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황의 시대는 곧 전쟁의 시대다.
요 며칠 신문을 도배질한 것은 경제추락에 대한 공포 현상이다. 부르주아들은 애써 직시하기를 회피해 왔지만, 이는 이미 2008년의 금융 위기가 가라앉은 뒤에도(=뒤부터) 이미 넉넉히 예견된 일.
미국은 ‘달러를 찍어낼 권한’이 있어서(--이것이 ‘패권’의 비밀)
그나마 그 충격을 얼마쯤 덜어내고 있는데(=딴 나라들로 그 부담을 떠넘기고 있는데)
유럽이 문제다.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 부도 위기에 휘말려 들면?
유럽이 이 위기를 봉합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은 미국처럼 ‘화폐를 찍어낼(=유럽연합 차원에서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유럽 부르주아들은 ‘화폐를 찍어낼’ 권한을 얻기를 오래전부터 사실 희구해 왔다. 그래야 무너지는 자본들을 손쉽게 살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유럽연합이 국채발행권을 갖게 해 달라’고 그냥 주장하기만 하면 될 일인가? 유럽연합이 명실상부한 ‘통일국가’로 등극하지 않고서 유럽 인민들의 재가를 얻어낼 수 없다.
그런데, 저마다 국민국가로 오랜 역사를 쌓아온 마당에, 난데없이 ‘통일국가’ 타령을 부른다고 해서 수많은 인민이 갑자기 박수를 칠 리가 없다. 사실 30년쯤 전에 ‘유럽의 통일’ 이야기가 잠깐 나왔을 때에는 ‘지금의 유럽연합 결성’조차도 비현실적 공상이라고 치부하는 분위기가 더 컸다. 정치 사회적으로 ‘비상한 사태’가 전개돼 나가지 않고서 ‘유럽 통일국가 수립’의 수립은 전혀 비현실적인 공상이다. 그 비상한 사태란 무엇인가? 유럽 전체가 똘똘 뭉쳐서 대결해야할 ‘외적外敵’의 출현이나 그 비슷한 것들이다.
무릇 근대 국가들은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 폭력 또는 내전에 힘입어 출현했다(프랑스와 미국과 중국의 국가國歌를 들어보라).
인위적인 성격이 훨씬 강한 유럽통일국가의 형성은 더더욱 폭력/전쟁의 출현 없이 성사될 리 없다. 그런데 유럽의 백인 중산층들을 국경을 넘어 한데 단결시킬 외적은 누구일까? 이미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그 답을 마련해 놓고 있다.
중동 이슬람세력이 되었건 아프리카 흑인세력이 되었건 어디서건 ‘제3세계의 제1세계에 대한 테러가 시작되었다’는 위기의식, 공포감이 그들을 하나로 단결시킨다. 만일 리비아의 난민들 중에 유럽에 대한 적개심을 표현할 세력이 나타난다면 이는 유럽 부르주아들에게 ‘테러와의 전쟁’을 벌일 좋은 구실이 되어줄 것이다.
유럽 부르주아들이 ‘유럽 통일국가’를 향한 발걸음에 얼마나 빨리 속도를 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당연히 그에 대한 반발이 있고 그 실랑이 속에서 속도가 정해질 것이니까. 그러기는 해도 그들이 그 방향으로 일을 꾸며갈 것은 분명하다. 그래야 유럽의 독점자본들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황의 시대는 곧 전쟁의 시대인 것이다.
(---유럽통일국가가 들어설 경우, 아프리카/남아메리카/아시아에 대한 미국/유럽/일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적 침략, 중국/러시아의 후발 자본주의국에 대한 포위/견제는 훨씬 더 본격화된다)
2. ‘진보 통합’의 과제는 물 건너 갔나?
-‘국참당과의 통합’이 부결된 뒤, 민노당 당권파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1년이나 공을 들여 준비해온 일이고, 3개 연합파가 대의원들을 꽉 잡고 있어서 3분의 2 넘는 것을 낙관해 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권영길씨가 전 대표의 권위를 내세워, ‘통합 반대’의 각을 세웠어도 권영길씨가 속해 있는 창원쪽 대의원 중에 연합파에서 이탈한 표는 단 한 표에 불과했다(그러니까 그는 거기 얹혀 있었던 것이다).
-‘통합안’을 결정적으로 막아낸 부분은 누구인가? ‘다함께’처럼 원래 반대했던 세력은 결정적인 부분이 아니다. 단15표로 당락이 갈렸는데 그 작은 표를 덧보탠 부분은 원래는 찬성했음직한, 민주노총 내에서 가장 오른쪽에 속한, 민노총 상층 권력을 누려왔던 (속칭 ‘벽제파’라 불린) 부분이다. ‘한노사연’이라고 김금수 계열의 우파 활동가 그룹도 이들과 연계돼 있다. (같은 우파 중에서) 이들보다 왼쪽에 있었던 부분은 통합에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찬성했는데 더 오른쪽 부분이 반대에 나섰으니 다소 역설적인 현상이다.
--이들이 반대한 것은 당권파가 (영국의 블레어가 노동당에서 ‘노동’을 떼어냈듯이) 민노당에서 ‘노동’자를 떼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량이고, 어용에 가깝다고 해도 아무튼 조직노동과 노동조합의 발언권을 갖고 가려한 사람들이니 ‘노동’이 배제되는 것을 묵과하지 못했다(이 ‘노동’ 배제의 흐름에 의해, 이수호씨도 민노당에서 소외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보다 더 왼쪽의 엔엘파가 ‘통합 찬성’에 나선 것은 정파 이익이 ‘노동조합의 발언권’보다 더 셌기 때문이다.
--민노당 당권파는 겉으로는 “국참당과만 통합한다. 민주당과는 생각 없다”고 부인했지만 정략 술수에 찌든 정치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한번 문호가 열리면 그 다음 작업은 누워서 떡 먹기다. 문제는 그들이 그렇게 날고 기어 봤자, 민주당이 그들을 대등한 파트너로서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래에 안철수 붐이 일고 박원순 바람이 불어온 데에는 지배세력의 입김이 상당하게 작용했는데(박원순 뒤에는 ‘삼성’이 있다), 그들의 구상이 무엇이겠는가?
보수 양당 체제를 세우는 것이고 진보변혁세력의 정치적 위상을 아주 깎아내리는 것이다. 민주당이 진보세력에게 코가 꿰여서 좌클릭의 정치연합을 만들고, 그래서 선거 의제가 더 급진화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 공황을 맞은 지배세력의 다급한 필요가 아닌가.
이미 박원순이 인기를 얻어 민주당이 박원순쪽으로 끌려가게 생겼는데 이는 민주당이 더 우클릭하는 길이다. 민노당 진보신당쪽은 이미 쪼각이 났는데 진보세력이 힘을 합쳐 10%쯤의 국민지지를 얻어낼 방향으로 발돋움할 리가 없고, 그러니 민주당이 이쪽을 존중해줄 리가 없다. ‘그냥 우리의 2중대가 되어줘’하고 얼마든지 윽박지를 수 있다.
--그러니 ‘민노당의 장래는 아예 글러먹었다’고 단정짓고 ‘우리끼리, 우리 길을 가자’고 고개 돌릴 일인가? 그렇게 ‘먼산 바라기’하는 것은 대단히 경솔하고 무책임하다.
진보신당이 두 쪼가리 난 데에는 자기 출세에 다급해진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 등이 진보신당 내에서 패권을 행사하고 윽박질러댄 탓이 컸음이 분명하다. 심상정 등은 사실 국참당과의 통합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부분이었다. 그렇다 해서 ‘진보통합 그 자체’가 옳지 않은 일이었을까? 막돼먹은 방식의 ‘진보통합’이 문제였지, ‘(민노/진보신당) 진보통합 그 자체’가 그른 일은 아니었다. 심상정 등등도 진보통합을 다급하게 원했지만, 교수노조 사람들을 비롯해 양심적인 많은 부분도 통합촉구 서명에 이름을 올렸다.
민노당은 아예 글러먹었나? 상당히 위태로와진 것은 사실이지만, 민노당과 국참당 반대에 힘껏 나선, 운동성 있는 부분도 하부에는 적지않이 있다. 기륭 동지들이 열성적으로 투쟁해온 것은 세상이 다 아는데, 그들이 (국참당과의) 통합저지 실천에 열심히 나섰더랬다. 그 동지들에게 가서 ‘민노당? 글러먹었어! 그러니까 헛수고 하지 마!’ 하고 말을 건네면 그 동지들이 과연 그 말에 설득이 될까? 오히려 이쪽이 설득되지 않을까?
민노당 대의원의 3분의 1 이상이 반대했는데(그들은 자기 현장에서 다들 열심히 뛰는 부분들일 터인데), 이들의 존재를 묵살하고서 무슨 운동의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지금처럼 민노당에 진보진영 일부(진보신당 탈당파, 김세균 등 교수들 등등)이 가세하는 것으로 무슨 희망이 생겨날 리 없다. 그래 갖고서 무슨 ‘시너지 효과’가 생겨날 리 없고, 지지율이 8-10%로 올라갈 턱이 없다. 더 밑바닥의 건강한 부분들이 흐름을 만들어 가세하고, 그래서 당권파를 견제해내고, 좌선회를 촉구할 때라야 길이 열린다. 물론 그 길이 열리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다. 그러나 민노당과 별개의, ‘자기끼리 동아리’를 꾸리면서 무슨 이 사회의 대안정치세력을 자임하는 것은 전혀 터무니없다. 정치 아닌 사회운동을 추구한다면 모를까, 정치를 말하면서 대중적으로 다가갈(선거의 심판을 받을) 세력으로 올라설 전망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아무런 대안이 못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진보신당 독자파 상당수도 “제대로 된 통합이라야 함께 한다”는 입장이었지, ‘통합은 아예 전혀 생각 않는다’는 것이 아니었다.
((맑스는 이런 취지의 말을 한 적 있다 ; 사회주의를 정말로 추구하는 활동가들은 자기끼리 한 분파를 만들어 딴 쁘띠부르주아 정파들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다. 어느 곳에든 들어가서 그 실천을 변혁적인 방향으로 추동하도록 노력한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야, 곡식 열매가 수없이 맺어지듯이, 그들은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려고 한다. 그들은 오직 노동자계급 "전쳬"의 이익에 복무하는 '당파'가 되려고 하지, 자기 활동가그룹을 광낼 생각에 여념이 없는 "정파"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동아리/정파의 명예를 따로 추구하는 활동가는 쁘띠부르주아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