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은 항일의 여장군이신 김정숙여사님의 서거 61돌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을 맞는 각계 애국민중은 한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여사님의 위대한 생애와 업적을 감회깊이 돌이켜 보고 있다.
김정숙 여사님께서 쌓으신 업적중에서 중요한것은 어리신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이 근로정신을 가진 민중의 아들로 키운것이다.
근로민중이 하는 일이면 무슨 일이나 다 할줄 알아야 한다. 여사님께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께 이런 높은 요구를 제기하시었다.
어리신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서는 어머님의 요구에 기꺼이 응하시어 어머님과 함께 만경대 증조부댁을 자주 찾아가시어 호미로 김을 매는 일도 하시었고 민중이 떨쳐나선 건설장에 나가 일손을 거들기도 하시었다.
1946년 5월 평양에서는 김일성 주석님께서 착공의 첫삽을 뜨신 보통강개수공사가 한창이었다.
평양시민들이 보통강일대의 토성랑을 민중의 유원지로 개변하는 일에 떨쳐나섰다.
김정숙 여사님께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을 앞세우고 매일같이 나가시었다. 자신께서는 치마폭을 질끈 동여매시고 여염집아낙네들과 꼭같이 감탕에 들어서서 돌도 주어내고 삽질도 하시는 한편 자제분께서는 노인들이 고쳐놓은 삽이나 곡괭이를 날라다 주는 일과 같은 알맞춤한 일감을 잡아주시었다.
자제분께서는 땀을 흘리며 극성스럽게 뛰어다니시었다. 건설장에서 제일 나어린 건설자이시었다.
며칠을 두고 자제분의 직심스런 일솜씨를 지켜보던 한 노인이 하도 기특하여 물었다.
≪그래, 너희 집에서 너 혼자 여기에 나오느냐?≫
자제분께서는 어머님을 가리키시며 어머님과 함께 나온다고 대답하시었다.
노인은 자제분께 아버님은 계시는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가고 집안내력을 자꾸 캐물었다.
자제분께서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말자니 노인을 노엽히는 불손한일 같아 공손히 사실대로 말씀올리시었다.
그러자 노인은 대번에 굳어졌다.
김일성 주석님의 어리신 자제분께서 어떻게 힘든 공사장에 나와 어른들과 어울려 일할수 있단 말인가.
노인은 정녕 믿기 어려워 자제분의 손목을 잡고 감탕 속에서 땀흘리며 흙을 퍼올리시는 여사님께 다가갔다.
여사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겸허한 자세로 말씀하시었다.
≪할아버님, 장군님의 자제라고 이런 공사판에 못나온다는 법이야 없지 않습니까. 장군님 자제일수록 이런 공사장에 나와서 한가지 일이라도 성심껏 도와야지요.≫
여사님의 말씀은 노인의 가슴을 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주었다.
여사님께서는 이렇게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을 앞세우시고 민중의 참된 삶의 현장을 찾아 끊임없이 걷고 또 걸으시었다.
그 나날에 어리신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뇌리에는 근로하는 민중의 참모습이 선명하게 각인되고 그분의 가슴에는 근로하는 민중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고즈넉이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