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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서 사령관을 구하다
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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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06일 12시 52분 19초

 

9 22일은 백두의 여장수 김정숙 항일투사의 서거61돌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으며 북의 언론보도를 보면 김정숙 항일투사에 대한 추모열기가 그 어느때보다 뜨거웠다.

언제인가 서평방송에서는 김정숙 여장수께서 항일빨치산시기 친위전사로서 온 몸을 던져 김일성 주석님을 위기에서 구한 수령결사옹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소개하였다.

그 신변호위모범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1940 6월 하순에 있은 대사하치기전투였다 한다. 그만큼 대사하치기전투가 김일성주석에게 가장 위험한 정황이 조성된 전투였던것이다.

'
대사하'라는 하천은 항일유격대를 창건하던 시기 어머니 강반석여사와 동생들과 함께 살았던 '소사하'와 그 크기로 구분하는데 강보다는 작은 하천이다.

대사하치기 전투는 시작부터가 대단히 위험하였다. 불의에 일제 토벌대와 맞붙게 된 위급한 조우전이었을뿐만아니라 일제토벌대는 당시 유리한 위치에 기관총까지 걸어놓고 매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일성 주석이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한 대오를 이끌고 대사하라는 하천을 막 건너려고 물에 발을 딛는 불의의 순간 등뒤에서 기관총소리가 요란하게 터지면서 총알이 비오듯 날아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순간 김일성 주석님은 전 병사들에게 뒤로 돌아 모든 화력을 총동원하여 일제히 사격을 가하게 하면서 매복 토벌대가 있는 쪽의 야트막한 산으로 오르게 명령하였다.
당연히 유격대가 놀라 하천으로 뛰어들것으로 예상했던 일제토벌대는 자신들 쪽으로 유격대가 몰사격을 퍼부으며 질풍처럼 달려들자 혼비백산하지 않을수 없었다.

등뒤에서 총알이 쏟아지면 으레 사격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 내달리기 마련인데 김일성 주석님은 순간의 고민도 없이 단호하게 총알이 날아오는 방향에 있는 산으로 돌격할것을 명령한것은 유리한 고지선점이 무장이 약한 유격대가 주동을 틀어쥐고 싸울수 있는 결정적 조건임을 많은 유격전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김일성 주석님은 이동중 불의의 정황이 발생할 경우 그 지형에서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늘 생각하고 다녔다고 한다.
사실, 폭이 좁고 깊이도 허리에도 못 미치는 하천이기는 하지만 물속에서는 이동이 뜰수밖에 없고 또 물을 건넌다고 해도 총알을 막을 바위나 나무가 없는 갈밭과 벌판이라서 압도적인 화력을 소유한 일제토벌대가 집중공격을 가한다면 당시 김일성 부대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것이 자명하다.

그렇게 단숨에 하천변 갈밭건너 산으로 오른 김일성 주석님은 전투정황을 살피기에 좋은 산중턱 바위터에 지휘처를 정하고 우세한 화력을 믿고 공격해오는 토벌대를 본격적으로 소멸하기 시작하였다.

토벌대는 김일성 주석님이 이 대오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더욱 발악적으로 공격을 해왔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님 곁에서 전투정황을 살피며 호위임무를 수행하시던 김정숙 항일투사는 그때 근처 갈대가 흔들리는 것을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고 잘 살펴보니 5~6명의 토벌대들이 무성한 갈밭 속에서 몸을 숨기고 전투지휘에 열중인 김일성 사령관이 서있는 곳으로 은밀히 접근하고 있었다.

토벌대가 저격하기 위해 총구를 받쳐 드는 위기일발의 순간 김정숙 항일전사는 "사령관동지!" 하고 다급하게 외치며 몸을 날려 주석님앞에 막아서면서 적들에게 권총을 연신 발사하여 적을 꺼꾸러뜨렸다. 김일성 주석님도 김정숙 투사의 어깨너머로 권총을 뻗어 적들을 쏘았다. 김정숙 투사의 총알은 쏘는 족족 토벌대에 명중하였다. 결국 갈밭 속에 숨어 사령부로 은밀히 기어들던 5~6명의 일제토벌대는 순식간에 모조리 사지를 늘어뜨렸다.

전투가 끝나고 김정숙 투사는 리을설 투사에게 당시 정황을 설명하면서 "갈밭에 숨어 사령관 동지에게 기어오는 적들을 보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올라 막 눈에 불이 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급박한 위기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김정숙 항일투사는 1940 2월 하순 무송현 로수하전투에서도 움직이는 눈 무더기를 보고서, 눈밑으로 굴을 뚫고 사령부가까이로 접근하던 교활한 일제토벌대임 간파하고 명중탄을 퍼부어 소멸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1940 3 25일 마에다 토벌대를 격멸했던 홍기하전투 당시 동쪽 능선을 타고 사령부로 달려드는 적들을 멀찍이 유인하여 소멸하는 등 사령부의 안전을 위해서는 온몸을 내던졌다고 한다. 이 홍기하전투 유인전에서는 김정숙 투사 배낭 안에 들었던 양재기에 총알구멍이 두 군데나 나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김정숙 항일투사가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온 몸을 던져 사령부의 안전을 지켜낸 이야기는 무송현성의 잘루목전투 일화 등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이 대사하치기전투 당시는 기어드는 토벌대와 김일성 사령관의 거리도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회고록에서 김일성 주석이 밝혔듯이 전투를 지휘하느라 전혀 토벌대 접근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위급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북한에서 대사하치기전투는 김정숙항일투사의 중요한 업적중 하나인 최고사령관 신변옹위위의 상징으로 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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