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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원노로 내세워주며
원동(http://aef323ffe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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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11일 15시 55분 15초

김일성 주석은 민족을 위해 참되게 살려는 사람이라면 정견도 과거도 묻지 않고 민족앞에 높이 내세워주고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는 분이다.

사적인 남북조선정당, 사회단체대표자석회의를 눈앞에 둔 1948년 4월 19일 오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날 석회의 예비회의를 마감하면서 김일성 주석은 회의에 참가한 의 주요정당, 사회단체책임자들에게 한가지 제기할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이번에 개최되는 남북조선정당, 사회단체대표자석회의는 우리 민족의 사에서 의의깊은 회합인것만큼 석회의의 개회선언은 일제의 조선강점초기부터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국내외에서 장기간 굴함없이 싸웠으며 석회의에 참가하는 대표들중에서 년세가 제일 많은 김월송선생이 하는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순간 예비회의에 참가한 주요정당, 사회단체책임자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의 광범한 정치세력을 망라한 남북석회의의 개회사는 응당 석회의를 발기하고 그 성과적보장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온 김일성 주석이 하기를 한결같이 원하였고 또 응당 그렇게 될것이라고 생각하여온 그들이였던것이다.
하지만
김일성 주석은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국내외에서 장기간 굴함없이 싸워왔고 나이도 제일 많은 김월송선생이 전민족적인 남북석회의의 개회를 선언하여야 한다고 말하면서 회의참가자들에게 선생을 소개하였다.
김월송선생이 받아안은 격정은 더없이 컸다.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여
나서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자 독립을 이룩할 의로운 뜻을 품고 일찍부터 의병운동에도 참가하였고 또 상해시정부에도, 정의부에도 관여하였으며 그러나 그후 만주사변을 전후하여 독립군부대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애국의 한마음을 간직한채 은신의 길을 택하였던 그였기때문이었. 하기에 그는 자책속에 몸부림치며 나라가 해방된후 귀국의 길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였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월송선생은 그 사랑, 그 은정이 가슴에 뜨겁게 안겨와 이윽히 서있다가
김일성 주석을 우러러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김일성 주석은 다른 의견이 없으면 김월송선생이 사적인 남북석회의 개회를 선언하도록 하는것이 좋겠다고 말하자 전체 회의참가자들은 주석님의 제의에 전적인 지지찬동을 표시하였다.
드디여
사에 길이 아로새겨질 남북석회의가 열리.
김월송선생이 흰 수염을 날리며 연단에 올랐다.
연단에 나선 김월송선생은
김일성 주석께서 안겨 크나큰 믿음을 안고 70고령의 인답지 않게 열정에 넘친 목소리로 개회를 선언하였다. 개회사를 마치고 천천히 연단에서 내려서던 김월송선생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보내주는 김일성 주석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르는 순간 끓어오르는 감격을 금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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