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에 관한 통념 하나; <세상은 한두 차례의 혁명을 통해 확 바뀐다>
⇒ ① 로또 한두번 당첨으로 인생이 확 피는 기대를 하듯이, 서둘러 무엇을 만들어 보겠다는 조급증이 찾아온다
② 그러나 거꾸로, 혁명이 잘 될 것 같지 않으면 고무신을 거꾸로 신게 된다. 영영 글러먹은 것 같으니까.
*** <첫 단계의 혁명이 결정적이고, 오래 걸린다. 두 번째 단계의 혁명은 짧게, 어렵지 않게, 전위의 지도 하에 실현된다. 즉 첫 단계의 혁명이 ‘성장-전화’한다.>
⇒ ① 첫 단계에서는 대중이 민주주의 의식이나 민족주의 의식만 품으면 된다. 두 번째 단계는 ‘전위 정당’이 대중을 잘 지도하기만 하면 된다.
②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그러니 ‘정치혁명’에 주의가 온통 쏠린다. 혁명은 모든 부문에서 벌어져야 하는데도.
③ ‘정치혁명이 관건’이라는 생각은 부르주아혁명의 관념을 성찰 없이 계승하는 것이다. 부르주아는 또다른 지배계급으로서 이미 정치혁명이 있기 전에 사회경제적으로 상승하는 계급이었다. 사회경제적 지배력을 이미 확립한 뒤에 이를 ‘정치적으로 추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사회주의변혁은 이와 전혀 다르다. 모든 지배를 종식시키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고, 정치혁명의 성공은 그 첫 출발에 불과하다. ‘정치혁명이면 만사 오케이’가 아니다.
④ 사회주의 혁명은 50-100년 걸리는 오랜 작업이다. ‘낮은 단계/높은 단계’로 나눌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공산주의 높은 원리를 추구해야 ‘동력’이 생긴다. 다만 주체역량의 발달 수준에 맞게, 높은 원리를 추구하되 ‘낮은 수준의 목표’를 내걸 뿐이다.
*** <사회주의 이행이 한두 차례 혁명으로 금세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은, ‘1국 혁명’을 전제할 때에만 그럴싸한 말이 된다>
=== 세계화된 자본주의에서 변혁도 세계 차원에서 일어나야 성사된다. 절반쯤의 나라에서 변혁의 움직임이 일어나야 제국주의와 대결할 수 있다. 스탈린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토대한 ‘엔엘피디알’ 이론은 ‘1국혁명론’이란 점에서 애시당초 글러먹은 것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변혁의 움직임이 함께 일어야 하므로, 사회주의 변혁은 ‘긴 세월’을 요하는 것이다. 여러 차례의 혁명이 거듭되거나, 큰 혁명 속에 작은 혁명들이 끊임없이 발현되거나.
*** <혁명이 아니라 ‘이행’을 사고하라>
--긴 세월, 때로는 완만한 개혁의 시기를, 때로는 급격한 혁명의 시기를 감당한다는 ‘전체 흐름’을 목표삼을 때라야 어려운 운동 지형에서도 버티는 힘이 생겨난다. 한두 차례 혁명에 일희 일비하지 않도록, (혁명과 개혁을 모두 포함하는) 더 넓은 ‘이행’ 개념을 목표 삼아야.
*** 단계론의 철저한 극복 ; 필리핀이나 네팔 같은 나라는 아직 半반봉건적 요소가 짙다. 기성 이론대로라면 ‘反반봉건 민주혁명, 그 다음에 사회혁명’이라는 2단계론을 선뜻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반봉건적인 사회라 해도 세계자본주의의 규정성이 압도적이다. 필리핀이나 네팔도 ‘사회주의 혁명의 한 흐름’을 목표 삼아야 한다. 당면 현안으로서는 ‘反반봉건의 요소를 많이’ 띤다 해도. 농촌 반봉건 운동으로서 ‘마오(쩌뚱)주의’를 넘어서야.
*** ‘전위세력이 지도하면 어떻게든 성사된다’는 속 편한 이론이 파탄난 지금, ‘대중 주체’를 사회주의적으로 북돋아야만 변혁은 성사된다. 그렇다면 ‘정치혁명, 좌파세력의 집권’에 골몰하기 전에 ‘대중 주체’를 북돋는 더디고 끊임없는 노력을 정당하게 주목해야 한다.
*** ‘공산주의 높은 원리’를 바로 지금 이곳에서 추구할 때라야, 자본주의를 끝장내는 굳은 신념의 주체들이 형성될 수 있다. 가령 군부 독재와 비타협적으로 맞선 아르헨티나의 ‘5월 어머니회’ 같은.
** ‘자기 노동력을 팔아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동등함을 추구하는 것 정도로는 변혁의 힘이 솟는 데 한계가 있다(가령 ‘비정규 차별 철폐’ 그 자체는 근대적 요구일 뿐이다. 똑같이 노동하는 데 왜 차별하느냐?)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는 점에서 동등함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근대를 넘어서는 비전이 된다. (장애인과 병자들은, 이 사회에 자기 노동을 제공한 것이 별로 없어도 존엄한 인간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더 사회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 ‘일한 만큼 먹으라’가 아니라, ‘일을 덜한 사람이라도 누려야 한다’)
* 높은 원리를 깨친 민중이 늘어나야 변혁의 주체가 형성된다. 그러기 때문에 21세기의 사회주의는 ‘인간 중심의’ ‘사회문화적 변혁이 전제되는’ ‘세계변혁을 함께 추구하는’ 그런 사회주의여야 한다.(레닌주의, 트로츠키주의는 이미 편협한 개념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主敵주적은 이미 일국의 자본이 아니라 ‘미 제국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자본주의’이고, 변혁은 세계적 사업(役事)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