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HOME | 로그인 | 회원가입 | 자료찾기
 
   
 
 
 
 
리비아 민중은 패배했다. 그러나...
진달래
3003 1184  /  167
2011년 03월 01일 14시 31분 14초

 

1. ‘나눔문화’와 ‘다함께’가 카다피를 규탄하는 정치행동을 벌였다. 그런 행동까지는 아니지만, 리비아 상당수 민중이 ‘독재 반대, 카다피 축출’ 시위를 벌인 것을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이른바 ‘민주진보 시민동네’에 많았다. 그 저항을 <이해해줄 구석>이 있지만 그 저항에는 수상쩍은 구석도 있고, 현실의 결과는 <그 수상쩍은 부분>에 의해 규정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선뜻 카다피 규탄 대열에 나설 수 없다. 오히려 그 저항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한 구석>이 무엇인지를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실천적으로 긴요한 일이 되었다.

 

2. 이해해줄 구석은 무엇인가? 첫째, 리비아 정치가 ‘1인 장기집권에 부족연합통치’ 형태로 운영돼온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일면 옳다. 리비아에는 정당도, 시민사회와 민중사회도 충분히 발달해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전(前)근대적 측면이 있다. 그러니 그에 항의할 자유는 보장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지 ‘1인 장기집권’이라고 해서 무바라크와 벤 알리와 더불어 도매금으로 단죄될 일은 아니다. 그렇게 ‘도매금’으로 처리하는 것이 서구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요 정치 공세라는 사실을 유념해 두자.

 

이 말은, 단지 카다피가 장기 집권을 해왔다 해서 이것이 ‘무장 봉기의 명분’이 되는 것인지는 의심스럽다는 뜻이다. 지금 리비아에는 소박한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장 봉기에 따른 내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한 판단거리가 된다.

 

둘째, 리비아는 다른 대다수 나라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뒤늦게) 포섭되었다. 석유산업이 상당수 ‘민영화’되는 바람에 그 이득을 점유하는 부르주아들이 생겨나고, 석유수입 덕분에 누렸던 민중복지가 후퇴하여 사회양극화가 심해졌다. 이 점에서 리비아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무릇 ‘독재 반대’를 기치로 내세우는 대다수 운동의 밑바닥에는 대중의 민생 파탄이 깔려 있기 마련인데, 이 점에서 리비아의 시위를 이해할 수 있다.

 

3. 카다피 정권의 미덕과 취약점

 

이집트는 친미국가 친미정권이었고, 리비아는 반미국가 반미정권이었다(한때 미국에 고개 숙였다가 근래 다시 대결기조로 차츰 돌아섰다). ‘반미만 하면 그냥 선(善)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식민지 종속국에서는 어떤 사회변혁도 반미 반제의 기조 위에서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리비아는 정치적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친미와 반미의 질적인 차이를 직시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카다피 정권은 어떤 정권인가? 카다피는 40년전 제국주의의 꼭두각시였던(외국자본에 놀아났던) 왕정을 물리치고 이슬람사상과 사회주의의 결합을 표방하며 근대적인 공화국을 세웠다. 석유를 국유화하여 민족 자주의 토대를 확보했고, 민중교육에 힘써 문맹률을 크게 떨어뜨렸다. 여성의 사회진출의 길을 터주었고 알카에다 같은 우익 근본주의세력과 거리를 두었다.

서구 제국주의가 (카다피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카다피 정권에 와서도) 리비아에 어떤 패악을 저질렀는지도 살펴야 한다. 2003년에 카다피는 ‘핵 포기 선언’을 했다. 제국주의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한 발 물러섰고, 미국은 ‘북한, 이란도 리비아에서 배우라’고 호기롭게 떠들어댔다. 그러나 미국은 핵포기 대신에 리비아에 약속했던 ‘보상’을 외면하여 카다피는 다시 반미 대결의 기조를 높이게 되었다.

물론 ‘반미 자주’의 기치를 추구했다 하여 그 정치가 모조리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카다피 정치에서 사회주의적 요소(민중 복지)는 리비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센 압박 속에 다시 포섭됨으로써 오히려 후퇴했다. 석유 민영화는 친미 부르주아 세력들을 배출해냈다. 슬로건으로야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자본주의 체제이고, 오히려 ‘국가부문’의 실력과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 봐야 한다. 그럼으로써 카다피 정권의 민중적 지지기반은 시나브로 줄어들었다. 카다피는 정치적으로 ‘반제 사회주의’를 지향하긴 했지만 그 물질적 기반에서는 친미 부르주아들로 둘러싸여 내부적 균열요소를 이미 갖고 있었다.

 

4. 수상쩍고 위험한 구석은 무엇인가?

 

먼저 주체를 구분해보자. 시위를 주도한(슬로건을 결정한) 세력과 거기 따라붙은 세력. 프랑스혁명에서도 노동자계급이 저항에 따라붙었지만 그 방향은 부르주아가 규정했다. 리비아에서도 민생파탄에 반발하는 노동자 서민들이 시위에 따라붙었겠지만 시위를 주도한 세력은 ‘부족’의 유력자들이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정치 방향이 무엇인가? 28일자 문화일보 1면에는 시위대가 ‘왕정의 깃발’을 높이 내건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물론 시위대들의 생각이 “왕정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지금 모두 통일되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겠지만, “카다피를 끌어내리는 데 필요하다면 무슨 짓이라도 한다”는 속내가 거기 담겨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은 눈먼 저항이 아닌가? ‘인민사회주의 공화국’을 끌어내리고(그 내실이 아무리 사회주의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왕정’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민주 혁명’이라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시위의 정치적 정당성이 확보되려면 “카다피를 축출하고, 부르주아공화국 아닌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더 내실있게 변혁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알 카에다가 후원하는 정치시위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집권자의 축출’에 목 매다는 게 아니라 ‘국가정치의 내용을 바꾸는 요구 쟁취’에 매진해야 한다. ‘석유를 다시 국유화하라’는 요구가 나왔다는 뉴스는 어디에도 없다.

저항의 방식도 살펴보자. 마타도어와 선동이 난무하는 언론 보도는 태반이 믿기 어렵고, 사실을 접할 길이 달리 많지 않으니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시위는 벌어지자마자 ‘무장봉기’의 성격을 띤 것 같다. 전투경험을 가진 무장병력이 시위대 곳곳에 섞여 있다가 리비아군의 탱크를 접수하자마자 몰고 나간다든지... 알카에다가 리비아군 무기고를 털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시위 초창기에 리비아 공군기가 바로 폭격을 가했다는 것은 이 사태가 겉으로는 시위를 표방했어도 실제로는 무장봉기로 발전했다는 증좌가 아닌가(민간인 폭격설은 어디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동부 벵가지의 시위대가 멀리 떨어진 트리폴리시로 진격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때는 이미 ‘시위’를 넘어서 ‘무장 봉기’가 진행된 것이다. 시위 초기에는 서방측이 관망 자세였지만 며칠 뒤부터 미군과 나토군의 ‘군사고문단’이 시위대 지역으로 진출했다는 소식도 있다.

 

5. 미국과 유럽 제국주의는 무엇을 바랄까?

 

-제국주의가 리비아의 석유를 더 확실하게 움켜쥐기 위해 카다피 축출에 나섰다고 보는 것은 부분적으로만 타당한 설명이다. 카다피가 축출되면 제국주의가 리비아 내정을 더 쥐락펴락하게 될 것이 분명하지만 석유는 지금도 상당수 민영화되어서 제국주의를 이롭게 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군사적인 것이다.

 

-카다피는 작년엔가, 나토에 맞서 아프리카국가들도 ‘제2의 나토’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제국주의와 군사적으로 대결하자고 했으니 미국과 유럽 제국주의에게는 ‘눈엣 가시’ 같은 존재였다. 카다피는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등등과 ‘반미 저항연대’를 구성해 왔다. 그 반미연합의 일각을 무너뜨려야 이란, 북한을 손보는 것이 더 수월해진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국가들이 반제국주의 대결로 모여드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지금 카다피 축출에 동조하는 아프리카 국가는 전혀 없다는 사실을 유념해 두자).

 

6. 카다피가 쫓겨난다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카다피는 더 버티면서 리비아가 계속 내전으로 갈지도 모른다. 더 버티지 못한다면 ‘자존심 강한 그’가 자살을 선택할지 모른다는 추측도 있다. 자살이든 다른 식으로든, 카다피가 축출될 경우, 여지껏 40년간 그가 벌여온 정치는 소리없이 소멸하고 말까? 반제국주의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깊은 패배감에 빠져야 할까?

 

- 여지껏의 내전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제국주의는 한 차례 승리를 거둔 셈이다. 그러나 카다피의 국가사회주의(국가자본주의) 정치의 진보성을 맛본 카다피 지지층이 제법 있다.

카다피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제대로 대결했더라면 그 지지층은 훨씬 컸을 것이고, 지금 정치적 패배의 구석으로 몰린 것이 카다피 정권의 내적 취약함(모순)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아무튼,

-카다피가 스스로 자진하더라도 그 지지층은 리비아에서 온전히 살기 어렵다. ‘카다파족은 용서했다’고 무장봉기측은 허튼 빈말을 뱉고 있지만. 이들이 유럽에 대거 ‘난민 신청’을 하고 몰려간다면? 이들 가운데서 다시 저항세력은 자라날 것이다. 새로 자라날 세력 중에는 카다피처럼 어중간한 국가사회주의가 아니라 더 확실한 변혁사상으로 무장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미국이 눈엣가시 카다피 1인은 제거하는 데 성공할지 몰라도, 또다른 카다피들이 자라날 것이다.

 

** 나는 ‘리비아 민중이 패배했다...’고 제목을 달았다. 지금 리비아는 시위대가 장악한 지역이 카다피가 사수하는 지역보다 훨씬 넓고, 지금 여론조사를 한다면 ‘카다피는 물러나는 게 좋다’고 답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숫자로 보증되지 않는다. 2차 대전이 벌어졌을 때, 프랑스에서 국민투표를 했더라면 나치와 협력했던 페텡 원수가 압도적 지지를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독일에 대해 저항운동을 벌인 드골이 그때 정통성/정당성을 자임했더랬는데 이 정통성/정당성은 ‘숫자’로 보증된 것이 아니었다. 역사는 침략전쟁의 부당성, 자유프랑스 수호의 정통성을 추인해 주었다.

 


  
이름 비밀번호
도배방지
아래 보이는 문자열을 마우스로 복사 또는 직접 입력하세요.
2WAT4Y 직접 입력
쓰기 목록 추천 수정 답글 삭제
2624
사노위 전북
2011.02.14 1660/302
2623
허영구
2011.02.14 1373/272
2622
법률센터
2011.02.14 1484/322
2621
사노위 전북
2011.02.13 1650/263
2620
허영구
2011.02.11 1684/247
2619
단식농성
2011.02.10 1848/249
2618
사노위 전북
2011.02.09 1568/217
2617
이려히
2011.02.07 1731/214
2616
강정수
2011.02.07 1766/213
2615
근황
2011.02.07 1652/229
291 292 293 294 295 296 297 298 299 300
CopyLeft By Jin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