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지식인의 현 주소, 그리고...
며칠 전 한겨레에는 김수행 교수가 쓴 ‘세계대공황 속의 한국 경제’라는 칼럼이 실렸다. 이 글은 한국의 진보지식인의 통찰력, 안목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문이라 보여서 그 글을 잠깐 소개, 비판한다. 김수행교수는 (김세균교수와 더불어) 한국 맑스학자의 원로이다.
이 글은 다음 이야기로 시작한다. “정부가 실업자를 구제하려 들면 금융자본이 반대하고, 금융자본이 요구하는 긴축 정책을 쓰면 실업이 더욱 늘어난다. 자본가들은 이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필자 김교수는 그 딜레마를 자세히 설명하고 나서, “공황에서 탈출할 가장 좋은 방법은 일자리 창출”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왜 ‘일자리 창출’이 선순환을 가져오는지 자상하게 설명한다. 이는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길이란다. “기업의 운영 목표를 이윤 추구 아닌 국민의 필요 충족에 둔다면 실업자는 자연히 사라진다”는 말도 덧붙인다. 금융자본의 긴축 요구에 맞서 유럽과 미국의 대중이 싸우고, 북아프리카에서는 외세 의존적, 신자유주의적 독재에 맞선 민중저항이 일어났다는 사실도 누누이 밝혔다.
김수행 교수는 맑스의 자본론은 자세히 알고 있지만 현실 분석에서는 그것을 전혀 적용하지 못한다. 실업자를 구제할 수도 없고, 구제하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를 ‘일자리 창출’로 풀어낸다니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유럽 자본주의가 ‘복지’를 실시했기 때문에 모순이 더 격화되어 공황이 더 깊어졌는데 ‘복지 실시’가 타개책이라니!
물론 ‘긴축’이 대중의 구매력 부족이라는 사태를 더 악화시키기 때문에 함부로 ‘착취 강화’의 길로 갈 수도 없다는 것은 부르주아들도 잘 안다. 그렇다 해서 ‘복지’를 늘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하면 부르주아들이 웃는다. 자본이 살아남기에 급급한 이 시절에 무슨 속편한 주문이란 말이냐.
그들이 어찌 이 딜레마를 타개할까. 선진/중진 자본국 자신들의 민중에게 ‘착취를 더 강화’하는 길은 선뜻 택하지 못할 것이다. 그 대신에 제3세계의 후진국을 약탈하고(-리비아를 보라), 후발 자본국을 억누름으로써 해외에서 수탈/약탈을 강화하는 길을 택한다. 김수행씨는 이 제국주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전혀 결여돼 있다.
그는 ‘긴축, 생활 악화’에 대해 민중이 반발하는 것에 희망을 건다. 그 저항 덕분에 긴축을 막고, 일자리를 늘리면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란다. 그러나 이 대목은 아주 조심해서 판단할 일이다. 단지 ‘더 사태가 악화되는 것은 싫다. 지금 것이라도 누리고 싶다’는 즉자적인 반발은 더 변혁적인 방향으로 갈 토대가 될 수도 있지만, 파시즘을 불러올 조건도 되는 것임을 그는 몰각하고 있다. (** 북아프리카에 외세의존적 신자유주의 독재에 맞서는 저항이 있다며 서로 성격이 다른 여러 나라를 도매금으로 뭉뚱그린 것도 아주 비과학적인 진단이다...)
무엇이 있어야하는가? 자기 희생을 무릅쓰고 변혁을 선도할 노동자계급이 형성돼 있을 때라야 그 반발은 미래로 향한 첫 걸음이 된다. 그런데 지금 선진/중진국 어디에도 그런 변혁주체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사태 악화에 대한 단순한 반발’이 많다는 것에 희망을 걸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그리스 스페인 등등에서 저항에 나서는 부분은 그런대로 살아왔던 정규직 노동자조직이다. “우리, 추락하기 싫다”는 얘기뿐인데 무슨 희망이 될까. 저항에 나서지 않는 수많은 민중은 오히려 더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는데!!
그는 짜증나게도 ‘사회주의적 수사’도 덧보탠다. ‘기업이 국민 필요 충족을 위해 운영 어쩌구’가 그 말이다. 그런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그것은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야 가능한 얘기이거늘, 그는 ‘사회주의로 가는 것이 길’이란 말은 한 음절도 꺼내지 않는다. 슬쩍 멋있는 얘기를 보탰을 뿐이고, 민중이 '긴축반대 싸움'에 좀 열심히 하다 보면, 그런 사회주의 사회도 금세 올 수 있을 거라는 식의 섣부른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지배세력을 비판한다고 감정에 겨워 마구잡이로 퍼부어댈 일이 아니다. 앞으로 무슨 정리해고 등등이 터져나올 때, 그 대부분은 (한진조선의 먹튀자본과 다르게) 어쩔 수 없이 자본이 무너져서 그리 될 것이지, 지배세력이 일부러/아무렇게나 착취를 강화해서 그렇게 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러니 사장/자본가 개개인을 ‘나쁜 놈’으로 비난할 문제가 아니다. ‘체제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인식의 도약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지 않다면 "결국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굴복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의 글에서 우리는 아무런 새로운 앎도 얻지 못한다. 그는 “일자리를 늘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희망사항을 그럴싸하게 말했을 뿐이고, ‘민중 저항이 일어나고 있대’하면서 마치 그 변화가 어렵지 않게 가능할 것처럼 사람들에게 환상을 불어넣었다. '일자리 늘리자'고 열심히 되뇌기만 하면 좋은 세상이 온다는 식이 아니냐.
--한국의 진보지식인 대다수의 수준이 김교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엄중한 현실에 치열하게 대결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들은 그럴싸하게 하지만 알맹이 있는 말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김진숙 동지 같은 분들은 목숨을 걸었거늘, 진보지식인 대다수는 무책임한 소꿉장난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진보적인 노동자, 시민들이 여전히 그들을 믿고 있다.
2. ‘글로벌 리서치’라는 저항매체의 특파원이 리비아 반군들의 위협에 쫓겨 리비아에서 물러난 뒤로, 리비아 소식을 별로 전해주는 글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마타바 리비아’라는 독립언론 사이트를 알게 되어 들어가 보니, 귀중한 소식들을 접하게 되었다.
얼마전까지 나토군이 일방적으로 가타피군을 몰아붙여서 퇴각시킨 뒤로 ‘가다피 몰락’은 기정사실인 듯 보였는데, 최근들어 가다피군이 맹렬하게 반격에 나서서 반군쪽이 ‘승리 단언’을 보류했다는 것이다. 나토군은 원래 9월까지만 폭격하기로 했는데 전황이 여의치 않자 3개월을 더 연장했다.
가다피군의 힘이 어디서 나왔나? 무기는 나토군이 다 때려부쉈는데? 민중의 가세가 시작된 것이다. ‘가다피는 독재자이니까 당연히 쫓아내야 돼’하고 생각했던, 그래서 나토군의 폭격도 어물쩍 묵인했던 사람들은 이 ‘민중 저항’ 앞에서 옷깃을 여며야 한다.
제국주의는 전혀 자비롭지 않은, 야만 세력이다. 민중저항이 계속될 때 얼마든지 핵폭탄도 터뜨릴 집단이다. 리비아 사태에서 정말로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