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보이는 창을 열며
두 달에 한 번 <삶이 보이는 창>을 연다. 줄여서 <삶 창>이라 부른다.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여파로 한창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던 때인 1998년 초에 창간했다. 벌써 2011년 3·4월호로 79호 째다.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하는 일이 없다. 그저 두 달에 한 번씩 배달되는 책을 열심히 읽는 일 뿐이다. 명색이 노동운동을 말하고 현장을 말하면서 구석구석 투쟁 현장이나 노동자들의 삶에 밀착하지 못한 나에게 삶 창이 전해주는 얘기는 나를 게으름과 태만에서 일깨운다. 또 하나 내가 애독하는 월간지인 <작은책>과 함께 나는 매달 <삶이 보이는 작은 창>(작은 창)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는 셈이다.
이 번 호 삶창 표지를 넘기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밑에서 농성중인 김 진숙 지도위원을 지키는 이용대 대의원이 모닥불 앞에 앉아 있는 사진이 나온다. 중간에 ‘앵글로 보는 세상’에서는 기찻길 옆 풍경을 담은 신대기의 글과 사진이 60·70년대 풍경처럼 친근감을 더해 준다. 글 차례를 보면 첫째, 살아온 풍경, 살아가는 이야기, 둘째, 일터에 햇살을, 셋째, 특집/내 인생의 아름다운 서재, 넷째, 연재, 다섯째, 르포가 간다 등 다섯 편으로 구성됐다.
“살아온 풍경, 살아가는 이야기”에는 김 시형의 아기 젖을 먹여야 할 공간과 이해가 부족한 세태를 담은 ‘아기는 식사 중’, 버스노동자 박 광수의 ‘버스노동자, 오늘도 달린다’, 조정숙의 ‘가슴으로 낳은 큰 딸’, 청소년 인권행동가 이 예반의 ‘고등학교를 거부한다’, 아이들과 엄마의 사이를 다룬 김 수진의 ‘김치 찜이 건넨 옐로카드’, 조혜원의 ‘피임 권하는 사회’ 연우무대 단원 안 석환 얘기를 다룬 손 세실리아의 ‘그 남자의 포옹’을 실었다.
“일터에서 햇살을”에서 빛 좋은 개살구인 복지논쟁을 다룬 문재훈의 ‘노동자風/상향평준화? 상향평준화?’, ‘청년실업시대를 풍자한 조성주의 체험기 ‘좌표 잃은 청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다룬 산업의학과 의사 김현주의 ‘하청업체의 어려운 점’, 귀농 10년차 정은미의 ‘소농으로 살아남기’, 간호사 얘기를 취재한 박지연의 ‘의사와 환자 사이’, 전주버스 파업 80일의 울분을 다룬 이혜정의 현장 르포 ‘왜 버스 안 와요?’를 실었다.
“특집/내 인생의 아름다운 서재”에서는 전 언론노조위원장을 지냈던 신 학림의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사회과학서적으로 의식화 되었던 청년시절의 지적편력이 끝나고 인생의 서재에 시가 찾아왔다는 이 세기의 ‘내 인생의 서재’, 김수영 전집(민음사, 1981)에 실린 시를 소개한 혜화동 책방 ‘이음’의 일꾼인 김 한수의 ‘바로 지금, 여기에서, 무조건’,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풀어 본 시인 박 시하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혁명에 가담하다’를 실었다.
“연재”에서는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권태식의 ‘화병인가요?’, 비정규시대의 재무설계를 소개한 이민정의 ‘목적에 맞춰 저축하기’, '경계를 넘어' 회원인 까말로의 ‘첫 번째 큰 산을 넘은 이집트 코샤리 혁명: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 걸판지기 유랑극단 오 세혁의 ‘해야 되는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 재일동포 3세의 첫 한국 방문기 오 양희의 ‘재일동포 아리랑: 한국에서 정체성을 생각하다’, 철학·논술연구자 김경윤이 들려주는 8살 때부터 <논어>를 줄줄 외웠다고 하는 ‘왕충’의 동양철학의 이 한 마디,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 뿐‘, <파업>, <황금이삭>, <경성트로이카>, <이 현상 평전>을 펴낸 소설가 안 재성이 독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본주의 파시즘을 다룬 사례 ’옛날 잡지를 펼치다: 늙은 염소를 잡아라‘ 등이 실렸다.
“르포가 간다”에서는 르포작가 이선옥이 만난 ‘사람, 사람들, 계급을 삶으로 배운 열아홉 소녀 ’공기‘를 만나다 : 우린 ’44만원 세대‘예요’, 역시 르포작가 안 미선의 ‘르포, 여성인권을 말하다, 홍대 청소노동자 노문희씨의 이야기: 우린 꼭 승리해야 해요’를 실었다. 빈곤한 아동과 여성이 사회에서 제일 약자라고 말하는 ‘공기’와 고상한 학문과 이성을 말하는 대학에서 청소노동자들에게 하루 식대 300원을 지급하며 착취한 얘기들까지 <삶이 보이는 창>은 노동자의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의 이웃을 들여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