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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 강령토론] 사노위 3인안(환경)은 '혁명허무주의 전도사' - 제4인터안(案)
혁사무당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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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5월 28일 17시 39분 59초

지난 514일 민주노총 서울본부 강당에서는 사노위 주최 강령 토론회가 열렸다. 다음은 이날 <4인터안>이 제출한 강령 해설 사회주의와 부문주의중에서 환경부분(전문)이다.

<4인터안>은 여기서 생태문제 해결은 자본주의 극복하는 투쟁만으로는 온전히 가능하지 않다<3인안>에 대해 혁명허무주의 전도사라고 규정하고, “(환경문제를) 노동자권력을 수립하지 못한 상태로도, 사회 전체의 변화가 아니라 개인적인 변화로도 그 재앙을 막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기이며, 환상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범죄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부문운동과 소부르주아에 대해 “(사회주의) 강령은 심화되어 가는 자본주의 모순 속에서 초조해하는 중간계급 쪽으로 다가가 노동계급의 야성을 잃어버리고 순화되는 강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개량주의 강령이 되는 것을 강력하게 경계한다. (혁사무당파)

 

 

 

[사노위 강령초안] 4인터안()

[해설]‘사회주의와 부문주의중에서 환경

 

자본주의는 그러한 고통과 재앙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를 철폐해내지 못한다면, 노동자권력을 수립하지 못한다면 고통과 재앙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자권력을 수립할 때, 그 고통과 재앙은 결정적으로 해결된다.”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의 이윤을 지상의 가치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환경파괴의 주범이다. 환경파괴의 가장 심각한 피해자라는 점에서 그리고 환경파괴의 원인이 다름 아닌 자본주의 그 자체라는 점에서 노동계급이 환경파괴를 종식시키는 일에서 또한 최선두에 선다.

 

자본주의 자체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먼 미래의 일이므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선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는 생태주의와 전혀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본다.

 

첫째, 이윤을 지상의 가치로 하는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것이 환경파괴를 저지하고 인류 전체의 복지를 위한 결정적인 첫걸음이다. 이것을 배제한 생활환경운동은 가망 없는 위선일 뿐이다.

둘째, 우리가 건설할 사회주의는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적 생산력 위에 기초한 사회이다.

셋째, 사회주의는 발전된 과학기술에 기초해야 하며, 끊임없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추구할 것이다.

 

생태문제 역시 계급모순으로 환원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문제에 있어서 3인안은 여성문제, 핵과 평화문제에서와 마찬가지로 혁명허무주의 전도사가 된다.

 

(3인안)해설서를 보면 처음엔 생태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철폐해야 한다.”라고 운을 뗀다.

 

그러나 그 뜻을 음미하기도 전에 바로 다음 단락에서 그러나 생태재앙은 자본주의 철폐 그 자체만으로는, 또는 생태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나 산업(; 핵발전소)에 대한 노동자통제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다.” 그리고 다음 단락에서 생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철폐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또 바로 다음 단락에서 생태문제 해결은 자본주의 극복하는 투쟁만으로는 온전히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등 거의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한다.

 

똑똑히 알아들으라고 못을 콱콱 박는다. 자본주의 철폐 투쟁과 생태문제는 별개라고! ‘생태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사회주의는 얼마나 무력한가!

환경문제의 근본원인이 자본주의이고 자본주의 철폐가 해결의 핵심적 첫걸음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훈계한다. 그것이 아니라고,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환경파괴엔 매일반이라고. 그리하여 중요한 것은 생태사회 건설이고 생태주의적 전환이라고! 우리는 끝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을 저 몽롱한 어휘들 앞에서 또 다시 납작 엎드려야 한다.

 

그리고는 총괄한다. “여성문제와 마찬가지로 생태문제 역시 노동자권력 수립 이후의 과제로 설정하는 한, 이는 당장의 생태재앙을 막는 투쟁을 먼 미래의 일로 미루는 것이 된다.”. ‘여성문제와 마찬가지로! 생태문제 역시! 노동자권력 수립 이후의 과제로 설정하는 것은 당장의 생태재앙을 막는 투쟁을 먼 미래의 일로 미루는 것이 된다!’는 것이 3인안이 우리에게 정신이 번쩍 들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노동자권력과 여성/환경 문제의 관계

 

과연 그러한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여성문제나 생태문제의 고통과 재앙을 막을 수 있는가? 여성문제나 생태문제에는 노동자권력이나 자본가권력이나 비슷비슷한 것인가?

 

4인터안은 대답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는 그러한 고통과 재앙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를 철폐해내지 못한다면, 노동자권력을 수립하지 못한다면 고통과 재앙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자권력을 수립할 때, 그 고통과 재앙은 결정적으로 해결된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도, 그 통증(병인이 아니라)을 부분적으로 경감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동의한다. 미약하긴 하지만 그 통증을 경감시키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우리는 기꺼이 그 노력을 기울일 용의가 있다. 가정과 직장 그리고 조직 내의 모든 남녀차별 관행에 맞서 투쟁한다. 그리고 에너지 절약이나 환경보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가치 있는 일들이라고 동의하고 그 투쟁을 결의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환자에게 잠깐의 통증 치료는 궁극적 대안이 아니며, 수술이 필요하다라고 말해야 한다. ‘노동자권력을 수립하지 못한 상태로도, 사회 전체의 변화가 아니라 개인적인 변화로도 그 재앙을 막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기이며, 환상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범죄이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이 부르주아 부관이 되어 하는 역할이 정확히 바로 그런 것이다.

 

 

시민운동의 탄생배경

 

3인안은 자신들이 대변하고자 하는 또는 감싸 안고자 하는 운동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계급모순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모순에 맞선 이른바 사회운동(환경, 여성, 장애운동 등)1987년 이후 한국사회에도 등장하였다. 이 운동들의 많은 부분은 계급운동과 거리를 두거나 자본과 권력의 영향력 아래 포섭되고 제도화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자본과 국가권력의 탄압과 억압성이 강화되면서 이 운동주체들은 투쟁에 적극 나서기도 하며, 그 내에 급진적·변혁적인 흐름이 형성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이에 우리는 현 자본주의 모순의 반영인 다양한 사회적 모순에 맞선 운동들과 연대하고, 변혁적 사회운동을 형성·강화하기 위해 활동한다. 나아가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연대를 강화하고, 노동운동이 사회영역에서 발생하는 억압과 차별에 맞서 투쟁해 나갈 수 있도록 활동해 나간다. (15)

 

 

그런 운동들의 실제적 탄생 배경은 소련 붕괴이후이다. 소련의 붕괴로 이른바 운동권의 사기는 곤두박질쳤다. 넓은 의미에서 자신들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해왔던 운동권은 소련의 붕괴로 소스라치게 놀라고 사기가 급격히 저하되었다. 광의의사회주의로 묶일 수 있었던 운동권은 해체되었다. 사회주의로 묶을 수 있는 범주는 오그라들었다.

 

시대착오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극소수만 진영에 남았다. 많은 구운동권은 부르주아 진영으로 투항하거나 운동에서 멀어진 일상인이 되었다. 나머지는 소련의 붕괴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달리 말해 사회주의적 전망을 가지지 않고도 운동을 할 수 있는 노동자주의운동이나 부문운동 등으로 편입되었다. ‘민중운동단체라 불리던 것이 시민운동단체라 불리기 시작했다. 체제내적 운동으로 되었다.

 

 

부문운동과 소부르주아

 

이 시민운동의 계급적 자양분은 소부르주아이다. 부르주아는 운동이 필요 없다. 삶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되어 감에 따라 극소수가 부르주아 사회로 편입되고 대다수는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는 소부르주아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경계에 존재한다.

 

그리고 양쪽에서 오는 정치적 압력을 모두 받으며 동요한다. 그때그때의 역관계에 따라 때로는 부르주아에 이끌리고 때로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이끌리면서, 양쪽 모두에 의존하며 동시에 양쪽 모두를 의심하고 경계한다.

 

그들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 소외 · 과잉경쟁 · 비인간화 · 불평등 · 환경오염 등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더불어 사회경제적으로 끊임없이 추락한다. 이 추락의 위기의식은 많은 소부르주아를 자본주의에 대해 혐오하게 하고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 중 일부가 정치적으로 더욱 급진화하며 사회주의 혁명노동에 편입된다.

 

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누리는 알량한 특권에 대한 애착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새 사회에서도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지위를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구 사회를 철폐하고 새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우여곡절들 즉 충돌, 피해, 희생 등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새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지불해야할 대가와 지금의 사회로부터 받은 고통을 저울질하기 시작한다. 대가가 지금의 고통보다 더 크다면 차라리 지금의 사회를 감내하고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매일반이 된다. 이 지점에서부터 정치적으로 후퇴하기 시작한다.

 

많은 부분은 계급운동과 거리를 두거나 자본과 권력의 영향력 아래 포섭되고 제도화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자본과 국가권력의 탄압과 억압성이 강화되면서 그 운동주체들은 투쟁에 적극 나서기도 하며, 그 내에 급진적·변혁적인 흐름이 형성되어가고 있기도 하다.”라는 3인안의 설명은 바로 이러한 소부르주아 정치역학과 일치하는 묘사이다.

 

 

소부르주아의 혁명적 중요성과 노동계급의 대응

 

소부르주아에 대해 노동계급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계급운동과 거리를 두거나 자본과 권력의 영향력 아래 포섭되고 제도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우리의 자리를 버리고 그들 쪽으로 달려갈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사회주의를 향한 분명하고 단호한 신념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 혁명의 우군으로 견인해 낼 것인가? 체제 안에 안주하려는 소부르주아의 반동성에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압착기 속에서 급진화하는 소부르주아의 혁명성에 의존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선배혁명가 트로츠키는 과학적인 분석과 현명한 대처법을 일러준 바 있다.

 

소부르주아 계급이 자신의 운명에 따라 파멸하도록 노동계급이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 이것은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 이 계급의 최상층은 대부르주아 계급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최하층은 노동계급과 일치하고 심지어는 룸펜노동자의 지위와 맞닿는다.

따라서 소부르주아 계급은 독자적 정책을 가질 수 없다. 항상 대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서 동요할 뿐이다. 최상층은 이 계급을 우로 밀치고 최하층의 억압받고 착취 받는 층은 특정 상황에서 좌로 급선회할 수 있다.

... 사람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의회 백치병 환자들이 있다. 이들은 이렇게 반복해서 외치는 것을 좋아한다.: 혁명으로 중간 계급을 무섭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극단적인 것들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 이들에게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줄 지도자가필요하다. 이개인적 또는 집단적 지도력은 개인이 되었든 정당이 되었든 대부르주아나 노동계급 중 하나만이 제시할 수 있다. ... 소부르주아 계급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계급은 이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명확한 행동강령을 가지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 이러한 신뢰감을 불어 넣기 위해서는 모든 애매모호함 우유부단함, 공허한 미사여구 등을 공동전선에서 전부 몰아내야한다. 상황을 이해하고 진지하게 혁명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프랑스 인민전선 비판)

 

 

혁명적 상황을, 명확한 혁명적 이해를 가지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지도자가 맞았던 경우 혁명이 유실되었다. 프랑스, 스페인, 칠레 등등이 그러했다.

 

우리의 강령은 심화되어 가는 자본주의 모순 속에서 초조해하는 중간계급 쪽으로 다가가 노동계급의 야성을 잃어버리고 순화되는 강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강령은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을 수 없고, 결정적 순간에는 바로 그 중간계급으로부터도 버림받게 될 것이다.

 

소부르주아 세계관의 특징은 불명확함과 체제 내에 안주하려는 경향이다. 존재의 반영이다. 다종다기하여 자기정체성을 지니고 있지 않는 소부르주아의 현재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강력을 순화(극단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하면 개량주의 강령이 될 것이다. 그 우유부단한 강령은 결정적인 순간 중간계급으로부터도 패대기쳐질 것이다.

 

부르주아와 노동계급 사이에서 동요하는 중간계급은 격변의시기 국면을 결정짓는 위치에 서게 된다. 이들의 지지를 우리 쪽으로 끌어오는 것은 성공의 필수조건이다. 그리고 그것은 애매모호함, 우유부단함, 공허한 미사여구를 버리고, “명확한 행동강령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혁명에 대한 단호한 투쟁자세를 갖출 때에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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