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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의 "중문경무"정책을 논한다
설마(http://aef323ffe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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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13일 15시 49분 04초

김일성 주석의 탄신 4월15일이 다가 오고 있다. 이날은 맞는 북한 주민들은 물론 남한의 많은 사람들과 세계 진보적 인류는 김일성주석에 대한 한없는 경모의 정을 품고 뜨겁게 회고하고있다.

김일성 주석은 생존시에도 그랬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더욱 간절해지고 위인의 풍모는 더욱더 사람들의 가슴속 깊이에 절감케 하고 있다.

돌아보면 역사에 이름있는 위인들, 사상이론가들은 모두가 풍부한 지식의 소유자들이었지만 김일성 주석처럼 자연과 사회에 대한 다방면적인 넓은 식견과 심오하고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박식한 위인은 일찍이 없다 하겠다.

김일성 주석은 정치와 경제, 군사와 역사, 과학과 문학예술, 후방지식 등 세상의 모든 대소사에 능통했고 그래서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은 외국수반들과 저명인사들은 그가 정치인이든 학자이든 누구나 김일성주석의 비범한 예지와 통찰력, 다방면적인 넓은 지식에 탄복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 김일성 주석이 말한 이조의 “중문경무’정책에 대한 에피소드하나를 싣는다

김일성 주석은 언젠가 인민군 지휘성원들과 담화하는 기회에 망국 40년만에 조국을 찾고 이향 20년만에 고향을 찾았다면 우리는 조국과 고향을 위해 너무도 많은 세월을 바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망국은 순간이요 복국은 천년이라는것이 항일혁명 20년의 노정을 걸으면서 내가 얻은 하나의 중요한 교훈이었습니다. 잃기는 헐해도 찾기는 힘든것이 바로 조국이라는 뜻입니다. 순간에 잃은 조국을 찾느라고 수십년, 지어는 수백년의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준엄한 이치입니다”

김일성 주석은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200년 만에 독립했다는 것은 잘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300여년, 알제리는 130여년, 스리랑카는 150여년, 베트남은 근 100년만에야 각각 나라의 독립을 성취할수 있었으니 망국의 대가란 실로 얼마나 비싼 것인가, 그래서 나는 지금도 종종 젊은 사람들에게 조국을 잃으면 살아도 죽은 목숨과 같다, 망국노가 되지 않으려거든 나라를 잘 지키라, 나라 잃은 설음으로 통곡하기 전에 조국을 더 부강하게 하고 막돌 한개라도 더 주어다가 성을 높이 쌓으라고 말해주곤 한다며 이조시기에 실시했던 “중문경무” 정책에 대한 설명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나라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조 봉건통치자들은 “중문경무”정책을 실시하면서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는데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중문경무”라는 말은 문관을 중요시하고 무관을 경시한다는 뜻인바 그들은 갓쓰고 당나귀를 타고 다니면서 술이나 마시고 시나 쓰는 문인들을 양반이라고 하여 높은 직위에 등용하고 군인들은 천한 사람으로 홀시했다, 무관들을 내쫓고 문관들이 올라앉아 쓸모없는 봉건유교도덕만을 숭상하면서 자기것은 다버리고 남의것을 흉내 내는 놀음도 했다, 이씨왕조가 그런 정책을 쓴것은 민중을 무서워하고 정권을 빼앗길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조 최초의 왕이었던 이성계는 무력으로 고려왕조를 뒤집어 엎고 정권을 탈취한 다음 누가 또 무력으로 자기를 내쫓고 정권을 빼앗을것 같아 늘 전전긍긍했다.
그는 민중이 무장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될수록 군대를 적게 두었으며 또 군인들을 천시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나라에서 군대는 극도로 쇠약해지고 변변한 무기 한자루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이조 말기에 이르러 통치자들이 정권쟁탈에 눈이 어두워 당파싸움만 일삼고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는데 아무런 관심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일제에게 나라를 먹히고 말았다.

일본은 “명치유신”을 한다음 급속도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침략무력을 강화하는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썩어빠진 봉건통치자들은 현대적 공업을 발전시킬 생각은 커녕 술만 마시고 시나 읊으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래서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때 그 놈들은 5연발총을 가지고 쳐들어왔는데 조선사람들은 화승대밖에 없었다.
화승대라는것은 총에다 화약을 다져 넣고 불을 달아 한방 쏘고는 또 화약을 재워 불을 달아서 쏘는 그런 총이었다. 5연발총을 가지고 쳐들어오는 적들을 화승대를 가지고 어떻게 막아낼수 있었겠는가, 만일 그때 우리나라에서 병기공업이 발전되어 국민들에게 좋은무기를 메워줄수 있었더라면 일제가 우리 나라를 침략하지 못했을것이다.

그러나 부패 무능한 봉건통치자들은 국민들의 높은 애국적 열의를 보지 않았으며 나라를 방위하기 위한 무기하나 만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침략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고 우리 민족은 수십년 동안이나 식민지노예생활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마친 김일성 주석은 일꾼들을 둘러보며 힘줘 말했다.
지금 미국놈들이 우리를 먹어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 있지만 우리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민이 무장을 하고있기 때문에 먹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끝까지 군사를 중시하고 군대를 강화해야 한다 …

김일성 주석의 사상과 노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그대로 이어졌고 북은 선군정치에 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이 일관되게 견지해온 총대중시, 군사중시사상은 선군정치의 기초이자 출발점이다, 총대위에 민중자주위업의 승리가 있고 민족의 자주독립과 번영도 있다는 것은 김일성 주석이 밝히고 역사에 의해 그 진리성이 확증된 혁명원리이자 혁명법칙이다, 선군정치는 김일성 주석의 총대중시, 군사중시사상과 노선을 계승하고 변천된 정세의 요구에 부응해 심화발전시킨 우리시대의 유력한 정치방식이라고 …

김일성 주석은 외세의 간섭을 많이 받아온 작은 나라일수록 더욱더 자주적인 입장을 튼튼히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석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해나가고 있다.
북의 민중에게 있어서 선군은 그대로 투쟁방식이며 생활신조다.
휴전이후 반세기 동안 지속되는 긴장과 대립, 그리고 사건의 연속 속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되지 않는 것은 한국정부나 미국이 잘해서가 아니다. 그 해답은 김정일 위원장과 북사회가 가지고 있다.

과연 무엇이 <세계제일>이라 자처하는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으며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아내고 있는것인가. 바로 이것은 선군의 힘이다.

미국은 북을 상대로 대화도 해보고 위협공갈도 해보고 무시도 해보았지만 항상 패배의 쓴맛을 보아야 했고 영갈피를 못잡고있다.

4월26일경에는 카터 전대통령이 또다시 북을 방문한다고 한다. 그가 왜 또 북행길을 택했을가?

북이 미국의 전쟁위협, 제재소동에 당당히 맞서나갈수 있는것은 자신을 지킬수 있는 힘, 든든한 군사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진다. 북한의 선군정치가 없었다면 조선 민족은 또다시 전쟁의 참화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시각 북의 선군의 힘이 강위력하기에 한반도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결국 선군은 자주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려는 조선 민족 모두에게 생명줄로 되고 있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사상, 총대중시노선이 민족의 평화와 우리의 생명을 지켜 주고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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