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론] 새로운 사회운동들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기 |
2011·10·10 2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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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A. 피샤르(Nelson A. Pichardo)
이제 우리는 무엇을 갖게 되었는가? 동시대적인 사회운동들이 탈산업사회의 결과물인지 또는 아닌지에 대한 매우 중요한 의문이 존재하게 되었다. 새로운 사회운동의 문헌에서 언급되는 메커니즘들은 다양한 판본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일치되지 않는다. 그리고 다양한 (새로운 사회운동에 대한 관점의) 판본들은 확실하지 않은 경험적인 증거, 문제가 많은 변수들의 조작적 정의, 모호하거나 추상적인 개념들, 다른 대안적인 설명들이 가능하다는 것과 같은 중요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동시대적인 사회운동들이 독특한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와 동일한 것이 적용된다. 정체성이라는 쟁점을 제외한다면, 동시대적인 사회운동들에 고유하다고 말해지는 특성들은 전혀 독특하지 않다. 우리는 동시대적인 사회운동들의 고유한 특징들이란 기껏해야 사회운동의 레퍼토리에 덧붙여진 최근의 부가물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다른 저자들은 새로운 이론을 요구하는 설명도 하지 않은 채로 레파토리에서의 변화들만을 주목해왔다(특히 Tilly 1979 참고).
새로운 사회운동 관점이 중요하게 기여한 점은 정체성의 역할, 문화의 역할, 시민 영역의 역할을, 즉 기존에는 간과되어왔던 사회운동들의 측면들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정체성이라는 쟁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은 사회운동에의 참여가 도구적으로 근거 지워졌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파킨의 생각에 따르면, 사실 참여의 표현적인 차원은 중간계급이 좌우하는 사회운동들의 특징일지도 모른다(Parkin 1968).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정상적인 질서와 관련된 특정한 도덕적인 관점이 표현적인 행동의 목표를 좌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여의 표현적인 성격은 운동의 문화적인 차원들과 연결되어있다.
문화가 거주하고 있는 영역이자 전통적으로 경제영역에 의해 지배되거나 결정된다고 이해되었던 영역인 시민영역은 이제 사회저항의 장소로 이해된다. 시민영역의 이러한 “해방”은 경제영역과 정치영역이 그러한 것처럼 시민영역 또한 투쟁의 장소라는 인식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회운동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필요한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는 불확실하다. 이러한 사회운동이론은(특히 자원동원이론은) 운동역학을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이에 대해서는 Canel 1992, Klandermans 1986, Klandermans & Tarrow 1986 참조). 만약 우리가 “운동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와 더불어서 “왜 운동이 발생했는가?” 라는 질문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향으로 이론을 수정한다면, 우리는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가장 핵심적인 명제들을 방어하지 못하는 새로운 사회운동학파의 무능력 때문에, 새로운 사회운동 테제들은 현대의 운동에 대한 패러다임 또한 이론으로 불릴 수 없으며, 그렇게 지칭될 수도 없다. 또한 새로운 사회운동 테제들이 동시대적인 좌익운동들에만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해도, 이러한 주장이 이 테제들의 이미지들을 이론으로서 구원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테제를 (전통적으로 좌파에서 시작된) 저항운동에만 한정시키는 것조차도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많은 보수주의 운동들 또한 저항운동들과 비슷하게 특성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설득력 있게 동시대적인 운동의 유형을 지지하지 못하는 무능력 또는 사회경제적인 구조에서 일어난 변화를 동시대적인 운동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무능력은 새로운 사회운동 테제들을 이론으로서 지지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새로운 사회운동학파의 배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아니면 태로우가 그렇게 믿었듯이(Tarrow 1991), 연구자들은 집합적인 행동들의 새로운 역사적 국면을 열기 위한 운동의 초기국면을 오해했던 것일까? 또는 정말로 독특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일까?
중요한 질문은 현대의 운동들이 독특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의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운동의 전술들과 유형들은 원칙이라기보다는 편의적인 기능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리주의적인 논리이기 때문이다.
동시대적인 운동들이 탈산업세계에서 일어난 지배방식의 변화된 성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의 여부는 보다 더 심각한 문제이다. 다른 표현으로 질문을 제기해 보자면, 탈산업시대의 출현을 통해 필연화된 지배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동시대적인 운동들은 독특한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새로운 사회운동 테제들을 구출하는 일은 현대의 보수주의 운동들을 현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포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만 한다. 이와 같은 포함을 통해서 정부의 시민영역으로의 침입과정이 보다 더 명백하게 강조될 수 있다. 왜냐하면 보수주의적인 동원 또한 시민영역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행동에 대한 대응이기 때문이다. 많은 보수주의 운동들의 이데올로기 구조를 지탱하는 종교적인 가치들은 언제나 시민영역에서 존재해왔었고, 전통적으로 시민영역을 지배해왔었던 마찰의 부가적인 원천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18세기에 발생했던 종교와 국가의 분리로 인해, 종교집단들은 시민영역 내에서 국가법률적인 특권을 상실했다. (종교집단이 변덕스러운 신자들을 규제하기 위해서 강압적인 국가 메커니즘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종교집단이 선호하는 문화적인 행동코드들이 시민영역을 지배하는 것이 더 이상 당연시 되지 않았다.)
18세기와 19세기의 미국에서 벌어졌던 많은 보수주의적인 동원들은 국가가 보수주의들의 믿음과 부합된 행동코드와 도덕코드를 강화하도록 강제하려는 종교집단들의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는 시민영역이 진화해왔던 역사를, 그리고 시민영역과 관련된 사회적·정치적 갈등들을 세세하게 기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동시대적인 갈등의 본질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갈등을 낳고 유지하는데 있어서 시민영역이 맡고 있는 역할 또한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사회운동 테제들의 가장 도전적이고 교육적인 측면은 아마도 동시대적인 갈등에서 정체성과 문화가 거주하고 있는 장소인 시민영역이 맡고 있는 역할에 대한 관찰일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운동 테제들의 재정식화가 이루어져야할 중심적인 요소들 또한 구성되어야만 한다.
▒ 사회실천연구소 간 월간 이론번역지 ‘실천’ (2011.8 통권57호) 중에서 [요약] 및 [결론] 발췌 ▒ 원출처: Annual Review of Sociology, Vol.23(1997)
[사회실천연구소의 말]
실천(Praxis)
"일상적으로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고 자본주의와 늘 전면에서 투쟁하면서 자본주의 타도의 길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의욕은 강하나 이론적 천착이 부족하고 현장에서 맨날 투쟁 속에 살다보니 이론적 감각이 무디어졌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실천은 이론적 작업을 요구합니다." (어느 실천활동가의 말)
우리는 지금 여러 '유령'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개혁과 신우익의 정치적 우세, 지구적 자본주의의 극적인 전진, 사회주의의 종말 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겸허하게 이론을 다시 꼼꼼히 살피고 국제정세를 분석하면서 사유를 넓히고 운동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번역의 시대'를 거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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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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