 않는 등 당최 차별성 없는 정치활동으로 자유주의정치세력의 ‘작은 친구’로 전락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2중대 노선에 대한 비판은 없이 종북주의를 화두로 들고 나온 것은 속된 말로 생뚱맞은 것이다. 혹 분당파 중 누구는 종북주의 세력 때문에 2중대 노선이 관철되고, 노동자급진정치 못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겠다. 나는 분당파가 여기까지만이라도 사고를 진전시켜도 희망적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평등파 역시 2중대 노선에 알게 모르게 복무했다는 자기반성의 양심을 일깨우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퇴보의 근본원인을 호도하고, 더군다나 (노동자급진정치의 예각화를 가로막았다는 점에서) 당의 퇴보에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자기반성은 고사하고, 모든 퇴보의 책임을 종북주의에 떠넘기는 분당파의 태도는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류에 묶인 과거에 자신까지 메여놓는 것뿐이다.
- 분당파의 오류 (2) : 냉전용 반북감정까지 동원하고 마는 반-정체성의 과잉
난 일찍이 한국일보라는 보수언론에 반북감정을 선동하는 식의 칼럼을 쓴 손호철을 비판하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분당파의 좌파다운 고민과 내용없는 선정적인 반종북주의 선동에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었다(12/24, “반NL당을 주문하는 손호철의 오류와 비겁함, http://comm.kdlp.org/index.php?main_act=board&board_no=2&art_no=548249&jact=art_read)
그러나 사태는 내 기대와는 무관하게 점입가경으로 흘러갔다. 진보지식인을 자처하는 자들의 연이은 맹목적인 종북주의 비판이나, 매체의 성격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반종북주의 소스 제공에 분당파의 반종북주의 선동은 사실상 지배계급이나 제국주의의 반북선동과 거의 차이가 없게 되었다.
분명 좌파는 지배계급이나 제국주의의 북한적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입장에서 김정일 정권을 비판한다. 우리는 북한 유일체제의 대안이 자본의 축적과 시장의 작동을 위해 인간이 도구화되는 자본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북한의 변화가 북한민중의 주체적인 선택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의해 강요되는 것에도 반대한다. 그리고 우리의 북한비판이 제국주의의 북한압박에 복무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좌파의 북한비판은 언제나 지배계급과 제국주의가 선동하는 북한적대와 거리를 신중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분당파의 반종북주의 선동을 보자면 이러한 신중함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심지어는 지배계급과 제국주의가 우리 안에 심어놓은 맹목적인 북한적대감을 이용하고, 동원한다. 주사파 비판을 위해 수구꼴통의 수법까지 빌리는 분당파의 행동은 참으로 자기중심적이다. 그야말로 반-정체성의 과잉이다.
지금은 민주노동당의 역사적 가능성(시대정신에 더 이상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 이미 소진됐다 하더라도, 어쨌든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기치 아래서 창당되었고, 따라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역사적 규정과 청산 역시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노동자계급의 손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분당파의 과잉행동으로 말미암아, 과하게 말하자면, 민주노동당이 한순간에 종북세력의 남한적화의 도구로 전락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는 동시에 지난 수년 동안 민주노동당에서 자주파와 동거했던 평등파 자신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거니와, 노동자정치운동 전반에 미치는 해이기도 하다. 진정 분당파는 남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의지와 노력을 종북세력에 대한 부역행위로 전락시킬 생각인가?
4. 반-종북주의 기조가 ‘좌파신당’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민주노동당 퇴보의 근본원인을 호도하고 좌파의 정체성을 유린하는 반종북주의 선동의 오류가 이처럼 명백한데도, 분당파가 반종북주의 선동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정치생명을 건 극한 상황에서 침착함과 자기성찰을 잊고 구태에 매몰되는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반종북주의가 이른바 ‘좌파신당’의 외연극대화를 보장해줄 코드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반종북주의라면 자주파가 당권을 장악한 이래로 이에 불만을 가진 모든 세력을 묶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좌파신당의 정체성 모호, 정세적응력 결여일 수밖에 없다.
분당파가 민주노동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적당히 얼버무리고 반종북주의 선동을 핵심으로 하는 한, 좌파신당의 성격이 ‘좌파 자유주의 + 사민주의 + 사회주의(?)’ 형태의 이념불문의 연합정당이 될 것은 틀림없다. 현재의 민주노동당에서 민족주의만 빠진 꼴이다.
난 진보진영의 답해야 할 문제의 성격이 7년 전과는 다르게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7년 전이야 진보불모의 정치지형에서 최초의 진보정당 창당이라는 쾌거를 위해 이념동거를 수용했지만, 이제는 진보세력이 개혁세력과 함께 추락하고, 좌파 민족주의와는 갈라지겠다는 마당이다. 즉 문제는 진보의 시민권 획득이 아니라, 어떤 진보인가이다. 이제는 진보의 내용과 정체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이념불문하고 저쪽 편 아니면 우리 편 다 모여라는 식의 좌파신당 창당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번 대선참패를 통해 지난 민주노동당 3년이 부정된 상황에서, 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앞으로는 어떤 진보여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없이 다짜고짜 분당의 깃발부터 들어올리고, 여기에 이념불문하고 다 불러 모으는 것은 대중에 대한 오만이지 않을까? 대중은 더 이상 진보라는 딱지만으로 표를 주지 않는다.
5. 분당파 앞에 놓인 상승과 하강의 갈림길 : 사회주의의 깃발을 들 것인가, 말 것인가?
새로운 진보의 내용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으로 채워져야 한다. 현재의 노동자, 민중의 고용과 임금 등에 대한 관심들은 체제 그 자체에 메스를 대지 않고서는, 즉 자본의 자유로운 경영과 시장의 조화로운 질서에 맡겨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들이다.
기업은 막대한 이윤을 사회적 필요, 즉 일자리 창출과 복지재원으로의 전환 등에 쓰지 않고, 유보금으로 기업 안에 쌓아두거나, 배당 명목으로 한 줌의 대주주들에게 분배하고 있다. 그리고 항시적인 시장의 경쟁압력과 주주들의 배당극대화 압력은 기업들에게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더욱 쥐어 짤 것을 요구한다. 이로 인한 내수침체는 다시 신규투자와 성장을 제약하고, 실업과 분배문제는 도저히 자본주의적 방식으로는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결국 해결 방법은 자본을 사장들과 주주들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의 필요를 위해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자기 소유에 대한 모든 권리의 보장이라는 자본주의의 운영원리는, 이제 부와 재원의 사회적 필요를 위한 이용과 공동결정이라는 사회주의적 운영원리로 바뀌어야 한다. 즉 새로운 진보의 내용은 사회주의여야 한다.
그리고 사회주의적 운영원리의 정당성과 타당함을 설득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실업과 빈곤이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임을 폭로하고, 자본주의 체제와 대결하는 태세를 확립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와 대결한다고 해서, 한 순간에 체제를 뒤엎는 혁명을 당장 선동하자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운영원리, 즉 자기 소유에 대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권리들을 제한하고, 대신 부와 재원 사용에 있어서의 사회적 통제, 참여, 공동결정 등의 사회주의적 운영원리를 확대할수록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하고, 실천적으로 보여주자는 것이다. 먼저는 기업경영을 완전투명화하고, 노동자참여를 확대하는 등의 과도적인 요구들을 걸고 투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 즉 자본의 자유와 이익을 침해하는 요구는 대중운동을 통해 자본을 직접 압박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대중의 조직화, 의식화 등의 대중운동의 건설을 위해 당의 사업들을 배치해야 할 것이다. 대중운동을 방기하고서는, 그래서 의회와 정책에 매몰돼서는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결코 쫓을 수 없다.
이처럼 새로운 진보의 내용은 현재의 노동자, 민중의 삶의 파탄과 고통이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에 있음을 폭로하는 반자본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총체적인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여야 한다.
이는 사회주의자의 상투적인 요구가 아니다. 자본주의 모순악화의 정세와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IMF위기로 나타난 자본주의의 위기에 자유주의정치세력은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 위기는 극복된 것이 아니라 만성적인 침체와 장기불황으로 전화되었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대응이 도리어 더한 파탄을 낸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자유주의정치세력은 몰락했다. 그러나 대신 들어선 이명박 정권은 더한 신자유주의 세력이며, 현재의 고통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개혁의 파산이 분명해진 지금보다 자본주의의 무능력과 비인간성을 폭로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이겠는가? 또한 위기에 대한 자본주의적 해법이 파산을 맞은 지금보다 사회주의적 해법에 대한 기대 형성의 가능성이 높아진 때가 또 언제이겠는가?
덧붙여 자유주의정치세력 2중대 노선으로 노동자, 민중으로부터 심판을 당한 현재의 진보진영이 제 이미지를 자유주의세력 2중대에서 탈각시키고, 확실한 차별성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방법은 자본주의 질서 자체를 문제삼는 급진적인 요구와 실천뿐인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좌파신당을 기획하고 있는 분당파는 시대의 요구로서의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깃발을 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절망적이다. 반자본주의 기조 채택을 반대함으로써 정세적응력을 교란시킬 좌파 자유주의, 사민주의(자본의 안정된 축적 보장과 복지재원의 각출을 맞바꾸는 계급타협적 사민주의 전략이 자본주의 위기시대에 얼마나 무용한지는 유럽의 경험이 증명해주고 있다)와 분화하려는 노력 없이, 오히려 반종북주의라는 이념불문의 ‘모두 모여라’ 깃발을 부여잡고 있는 분당파에게 시대의 요구에 답할 능력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명목뿐인 진보정당으로서 개혁세력과의 기나긴 동반침체일 것이다.
부언. 대선참패에 진정성있게 책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의 운명과 상관없이 비례대표에 연연하는 자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자주파가 가장 저질이다.
여태 분당파의 오류를 지적하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혹 생길지 모르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부언한다. 나는 분당 그 자체, 신당창당 기도 그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유불문 단결하자”는 주장은 자유주의정치세력 2중대 노선을 혁파하고, 반자본주의 정치투쟁을 전면화할 혁신능력이 도대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현재의 당 실정을 은폐하는 것일 뿐이다. 내가 분당파에게 진정 문제삼는 것은 반종북주의 기조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 자주파와 분당파의 첨예한 당 갈등상태에서 분당파를 비판하는 것이 자주파를 편드는 것처럼 보일까봐 확실히 말하는데, 소제목에서 밝힌 대로 자주파가 가장 저질이다. 그들이야말로 당내 다수파로서 2중대 노선의 가장 큰 책임자이며, 따라서 민주노동당 퇴보의 가장 큰 책임자이다. 그런데도 정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비대위 구성 무산까지 감수하며 비례대표 출마에 집착한 것은 극히 후안무치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