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에서 희극으로 : 손학규론
1. 민주당 새 대표에 손학규가 뽑혔다. 각축을 벌인 정동영, 정세현과 무엇이 다를까?
---이 두 사람은 호남출신 민주당 원래주민이고 손학규는 한나라당에서 건너온 이주민이다. 그가 건너옴으로써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동네임이 실증되었다. 메이저리그, 마이너리그라는 차이 뿐.
---정동영, 정세현은 호남에서 민주당을 했다. 자기 기반이 뜨내기 짓을 허락하지 않는다. 손학규는 수도권에 있고 뜨내기짓에 맛 들였으니 앞으로도 또 뜨내기가 되지 말라는 법 없다.
--- 민주당과 민주진보세력 간에는 오랜 제휴의 역사가 있다. 그러니 정동영, 정세현은 ‘민주대연합’ 노선에 친화적인 반면, 손학규는 그런 인연이 없다. 그는 한나라당 있을 때 뉴라이트들과 어울렸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 중에도 (민주진보세력보다) 뉴라이트와 친화적인 사람이 많다. 손학규를 앞세워 여의도에 진입해 보려고 작당하고 다녔던 (민주당과 무관한) 젊은 야심꾼을 예전에 본 적 있다. 물론 당 노선을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니 민주대연합이 모색되기는 할 터이지만 그는 민주대연합에 대해 좀 소극적일 가능성이 있다.
--- 민주당의 전 지도자들과 비교해 보자. 김대중은 부르주아들에게 (박정희보다 더 혁혁하게) 봉사한 정치인이긴 해도 그 부류 중에는 그릇이 가장 컸다(역경에 따른 단련). 노무현은 김대중보다 그릇이 작았지만 사람이 진솔했다. 그 진솔함이 나름으로 공감을 주어서 무너져가는 민주당을 잠깐 일으켜 세웠다.
손학규는 어떤가? 앞의 두 사람이 ‘인간적 풍모’는 있었던 반면, 그는 그것마저도 없다. ‘비극은 희극으로 반복된다’는 역사의 섭리(?)는 남한 정치에서도 관철되는 것 같다. 김대중이 민주진보세력을 말아먹은 것은 우리 역사의 비극이다. 그러나 (민주대연합이 성사될 경우) 손학규가 21세기의 민주진보세력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대중 앞에 선다는 것은 차라리 소극(笑劇)이다. 아, 까삐딴 리!
---그는 대권을 쥘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설령 쥔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손톱만큼도 없다. 그래서 드는 추측인데, 손학규가 1등을 먹은 데에는 한나라당 쪽의 무언의 응원이 있지 않았을까? 이것은 추측일 뿐이지만, 앞엣 말한 한 ‘젊은 야심꾼’ 예를 보더라도 민주당 밖의 외인부대가 그의 당선을 도왔을 가능성은 다분하다.
2. 지난 글에서 나는 ‘세습’ 문제를 두 문장으로 개괄하는 데 그쳐서 실천적인 함의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쬐금 보충한다.
김정일은 <왜> 3대 세습의 추진을 서둘렀을까? “건강이 악화돼서” 그랬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는 반쪽짜리 답이다.
이번 당 대표자대회가 42년만에, 그것도 천안함 사건이라는 계기를 만나 서둘러 개최되었다는 사실을 유념하자. 대회의 1차 목적은 그동안 ‘군대’가 국가를 주도해올 만큼 어려웠던 사정을 벗어나, ‘당’을 정상 가동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목적은 ‘세습의 추진’과 결부돼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김정일 자신만 해도 8년간의 후계자 수업을 거쳐 그 실력을 주변에 인정받은 뒤에, 나이 40줄에 들어서서 외부 세계에 등장했던 것과 달리 김정은은 새파란 나이에, 그 수업의 시작과 더불어 ‘공식화’되었다. 김정일의 건강 악화가 이렇게 서두른 1차 이유다.
문제는 김정일이 결심하기만 하면 북한 인민 다수가 이를 덮어놓고 수긍하느냐다. 이렇게 간주하는 것은 참 소박한 생각이다. 봉건 왕조에서도 왕이 온갖 눈치를 다 봤다. 수령체제가 공식 이데올로기이긴 해도, 수령이 시키는 대로 다 따르는 것이 아니다.
고위층 몇 십 명이야 어떻게든 설득하겠지만 일반 노동당원들만 해도 ‘그래, 그럴 수밖에 없지’하고 수긍이 가야 따른다. 윽박질러서 소극적 복종은 끌어낸다 해도, 적극적 동의를 끌어내려면 근거가 충분해야 한다. 수령론이 아무리 풍미해도 “저 사람은 아직 어린데... 어떻게 그의 지도를 받는다는 거냐?”하는 의구심은 말릴 수 없는 것이다.
설득의 근거가 무엇일까? 올들어 중국 주석이 두 번씩이나 김정일을 만났던 사실을 떠올리자. 만난 지 넉달만에, 그것도 일반 호텔에서 남몰래 다시 만났다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엊그제 센가쿠 열도를 둘러싸고 중국이 아주 사납게 일본을 다그친 것도 (그동안 ‘미국 앞에 바짝 엎드린다’는 외교 기조를 취해온 중국으로서) 놀라운 일이다. 미국이 북한을 머지않아 진짜로 침공할 것이라는 사정이 아니고서는 이 사실들을 설명할 수 없다(이것은 페르시아만의 전운戰雲과도 연관돼 있다).
“전쟁이 나면 실제로 죽는 것은 젊은 세대들 아니오? 김정운이 아직 경험이 얕기는 하지만 자기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 젊은이라 해서 전쟁을 지휘하지 못하겠소? 야전에서 전쟁을 지휘하기에는 지금의 지도부가 너무 늙지 않았소?” 김정일은 아마 이렇게 당원들을 설득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당 대표자대회는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부랴부랴 추진되었다. 그리고 김정운뿐 아니라 고위층 상당수가 젊은 세대로 교체되었다.
며칠 뒤 워싱턴에서 한미 국방장관회의가 열린다. 북한침공 ‘개념 계획’을 ‘작전 계획’으로 상승시킨다고 한다. 실행에 옮긴다는 말이다. ‘세습’으로 북한이 손가락질 받게 되었으니 제국주의가 북한을 갖고 장난질치기가 수월하다. “어디어디서 세습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났다”는 식으로 사건을 꾸미는 장난! 이런 것이 쌓이면 정규전으로 발전시키기가 수월하다.
그러므로 ‘세습’을 둘러싼 논란은 다음과 같은 실천적 함의를 갖는다. 당신은 미국/남한의 전쟁몰이에 반대하겠소? 아니면 북한의 ‘3대 세습’ 규탄에 나서겠소? “나는 공평하게 미국도, 북한도 비판하겠소”하고 대꾸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는 말장난이다. “지금” 세습을 규탄하는 것은 ‘전쟁몰이’에 분노하는 사회분위기를 사그러뜨리는 데 혁혁하게 봉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