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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시위운동, 제대로'들' 파악하고 있습니까?
사회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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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08일 21시 23분 11초

 

* 중동의 시위 사태, 정말 제대로‘들’ 판단하고 있습니까?

 

중동의 정치적 격변 사태가 연일 신문방송을 장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회운동 노동운동 단체들 속에서도 여러 개의 논평이 나온 것을 읽어보았다. 그 소감을 우선 말씀드리자면, “진보변혁 운동 진영의 안목과 판단력이 참으로 낮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요즘 민주노총 위원장이 ‘노동운동이 사회변혁에 복무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어느 기사에서 읽었다. 이렇듯 ‘변혁으로 나아가자’는 공감은 넓어져 가는 것 같은데, 그렇게 공감이 넓다는 것과 달리, 사회변혁을 감당할 실력과 안목들은 따라가지 못하는 듯 싶다. 이 글에서는 그 부족한 안목에 관해 몇 가지만 짚는다(문건을 낸 어디어디를 특정하여 비판할 생각이 아니므로 논점만 약간 짚는 데 그친다).

 

1. ‘혁명’이란 말을 함부로 남발한다 : 운동단체에서 나온 글들뿐 아니라, 한겨레 경향과 심지어 조선중앙까지 ‘혁명’이란 말을 참으로 남발한다. 가히 ‘혁명의 시대’라 아니할 수 없다. 민중이 들썩거리는 것이 기분학적으로 흐뭇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분에 따라 세상을 단정짓다 보면 큰 코를 다치지 않겠는가? 일간신문이야 ‘대충 아무렇게나’ 떠들어도 (무책임하게) ‘그러려니’ 넘어간다고 치자. 사회를 진짜로 바꾸겠다는 운동단체들은 사태를 과학적으로 파악해야 현실 변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런데 다들 들떠 있다!!!!

 

집권자만 쫓아내면 혁명인가? 그런 용어법은 정말로 통속적인 용어법이고, 그렇게 ‘혁명’이라 쉽게 추어줘서는 시간이 조금 흐르고나서 쓰디쓴 실망감이 망치처럼 돌아와서 우리를 칠 것이다.

419혁명도 단지 이승만만 쫓아냈다 해서 ‘혁명’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자유당 정권도 쫓아내고 최소한도로 젊은층, 대학생층이 정치적으로 활성화되었기에 정치변화가 좀 미흡하기는 해도 ‘혁명’이라 추어주는 것이다. 516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방에서는 중고등학생이 거리를 휩쓸며 ‘혁명하자’고 외쳤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집트에서 (정치)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하려면, 비단 무바라크만 쫓아낼 뿐 아니라 지배세력 사이에 균열을 내고, 지배세력 상당수가 축출될 정도여야 한다. 지금 이집트의 정치 저항이 몇 해 뒤라도 혁명으로 발전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그러므로 역동적 변화의 싹이 텄다고 말은 할 수 있으나) 여지껏 진행되어 온 것으로는 집권자 축출을 넘어서 집권정당 축출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위 주체도 그렇게 투철한 프로그램과 목표를 갖고 있지 못하고(주도적 시위운동 그룹은 그동안 미 대사관과 돈독하게 지내면서 시위를 벌여 왔다....), 지배세력은 아직 강성하다.

 

==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무바라크 축출 사태에 미국과 유럽 정권들이 혁혁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시라. 세계 지배체제를 꽉 움켜쥐고 있어야 권력과 패권을 누리는데 미국, 유럽 지배세력이 (점점 과격해지는) 중동 아랍지역 민중을 어떻게 ‘관리/대응’할지 노심초사하지 않았겠는지를! 차라리 무바라크를 날려서 민중의 분노를 가라앉혀주는 것이 친미 식민지자본주의 정권을 유지하는데 더 이롭다고 판단하지 않았겠는가? 중동 민중 다독거리자는 이야기는 미국 외교의 노(老) 브레인인 브레제진스키가 이미 갈파했던 바다. 이것을 ‘예방 혁명’이라고 하는데 무바라크의 축출에는 이집트 민중의 노고가 구실했지만 한편으로 미 제국주의가 역할한 바도 톡톡했음을 직시할 일이다(물론 예방혁명이 필요할 정도로 이집트 민중이 급진화되었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2. ‘혁명 주체세력’에 대한 환상을 품지 말라 : ‘독재 반대’ 뒤켠에는 험악해지는 민생고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단지 ‘민생고를 해결하라’고 한다 하여 그 대중투쟁이 혁명으로 발전하리라 쉽게 기대하는 것은 매우 경솔한 판단이다. 투쟁하는 대중에게 더 높은 전망과 과녁을 체계적으로 제시할 조직된 운동세력이 그 대중의 대열을 선도할 때라야 혁명은 가까스로 움터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실력을 갖춘 운동세력이 세계 어디에도 뚜렷하게 형성돼 있지 못하다는 엄중한 현실을 사람들은 돌아볼 줄 모른다.

리비아에서 ‘혁명 주체세력’을 기대하는 이야기들이 가장 최악의 것이다. 어떤 혁명이냐? 미국과 유럽 지배세력이 도와주는 혁명인가? 문건들을 보면, ‘그것은 아니라’고 한다. 현실에서는 반란군들을 미국과 유럽 지배세력이 돕고 있는데? 반란군 지도자들 상당수는 미국의 군사개입을 요청하고 있는데?

 

리비아에서 ‘지금 혁명이 일어나고 있고, 그 혁명은 제국주의의 개입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사태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쳐다 보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대목만 바라보는 격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

물론 반란군 중의 <일부>는 ‘미국 유럽의 군사개입,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도 소박한 반감, 부패 기득권세력에 대한 반감에서 시위를 시작했지, 외세를 등에 업고 무엇을 도모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뿐이지, 그들의 시위 운동이 혁명적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혁명이라면 ‘그럼 외세에 대해서는 어찌 답해야 하나, 대안세력은 어떻게 세워야 하나’하는 플랜이 있었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금 반란군은 카다피가 축출되기를 원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은 그들의=반란군 지도부의 소망을 실현해 주기 위해 열심히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반란군은 한때 카다피 정권에 몸 담았던 친미 부르주아들이 이탈하여 그 대오를 이끌고 있고! 서방의 군사개입과 무관한 ‘반란’이라는 것은 ‘네모난 동그라미’가 형용 모순이듯이 모순된 생각이다.

 

줄곧 저항을 생각하다 보면 민중이 저항을 하기만 해도 그것을 ‘혁명’으로 추어주고 싶어진다. 그 부분이 제일 소중하고, 곁다리로 끼어드는 다른 부분들은 이 저항운동과 무관하다고 강변하고 싶어진다. 아마 소박한 마음으로 시위를 시작한 부분들은 애초에 ‘무장 봉기’를 도모할 생각도 없었고, 반란군의 ‘진격’을 서두를 마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무력으로 대결을 벌이는 식으로 사태가 흘러갔고, 카다피를 축출하느냐, 마느냐 두 길만 남게 되었다. 카다피 축출을 위해서는 미국, 유럽 제국주의와 손잡는 쪽으로 가야 하고, 그쪽이 저항세력을 ‘주도’한다. 그런데 이것이 혁명인가? 카다피 축출 외에는 달라질 것이 별로 없고, 오히려 외세의 입김만 잔뜩 받아 안게 될 이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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