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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작은책> 먹고 튀는 투기자본
허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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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30일 10시 58분 0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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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작은책> 먹고 튀는 투기자본

 

- 금융세계화와 투기자본

2011.2월호(2010.12.22강연 내용)

 

IMF 외환 위기 이후에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저는 그 특징이 금융 세계화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과 관련된 부문뿐만 아니라, 이제는 제조업 등 모든 부문에 금융 세계화가 관련되게 된 겁니다.

지난여름 어느 회사는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지 않는 대가로 한 2천만 원씩 성과급을 지급했습니다. 2천만 원이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1년 연봉쯤 되잖아요. 3만 명이 받았으니까 모두 6천억 원을 한꺼번에 받은 겁니다. 그 회사가 갑자기 그만큼 순이익이 늘어났느냐?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바로 환차익에서 발생한 겁니다. 제조업도 단순히 산업 생산에서만 이윤을 만들어내지 않고 금융화의 흐름을 타고 이윤을 내는 겁니다.

그래서 키코(약정 환율과 환율 변동의 상한과 하한을 정해 놓고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한다면 미리 정한 약정 환율에 달러를 팔 수 있는 금융 파생 상품)상품을 산 중소기업들이 은행한테 사기를 당했다고 소송을 걸었잖아요. 키코는 환율이 상ㆍ하한 사이에서만 변동하면 환차손을 줄이고 일부 환차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율이 하한 이하로 떨어지면 환손실을 입을 수 있는 데다가, 상한 이상으로 오를 경우에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됩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때 환율이 급등해서 키코를 샀던 중소기업들이 큰 손실을 보게 됐는데, 키코를 살 당시에 은행이 손실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기업들이 은행을 제소한 거죠. 1심에서는 기업들이 부분적으로 패소했습니다. 중소기업들은 키코 상품을 사면 환율 변동으로부터 비롯되는 불이익들을 은행에서 예방하고 분산시켜 줄 거라고 생각해서 샀다고 주장하는데, 한편으로는 그걸 통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투기적 내용도 있었던 게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망했으니까 지금 와서 사기당했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재판부는 어느 정도 사기성이 있었지만 그걸 산 기업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옛날처럼 뭘 생산하고, 그걸 팔아서 이윤을 남기고, 그 이윤을 노동자들한테 분배하고, 국가에 세금을 내고, 주주한테 배당하는 식의 전통적인 산업자본주의하고는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금융의 세계화라는 것은 산업 생산을 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금융의 변동 속에서 어떻게 이윤을 얻을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말하자면 금융 자체가 경제를 순환시키는 하나의 수단이 되는 거죠.

전통적으로 화폐는 가치 저장 수단과 교환 수단으로 쓰입니다. 이제는 화폐가 하나의 상품이 됐습니다. 상품을 사고팔 때는 이윤이 생기지 않습니까. 이제는 화폐를 그 자체로 상품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 상품을 사고파는 가운데 이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 놓고 돈 먹는’ 투기가 활성화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오늘날의 사회를 ‘위험 사회’라고 했는데, 금융 사회야말로 위험 사회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노벨경제학상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세운 펀드 회사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라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1994년에 섭립돼서 한때 세계 금융 시장을 주름잡다가 1998년에 쫄딱 망하면서 월가를 공포에 떨게 했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이론이 대단한 것처럼 얘기되지만, 그것들도 이 금융 세계화 속에서는 일엽편주와 같은 것입니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기 전날, 미국의 모든 신문과 금융 전문 잡지들은 주식은 계속 오른다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완전히 망했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 때도 그렇고, 중간 중간 발생한 수많은 공황적 상황들을 제대로 전망한 학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얘기하죠.

그런데 사실 노벨경제학상은 노벨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1901년에 노벨상이 처음 만들어질 때 경제학상은 없었다가 1968년에 만들어진 거죠. 그런데 1960년대 말은 케인즈 모델, 유럽의 사민주의 모델, 복지 모델이 자리 잡은 때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는 거죠. 자본주의를 타도하려고 투쟁했던 노동자들이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공황과 실업을 경험하면서,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타협한 겁니다. 노동자들은 자본주의를 인정하면서 자본의 적정한 이윤을 보장하고. 자본은 노동자들의 완전 고용과 적정한 임금을 보장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실업의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 보장 제도로 보완합니다.

이런 체제를 케인즈 모델이라고 하는데, 사실 케인즈도 1929년 대공황 때 자신의 금융 자산을 30배나 불린 투기꾼입니다. 자신의 경우처럼 투기를 통해 자본이 무한정 증식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거나 폐지하려는 게 아니라 유지하기 위한 합리적인 안으로 케인즈 모델을 만든 거죠.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는 근본적으로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경쟁과 효율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합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즉 과잉 생산이 되면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것들이 재고로 쌓이고, 그럼 자금 회전이 안 되니까 기업이 도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또 노동자를 해고할 수밖에 없는데, 노동자가 해고되면 구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시장에 물건은 많이 있지만 살 사람은 없는, 공황 상태가 오게 되는 거죠.

산업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의 안정적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된 겁니다. 그래서 1970년대 초에 통화주의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가 등장합니다. 미국은 이런 경제 이론을 지배하고 세계 경제를 지배해 나가기 위해서 노벨이라는 이름을 붙인 경제학상을 만들도록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물론 형식적으로 노벨경제학상은 1968년 스웨던 중앙은행이 창설 3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었지만 말입니다. 실제로 노벨경제학상의 수상자는 대부분이 통화주의의 본산인 시카고학파와 시카고대학 그리고 유태인 출신입니다. 그리고 남성입니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한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에 남미로 넘어갔어요.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몰락했잖아요. 굶주린 아르헨티나 민중들이 부잣집 목장에 쳐들어가서 살아 있는 소의 고기를 칼로 베어 갈 정도로 경제가 파탄 났습니다. 엄청난 자원을 가지고 있는 경제 대국 아르헨티나도 미국의 금융 자본,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투기 자본이 몰려오면서 공공 부문이 모두 무너지고 빈부 격차가 확대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동아시아 지역으로 넘어온 것이 1990년대, 바로 우리가 IMF 외환 위기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박정희 정권을 평가할 때, 비록 독재는 했지만 산업화에 성공한 것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해서 독재는 불가피했다고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1970~80년대는 신자유주의가 미국에서 남미를 돌아서 아시아로 올라오던 시절인데, 어떻게 그때 한국 경제가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 상황 때문입니다. ‘윈도우 이코노미’라고 하는데, 대공산권 접점 지역에서 미국식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전시’하기 위해서 미국은 한국 경제를 의도적으로 보호하고 성장시키면서 활용한 것입니다. 화폐금융론적으로 얘기하면 1970년대 초에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변하거든요. 그런데 한국만 외환 위기가 온 1997년까지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게 해주었습니다. 5퍼센트만 변동환율제를 적용하고 95퍼센트는 고정환율제를 유지시켜 준 덕분에 한국 경제가 그때까지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IMF 외환 위기 때,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에 일산 자택까지 와서 자문을 해 준 사람이 조지 소로스입니다. 국제적인 고리대금업자, 투기꾼이죠. 영국 영란은행을 공격함으로써 영국을 위기에 빠뜨렸던 그 조지 소로스가 김대중 대통령한테 IMF 금융프로그램을 자문한 거죠. 우리와 비슷한 처지였던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수상은 그때, “그럼 번 돈의 25퍼센트를 세금으로 물릴 테니까 들어오려면 들어와 봐” 하는 식으로 버틴 거죠. 그리고 더 많은 조건을 요구하면 빚 못 갚겠다고 모라토리엄(지불 유예)을 선언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도 혹시 빚을 못 갚겠다고 할까 봐, 그러면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는데 석유가 안 들어오고, 식량이 부족한데 식량이 안 들어오고,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데 무기를 사 올 수 없고, 산업 기술도 미약한데 신기술을 도입할 수 없다고 막 협박한 거죠. 그래서 우리는 집 안에 있는 금을 다 내다 판 거죠. 달러를 가져오기 위해서. 그래서 유럽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 코미디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집 안에 불이 나면 금을 챙겨야 하잖아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금이란 말이죠. 그래서 금반지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 아닙니까? 근데 우리는 그런 금을 녹여서 미국의 달러하고 바꿔 왔단 말이에요. 금을 종이하고 바꾼 겁니다. 100달러면 지금 우리 돈으로 한 11만 원 정도 되지 않습니까? 100달러짜리 한 장 인쇄하는 데 50센트 듭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50센트, 600원도 안 되는 인쇄비를 들여서 찍은 돈을 가지고 한국에 오면 11만 원어치 일을 시키거나 물건을 가져갈 수 있는 거예요. 그게 이른바 ‘발행 권력’을 가지고 있는 달러제국주의 국가, 미국의 힘인 거예요.

그런 미국의 발행 권력에 대들면 미국은 군사적으로 정리하죠. 이라크의 후세인이 왜 죽었을까요? 물론 9․11테러로 미국의 쌍둥이빌딩이 무너지자 그것을 빌미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지만, 그 시점에 사건도 있었습니다. 부시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석유는 엑슨모빌 같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석유 거래 결제를 미국달러로 했습니다. 근데 후세인이 결제 수단을 유로화로 바꾸면서 달러제국주의에 도전한 겁니다. 바로 그 직후에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겁니다. 겉으로는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핑계를 댔지만, 그거 없는 걸 미국이 몰랐겠습니까?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과거에는 고정환율제라서 달러를 발행할 때 미국이 가지고 있는 금 1온스에 대해 35달러를 발행하게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35달러를 가져가면 금 1온스로 바꿔 주게 돼 있었는데, 1971년부터 닉슨이 금태환 금지를 선언했죠. 달러를 가져와도 금으로 안 바꿔 준다고 한 겁니다. 미국이 찍어서 세계에 뿌린 달러에 비해서 미국이 가지고 있는 금이 훨씬 적은 거죠. 그만큼 달러가 증발된 겁니다. 지금 금값이 1온스에 천 달러 정도 가는데, 그러면 30배 정도 인플레된 거잖아요. 전 세계 민중을 얼마나 착취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달러를 빌려 오면 반드시 이자를 줘야 하는데, 미국은 찍어서 쓰면 돼요. 지난해에 서울에서 G20정상회의를 하기 전에 경주에서 G20 재무장관 회의가 열렸잖습니까. 그래서 환율 문제에 대한 규제나 무역과 환율의 균형 등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를 했잖아요. 그런데 그 뒤로 G20정상회의가 열리기 전에 미국이 5천억 달러를 찍어서 뿌렸습니다. 560조 원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찍어서 뿌린 거예요.

그런데 지금 200여 개 나라가 가지고 있는 화폐의 액수와 200여 개 나라가 1년 동안 생산하는 총생산을 비교하면 화폐의 액수가 60배나 더 많습니다. 그래서 화폐 발행에 대한 통제를 하지 못하면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투쟁을 해 봤자 헛수고죠. 임금 인상을 5퍼센트 해 놓아도 은행이 돈을 5퍼센트 더 찍어서 뿌려 버리면 똑같잖아요. 그래서 쿠바가 혁명에 성공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중앙은행을 접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대 중앙은행장을 체 게바라가 맡았습니다. 자본주의는 돈이니까 돈을 먼저 통제해야죠. 그런데 지금은 너무 금융화가 진행됐기 때문에 돈을 통제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전체 금융 거래의 10퍼센트만 투기 거래였는데 지금은 95퍼센트가 투기 거래입니다. 하루에 G7 국가 전체의 외환 보유액을 넘는, 1조 5천억 달러가 거래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80퍼센트가 일주일 안에 상환해야 하는 초단기 거래입니다. 이런 초단기 거래 때문에 우리나라에 IMF 외환 위기가 일어났습니다. 전부 단기적으로 돈을 빌리기 때문에 외국 자본이 일시에 돈을 빼 나가면 한국 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거죠.

IMF 외환 위기가 온 것도 세계 금융 자본들이 한국 경제를 주저앉힌 다음에 금융을 통해 한국을 지배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IMF나 미국 재무부, IBRD 등의 기관들이 워싱턴컨센서스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 핵심이 바로 돈을 일시적으로 빼내는 거죠. 그래서 김영삼 정부 말기에 외환 보유고에 30억 달러밖에 안 남는,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세계 외환 거래의 80퍼센트가 일주일 이내에 상환해야 되는 초단기 거래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위기가 올 수 있어요.

주식 시장을 보면 0.03초 안에 극초 단타 매매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극초 단타 매매를 못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파생상품 분야에서는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61퍼센트, 유럽은 40퍼센트가 극초 단타 매매로 주식을 사고팔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인터넷과 같은 정보 통신 기술과 관련돼 있는데, 회전율이 엄청나게 높은 상태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파생 상품 거래량이 세계 1위입니다. 한국의 금융 시장이 얼마나 투기화돼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겁니다.

 

 

위험이 증대되는 이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파생 상품 문제입니다. 세계 GDP가 약 50조 달러인데 파생 상품의 규모가 약 516조 달러입니다. 열 배나 됩니다. 우리가 화폐를 가지고 하는 이 게임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제가 볼 때는 일본, 독일도 투기 자본에는 이길 수 없고, 달러를 찍어 낼 수 있고 안 되면 군사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이 투기 자본에 견딜 수 있는 국가는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근데 2008년에 금융 위가 오니까 결국 미국도 못 견뎠습니다. 이른바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가 난 거죠. 서브프라임모기지는 신용 등급이 낮은 계층, 저소득층한테 주택을 담보로 돈을 대출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 사회는 신용사회라서 제 돈 한 푼 없이도 집을 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억 원짜리 집을 산다면 바로 그 집을 담보로 1억 원을 빌려서 그 집을 사고 이자와 원금을 갚아 나가면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집값이 계속 오를 거라고 예상하고 그렇게 돈을 빌려서 집을 사는 거죠. 근데 신용이 불량한 사람들한테도 이런 식으로 돈을 빌려 줬습니다.

근데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하는 신화가 깨졌죠. 1억 원을 빌려서 산 집이 5천만 원, 3천만 원으로 값이 떨어졌단 말입니다. 집을 담보로 1억 원을 빌려 줬는데 집값이 5천만 원이 됐으니, 은행은 5천만 원의 손해를 보는 거죠. 그런 경우가 한둘이 아니니까 돈을 빌려준 은행이 망하고, 그 은행에 돈을 빌려 준 또 다른 은행이 망하고, 은행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금융 위기로 확대된 것입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는 전체 대출 자금의 17퍼센트밖에 안 되는데 그것이 핵반응을 일으킨 거죠.

그래서 파생 상품이라는 것이 무시무시한 겁니다. 예를 들어 제가 만 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적으로 돈은 만 원밖에 없는 겁니다. 근데 제가 이 만 원을 한 사람한테 빌려 주고, 그 돈을 받을 권리를 또 다른 사람한테 빌려 주고, 또 빌려 줘서 열 사람한테 돈을 빌려 주면, 이 돈은 사회적으로 10만 원이 되는 거예요. 사회적으로는 10만 원이 있는 건데 실물 화폐로는 만 원짜리 한 장밖에 없는 겁니다. 이게 바로 파생 상품입니다.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 때도 단순히 대출해 준 돈뿐만 아니라 그것이 증권이나 주식이나 채권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쓰나미와 같은 금융 폭풍이 몰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은행에서 대출만 하지 않습니다. 파생 상품을 만들죠. 특히 이제는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돼서 은행이 보험도 하고, 증권도 하고 다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다음에는 은행이 기업을 인수 합병합니다. 투기 자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했죠. 현대건설을 인수하려고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가 싸우고 있는데, 현대건설의 주채권 은행이 외환은행입니다. 외환은행이 현대건설을 현대그룹에 넘기려고 하다가 취소했잖아요. 왜? 현대자동차가 외환은행에 있는 예금 1조 2천억 원을 확 빼 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현대그룹을 버리고 현대자동차 쪽으로 가는 거잖아요.

은행이라는 것은 본래 다 국책 은행이에요. 금융의 바탕에는 공공성이 있는 거죠. 금융을 사람의 피에 비유하자면, 사람이 피가 잘 돌아야 사는데 지금 이 피를 마음대로 뺐다 넣었다 하는 거예요. 빨대로 꽂아서 뽑아먹는 놈도 있고 갑자기 이상한 피를 집어넣는 놈도 있고, 경제가 그렇게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있는 겁니다. 여기서 국가는 아무것도 아니죠. 자본의 이윤, 자본의 자유를 통제하는 사람들을 때려잡을 뿐입니다. 국가가 노동자 민중에 대한 폭력 기구로 돌변해 있는 겁니다.

옛날 박정희 정부 때는 외국에서 차관을 들여와서 국책 은행에 주면 국책 은행이 재벌한테 돈을 빌려 주는 식이었죠. 물론 그 사이에 정치 자금을 담은 라면 상자가 오고 가죠. 하지만 그것은 그래도 국가 권력이 자본을 관리했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외환은행이라는 엄청난 수익을 남기던 국책 은행이 론스타라는 펀드 자본에 넘어가는 세상입니다. 론스타 같은 펀드 자본은 미국 은행법에 따르면 은행업을 할 수 없게 돼 있어요. 그래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자마자 미국에 있는 외환은행 지점은 다 폐쇄된 거예요.

외환은행은 정말 알짜배기였어요. 법률적으로는 인수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는데도 불법적으로 인수한 거죠. 은행의 BIS(자기자본비율)가 8퍼센트 이하면 부실하다는 기준인데 외환은행은 그때 9.3퍼센트였거든요. 근데 그걸 불법으로 6퍼센트로 만든 거예요. 투기자본감시센터에서 다 조사했고, 감사원도 불법이라고 감사결과 발표했어요. 근데 아무런 조치를 안 했어요. 오히려 이명박 정권 들어서자마자 그때 관련 공무원인 변양호 씨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까지 받았습니다.

론스타가 그렇게 외환은행을 손에 넣었는데, 그런 투기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은행이 공적 자금이 투입된 현대건설의 주채권 은행으로서 여기 팔까, 저기 팔까 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현대자동차가 현대건설을 인수한다고 해도 현대자동차를 필두로 여러 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인수하는데, 론스타가 또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서 그 컨소시엄에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국가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감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론스타의 고향은 미국 텍사스입니다. 론스타의 자금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조사를 해 보니까, 그 가운데에 미국 노동자들의 퇴직 연금도 들어 있는 거예요. 우리도 국민 연금 보험료 올리자고 하면 저항하지만 연금 많이 준다고 하면 좋아하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모든 나라의 연금들이 다른 곳에 투자를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 연금도 주식에 10퍼센트 이상 투자하고 있고, 부동산에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런 미국 노동자들의 연금이 론스타의 자금이 돼서 한국 같은 데서 외환은행을 불법적으로 인수하고 이윤을 남기는 거예요. 투기 자본이라고 해서 꼭 자본가들만의 돈은 아니라는 거죠. 미국 노동자들의 돈이 론스타라는 투기 자본에 들어와서 그 돈이 한국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겁니다. 강대국 노동자들은 자본에 의해서 착취를 당하지만, 한편으로 이 금융 구조를 통해서 약소국의 노동자들을 또 착취하는 이중적 착취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직접 발행하는 통화는 10000분의 1밖에 안 되는 주화, 동전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민간 은행에 대한 빚으로 이루어집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은 다국적 은행들의 컨소시엄이 소유한 민간 법인입니다. 거기서 돈을 찍어서 미국 정부한테 빌려 주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다 합쳐도 미국 총통화량의 3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97퍼센트는 뭐냐? 돈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에서 만들어진 가공적인 숫자입니다.

그래서 참 기가 막히는 것이 미국은 화폐, 증권, 보험 등을 다 합친 총통화량이 얼마인지를 발표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걸 몰라야 마음대로 막 찍어 낼 수 있잖아요. 그래서 금융 카르텔을 “서민들의 살점을 뜯어 먹는 다두(多頭) 괴물”이라고도 하고, “거대한 낙지”, “빚거미”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금융의 종말》에 나오는 ‘거미줄 치기 규칙’을 보면, 첫째가 일반인이 부의 집중을 전혀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고, 둘째가 레버리지(차입 투자)를 통해 통제권을 행사하고 합병, 경영권 탈취, 연쇄 주식 보유, 꺾기 대출 등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개인적인 관리와 통제를 엄격히 하고. 내부자를 최소화하고, 이 게임에 대해 극히 일부분밖에 모르는 ‘바지사장’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거대한 은행들은 본래 이런 데서부터 출발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을 장악하고 있는 가문들 가운데 로스차일드가가 있습니다. 이 가문은 나폴레옹전쟁 이후로 큰돈을 손에 넣었습니다. 나폴레옹전쟁 때 영국과 프랑스가 싸우는데, 프랑스가 계속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영국 정부의 채권의 값이 떨어졌습니다. 전쟁에서 지면 영국 정부는 망하게 되고, 영국의 채권은 다 값이 없어지고, 전쟁 부담금만 물어야 될 거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은 영국 채권을 헐값에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로스차일드가가 전쟁터에 엄청나게 많은 전문가들을 내보냅니다. 그래서 전황을 전부 분석해 보니 이번에는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이긴다는 결론이 나온 겁니다. 그래서 영국 채권을 몽땅 사들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영국이 이겼습니다. 그 뒤로는 영국 정부의 채권은 부르는 게 값이죠. 이처럼 영국과 미국의 시중 은행들, 민간 금융가가 국가의 경제를 완전히 장악하게 되는 것은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바야흐로 ‘세계주식회사’입니다. 다국적 기업이 얼마나 큰가 하면 엑슨모빌의 1년 매출액은 세계 200개 나라 가운데 하위 120개 나라의 GDP와 맞먹습니다. 그리고 세계 100대 경제 주체 가운데 51개가 다국적 기업입니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1년 GDP가 아프리카 35개 나라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죠.

1994년에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해서, 모든 관세를 철폐하고 자유 무역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지니까 세 나라의 GDP가 다 올라갔어요. 하지만 진상은 이렇습니다. 미국의 GM이 부품을 멕시코에 있는 하청 업체 공장에 보냈습니다. 그럼 미국은 부품을 멕시코로 수출한 거죠. 그리고 멕시코에서 조립한 자동차를 미국으로 납품합니다. 그럼 멕시코는 자동차를 미국으로 수출한 거죠. 부품이 갈 때는 미국이 무역이 늘어나고, 자동차가 미국으로 올 때는 멕시코 무역이 늘어납니다. 근데 사실은 GM 내부에서 왔다 갔다 한, 다국적 기업의 내부 거래예요. 지금 세계 모든 무역의 3분의 2 이상이 다국적 기업의 내부 거래일 뿐입니다. 그것이 국가의 무역으로, GDP로 잡히는 거죠.

1인당 국민 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해도 우리 살림살이는 늘 고만고만한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한미FTA가 체결되면 GDP가 얼마 늘어난다 하는 소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국이 NAFTA를 체결하고 그렇게 경제 규모가 커졌으면 노동자들 생활이 나아져야 해요. 그런데 NAFTA가 체결된 1994년 이후로 지금까지 미국의 실질 임금이 동결 또는 삭감됐어요. 미국의 영아 사망률은 쿠바나 북한의 그것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OECD 국가 가운데 나쁜 내용으로 세계 1위예요. 그러니까 한국과 미국 가운데 어느 쪽이 이익을 보고, 무역량이 얼마나 늘고, GDP가 얼마나 오르고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미국의 진보적인 경제 정책 연구소(EPI)의 소장이었던 사람이, 저한테 NATFA를 분석한 책을 한 권 줘서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책 제목이 “Class War(계급 전쟁)”입니다. NAFTA는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 사이의 무역이나 GDP의 문제가 아니라 북미 지역의 노동과 자본의 ‘계급 전쟁’이더라는 거죠. "NAFTA+@"라는 한미FTA도 두 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한미FTA의 핵심은 자동차가 아닙니다. 핵심은 금융 자유화와 투자자국가제소 조항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론스타를 사법 처리하라고 고소 고발 하지만, 한미FTA가 되면 론스타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되는 거예요. 론스타 회장이 우리나라 법원에 와서 재판받았지만,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제소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경기도를 제소하면 김문수 도지사가 미국 뉴욕에서 재판을 받아야 되는 것이 투자자국가제소 제도예요. 금융에 대한 어떠한 통제도 할 수 없는, 극단적인 금융의 자유화가 이뤄지는 겁니다. 이번에 추가 협상에서 돼지고기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해서 3천억~4천억 원의 이익을 봤다고 하죠? 그런데 지금 론스타가 하나은행한테 외환은행을 넘기면 5조 원 가까이 챙겨 가게 됩니다. 돼지고기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이렇게 금융의 세계화가 투기 자본의 문제로 나타나는데, 투기 자본들에게는 일반적인 행태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불법 인수 합병입니다. 외환은행의 사례를 앞서 설명했습니다. 은행법에 따라 외국인은 10퍼센트 이상의 지분을 가질 수 없는데 어떻게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의 51퍼센트를 손에 넣고 경영권까지 차지했을까요? 불법으로 하는 거죠. 정부 고위 관료, 은행 경영진, 금융감독원, 김앤장 같은 법무법인,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론스타와 공모했습니다. 이미 다 폭로된 얘기예요. 그렇게 은행의 자기자본비율까지 조작해서 외환은행을 불법으로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작은책>에 소개된 씨앤앰의 경우도 투기 자본이 투자한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대출받아서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조상제한서우새’라는 말 아시나요? 조흥은행, 상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서울은행, 우체국, 새마을금고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가운데 우체국과 새마을금고는 빼고, 한때 우리나라 5대 시중 은행이라고 불렸던 것들이 지금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SC제일은행이 남아 있지만, 영국의 스탠다드챠타드가 주식을 100퍼센트 가지고 있습니다. 금융 감독을 안 받으려고 우리나라 주식 시장에 상장을 폐지했을 정도니까 아무리 봐도 우리나라 은행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은행이 다 없어진 겁니다.

투기 자본의 손에 놀아나는 이런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 주나요? 전부 대기업하고만 거래하거나 담보가 보장되는 주택 담보 대출, 가계 대출 같은 것만 일삼고, 수수료를 올리고 키코 상품을 팔아서 수익을 내는 데만 혈안이 돼 있죠. 이런 은행들이 기업을 지배하고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소비자, 서민들을 지배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둘째는 투자를 회피한다는 것입니다.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상하이자동차의 예를 봅시다. 1조 2천억 원을 투자한다고 약속하고 노조와 각서를 썼습니다. 완전 고용 한다는 합의서를 써서 변호사 공증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들을 하나도 안 지켰단 말입니다.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있다가 2009년에 법정 관리에 맡기고 도망을 쳐서 3,000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났죠. 투자를 회피합니다. 투자할 필요가 없죠. 단기 차익을 노리고 빠져나가는 것이 목적이니까.

그리고 상하이차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것과 동시에 기술 유출이 목적이었습니다. 상하이차와 쌍용차는 기술로는 비교가 안 돼요. 지금 다시 인도의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인수하잖아요. 마힌드라는 삼륜차나 트랙터 같은 걸 만드는 농기구 회사예요. 쌍용차의 SUV 차량 기술은 세계적입니다. 독일의 벤츠 엔진을 들여와서 발전시킨 기술이에요. 마힌드라가 다국적 기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트랙터만 만들어서는 안 되잖아요. 자동차가 필요한 거죠.

제가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기술을 유출했다고 2006년에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저보고 증거를 대라고 하더니 얼마 후 기각해버렸습니다. 그런데 3년 뒤에 압수 수색했습니다. 언제 했느냐? 2008년에 조사했고 그 결과를 미루고 있다가 2009년 여름 쌍용차 노동자들의 77일간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해서 다 정리한 다음에 발표했죠. 그 전에 기술 유출이 맞다고 발표해 버리면 노동자들의 파업이 정당화되니까 일부러 시기를 늦춘 겁니다. 이렇게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기술을 빼먹고 갔는데도 한국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보고,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인수하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셋째로 구조 조정을 하죠. 예를 들면 주식을 1달러에 사서 2달러 팔아먹으려면, 다시 말해 주식 가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주식을 사는 사람들이 배당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게 해야 합니다. 배당을 많이 하려면 비용을 줄여야 하고, 비용을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노동자들한테 임금을 적게 주는 것입니다. 임금을 깎고 사람을 자르는 거죠. 그래서 투기 자본이 들어간 회사는 반드시 구조 조정을 하게 됩니다.

넷째는 공적 자금 활용하는 것입니다. 부실한 기업을 인수하면서 기업이 망하면 사회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등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등 핑계를 대서 정부에 공적 자금 투입을 요구합니다. IMF 외환 위기 때 150조 원 가까이 공적 자금을 투입했는데 아직 50퍼센트밖에 회수가 안 됐습니다. 그때 ‘눈물의 비디오’로 유명해진 제일은행은 공적 자금 17조 원이 투입된 은행입니다. 그래 놓고 뉴브리지캐피털이라는 투기 자본한테 5천억 원에 팔았습니다.

다섯째로 유상 감자를 합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경영에 실패하면 주식을 소각하거나 감자를 합니다. 특히 경영에 실패한 대주주는 무상 감자를 해서 대주주의 이익을 소모시켜야 하는 것이 상식이자 원칙입니다. 그런데 투기 자본들은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주식을 가격을 다 쳐주는 유상 감자를 통해 투자금을 모두 빼먹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소액 주자자들한테 더 많은 감자를 합니다.

여섯째는 고배당입니다. 목적 자체가 단기간에 이익을 빼먹고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배당을 엄청나게 해 줘요. 보통은 1년에 한 번씩 배당을 하는데 론스타 같은 경우는 수시 배당이라고 해서, 수시로 돈이 생길 때마다 배당을 합니다. 나중에 노동자들과 임금 협상을 할 때 노동자들이 임금을 올려 달라고 하면 돈이 한 푼도 없다고 하죠. 이익이 생기는 대로 다 배당을 해 줘 버렸으니까요. 그리고 최고경영자나 이사들한테도 엄청난 스톡옵션을 줘서 회사 돈을 유출시킵니다. 외국 최고경영자들의 연봉이 몇 십억, 몇 백억 되는 까닭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 대주주의 이해를 위해 복무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일곱째는 자산 매각입니다. 투기 자본은 주식만 사고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자산까지 매각해서 빼돌립니다. 대주주라 하더라도 자산을 일방적으로 매각해 빼돌리는 것은 불법입니다. 하지만 이런 불법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여덟째는 회계 부정입니다. 최근 재벌들이 벌이는 부정부패의 핵심은 가․차명 계좌와 이중장부를 통한 회계 조작입니다. 재벌이 하는 짓을 ‘먹튀’가 목적인 투기 자본이 안 할 리가 없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이것을 ‘선진 금융 기법’이라고 포장한 채로 말입니다. 쌍용차의 경우에도 회계 부정이 드러나서 최근에 우리가 검찰에 고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직접 조사를 안 해요. 삼정KPMG라는 회계법인을 고발했는데 검찰은 삼정KPMG가 강남 쪽에 있다고 수서경찰서에서 조사받게 했습니다. 결과는 뻔하죠. 2010년 12월 15일자로 검찰이 무혐의 처리했습니다.

아홉째는 강연 첫머리에 말씀드린 환투기입니다. IMF 외환 위기 때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달러를 들여오기 위해서 한 공기업을 다국적에 팔았습니다. 1억 5천만 달러에 팔았는데, 3년 거치 지불 조건으로 계약했습니다. 매각 대금은 3년 뒤에 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다국적기업이 1억 5천만 달러를 가져와서 우리 원화를 샀습니다. 환율이 2천 원대까지 치솟던 때니까 약 3천억 원쯤 됐는데, 이 돈을 은행에 가만히 넣어 뒀습니다. 그런데 3년 뒤에 환율이 다시 안정돼서 1달러에 천 원이 됐습니다. 그럼 은행에 있는 3천억 원을 달러로 바꾸면 얼마가 되죠? 3억 달러가 돼요. 그럼 공장 값 1억 5천만 달러를 줘도 1억 5천만 달러는 그대로 남았잖아요. 본전은 그대로 있는데 공장 하나가 공짜로 챙긴 겁니다. 이거 완전 환투기잖아요. 이게 이른바 IMF 외환 위기 극복의 실상인 거죠.

열째는 세금 포탈입니다. 제일은행을 인수했던 뉴브릿캐피털은 5년 만에 1조 1,500억 원을 남겨 먹고 세금 한 푼도 안 물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국세청까지 찾아가서 세금을 물리라고 투쟁했어요. 국내 기업이면 양도소득세를 40퍼센트, 최소한 4천억 원은 물릴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본사가 한국에 있지 않고 말레이시아에 있기 때문에 세금을 물릴 수 없답니다. 말레이시아는 우리나라와 이중 과세 방지 협정을 맺었어요. 본사가 있는 곳에서만 세금을 매길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근데 뉴브리지캐피털의 본사가 있는 말레이시아는 면세 지역(tax haven)입니다. 모든 투기 자본은 면세 지역에 본사를 둡니다. 엄청난 차익을 먹고 튀어도 세금 한 푼 물릴 수 없는 거죠.

 

이러한 먹튀 투기자본은 무조건 해외로만 빠져나가는 게 아닙니다. 국내에서 빼먹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빼먹습니다. 제일은행을 인수했던 뉴브리지캐피털의 예가 있죠. 그런데 뉴브리지캐피털이 제일은행을 팔고 우리나라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닙니다. 이들이 또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했습니다. 6천억 원에 인수해서 다시 SK에 1조 원에 파는 거죠. 서울 강남에 가면 스타타워라는 빌딩이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비싼 건물인 1조 원대의 이 빌딩도 론스타가 샀다가 되팔았습니다. 서울 강남의 중요한 빌딩들은 다 외국 자본이 가지고 있어요. 투기 자본을 ‘먹튀’라고 하니까 국내에서 빼먹고 해외로 가나 보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계속 돌고 돌면서 차익만을 해외로 계속 내보내는 거죠.

그밖에도 쌍차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술 유출 문제가 있고, <작은책>에도 소개된 적 있는 발레오공조나 오리온전기의 사례처럼 하루아침에 공장 문을 닫고 도망치는 청산 문제도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투기 자본의 영향력은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더 확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 세계화에 대해서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인식하지 않고서는, 그냥 스펙이나 쌓으면서 적응해서 잘살아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살아남으려 애쓰기 보다는, 공동체로 같이 연대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만 연대 투쟁을 할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삶 속에서 늘 연대하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돈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남아 보려고 스펙이나 쌓는 것으로는 돈의 노예가 되는 길을 더 재촉할 뿐입니다.

우리가 2008년 촛불 투쟁을 왜 못 이겼습니까? 전국에서 백만 명이 모였는데, 이명박 지지율이 8퍼센트까지 떨어졌는데 왜 못 이겼습니까? 어떤 학자가 신랄하게 비판한 바가 있습니다. “촛불을 들고 모인 사람들이 다 ‘작은 이명박’이라서 그렇다.” 잘못된 체제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려 한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하는 소시민적 요구들로 싸웠기 때문에 촛불 투쟁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 맞는 얘기는 아니지만 일리가 있는 얘기입니다.

돌고 돌기 때문에 돈이라고 합니다. 돌면 돌수록 세상은 어지러워지고, 돌면 돌수록 이 게임에 빠진 사람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강원도 정선에 강원랜드 카지노가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고 강원랜드 뒷산에 쌓여 있던 눈이 녹으면 시체가 몇 구씩 나온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강원랜드 입구에 쫙 깔린 게 전부 전당포래요.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전당포에서 돈을 빌리고 잃고 또 빌리고 잃고 그러다가 파산해서 결국은 목숨까지 버려야 하는 거죠. 일본에서는 불법 파견 문제가 심각해져서, 프리터(프리 아르바이터) 노동자에 의한 ‘묻지 마’ 살인 사건이 벌어질 정도고, 미국에서는 총기 사고 사유 4위가 해고에 불만을 품고 회사에 가서 총을 난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돈이라고 하는 전등으로 모여드는 나방처럼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9년 쌍용차 투쟁 때 노동자들이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투기 자본 감시 운동을 하면서 정말 투기 자본은 살인자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바로 투기 자본과 그것 때문에 가속화되는 금융 세계화 때문에 노동자들의 삶이 파탄 나고 실제로도 죽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투기가 판을 치는 세상인데도, 자기가 ‘투기’를 한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전부 자기는 ‘투자’를 한다고 하죠. 우리가 어떻게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할까 고민들을 많이 하는데, 이론적으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 투기를 빼면 대안적 사회가 온다.” 자본주의는 투기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투기가 없어지면 자본주의는 무너진다는 말입니다. 투기 자본의 논리를 좇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투기 자본의 힘을 강하게 해 줄 뿐입니다. 투기 자본의 논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삶을 위해 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질문과 대답

 

청중 _ FTA 이야기를 할 때 그 대안으로 PTA가 제시됐는데, 그게 뭔가요?

 

중남미의 예를 들어 볼게요. 쿠바가 100퍼센트 무상 의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는 의료가 굉장히 뒤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쿠바는 석유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대단한 산유국이죠. 그래서 베네수엘라는 석유를 쿠바에 제공하고, 쿠바는 2만 명의 의사를 베네수엘라에 보내 진료를 하게 하고 있습니다. 서로 이윤을 남기고 착취하는 구조가 아니라 물물 교환에 가까운 거죠. 누구는 이익을 보고 누구는 그만큼 손해를 보는 게임이 아니라, 자기가 쓰고 남는 부분을 주고 다른 사람의 남는 부분을 내가 가져다 쓰는 방식입니다. 민중 무역이라고 해서 PTA(People’s Trade Agreement)라고 부르죠.

같은 FTA지만 ‘free(자유)’가 아니라 ‘fair(공정)’로 시작하는 FTA도 있습니다. 바로 공정 무역(Fair Trade Agreement)입니다. 예를 들자면 제3세계에서 커피를 굉장히 싸게 다국적 기업에 넘깁니다. 그것이 한국에서 3천 원에 팔린다면 보통 현지에서는 10원이나 100원에 다국적 기업에 넘겨지는데, 최소 천 원 정도는 제3세계의 생산자한테 돌려주자는 것이 공정 무역입니다. 다국적 기업에 착취당하는 노동의 대가를 공정하게 생산자한테 전해 주자는 거죠.

PTA는 이것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개념입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완전히 공동체적인 개념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1등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국가의 GDP나 무역 규모가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1등을 못해도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국가의 GDP나 무역 규모가 줄어들 때도 있어야 하는 거죠. 물론 그런 것은 투기나 착취가 제거될 때 가능하겠죠. 이윤을 남기겠다, 누굴 착취하겠다, 누구보다 더 잘 살겠다 하는 생각이 전제되는 한 그건 가능하지 않아요. 경쟁과 효율을 전제로 한다면 PTA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거꾸로 경쟁과 효율이 아니라 공생과 분배를 전제로 한다면 PTA는 얼마든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청중 _ 돈에 대한 통제권을 얻지 못하는 이상 개인의 노력은 소용없다고 했는데, 돈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기 위한 투쟁과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별개의 문제인가요?

 

결국 권력의 문제죠. 투기꾼들, 재벌들, 자본가들이 아니라 그야말로 진정한 민중이 권력을 장악해야죠. 그러자면 두 가지 방법이 있겠죠. 투쟁을 통한 방법과 선거를 통한 방법이 있죠. 선거를 할 때 보면 한나라당 빼놓고는 다 비슷하게 얘기를 하는데, 뽑아 놓고 보면 그렇게 안 한단 말이에요.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도, 일본 국민들이 엄청나게 지지를 해 줘서 60년 만에 정권을 바꾸게 해 줬는데, 또 도루묵이에요. 정치 자금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보면 기존의 정치 세력은 역시 돈을 가진 세력들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잖아요.

결국 우리가 진정한 노동자 서민들의 권력을 만들어 나가려면 우리가 우리의 돈도 만들고, 우리의 세력도 형성하고, 지역 정치, 풀뿌리 민주주의를 잘 가꾸어야 합니다. 사실 한나라당, 민주당은 ***진정한 당원이 없잖아요. 당의 대표를 당원들이 선출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지배 정당들인데 진정한 의미에서는 전혀 민주주의 정당이 아니거든요. 운영도 당원들이 낸 당비로 운영하지 않아요. 그렇게 해서는 민주주의가 될 수 없죠. 그래서 우리가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우리가 필요한 돈을 모아서 공동체 삶을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권력을 얻기 위한 투쟁과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 같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생존권 투쟁을 해야죠. 이것을 안 하면 유지도 안 되니까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대부분이 생존권 투쟁만으로도 힘드니까 더 나아간 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 거죠. 그러다 보니 ‘뭐 선거로 뽑아 놨으니까 정치인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밖에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을 극복해 나가려면 내 생존권의 문제에 대해 투쟁함과 동시에 민중들의 권력을 얻기 위한 실천을 같이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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