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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건설에 붙여
허영구
2926 2060  /  180
2011년 01월 18일 00시 33분 03초

공공운수노조 건설에 붙여

 

공공운수노조운수위원회가 대의원대회를 통해 2011년 4월 30일까지 공공운수노조를 건설할 것을 결의했다. 따라서 현재 준비위 소속 노조 중 산업노조로의 전환을 결의하는 조직만의 참여로 출범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산업노조를 “산별”(産別) 또는 “산업별”(産業別)노조로 불러왔다. 영어로는 “Industrial Union”인데 이를 먼저 일본에서 산업노조가 아니라 산업별노조로 번역했고 우리도 이를 인용하면서 그대로 굳어졌다. “별(別)”은 “따로”(べつ)라는 의미다. 이는 노동조합이 산업에 따라 따로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를 굳이 번역하자면 “산업(계급적)적 노조”라고 했어야 옳았다. 그리고 규모에 따라서는 “소‧중‧대산별”로 분류하였다. 사실 소(중)산별노조라는 것은 업종이나 직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업은 물론이고 통계청이 분류하는 산업분류표에 따라서 직업(별), 직종(별)노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산업노조는 산업자본주의 초기 산업자본에 대응하는 조직으로 출발했다. 자본계급에 대응하는 노동계급의 결집체다. 나아가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조직적 전망을 갖는 운동조직이다. 단순히 산업분류나 직업이나 직종에 따른 그야말로 별도(別途)의 조직이 아니다. 기업노조에서 일반화되고 있는 공장이나 직장 울타리 내에서의 종업원의식을 뛰어넘는 계급적 각성을 통해서 건설되어야 한다. 따라서 <공공운수노조건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자료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정세와 전망이 빠진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전체 자료가 “산업노조가 건설되면 이렇게 된다.”는 식으로 현장 조합원들은 여전히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서 수동적이며 대상화하고 있다. 산업노조건설을 위해 지부장들이나 조합원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책임과 의무를 제시해야 한다. 조합원이 노조에 보험 든 것처럼 하면서 노동조합 간부는 대리인이 되고, 노조는 자판기마냥 해결사가 되는 형태의 산업노조 건설은 무의미하다.

 

노동조합은 투쟁하는 조직이다. 노동조합은 투쟁을 통해 건설되고 유지․발전한다. 1996년 말 김영삼 정권은 국회에서 날치기를 통해 노동법․안기부법을 개악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1996~1997년 노동법개정투쟁(노개투)을 통해 국회에서 통과된 노동악법을 시행도 하기 전에 폐기시켰다. 이는 매우 역사적인 사건이다.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당시 민주노총 산하 대부분의 가맹조직들은 기업노조였다. 그러나 지금의 산업노조보다 훨씬 활동적이었고 투쟁적이었다. 자료에 보면 공공운수노조건설의 목적 중 하나로 “무력화된 단체교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진정한 단체교섭권은 투쟁을 통해서 쟁취된다. 최근 민주노총 산하 대표적인 산업노조인 금속노조나 보건의료노조는 진정한 교섭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일정에 따른 형식만의 공공운수노조건설로는 교섭권을 쟁취할 수 없다. 조직건설 일정에 투쟁내용과 일정을 포함해야 한다.

 

공공운수노조건설을 통한 의회진출 역시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지난 2004년 총선을 통해 노동자대표가 국회에 진출하는 것만으로 노동자정치세력화나 노동자정치가 완성될 수 없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노개투 총파업 당시만 해도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만 국회에 있어도 노동자 현실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켰고 첫 등원에서 단병호의원(위원장)은 눈물로서 그 사실을 설명했다. 그러나 노사관계로드맵에 따른 비정규직악법이 통과되는 상황에서도 10명의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도 없던 1996년 말 노개투 총파업 당시보다 훨씬 더 무력했다. 지금 이명박 정권은 제 1야당인 민주당 의원 80여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만 그런 정당이라고 비난할 수도 없다. 민주(열린)당이 다수당이었던 시절 노사관계로드맵, 비정규직 악법, 한미FTA, 이라크파병, 평택미군기지 이전 등 물리력을 동원해 밀어붙였다. 지금의 한나라당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지금과 같은 보수양당 체제에서 노동자 투쟁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노동자 투쟁 없는 산업노조는 사상누각이다. 먼저 산업노조를 건설해 나가는 지도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전략, 전술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유럽에서 신자유주의 정책과 재정긴축정책에 맞선 정치투쟁이 벌어지는 것은 단지 산업노조 때문만이 아니다. 유럽에서 노조조직률이 8%로 가장 낮은 프랑스의 경우 강력한 투쟁이 벌어지는 것은 기존의 공산당이나 사회당계열의 산업노조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의 전노협처럼 새로운 전국적 조직인 <수드>가 투쟁을 주도하고 있고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의 동맹휴학과 거리투쟁 등 정치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작년과 작년 전국노동자 대회 전 현장활동가 조직들과 함께 <노동해방선봉대> 깃발을 들고 전국을 순회했다. 그런데 아직도 “노동해방” 깃발을 들고 노동해방을 외치며 다니는 노동자들이 있는가 할 정도로 분위기가 변한 것을 느꼈다. 노동자 스스로 계급적 의식이나 각성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은 철저하게 계급으로 무장하고 노동운동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전노협, 민주노총 건설과정에서 목표로 했던 노동해방은 계급적 산업노조건설과 사회변혁적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전략전술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과제다. 2011년 정권과 자본에 대응하는 전면전을 통해 산업노조를 건설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전면전이라는 것이 꼭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이 참여하는 총파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993년 3당 보수야합을 통해 만들어진 신한국당에서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면서 세계화를 제시했다. 노․경총합의를 통해 노동자 임금을 억제하고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해 6월 1일 발족한 전국노조대표자회의(전노대)는 상반기 임단투를 전국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총파업을 단행해야 했다. 그 당시 투쟁의 주력사업장이었던 현대중공업 이갑용 위원장(이후 민주노총 2대 위원장)은 전노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었다. 파업을 통해 거의 타결직전까지 갔던 현대중공업노조는 전노대 방침에 따라 일주일 동안의 총파업에 나섰다. 파업 이후 임금은 고작 100원이 더 인상됐다. 조합원들의 불만도 있었다. 이갑용위원장은 구속됐다. 이는 전국적인 전선에 복무해야 한다는 노동운동의 사명감으로 가능했다. 이 얘기는 이갑용위원장의 저서 <길은 복잡하지 않다>에 상세히 나와 있다. 그런 투쟁들이 모여 민주노총이 건설되었다.

 

1996년 말 한 달이 넘는 노개투 총파업 역시 전체 조합원이 모두 참여한 것은 아니다. 그 투쟁의 중심에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중심에 섰다. 2001년 롯데호텔 단일 사업장 투쟁 때에도 단병호 위원장은 서울역 앞에서 한 달간 단식농성을 하며 투쟁했고 가두투쟁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을 감당하기도 했다. 2002년 38일간의 발전소 해외매각 반대 발전노조파업에 맞서 민주노총은 총파업으로 대응했다.(2차 파업 유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구속 중인 단병호 위원장을 제외하고 지도부가 총사퇴 함) 2006년 한미FTA저지 투쟁에서는 총파업 남발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11차례의 총파업을 단행했다. 물론 횟수가 진행될수록 위력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총파업을 전개했다. 이 투쟁 역시 민주노총 전 조합원이 아니라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금속노동자들이 중심에 섰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2009년 77일간의 쌍용자동차 공장점거파업에서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가 무기력하게 대응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의 무력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쌍용차 파업은 당연히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파업으로 받아 안았어야 했다. 그러나 물병을 들고 공장 앞에 가서 물을 넣어달라고 애원하는 수준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처럼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치전선이었던 큰 투쟁에서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위원장이 수배 또는 구속되지 않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욱이 2010년 현장에 타임오프 악법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이었던 총파업이 4월에 천안함 사건, 6월에는 지방선거를 핑계로 없었던 일로 해버린 사건은 민주노총이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한 것을 보여주었다. 전선이 무너진 상황에서 개별 사업장이나 현장은 정권이나 자본의 공세를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2010년 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공장점거파업 역시 비정규직철폐투쟁의 획을 긋는 투쟁이었지만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를 중심으로 한 정규직노동자들의 연대(파업)투쟁 부재로 현재까지 미완의 승리로 남아 있다.

 

공공운수노조건설 역시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중앙의 무기력한 지도집행력으로 일정만 따라가는 조직건설은 진정한 의미의 산업노조가 될 수 없다. 기업노조연합과 하등 다르지 않다. 투쟁하는 기업노조보다 훨씬 못할 수 있다. 일례로 공공연구노조 소속이었던 한국노동연구원지부 투쟁이 지부차원이나 공공연구노조의 재정적 지원에 그쳤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선도하고 부르주아경제논리를 전파하며 노벨경제학상을 가장 많이 배출한 시카고 대학 박사학위 출신인 박기성 원장은 노동3권을 부정하는 등 이명박 정권의 공공부문 노동운동 말살정책의 최선두에서 노동연구원 지부를 파괴하려 들었다. 이런 투쟁이라면 당연히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이 투쟁전선을 치고 대응했어야 했다. 이명박 정권의 폭압적인 노동운동 탄압 속에서도 비정규직투쟁의 상징이 된 기륭전자와 동희오토 투쟁 승리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총연맹이나 산업노조는 산하 큰 사업장은 상급단체 지원 없이 알아서 하는 투쟁이고, 작은 사업장까지는 일일이 챙길 수 없다는 논리로 많은 투쟁을 방치하고 있다. 사업장 크기와 상관없이 정권과 자본의 폭압적인 탄압을 막아낼 수는 없다. 산업자본주의 초기 노조는 상호부조정신에서 출발했다. 투쟁기금을 지원하고 해고되었을 때 산업노조에서 생계비를 지급하는 등 연대를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투쟁을 조직하는 일이다. 우리는 정권과 자본의 민주노조 말살, 노동운동파괴에 맞서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계급적 산업노조, 공공운수노조를 건설할 수 있다.

 

(“공공운수노조 건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공공연구노조 지부장 토론회, 2011.1.13, 민주노총 서울본부 대회의실, 당일 토론 내용을 약간 수정 보완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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