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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간 한 시대'에게 바치는 진혼곡
연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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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06일 13시 17분 21초
 


1. 중남미에서 얻어야할 성찰 거리

베네주엘라 개헌문제는 세계적 계급지형의 첨단을 좌우하는 문제이지, 단순히 먼 나라, 1국의 문제가 아니다.

원인과 교훈 찾기가 긴요하다. 흔히 ‘결정적 원인’이라 칭하는 것은

‘그것만 아니었어도 성사되었을 터’인 지점을 가리킨다.


그런 뜻에서 개헌 부결의 결정적 원인은 ‘미국의 공작’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선거는 ‘도무지 패배할 것 같지 않았던 일을 패배’한 셈인데,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60여 %의 가결’을 낙관하던 것이

 점점 줄기는 했어도, 선거 하루이틀 전날까지만 해도

54%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그러니 이는 ‘막판 변수’가 작용한 셈인데,

 차베스의 측근이 ‘개헌 반대’로 돌변한 것이 상당하게 파장을 일으킨 것과

또 하나는 콜롬비아 반군의 인질 사태에 차베스가 ‘중재’를 서는 과정에서

 “응? 차베스는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인질사태나 일으키는) 과격세력 콜롬비아 반군과 한 패거리 아냐?”하는

악인상이 중간계층에게 유포된 것이 ‘막판 변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콜롬비아 사태는 당연히 미국의 공작이고,

 미국은 콜롬비아 국가를 움켜쥐고서 중남미에 개입해 왔다.

 이번 개헌 관련해, 미국은 우익세력쪽으로 800만 달러를 뿌려서 공작해온 것이

 들통이 났다고 한다. 하여튼 그 결과로 ‘재 뿌리기’가 일정하게 먹혀든 것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이 일과 관련해서는

‘결정적 원인’이라는 개념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 보인다.

 왜냐면 ‘그럼 차베스가 가까스로 51%의 지지를 얻었을 경우, 희희낙락할 일이었겠느냐?’는 질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반대파는 ‘겨우 그런 지지밖에 못 얻느냐’면서 흔들어 대기를 계속할 것이고,

 실제 3분의 2에 육박하는 예전의 지지율에 비해

51%는 ‘적신호’를 말해주는 것이다.


 <딴 면을 보자면, 이것이 ‘결정적 패배’도 아니다(그러니까 ‘결정적 원인’이 아니다). 

몇 년 뒤 대열을 다시 추슬러서 재기할 수 있다.

 어찌 보자면 ‘미리 맞는 매가 낫다’고,

주체의 허술한 부분에 대해 이 실패를 통해 재정비하고 갈 수 있다면,

 가결된 뒤 건성으로 일을 진행하다가 나중에 뒤탈을 맞는 것보다

 차라리 더 나을 수 있다.> 


우익세력이 (미국의 엄호 하에) 갖은 일을 다 벌였지만

그들은 지난 선거에서 자기들이 얻은 표 460만표를 다시 얻었을 뿐이다.

우익세력의 지지가 늘어날 일은 없다.

문제는 그들의 ‘재 뿌리기’로 차베스 지지층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고,

그 결과 ‘기권’이 대단히 늘어났다.

 우익은 100% 동원된 반면, 차베스 좌익세력은 동원에 크게 실패했다. 왜?


** 차베스정권의 개혁조치들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지주들의 사보타지로 기초 생필품 부족이 계속되고,

여전히 과두세력 쿠데타 세력이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어

일종의 ‘의욕 감퇴’가 일어났다.

우파 지주들은 여전히 농민운동가를 살해하고...

 기층 민중은 기득권세력의 권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행동에 목말라 하고,

그래서 차베스지지 행동을 열심히 벌였지만

 변화가 실감되지 않는 데서 ‘피로 증후군’을 보였다.


둘째로, 차베스 세력 내 기회주의적 부분들이 준동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성찰되어야 하는데,

단순히 차베스를 지지한다는 것과 사회주의를 수용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인데, 차베스 세력은 이 차이를 가볍게 여겼던 것이 아닐까?


 “차베스는 좋아하지만,

사회주의 되면 내 재산을 뺏어간다는데 그것은 싫다”고 반응한 사람들이 확인된다.

“나는 사민주의, 민족주의만을 주장한다.

그러니까 사회주의는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국가 지도층 중에도 꽤 있었다.

가령 차베스의 측근으로 국방장관까지 지낸 ‘바두엘’이 개헌 부결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는 사민주의 이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며

다음에 ‘대통령’이 되고싶은 정치적 야심도 있었다.

바두엘은 어떤 형태로든 미국과 우익세력과 깊은 교감 속에서

차베스 반대의 선두에 섰던 것으로 보인다. 



** 그렇다면 어떤 실천적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사회주의로 나아가기에는 아직 주체세력(활동가, 대중 둘다)에게

 채비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레닌의 불행’과 좀 다른 면의 성찰 거리를 떠올려야 한다.

 1917년 레닌은, ‘당’ 위주로 가면서

‘소비에트’가 솟아오르는 것을 눌러버렸다.

이때부터 이미 현실사회주의는 빗나가기 시작했다.


이와 다른 방향에서, 베네주엘라의 활동가들 중에는 약간의 편향을 띤 사람들이 있었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베네주엘라의 변혁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정당들은 별로 구실을 하지 못했다.

 바리오 빈민지역의 (계급적으로 미분화된) 민중들이 주된 주체로 나섰다. 그래서 이들을 주체로 세워서 콤뮨사회의 길을 열 ‘주민평의회 건설의 대대적 지원’이

이번 사회주의 개헌에서 핵심이 되는 내용이기는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개헌 가결’을 지켜낼 정치적 역량이 불충분했음이 드러났다.

 주민평의회는 주민들의 자치능력을 높여서 ‘주체 형성’에는 큰 구실을 하지만,

당장의 정치투쟁에 부대로 나서기에는 역부족이다.

 한편으로 이 역할을 맡을 ‘사회주의 연합당’을 서둘러 만들기는 했지만 아직 ‘속 빈 강정’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 연합당을 대중의 정치화 통로로 만들겠다며 500만명을 조직해낸 의도는 참신했으나, 아직 충분히 정치적으로 단련된 주체는 되지 못했다.

개헌찬성이 440만이었으니 연합당 당원들조차 기권이 많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변혁과정에는 한편으로 주민평의회가,

한편으로 대중을 정치 주체화하는 정당이 ‘쌍끌이’로 나서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주민활동가들 중에는 ‘주민평의회면 된다. 사회주의연합당에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들어가 있고, 믿을 게 못 된다’고 불신을 드러낸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2. 프랑스에서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자 파업이 불과 며칠 만에 막을 내렸다. 인터넷에 오른 어느 유럽 좌파의 ‘성토문’에 따르자면,

사르코지 정부가 몇 달전부터 ‘노조 상층부’ 사람들을 자주 초대하여

 화기애애한 비공식 대화를 나누고 한 노력이 빛을 보았다고 한다.


사회당은 아예 정부와 각을 세우지도 않았고(사르코지 집권후, 그쪽으로 몰려간 사람도 많다고 한다),

트로츠키주의정당인 LCR과 LO도 사실상 ‘개량주의 정당’으로 구실하였으며

노조 간부들은 매수당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파업’에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이

60%를 넘게 형성되었다는 구실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파업 시늉만 벌이는 것은 노동자 대중을 우롱하는 일이다.


노조들은 ‘연금’ 문제는 포기하는 대신,

다른 단체교섭에서 실리를 따내겠다고 둘러대지만 한번 밀리기 시작한 싸움이 다시 잘 되겠는가.

파업이 종료될 무렵, 어디에서는 노동자들의 과격행위가 있었다고 하는데

‘야합한 지도부에 대한 분노’의 표출로 짐작된다.

이태 전, ‘청년연수법안’ 저항싸움을 힘차게 벌인 것과는 양상이 너무나 달라졌고, 

노동운동의 방향을 어디로 뚫어가야 할지, 프랑스 노동운동에 만만치 않은 과제가 제기되었다.       


3. 삼성 사태, 대안이 무엇인가?


 사회운동 세력이 무기력의 늪에 빠지다 보면, 커다란 사태가 일어났는데도 둔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삼성 사태가 바로 그러하다.

 ‘이 사태는 미 초국적 자본의 입김이 배후에 작용한 것’이라고 말하는 데 대해,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물론 직접적으로 폭로된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미 분명히 사실로 드러난 것’만 갖고 세상에 대처하다 보면, 늘 뒷북을 치는 신세를 면할 수 없다.

과감하게 ‘추리’해야 할 때에는 추리를 해야 한다.(대학 학술논문을 쓰는 사람들은 이것을 학술논문에서 할 수 없고, 자꾸 그런 글만 쓰다 보면 생각도 그 틀 안에 갇혀버린다)


그런데 이 추리를 ‘음모론’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한참 빗나간 비판이다.

‘미제 음모론’이란, 미제국주의가 ‘전지전능한 존재’라서

 <오만 일>에 다 참섭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지(...미국정부나 공안기관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서, 그들의 의도대로 모든 것이 좌우되지는 않는다...),


단지 ‘직접적 증거가 없이 추리하는 것’을 모두 음모론이라 부르면 곤란하다.

가령 최근 버마 군부의 폭압 사태와 관련해서 북한 추종파의 글 중에 ‘미국 음모론’이란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 지배세력은 버마에 대해 별다른 ‘이해관계’가 없고, 그러니 별로 개입하지 않았으리라고 봐야 옳다.

이와 달리, 삼성 사태에 대해서는

미 초국적자본에게 엄청난 이해관계가 있다.

아이엠에프때 단행하려고 했던 ‘주주 자본주의로의 제도적 전환’이 삼성 재벌이 버텨오는 바람에 불완전하게만 진행되었는데,


이제 그 마지막 걸림돌이 제거되는 셈이라는 말이다.

삼성이 이렇게 뚜드려 맞는데도,

왜 보수 언론 중에는 삼성을 강하게 편드는 목소리들이 나오지 않는가?

이것도 심상치 않게 주목할 일이다. 삼성사태를 들고 나온 목소리가 결코 만만한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해준다.


‘투명하고 깨끗한 자본주의로 가자’는 말만 되풀이하게 된다면, 또다시 부르주아세력의 들러리 노릇을 하게 된다.

 민노당이 ‘삼성 특검’ 도입하는 데 앞장섰는데,

 그 차원에 머물게 된다면

 재주는 곰(민노당)이 넘고, 열매는 뙤놈(미 초국적자본)이 챙겨가는 불행을 막을 수 없다.


 예전에 대우가 무너질 때, 노동운동 내에서 막판에 어떻게든 투쟁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활동가들이 ‘대우자동차를 공기업화하라!’는 주장을 내걸자고 했다.

 동료들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하다가(대중이 선뜻 수긍할까?)

 우여곡절 끝에 채택되었는데,

주장이 과격해짐으로 하여 탄압도 더 받았지만,

 주장이 아주 묵직해짐으로 하여 저쪽이 ‘대접하는 것’이 달라졌다고,

 당시를 경험한 활동가들은 회고한다.


우리 운동에서는 이미 ‘자본을 국유화/사회화하자’는 업그레이드된 운동이 나온 적 있고, 결과도 긍정적이었다(대중들에게 널리 이 사실이 공유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면 ‘삼성 특검’ 그 다음의 대안이 나와야 한다.


삼성 재산을 나라에서 몰수하고, 공기업화하라!!

이미 외신 보도에서는 “삼성이 몇 개 그룹으로 쪼개질 것 같다”고 예측이 나온다.


외국자본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이미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삼성을 공기업화하더라도, 덩치가 너무 커져서 몇 개 그룹으로 쪼개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데 대해 자본가들의 의견을 기꺼이 수긍한다.


이 제안이 지금의 역관계에서 실현되지 않는다 해도, 문제들이 앞으로도 터져나올 터인데, ‘어느 방향이 옳은지’ 지금부터 그 문제에 대해 ‘다른 대안’을 제시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대안들이 꾸준히 공유될 때,


우리는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자본주의를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대책 없는 짓’이라는 대중적 정치적 각성을 높여낼 수 있다.

이런 의제 제기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뜻에서

‘사회주의 추구활동은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3. ‘민주화’ 시대는 저물었다.

 

 한 시대는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주체세력이 흥할 때 일어나고 망할 때 더불어 소멸한다. 87이후 이른바 ‘민주화’ 시대는 정치영역에서 보자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시대였다. 반독재 민주화 세력의 ‘자유주의 부르주아(개혁) 분파’들이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일으킨 진보세력은 ‘우리는 개혁파들과 다르다’고 차별성을 대단히 강조했지만 사실 민노당 주류는 여전히 ‘민주/반민주 구도’를 미련처럼 움켜쥐고 오지 않았는가. 대중에게는 객관적으로 ‘한 통속’으로 보인다.

 그리고 개혁파의 상승에 덕을 입어 더불어 상승했다. 그러니 몰락할 때도 함께 몰락한다.

 지금의 범여권은 1등은 고사하고, 2등으로 턱걸이할지도 유동적이다. 호남표조차 다 붙을지 알 수 없다.

그나마 ‘대선’은 밀고갈 구석이 많지만,

‘총선’은 범여권에게 더 불리하다.

 ‘보수 양당체제의 안정된 2등’을 희구하겠지만,


‘불안정한 2등’ 또는 ‘형편없이 줄어든 3등’으로 갈 가능성이 훨씬 높다. 명박이당과 회창이당이 대부분을 독식하는 ‘일원론적 구조’로 간다면

 우리 정치지형이 훨씬 오른쪽으로 옮겨 앉는 것이고, 이른바 ‘민주화’ 세력에는 조종이 울린다는 말이다.

 민노당도 ‘5% 얻으면 그나마 총선에서 해볼 건덕지가 있다’고 당관료들은 여전히 환상을 유포할 터이고,

 총선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그 환상이 일정하게 유지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10%를 넘어서야 미래를 말할 수 있다”는 정치적 상식을 술며시 접어버리고서 눙치는 어떤 이야기도 이미 ‘죽은 언어’다.


누가 죽었는가? ‘민주화’ 세력이 죽고, ‘운동권’이 죽었다(‘운동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공안기관에서 만들어 퍼뜨렸다).

개혁세력이 죽고 진보세력이 죽었다.


 이미 운동권 인사 중에 명박이 캠프를 서성거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대학시절 이미 학생운동을 통해 (좁쌀권력이라도) ‘권력’의 맛을 알게된 수많은 사람들은 차라리 운동을 은퇴하는 것이 운동을 돕는 일이다.

‘386에 대한 비판’은 열우당에 얼씬거린 몇 사람에게만 해당할 일이 아니다. 운동단체에 오래 붙어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더러운 냄새가 더 진동한다. 어디에도 아직 ‘주체’는 없다.

 

길은 어디 있는가. 옛 그리스의 오이디푸스는 반인륜의 주인공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게된 뒤에 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뒤 여러 나라를 ‘비참한 인간 쓰레기’로 떠돌아 다녔다. 그런데 그런 비참한 운명을 겪은 사람에게는 어떤 신통력이 있다고 소문이 났는지,


여러 나라에서 그를 손님으로 초청했다. 그 초청 소식을 들은 오이디푸스가 반문했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버러지보다도 못한 존재가 된 내게 ‘어떤 것’이 되라는 말인가요?”


우리는 이미 아무 것도 아님(nothing)을 속속드리 확인하고 체험한 뒤에야 비로소 어떤 것(something)이 될 수 있다. 근대 사회에서 우뚝 설 주체는 그 죽음의 과정을 겪고서야 가까스로 성립한다.


사회운동에 대한 자부심과 자랑을 버팀목으로 하여 살아온 사람은 그 자랑과 자부심을 죽이지 않고서는 다시 자신을 세울 수 없다. 죽어야 산다.

울려라. 弔鐘조종을 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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