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FTA)과 투쟁과제
1.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무역은 서로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행위다. 무역(貿易)의 한자어 뜻인 ‘무역할’ ‘무’와 ‘바꿀’ ‘역’에서 보듯이 교환을 의미한다. 나라사이의 교환이 국제무역이다. 인류는 초기의 물물교환으로부터 시작해 화폐를 매개로 교환했고 돈을 사고파는 금융거래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무역거래 과정에 불공정 문제가 대두됐다. 시장에서 물건과 물건을 주고받는 상업적 거래뿐만 아니라 노동력과 임금을 거래하는 자본주의사회의 계급적 임노동관계에 이르면 불공정은 확대‧고착화된다. 인류 역사에서 원시공산사회를 제외하고 공정무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전파 무역이론은 자유경쟁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공정하게 거래되고 균형을 이룬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보이는 주먹(visible fist)'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정도로 냉혹하다. 한마디로 불공정무역의 역사다.
2차 대전 직후 미국주도로 만들어진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에 이미 FTA조항은 포함되었다. 1985년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이 시작됐고 1995년에는 서비스를 비롯해 전 영역으로 확대된 다자간 기구인 WTO(세계무역기구)가 출범했다. 1998년 5월 제네바 2차 각료회의에서 무역자유화를 위한 뉴라운드 출범에 합의하고 1999년 12월 시애틀 3차 각료회의를 거쳐, 2001년 11월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열린 제4차 회의에서 WTO DDA(도하 개발 아젠다)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협상은 당초 계획대로 진전되지 않고 있다. 각 국은 다자간 협상과 동시에 양자간 또는 지역간 협상인 자유무역협정(FTA)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WTO는 강대국인 미국, 유럽, 일본의 무역 경쟁을 관리하고 제3세계 국가를 자유무역규범에 끌어들여 벌이는 다자간 협상이다.
그러나 강대국 사이, 강대국과 개발도상국 사이를 포함해 140여 개국 회원국들의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다. 또 전 세계에서 펼쳐진 민중들의 WTO 반대투쟁도 이러한 합의를 어렵게 한다. 우리나라 노동자, 농민들도 홍콩과 멕시코 칸쿤에서 WTO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WTO DDA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FTA는 추진되고 있다. WTO에 보고된 전 세계 300여개 무역협정 중 70% 이상은 내용적으로 FTA다. WTO의 본질은 자유무역확대다. 강대국이 개도국에 대해, 자본이 노동에 대해, 자본주의적 인간이 환경에 대해, 제국주의가 약소국가와 약소민족에 대해 펼치는 공격이다.
2.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결과
1960년대 말부터 자본의 평균이윤율이 하락하면서 자본주의체제에 내재된 공황적 상황이 표출되었다. 1970년대 초 오일쇼크와 함께 세계경제위기가 도래하면서 미국 발 통화주의가 시작됐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전환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금융화가 급진전했다. 미국은 1994년 인접국인 캐나다, 멕시코와 함께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면서 적극적으로 FTA를 추진했다. NAFTA 추진으로 미국의 대기업들은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미국 인권감시센터(Human Rights Watch)나 진보적인 경제정책연구소(EPI) 분석에 따르면 협정 체결 후 3개 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 1999년 멕시코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43%가 30년 전 생활수준보다 못하다고 응답했다. 대기업들은 수당을 포함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소화했다. 2000년도 임금은 1980년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노동조합은 파괴됐다. 노동자들은 연금을 빼앗겼고 사업장의 위험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했다. 현재 미국의 실질실업률은 정부 발표보다 훨씬 더 높은 18%에 달한다. 그것도 최소치다. 대기하며 시간당 일하는 노동자(Just in Time Workers)를 포함하면 28%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자본은 노동자 계급을 계층으로 분리하고 사다리를 통해 상승기회를 부여하고 있지만 소수를 제외하면 그림의 떡인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다. 미국 대기업들은 1년에 28억 달러에 달하는 로비자금을 쓴다. 조그만 도시에 수만 명의 로비스트가 몰려들면서 워싱턴의 인구는 수백만으로 늘어났다. 교육 분야에 1,190개, 제약․의료분야에 630개를 포함하여 보험, 전기, 컴퓨터․인터넷, 병원․요양소, 비즈니스 협회, 증권․투자, 석유․가스, 부동산 등에서 5000여개 기업과 기관들이 정치권에 로비를 시도했다. 이 비용은 당연히 노동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대기업들은 워싱턴에서 제일 중요한 노조파괴와 함께 저임금 노동자 사용, 제조업 일자리 제3세계 수출, 일자리 아웃소싱, 최저임금 억제를 위해 노동자들과 맞서 싸우고 있다. 2010년 6월 말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8/G20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시위대들에 대한 폭력적 진압이 자행되었다. 가난한 멕시코 노동자들은 여전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불법이주하고 있다. 멕시코 전역은 마약과의 전쟁으로 연일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NAFTA는 국가간, 기업간 자유무역 전쟁을 넘어 노동과 자본의 계급전쟁(class war)임이 드러났다. 불공정무역은 국가간에도 존재하지만 대기업과 중소하청기업,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이 투쟁에서 패배한 미국 노동자들은 시간당 1달러 정도를 덜 받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매년 2500억(약 300조원) 달러의 부가 미국노동자로부터 자본가에게 이전된다는 의미다. 자본이 노동자 임금 1달러를 12배 이득으로 자본화한다고 할 때 약 3조 달러의 이득을 취한다. NAFTA 시행 이후 15년 동안 미국, 캐나다, 멕시코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악화되었다. 역내 무역거래가 증가하였지만 이는 다국적기업이 투자한 3국간 내부 물류흐름의 증가일 뿐이다. 오히려 노동자민중에 대한 초과착취와 빈부격차가 확대됐다. 오늘날 무역은 국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무역결과인 수출과 수입을 통계로만 발표할 뿐이다. 무역이 늘어난다는 것은 생산과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이 늘어나면 노동자들에게 일자리가 생기고 소득이 발생한다. 그러면 소비도 늘어난다. 따라서 사회적 부(富)가 늘어난다는 것이 고전파 주류경제학의 무역논리다. 그러나 다국적기업과 초국적 금융투기자본이 세계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오늘날 그런 논리는 강단학파들의 낭만에 불과하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특징은 세계주식회사와 금융의 세계화다. 기업(매출액)과 국가(GDP)를 막론하고 세계 100대 경제주체 중 51개가 다국적 기업이다. 엑슨모빌 같은 석유회사는 가난한 나라 120개국과 맞먹는 매출액을 자랑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한 나라들이 공정무역을 말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세계 6대 다국적 기업(각각)의 연간 매출액을 능가하는 국내총생산(GDP)규모를 가진 나라는 오직 21개 뿐이다. 전 세계자산의 20%를 100대 다국적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이런 공룡과 같은 다국적기업들이 서로 경쟁한다. 지난 30년간 상위 20대 다국적 기업 중 6개만이 살아남았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세계다. 오늘날 무역거래는 포장만 국가간 무역일 뿐 내용적으로는 상당수가 다국적기업간 내부거래다. 다국적 기업은 전 세계에 생산기지를 두고 생산하고 판매한다. 예를 들어 미국 자동차 회사 GM이 한국에서 부품을 만들어 미국으로 보내 완성차를 만들어 이를 한국에 수출하는 경우를 보자. 한국은 부품을 미국에( 수출(미국은 수입)하고 미국은 자동차를 한국에 수출(한국은 수입)한다. 형식적으로 양국의 무역규모는 늘어난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다국적 기업 GM의 기업간 거래일뿐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질서 속에서 한국과 미국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하고 임금을 삭감하면서 다국적 기업 GM은 이윤을 발생시킨다. 불공정 무역의 핵심이다. 지금 각 국 정부들은 무역의 공정이나 불공정문제는 따지지 않은 채 오직 무역거래확대를 통한 성장논리에 빠져 있다. 노동자 탄압과 착취, 가난한 나라에 대한 수탈, 환경파괴, 빈부격차 확대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고 있다.
3. 한‧미 FTA
1998년 김대중 정권은 아이엠에프 외환위기를 빌미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이를 이어받은 노무현 정권은 동북아 금융허브국가를 내걸고 전방위적으로 FTA를 추진했다. 2006년 1월 노무현은 신년연설을 통해 FTA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그 해 2월 3일 한국의 통상교섭본부장이 직접 미국 워싱턴에 가서 한미FTA개시를 선언했다. 부시정권은 당초 북미지역의 NAFTA를 중남미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자유무역지대(FTAA)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친미독재정권이었던 남미지역에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계획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NAFTA 이래 가장 큰 규모인 한‧미 FTA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부시-노무현의 이해가 일치한 셈이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는 한‧일 FTA가 추진되고 있었고 한‧미 FTA는 연구과제로 분류했다. 한‧일 FTA는 2004년 12월까지 6차 협상을 진행하다 중단했다. 한편 한‧미 FTA를 위한 양국간 실무협의는 노무현 정권 초기부터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던 노무현은 미국방문 후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방향을 돌렸다. 한‧미군사동맹과 함께 한‧미경제동맹이라 할 수 있는 한‧미 FTA를 추진했다. 평택미군기지 이전을 밀어붙이고 미제국주의 이라크 침략에 동맹군을 파견한 것도 이 배경이다.
한‧미 FTA개시를 선언하기 전 미무역대표부(USTR) 전 대표였던 포트먼은 한‧미 FTA가 “포괄적 협상”이 될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양 국 모두 FTA를 계기로 자국 내 구조조정, 노동시장유연화, 공기업의 사기업화를 진행할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 FTA를 추진하기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통해 경제효과는 부풀렸다. 일반균형모델(CGE)이라는 요술방망이를 통해 한‧미 FTA를 시행하면 7.75%의 경제성장과 고용은 3.3%, 50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곧 수치와 분석방법이 조작되었음이 드러났다. 2006년 말 정부는 향후 10년간 10만 여명의 고용이 축소된다는 점을 실토했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을 실시하면서 국책연구기관인 건설기술연구원을 통해 친환경적이며 경제성이 있다는 용역보고서를 만들게 한 것처럼 정치적으로 조작(이를 폭로한 연구원은 징계)했다. 국가기구와 자본언론 그리고 11개 국책연구기관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했다. 정권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면서 다시 성장과 고용창출이라는 거짓선전을 펼쳐나갔다. 한‧미 FTA를 추진하기 위해 미국산소고기수입, 자동차배기가스규제완화, 영화스크린쿼터 축소, 약값 재평가 등 4대 선결과제를 미국에 내주었다. 동시에 한‧EU FTA를 슬그머니 시작하면서 한‧미 FTA 협상을 대세로 만들어 갔다. 노무현은 자신의 10%대의 지지율을 30%대 초반으로 끌어올리는데 한‧미 FTA 협상이 결정적인 정책으로 활용했다.
한‧미 FTA는 17개 분과를 통해 방대한 내용 즉 포괄적 협상이었다. 관세철폐를 통한 무역확대가 경제성장과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농업은 포기하고 제조업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을 팔아서 먹고살겠다고 했다. 이는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를 상정하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식량문제 그리고 환경을 생각할 때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대기업 중심의 경제운용은 한국의 재벌이 이미 초국적‧다국적 기업으로 변화된 상황에서 매우 잘못된 방향이라 할 수 있다. 1차 산업은 포기하고, 2차 산업은 축소하고, 3차 산업인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발상은 매우 무모한 전략이었다. 동북아 금융허브국가건설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개방이 곧 경쟁력이라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잘못된 가설을 정책으로 채택한 것이다. 금융을 비롯한 서비스, 투자자 국가제소조항, 지적재산권 등에서 미국형 FTA가 글로벌스탠더드라는 환상에서 추진되었다. 문제는 한‧미 FTA는 ‘NAFTA+알파’라는 데 있다. 오늘날 국제금융거래 중 무역거래는 5%에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은 투기적 금융거래다. 외국인 직접투자(FDI)라 하더라도 단기적 투자인 경우거나 제조업이라 하더라도 금융화가 진행될 경우 자본유치효과가 없다. 외국자본의 내국민 대우와 의무이행강제(부과)금지 등 투기자본의 자유를 보장할 뿐만 아니라 투자자(투기자본) 국가제소조항까지 담고 있다. NAFTA처럼 헌법까지 개정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는 조약이 될 수 있다. 시민단체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한‧미 FTA를 시행하려면 국내법 160여개가 개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미 FTA는 단순한 무역협정이 아니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는 한‧미 FTA는 FTA가 아니라 “낯선 식민지”라고 규정했다.
한‧미 FTA협상 개시와 함께 민주노총과 전농을 중심으로 한‧미 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를 건설하고 적극적인 반대투쟁을 전개했다. 협상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진행됐다. 집회, 가두행진, 농성, 파업 등 14개월 동안 끈질긴 투쟁을 전개했다. 8차 협상이 열리는 동안 4차례의 미국원정투쟁과 국내에서의 총궐기 투쟁으로 한‧미 FTA문제는 한국사회 최고의 쟁점으로 부상했다. 민주노총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금속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파업을 전개했고 전국적인 투쟁과정에서 구속자도 발생했다. 한‧미 FTA에 반대하면서 허세욱 열사는 분신으로 항거했다. 2007년 4월 2일 졸속으로 협상은 타결됐다가 미국의 재협상요구를 받아들였고 미국 민주당의 신통상법이 정한대로 6월 30일 서명했다. 양국 협상 대표가 협상개시를 선포하거나 서명한 장소는 미국의회 건물이었다. 우리나라 국회는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부시는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면서 무역촉진권한(TPA)에 따라 의회가 부여한 권한을 위임받아 협상에 임했다. 반면 노무현은 국민여론 수렴이나 국회의 동의 절차 없이 일방적이고 졸속적으로 협상을 추진했다.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제출한 통상절차법은 논의조차 없었다. 노무현 정권은 ‘통상독재(trade dictatorship)’를 시행했다. 2년 후인 2009년 4월 22일 한나라당 주도로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서 비준동의안이 통과되었다. 민주당이 뒤늦게 반대했지만 그들 스스로 원죄를 풀 수는 없었다. 노무현은 임기 말기에 한‧미FTA추진에 문제가 있었다고 시인했다. 당시 정책위원장을 지낸 이정우 교수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한미FTA는 ‘신기루’였다고 실토했다.
4. 노무현과 이명박의 합작품 FTA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권은 동북아금융허브(중심) 국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04년 1월 한‧칠레 FTA발효와 더불어 전방위적으로 FTA를 추진했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지난 민주당 집권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하며 많은 것을 되돌리고 있다. 그러나 FTA만큼은 매우 잘 한 일이라며 칭송(?) 한다.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정권이 깔아놓은 FTA 고속도로를 브레이크 없이 무한질주하고 있다. 2011년 4월 현재 FTA추진현황을 보면 칠레‧싱가포르‧인도 등 16개국과 협정 발효한 상태다. 미국‧EU‧페루 3개국과 서명‧협상 타결했다. 캐나다‧멕시코‧호주‧뉴질랜드‧콜롬비아‧터키 등 12개국과 협상 중이다. 일본‧중국‧이스라엘‧베트남‧몽골 등 여러 나라와 공동연구 또는 여건조성 중에 있다. 외교통상부는 FTA추진 이유로 첫째, 우리나라가 GATT와 WTO 수혜국이지만 WTO DDA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사이 1992년 EU, 1994년 NAFTA 등 지역주의가 가속화되고 있어 역외국가로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2009년 말 현재 GDP의 대외경제의존도가 82.2%에 달해 상품수출경쟁력유지나 안정적인 해외시장 확보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둘째, 능동적 시장개방과 자유화를 통해 국가전반의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경제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우리 경제가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인 발전을 통해 진정한 선진 경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주요 통상정책으로 자리 잡은 FTA를 능동적·공세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은 산업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신장시키는 주요 정책수단으로 FTA 및 이에 수반되는 무역자유화(trade liberalization)가 효과적임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FTA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게 FTA 추진의 명분이다.
외교통상부가 밝히고 있는 FTA추진 절차를 보면 정부는 2003년이래 적극적으로 FTA를 추진해왔으며, 특히 거대경제권과 자원부국 및 주요 거점 경제권을 중심으로 전략적인 FTA 체결 확대 전략을 통한 FTA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한‧미, 한‧EU FTA 비준을 위해 FTA는 이명박 정권이 아니라 민주당 노무현 정권이 추진했음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한‧미 FTA뿐 아니라 동시다발적인 FTA 추진을 통해 그동안 지체된 FTA 체결 진도를 단기간 내에 만회하였으며, 현재 FTA 네트워크의 글로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FTA를 통해 우리나라 기업의 세계시장 확보를 지원하고, 동아시아 FTA허브국가로 발돋움하려 한다면서 노무현 정권의 동북아 금융허브국가의 연정선상에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FTA 체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상품분야의 관세철폐 뿐만 아니라, 서비스, 투자,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기술표준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FTA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미국식 FTA 모델이다. 또한 WTO의 상품과 서비스관련 규정에 일치하는 높은 수준의 FTA 추진을 지향하여 다자주의를 보완하고, FTA를 통해 국내제도의 개선 및 선진화를 도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FTA를 통해 개방화, 시장화, 민영화, 구조조정, 자본규제철폐, 노동법 개악, 비정규직확대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확대하겠다는 것을 말해준다. 2004년 6월 노무현 정권 당시 제정된 자유무역협정체결절차규정(대통령훈령)을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의 통상독재와 이명박의 자본독재가 FTA라는 찬란한 합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외교통상부는 이 훈령에 따라 FTA 추진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FTA 추진과정에 각계 전문가와 업계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고 거짓을 늘어놓고 있다. 협상진행에 있어 국회의 위임이나 동의절차는 아예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비준 전 사전 검토나 심의조차 제대로 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밀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 초기인 2003년부터 적극적으로 추진된 FTA는 이명박 정권 들어서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체제를 유지하면서 지속되었다. ‘동북아금융허브국가’가 ‘동아시아 FTA 허브국가’로 바뀌었을 뿐이다. FTA는 자유무역의 기본인 상품에 대한 관세철폐를 넘어 서비스, 투자,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기술표준 등 분야를 대상으로 한다. 정부는 관변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통해 한‧미FTA를 추진하면 GDP가 6% 성장하고, 한‧EU FTA는 5.62% 성장한다고 발표했다(통계는 수시로 바뀌었기 때문에 일정하지 않음). 그러나 정부의 FTA로 인한 경제성장 예측은 생산성 증대모형을 잘못 설정했고 생산성 증대효과를 중복 추계했다. 정부 보고서 스스로 “경제모형에 기초하여 수치화된 경제적 효과분석 결과는 분석모형과 분석과정에 사용된 다양한 가정과 그것이 지니는 한계를 감안할 때 수치 자체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그 방향성과 정책 사이의 상대적 효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언급했다. 통상관계학자들이 같은 국제표준모델을 이용한 분석을 보면 예상 성장률은 한‧미FTA에서 0.08%, 한‧EUFTA에서 0.14%로 나타났다. 수십만 개 일자리가 증가한다고 했지만 이 역시 가능성이 없다. 무역흑자는 오히려 자신들의 연구결과에서도 적자로 나오자 대외비로 처리했다. 한‧EU FTA가 추진되면 관세철폐로 인한 세수는 10년 간 연평균 1.7조원 줄어들지만 생산성 증대로 인한 세수는 3.9조원 늘어나 2.2조원의 세수증대효과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GDP 5.62% 증가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0.14%증가를 가정하면 세수는 오히려 줄어든다.
5. 한‧EU FTA를 지렛대로 한‧미 FTA 비준까지
한‧EU FTA는 한‧미 FTA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한‧미 FTA를 추진하던 노무현 정권은 한‧미 FTA반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한‧EU FTA를 동시에 추진했다. 전방위적으로 FTA를 추진함으로써 FTA가 대세인 것처럼 만들었다. 당시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가 한‧미 FTA저지투쟁을 벌이자 자본언론들은 반미주의자들의 투쟁이라 공격했다. 한‧EU FTA는 2011년 4월 국회에서 통과되면 7월 1일 잠정 발효된다. 잠정합의는 국회 조약 심사권 침해다. 이 경우 한‧미 FTA비준은 속도를 낼 것이다. 한‧EU FTA에서 영문본과 한글본은 대등한 효력을 갖는다. 한‧EU FTA는 한‧미 FTA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관세철폐대상은 더 많고 일정도 빠르다. 양허표를 포함해 1,279쪽에 달하는 난해한 법률문서로 되어 있다. 직접 주무부처인 통상교섭본부 스스로 한글본에서 207개나 되는 번역오류를 범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용불일치가 드러났다. 영어본에도 오류가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외교통상위원회에서 비전문가들인 국회의원들이 이를 온전히 심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11년 4월 6일 제1차 전체회의에 이어 4월 12일 2차 회의, 4월 13~14일 제1, 2차 법안 심사소위, 4월 15일 3차 전체회의에서 안건을 의결하는 일정이다. 본회의는 당연히 도지사,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열리는 4월 27일 직후에 처리된다. 한나라당은 무조건 처리방침이고, 민주당 당론은 ‘4월에는 안 된다’는 것뿐이다. 하기야 민주당이 스스로 추진했던 FTA를 당론으로 반대하기는 쉽지 않다. 민주당이 FTA를 찬성한다면 반MB‧반한나라당을 위한 야4(5)당 공조는 허구다. 한‧미/한EU FTA가 통과되면 국제조약이 국내법에 우선하기 때문에 노동자 농민은 물론이고 중소상인들의 그나마 남아있는 모든 권리는 악화된다.
이명박 정부가 서두르고 있는 한‧EU FTA는 한‧미 FTA보다 더 많은 독소조항을 가지고 있다. 2011년 지난 4월 7일 국회에서 열린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와 한‧미FTA전면폐기를 위한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 대표단 연석회의에 제출된 <한EU FTA 10대 분야 30대 검증 쟁점>을 보면 그 피해 범위가 광범위하고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지난 4년 동안 통상관료 마음대로 만들어 온 한‧EU FTA 협정문이다. 주요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o. 통상교섭본부장과 EU집행위원회 위원으로 무역위원회를 구성하여 모든 권한 행사함으로써 국회조차 무시하는 통상교섭본부의 거대 권력기관화를 초래한다.
o. 기업형 슈퍼(SSM)를 규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에 관한 법(상생법)이 무력화된다.
o. 전기담요, 전기다리미, 전선, 퓨즈 등 안전인증기관의 정기 검사 규제를 사실상 폐지함으로써 서민안전 위협한다.
o. 자동차 안전기준을 침해한다.
o. 친환경급식을 국내농산물로만 한정할 수 없게 된다.
o. 유럽산 소고기 광우병 검역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o.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위협한다.
o. 파생금융상품을 규제할 수 없다.
o. 외환위기 시 유럽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권이 약화된다. 외국인 투자는 2008년 기준으로 미국 13.2억 달러에 비해 유럽이 5배에 달하는 63.3억 달러다.
o. 기반통신시설 투자에 대한 공익성 심사권을 침해한다.
o. 우체국의 공익서비스 기능을 축소한다.
o.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폐수배출 시설 진입규제 등이 약화된다.
o. WTO 가입 시 인정받은 농산물 관세 보호 틀이 무력화된다.
o.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지적재산권 등 재산권이 과잉보호된다.
o. 화학물질 규제, 반덤핑 장벽, 관세환급, 인증수출자제도 등 EU의 일방주의 장벽을 담고 있다.
6. FTA 저지는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2006년 초에서 2007년 상반기까지 민주노총은 범국민운동본부와 함께 한‧미 FTA 저지를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한‧미 FTA타결과 함께 투쟁동력은 지속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 가을 민주노총을 비롯한 농민 단체 대표단은 회담이 열리는 벨기에 브뤼셀로 원정투쟁을 전개했다. 당시는 한‧미 FTA저지를 위한 1년 반 동안의 치열한 투쟁과정에서 노동‧농민 등 투쟁력이 약화되었고 노무현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인해 범국본 지도부는 구속‧수배됐다. 이후 자본과 정권의 기만적인 선전공세로 인해 대중의 무관심과 한.미 FTA 찬성 여론이 높아졌다. 노동조합들은 일상 활동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으로 결합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은 한‧EU FTA를 한‧미FTA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 했고 한‧미 FTA 체결 직전에 EU와 협상을 시작하여 대중들의 무관심을 유도했다. 미국과 달리 한미동맹 등 정치군사적 관계가 없는 EU와 협상은 졸속으로 추진됐다. 당시 향후 65개국과 FTA를 확대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그나마 남아있던 반대 투쟁을 무력화시켰다. 신자유주의에 포섭된 노무현 정권 말기의 성과주의와 김종훈을 비롯한 통상경제관료들의 무모한 공로주의가 발동하여 한‧EU FTA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제 비준절차만 남았다. 청와대 지침에 따라 언제든지 거수기 노릇을 할 수 있는 한나라당이 대기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원죄 때문에 적극적으로 반대도 못하는 민주당이 엉거주춤 앉아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어설픈 야권공조에 매달려 투쟁을 방기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들어와서 광우병 소고기 수입파동과 미국의 압력으로 한‧미 FTA 재협상 과정을 거치며 논란을 거듭하는 가운데서도 아무런 감시나 반대 없이 협정문 작성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동자‧농민을 비롯한 민중의 권리와 생존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그렇게 외쳐온 국익조차 송두리째 외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재벌과 가진 자들, 신자유주의 통상관료와 보수정치세력들, 다국적 기업과 초국적 금융투기자본의 이해만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소수의 진보정당을 제외하면 야당들 역시 조건을 내걸기는 하지만 방향에서는 FTA에 찬성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민주노총은 투쟁할 의사나 여력도 없다. 민주노총은 금년 상반기에 야당과 노동법재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의석이 절대 부족한 민주당이 재개정을 이룰 수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2011년 4.27보궐선거나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권력을 잡겠다는 속셈이다. 민주당은 FTA를 추진한 정당이지 반대하는 정당이 아니다. 한‧미/한‧EU FTA가 추진되면 노동법 재개정은커녕 더 개악될 가능성이 높다. 현 시점에서 FTA문제야말로 가장 반MB전선을 펼쳐야 할 주요 투쟁내용이다. 야당과의 불분명한 공조가 아니라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반신자유주의 투쟁 없는 임금과 고용과 그리고 노동자 생존권은 없다. 나아가 노동운동의 미래도 없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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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허영구, “동아시아 허브국가의 환상 : 한‧EU FTA”, ⌜노동전선 주간정세동향 64호⌟, 2011.4
(<레프트 대구>3호 게재 글, 2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