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김일성 주석 탄신 99돌이 되는 날이다. 이날은 맞는 북한 주민들은 물론 남한의 많은 사람들과 세계 진보적 인류는 김일성 주석에 대한 한없는 경모의 정을 품고 뜨겁게 회고 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생존시에도 그랬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더욱 간절해지고 위인의 풍모는 더욱더 사람들의 가슴속 깊이에 절감케 하고있다.
돌아보면 역사에 이름있는 위인들, 사상이론가들은 모두가 풍부한 지식의 소유자들이었지만 김일성 주석처럼 자연과 사회에 대한 다방면적인 넓은 식견과 심오하고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박식한 위인은 일찍이 없다 하겠다.
김일성 주석은 정치와 경제, 군사와 역사, 과학과 문학예술, 후방지식 등 세상의 모든 대소사에 능통했고 그래서 김일성 주석의 접견을 받은 외국수반들과 저명인사들은 그가 정치인이든 학자이든 누구나 김일성 주석의 비범한 예지와 통찰력, 다방면적인 넓은 지식에 탄복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우주마냥 무한히 넓고 바다같이 끝없이 깊은 김일성주석의 대백과사전적 식견과 지식, 박식의 대가로서의 위대함은 김일성주석과 어느한 독일작가와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느끼게 될것이다.
1989년 9월 9일 아침, 김일성 주석은 당시 북을 방문하고 있던 독일 여류작가 루이저 린저와 함께 대동강에서 산책 겸 배를 타고 유람을 했다.
배가 청류벽 밑을 지나게 되었을 때 김 주석은 청류벽위에 있는 정각을 가리키며 저것이 부벽루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부력루는 고려시기에 영명사의 부속건물로 세워졌다면서 부벽루일대는 낮에는 낮대로 아름답지만 밤에는 그 경치가 하도 황홀해 예로부터 부벽루의 달맞이는 평양 8경의 하나로 되어왔다고 설명해주었다.
부벽루의 천하절경에 한껏 취해있던 린저는 병풍처럼 깎아 세운 듯한 청류벽을 감돌아 흐르는 대동강물을 바라보며 강물이 엄청 새파랗다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김일성 주석은 그러는 린저를 바라보며 대동강물이 청류벽 밑을 흐를때는 다른곳에서보다 더 새파래진다면서 그래서 이곳에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고 말했다.
무척 구미가 동한 린저는 어떤 전설이 깃들어 있느냐며 김주석께 다그쳐 물었다.
김일 성주석은 내가 12살 때인가 청류벽 전설을 들은일이 있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청류벽 주변에 살고 있던 한 여인이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낳자마자 어른들처럼 유창하게 말을 했다.
어머니는 너무도 놀랍고 신기해 넋을 잃고 아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아이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나는 태어나지 말아야 할때 태어났어요>
<그건 무슨 소리냐?>
<복잡한 이 세상은 내가 살곳이 못돼요.>
<그럼 어디에 가서 살겠다는거냐?>
<글쎄요…>
아이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두눈을 초롱초롱 밝히며 말했다.
<제가 이제 삼천리 강산을 한바퀴 돌아보며 제가 살곳이 어디인지 찾아보겠어요>
<아니, 네가 어떻게 삼천리 강산을 돌아본단 말이냐?>
<걱정 마세요!>
이렇게 말한 아이는 두눈을 꼭 감았다.
이윽고 눈을 뜬 아이가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 삼천리강산을 다 돌아보았어요. 나는 가는 곳마다 흔적을 남겼어요. 내가 삼천리강산을 다 돌아보았다는 흔적은 방방곡곡 집집에서 덥고 자는 이불 귀를 뜯어보면 알수 있을거예요. 나는 집집의 이불 귀마다에 내머리칼을 한오리씩 넣었어요.
어머니, 나는 이제 저 세상으로 가겠어요. 내가 죽으면 청류벽밑 대동강에 던져주세요>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김일성주석은 이야기를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부모는 아이의 소원대로 그를 청류벽밑에 던졌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이곳의 물이 새파래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김주석은 청류벽이란 이름은 절벽밑으로 푸른 물이 흐른다고 하여 그렇게 지은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청류벽전설을 재미있게 듣고 난 루이저 린저는 자기도 집에 돌아가면 이불귀를 뜯어보겠다면서 웃음을 지었다. 김일성주석은 정겹게 그를 보며 즐겁게 따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