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용산 5가동에서 세입자로 살던 사람입니다.
2005년 7월 14일 갑자기 강제철거를 당하는 바람에 소유하고 있던 가재도구와 가구. 전자제품과 의류,식기류 등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강탈당하고 어쩔 수 없이 세입자 철거민이 되어 철거투쟁을 하게된 것입니다.
처음 철거투쟁을 하면서 가지고 있던 조그마한 재주로 투쟁하다가 다친 동지들을 치료해주고 함께 울고 웃으며 느낀 것은 이것이 사람사는 모습이구나, 내가 철거투쟁에서 승리하면 후원회원으로라도 남아서 다친 동지들을 치료해주고 약도 지어주면서 함께 투쟁하며 평생을 살아야 겠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전국철거민 연합에서 2006년 1월 경부터 혁신적인 투쟁을 하겠다는 의지로 세입자들만 단결해서 노동해방철거민이라는 명칭으로 2006년 7월 17일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12월경 봉천동에서 세대위대표자회의를 하는 과정에 봉천동 위원장이 용산은 왜? 중앙에서 지시하는 대로 투쟁하지 않느냐?며 제대로 투쟁도 하지 못하면서 의장대행의 말에 감히 대꾸를 하느냐면서 한마디 하자 상도동동지들도 함께 어디 감히 의장의 말에 꼬리를 다느냐?면서 강하게 질타한 사실 외에는 크게 잘못한 사실이 없는 것입니다.
2007년 8월 초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만들면서 양임시대표 대행이 질문을 했는데 얼른 답변하지 못하자 양의장대행이 당신들 나를 손바닥에 올려 놓고 무시하는 것이냐?라고 하여 총무(본인)가 우리는 의장님을 무시한 사실이 없습니다. 의장대행님을 무시했으면 아들을 아버지로 삼습니다.라고 답변하였습니다.
2007년 7월경 봉천동에서 있은 대표자회의에서 청조위원장이 용산세대위는 차라리 투쟁을 접어라라고 강조하였습니다.
8월초 이문동 사무실에서 갖은 대표자회의에서도 청조위원장이 다시 용산세대위는 차라리 투쟁을 접으라고 또 다시 강조하여 총무(본인)가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이렇게 투쟁하고 있는 세대위에다가 투쟁을 접으라고 강요할 수 있느냐?고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며 사과를 요구하자 대표가 청조위원장에게 강하게 사과를 하라고 지시하여 마지못해 청조위원장이 사과를 한 사실이 있습니다.
또한 조강특위장이 용산세대위는 구속되는 것이 그렇게 겁이 나느냐?고 질타하면서 그런식으로 약하게 투쟁해서 어떻게 승리하겠느냐?고 질타하여 용산세대위들은 우리는 우리가 힘닫는 곳까지 죽을 힘을 다해 투쟁하고 있다,라고 답변했던 것입니다.
노철연대 1주년 기념 평가서에는 노철연대 중앙은 계속하여 용산동 세대위에 불만을 표시하였으며 위원장과 총무는 장애증이 있어 투쟁하지 않아도 임대주택이 제공되는데 규찰부장과 부녀부장은 장애증이 없으므로 강하게 투쟁해야 하는데 위원장과 총무가 오히려 방해하는 것 아니냐 면서 질타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철거민투쟁은 가족들도 함께 해야 하는데 용산위원장과 총무는 가족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방을 얻어 놓고 있기 때문에 투쟁에 암적인 존재다, 규찰부장과 부녀부장이 투쟁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다, 그래서 용산은 협상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라고 규정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8월 24일 인천주안주공부녀부장과 연사가 와서 용산세대위가 힘들게 싸우고 있으므로 저녁이나 사주겠다고 하여 저녁을 먹고 맥주를 먹게 되었는데 저는 그것을 마시고 배탈이 나서 심하게 설사를 하였으며 저녁을 먹느라고 늦게 가는 바람에 용산구청 직원들이 저희들의 투쟁용품과 취사도구등 모든것을 가져갈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모여 결의하기를 적들이 우리의 생계용품과 시위용품을 강탈해 갔으므로 어쩔 수 없이 굶으면서 투쟁할 수 밖에 없게되었다는 논의를 하고 적들이 우리가 탈진하여 쓰러지면 병원으로 싣고 갈 것인데 의식이 돌아오면 꼿아놓은 링거를 거부하고 용산구청 앞으로 다시 오자고 결의하였으나 저는 아직 시기가 맞지 않으므로 찬바람이 나면 시작하자고 제안했음에도 3명(위원장,부녀부장,규찰부장)은 명분 있을 때 지금 시작해야 한다고 하여 단식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8월 31일 집회 도중 용역들에게 복부를 걷어차여 심한 통증과 함께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봉천동 부녀부장에게 연락하고 전/해/투 조직국장과 법규위원에게 의존하여 봉천동에 있는 고려병원으로 함께 가는 도중에 의식을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깨어나니 고려병원인데 봉천동 총무님과 조직국장님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에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단식전 마신 맥주로 심한 설사를 하다가 단식을 하게되어 너무 힘이 들었지만 동지들과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용산구청 앞으로 돌아와 합류했던 것입니다.
그 후부터는 저희들(용산세대위)의 건강상태가 위험하다고 느낀 구청에서 저희들을 납치하여 은평구에 있는 시립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였으나 저희들이 완강히 거부하자 병원 앞에다가 강제로 끌어내리고 용산구청으로 갈 수 없도록 지키고 있는 일도 발생하였으며 수차례 중앙대용산병원 등으로 끌려다녔던 것입니다.
2007년 9월 3일 경 봉천동 위원장과 청조위원장이 모든 정보를 한곳으로 집중해야 한다면서 개인들이 휴대한 휴대폰을 갖고있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제촉하여 저희들의 휴대폰을 중앙에 다가 모아서 주고 위원장이 두대를 가지고 있던 휴대폰 중 1개를 사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제가(총무) 납치되어 동부시립병원으로 실려갔음에도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자 중앙에서 각자 전화카드 1개씩과 사다주므로 제가 상도동위원장에게 현금을 차용하여 1인 2만원씩을 지급하여 납치가 되어서 돌아오지 못하면 택시를 타고 돌아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동부시립병원에 납치되었을 때는 주변에 동지들도 없는데 구청 용역깡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를 발가벗기고 팬티까지 내리고 혈관에서 피를 뽑는 만행도 서슴치 않았는데 조직국장님과 상도동공동위원장님이 보이기에 저좀 데리고 가 달라고 하여 용산구청 앞으로 돌아 올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소변도 잘 볼 수가 없고 배가 너무 아프면서 부어오르기에 고통스러워 새벽에 화장실을 갔다가 화장실앞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것입니다.
눈을 떠보니 용산중대병원인데 의사가 "검사를 하고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여 저는 "아니다,소변이 않나와서 고통스러우니 소변만 나오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던 중 상도동총무가 전화가 와서 "어디냐"고 하여 "너무 고통스러워 쓰러졌는데 눈뜨니 병원이다"고 하였더니 "왜?연락을 하지 않았느냐"고 하여 "너무 일찍은 시간이라 조금 있다가 연락하려고 하였다"고 대답하고 조금 있다가 대표와 통화를 하였는데 의식이 가물가물 하여 제가 전화를 했는지 양대표가 전화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대표와 통화하면서 "계속해서 투쟁할 수 있느냐"고 하여 "소변이 않나오고 있으므로 소변만 나오게 하고 구청앞으로 가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용산중대병원에서 소변이 나오는 조치를 취해주지 않아 완강하게 진료를 거부하고 있던 중 의식을 잃었었는지 눈을 떠보니 강남중앙병원이었으며 거기에서도 진료를 거부하다가 의식을 잃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용산중대병원인데 거기서 호스를 끼우는 시술을 받고 나온 것입니다.
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에 구청직원과 개발조합의 총무이사(이xx)가 와서 "요구를 다 들어 줄테니까 그냥 입원해서 진료를 받아라"고 하여 "그럼 공문화해서 가져와라 말로만 하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고 하면서 퇴원을 하자 개발조합의 총무이사가 데려다 주겠다고 하기에 거부하니 택시비를 1만원 주기에 그것마져 거부하고 병원에서 나와서 상도동총무에게 상황을 설명(개발조합측이 제안하였다는 내용)하고 택시를 타고 용산구청 앞으로 와서 개발조합측을 만났던 것을 청조위원장 등 모두에게 보고하였던 것입니다.
병원에 갔다 오자 멀리 있던 남편이 구청앞으로 와서 "구청이 절대로 문서화 공문화는 해주지 않을 것이다"라며 자기 생각을 이야기 했던 것인데 중앙에서는 총무신랑이 구청직원들을 만나고 재개발조합측을 만나고 있다고 모함까지 하면서 총무때문에 협상이 안들어 온다며 몰아 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랑이 구청직원들과 재개발 조합을 만나고 있는 증거를 대보라, 증거도 없이 무조건 대고 투쟁하고 있는 사람을 이런식으로 몰아세우지만 말고"라면서 강하게 반박하였던 것입니다.
병원에서 시술받고 돌아와서 소독도 못하고 계속 투쟁하던 중 4~5일이 지날때부터 소변호스를 꼿은 곳에서 계속해서 열이나고 배가 아프고 구토가 발생하며 가래가 끓고 가슴이 조여드는 등 너무나 견딜수 없는 통증이 오기에 고통을 호소하자 부녀부장님이 그렇게 아프면 참지 말고 구청안에 들어가서 쓰러지라고 하여 고통을 사무국장에게 전화로 얘기하자 녹색병원으로 가라고 하여 9월 29일 밤 늦게 병원에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용산중대병원으로 갔으나 중앙의 지시가 있었기에 "나를 녹색병원으로 데려 달라"고 요구하여 녹색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녹색병원으로 갔을 때 의식을 잃을 것 같아 옆에 있는 사람에게 휴대폰을 빌려 상도동 총무와 통화를 하여 녹색병원에 있다고 말하고 난 다음 의식이 깜박 깜박한데 의사들이 계속하여 제 뺨을 때리고 여러가지 검사를 하는데 동지들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고 구청직원들과 조합놈들만 보이는데 무원고림에서 이러다가 혼자 정말 죽는구나 하는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던 것입니다.
검사를 마치고 의사들이 9월 30일 강제로 입원을 시켰는데 옆에 간병인이 있기에 휴대전화기를 빌려 상도동 총무에게 상황을 설명했으며, 다음날인 10월 1일 또다시 공중전화를 전화를 하자 상도동 총무의 전화기를 홍보부장이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현 상태를 설명하고 재개발 조합측이 간병을 붙쳐놓고 찾아왔으므로 정보가 샐수 있다고 설명하는데 "지금 상황이 않좋은 상태이므로 다음에 전화를 하라"며 말한 것입니다.
단식중에 생각나는 전화번호는 상도동총무밖에 없는데 그 후 부터 아무런 연락이 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기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10월 2일 막내동생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느냐"고 물었더니 "상도동총무에게 전화를 했더니 여기 있다고 얘기해줘서 알고 왔다"고 대답하기에 그런 줄 알았던 것입니다.
동생 휴대폰에 청조위원장의 전화번호가 있기에 전화를 하자 "보고도 않하고 뭐하고 있느냐"고 질타하여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전화를 했는데도 전화를 안받고 있지 않느냐"고 따지고 "조합에서도 사람이 왔다가고 구청에서도 사람이 왔다 갔다"고 보고하자 "해결을 할꺼냐고 물어 봤느냐"고 하기에 "그것은 물어 보지 않았다, 전화도 않받고 연락이 않되는데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묻자 "본인이 더 잘알고 있을 것 아니냐? 동지들은 투쟁하고 있는데 혼자 살자고 병원에 간것 아니냐"면서 전화를 끊어 버린 다음부터는 전화를 절대로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하던 중 조직국장님이 이 병원을 잘안다고 말했던 생각이나 병원측에 물어보니 조직국장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기에 전화하여 상황을 설명하고 사무국장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어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하자 "보고도 않하고 뭐하고 있느냐"고 질책하기에 단식후에 알고 있는 전화번호는 상도동총무였는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동생이 왔다 간후에 청조위원장 전화번호도 알게 되어 그리로도 수 없이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이전화 번호는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여 병원에 물어보니 조직국장님 전화번호를 알고 있어서 조직국장님에게 전화를 하여 알았다"고 대답하니 "나는 지금 몸이 많이 아프니 나한테 전화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여 "다른 사람들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지금 구청사람들 하고 조합측이 공문을 가져 왔는데 나에게 주지 말고 우편이나 팩스로 중앙으로 보내라고 했다"라고 보고하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기에 기억을 더듬어 대표에게 전화를 하여 "전화들을 않받는데 나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그걸 나한테 물어 보면 어떻하느냐, 본인이 알아서 결정해야 할 것 아니냐"고 하기에 "지금 나한테 딸 문제 때문에 복지카드가 필요하니까 상도동총무에게 동생이 연락을 했는데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말하자 "그럼 어디로 통보를 해야 되느냐?"라고 하기에 전화기와 모든 것이 상도동에 있기 때문에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그러자 "그럼 복지카도도 우리가 병원에 가서 전달해 줘야 되느냐"라고 말하기에 "그럼 4일날 용산구청 앞으로 가겠다"고 말하자 "모든 것은 용산철대위와 공유를 하라"고 하여 "무엇을 공유하라는 말이냐"고 묻자 말 없이 전화를 끊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4일날 용산구청 앞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대화내용을 생각해 보니 제명했다는 의미가 있기에 소변호스라도 빼고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용산구청 앞으로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구청과 주택조합측이 공문을 병실에 두고 간 것입니다.
그러다가 5일에 소변호스를 빼고 테스트 과정에 9일 퇴원이 않된다고 하는데도 몰래 도망쳐 용산구청 앞으로 가 다시 투쟁하겠다고 하자 집회 중에 있기에 전해투 연사부장에게 상황을 설명하였던 것입니다.
부녀부장님에게 내가 몸이 너무 않좋와서 잠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고 사과를 하자 부녀부장님이 "얼굴이 빤질빤질해서 왔다면서 얼굴도 보기 싫으니 가라"면서 고개를 돌려 버린 것입니다.
연대식구들은 돌아가고 나서 저는 배재하고 회의를 하고 상도동 총무가 와서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하여 "나는 투쟁할 것이다"라고 말하니 "총무는 제명이 됐다"고 하기에 "언제 제명이 되었느냐,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혼자살겠다고 병원에 입원하고 조합측과 내통하였으며 아저씨가 돌아다니면서 구청과 조합측을 만나고 있다"고 하여 "내가 수차례 신랑에게 물어 봤지만 구청이나 조합측은 절대로 만난적이 없다고 했는데 무슨 근거로 증거도 없이 그렇게 모함하느냐"고 말하고 "그럼 좋다, 제명을 시켰으면 나 혼자라도 투쟁하겠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부녀부장은 "내 눈앞에서 보이지 말고 저 밑에서 하라"고 하자 상도총무가 "무슨 소리냐? 아예 용산구청 근처는 나타나지도 말라, 구청앞에 나타나면 매장시키겠다, 조금이라도 동지들과 정이 있다면 구청 앞을 떠라라"며 투쟁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 했으며, 청조위원장은 "합의해서 가라, 3천만원도 나와있지 않느냐, 규찰은 저렇게 죽음을 각오하고 소변도 여자 앞에서 누면서 투쟁하고 있는데 혼자살겠다고 열심히 투쟁하는 동지들을 팔아먹어서야 되겠냐, 아저씨가 조합측을 잘알고 있으니 합의하기도 쉬울 것 아니냐"고 말하고 봉천동 위원장은 "혼자투쟁하다가 누구손에 죽을 지 모르니까 가라"고 협박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럼 본인의 물건(복지카드,휴대전화,안경,신한은행카드 기타 등)이 상도동에 전부 있으니 제명을 했다면 그것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상도동총무가 "당신이 용산철대위 회계장부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와서 물물교환해야 한다"면서 돌려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무국장은 "당신이 4년 동안 연대다니면서 한 발언은 전부다 거짓말이다, 총무는 투쟁한 것이 혼자 합의하고 잘살아 보겠다고 한 것이지 진짜로 동지들과 투쟁한 것이 없다"고 몰아 세우기에 기가 막혀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동생을 구청앞으로 불러서 같이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도망갔고 병원비 계산이 않되어 병실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기에 동생이 조합측과 통화를 하고 다시 입원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10월 23일 카드대금을 결제하기 위하여 은행을 찾아갔는데 23일에 금 1백만원이 용산구청 지점에서 카드로 출금되어 있는 것이 었습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상도동 홍보부장에게 9월 22일 신한은행카드를 맡겨 둔 기억이 난 것입니다. 신한은행 내 통장에서 인출해서 위원장 카드대금을 막아 주라며 비밀번호를 알려준 사실이 기억난 것입니다.
이런 행위를 하는 자들이 어떻게 혁신투쟁을 한다고 외치는 조직이 될 수 있습니까?
10월 2일 부녀부장이 용산에 있는 병원입원하여 조합측에다가 총무는 제명되었으니 이제 합의할 대상이 아니라고 알려주었다니 저는 4년 동안 투쟁하고 목숨건 단식투쟁을 했건만 합의마져 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저를 짓밟은 것입니다.
이렇게 부녀부장도 병원에 입원하고 적들과 만나 정보를 주고 받았는데도 제명하지 않고 오히려 부녀부장의 의사만으로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노철연대가 어떻게 혁신을 외치고 투쟁하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저만 이렇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위원장 면회를 갔더니 교도관이 절대로 위원장에게 심적부담이 되는 대화를 피해달라고 신신당부하는 모습을 보고 또한 위원장이 옥중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위원장을 제명하고 청조위원장과 사무국장, 상도동총무가 특별면회를 와 교도소에서 위원장에게 그렇게 모욕을 주며 추궁을 해 죽고 싶은 심정이 었다는 말을 듣고 이런 사람들과 동지라고 생각하며 4년 동안 같이 투쟁하고 목숨건 단식투쟁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억울하기에 쓰는 것입니다.
부디 용산공대위를 하셨던 분들이라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왜? 누가? 용산철대위를 철저하게 분열시켰으며 제대로 된 합의도 아닌 저 같은 경우는 투쟁하기 전에 이미 구청에서 제안했던 내용으로 합의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갔는지를 알고 위원장만은 이렇게 억울한 상황으로 몰아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함께 연대하고 공대위를 꾸려주시고 투쟁해 주신 동지분들께 정중하게 사과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적들이 아닌 동지라고 믿었던 노철연대에서 무서운 협박을 받았기 때문에 노철연대와의 대화와 만남은 절대로 거부할 것이며 공대위만이 모인 자리에 저를 불러서 물어 보신다면 진술할 의무는 있다고 느낌니다.
노동해방철거민연대 용산철대위 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