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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시원과 창시, 영도의 개시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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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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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8월 22일 13시 23분 20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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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시원과 창시, 영도의 개시문제 8월25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선군혁명영도를 개시한 때로부터 50돌이 되는 날이다. 오늘 북한이 위대한 선군조선으로 세계만방에 그 존엄과 영광을 떨치게 된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 선군혁명영도가 안아온 자랑찬 결실이다. 오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펼치는 선군정치는 비로서 50여년의 역사만을 가지는것이 아니다. 어떤사람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정치를 창조하게 된것은 사회주의혁명의 역사적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요구를 반영한 것이며 또한 현실적으로 북한의 주체혁명위업(주체사회주의)앞에 제기되는 미증유의 난관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고 주체혁명위업을 고수발전시키며, 오늘날 인류의 진보와 평화가 힘을 못쓰는 상황하에서 그를 소생시키고 활성화시키는 것까지를 고려하여 창조한것이라고 말들하고 있는데 이것은 선군사상의 시원과 창시 등에 대한 몰상식한 이해에 기인된다고 볼수 있다. 그러면 선군사상의 역사적 시원은 어디에 있고 선군사상은 언제 창시되였는가 북한의 웹싸이드 “우리 민족끼리”의 주장을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풀이할수있다. 선군사상의 시원은 우선 김형직선생의 혁명유산인 두자루의 권총에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께서는1926년 6월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으로부터 《지원》의 사상과 3대각오, 동지획득에 관한 사상과 함께 두자루의 권총을 혁명유산으로 물려받으시었다. 두자루의 권총에는 조직적인 무장투쟁이야말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있는 최고의 투쟁형태라는 김형직선생의 원대한 사상과 또한 민중이 총칼을 들고 일어나 제국주의와 싸워 나라를 찾고 착취와 압박이 없는 새 세상을 세워야 한다는 무산혁명에 관한 사상이 담겨져있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께서는 이 두자루의 권총에서 《칼 든 놈하고는 칼을 들고 싸워야 이길수 있다.》는 아버님의 당부를 심장에 새기었으며 뼈가 부서지고 몸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님의 총적지향이였던 무장투쟁으로 반드시 나라를 찾으시려는 혁명적 각오와 입장을 가지었다고 “회고록”에서 회고하였다. 선군사상의 시원은 다음으로 《ㅌ. ㄷ》의 강령에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께서 1926년 10월 화성의숙에서 “타도 제국주의동맹”<ㅌ. ㄷ>를 결성한것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판가리싸움의 선포이며 지구상의 모든 제국주의와의 대결의 선언이었다. <ㅌ. ㄷ>의 강령에는 제국주의자들과의 적대적모순은 《타협》하는 방법으로는 해결할수 없고 오직 제국주의를 때려부셔야만 해결할수 있다는 투철한 반제적입장과 결사의 의지가 반영되여있다. 《ㅌ. ㄷ》의 강령에는 또한 총대로 혁명의 닻을 올리고 전진시키며 총대로 반제자주위업을 완성하려는 원대한 사상이 담겨져있다. 견결한 반제적입장과 총대를 중시한 결사의 각오가 맥박치고있는것으로 하여 두자루의 권총과 《ㅌ. ㄷ》의 강령은 철저한 반제자주사상인 선군사상의 역사적시원으로 된다는 것이다. 선군사상의 창시는 김일성 주석에 의해 항일무장투쟁이 개척되고있던 시기인 1930년 6월말 ~ 7월초에 열린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지도간부회의 (카륜회의)에서 선포되었다는것이다. 김일성 주석께서는 카륜회의에서 하신 역사적인 보고 《조선혁명의 진로》에서 세가지 노선과 방침을 제시하였는데 그 첫번째가 선군사상이 구현된 항일무장투쟁노선이었다는것이다. 카륜회의에서 제시된 무장투쟁노선이 선군사상의 창시를 선포한 노선으로 되는것은 이 노선이 총대로 혁명을 개척하고 전진시켜나갈데 대한 선군사상의 근본핵을 명시한 사상이며 노선이기때문이라는것이다. 주석께서는 카륜회의에서 당시 혁명앞에 조성된 정세와 식민지민족해방운동발전의 합법칙적요구를 반영하여 제국주의침략세력을 무력으로 때려부실데 대한 노선을 반일민족해방투쟁의 기본노선으로, 조선혁명가들의 첫째가는 과업으로 규정하였다. 주석께서는 실패와 곡절만을 겪고있던 당시 조선반일민족해방투쟁의 실태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으시고 카륜회의에서 평화적방법으로는 절대로 발톱까지 무장한 일제를 타승하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없다는데 대하여 밝히었다. 그리고 무장으로 전면적인 항일대전을 벌리는 길만이 조선혁명의 진로를 성과적으로 개척하고 일제의 식민지폭압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수 있는 유일하게 정당한 길이라는 진리를 밝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혁명의 총대우에 나라와 민족의 자주독립도 부강번영도 있으며 따라서 총대를 중시하고 그것을 기본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한다는 주체의 혁명원리, 혁명의 법칙을 명시한 위대한 사상으로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김일성 주석께서 카륜회의에서 제시한 무장투쟁노선은 선군사상의 근본핵을 명시한 사상과 노선이었다는 것이다. 선군사상을 구현한 선군혁명령영도의 시작은 김일성 주석께서1932년 4월 25일 안도현 소사하에서 조선에서의 첫 혁명적 무장력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고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하신 때부터이라는 것이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이 선군혁명영도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변으로 되는 이유의 하나는 그것이 총대로 혁명을 개척하고 전진시켜나갈데 대한 선군사상의 빛나는 구현이기때문이라는 것이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은1930년 6월 30일에 열렸던 카륜회의에서 천명되고1931년 12월에 열렸던 명월구회의에서 구체화된 선군사상, 선군혁명노선의 빛나는 구현이었다는 것이다. 카륜회의에서와 12월 명월구회의에서 총대로 혁명을 개척하고 그 종국적승리에로 확신성있게 이끌어나갈수 있는 혁명적기치, 지침이 마련되었다면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됨으로서 총대, 혁명군대를 중시하고 앞세울데 대한 선군사상의 원리와 원칙이 현실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된 때로부터 군대를 먼저 창건하고 그에 의거하여 전반적조선혁명을 이끌어나가는 김일성 주석의 선군혁명영도의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이 선군혁명영도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변으로 되는 이유의 다른 하나는 그를 통하여 선군혁명을 앞장에서 떠메고나갈 주체적핵심역량이 마련되였기때문이라는 것이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일제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고 나라와 민중을 사랑하는 노동자, 농민, 애국청년들로 조직되고 진정으로 민중의 이익을 보호하는 혁명적인 무장력으로서 조선에서 일제식민지통치를 뒤집어엎고 조선민중의 민족적독립과 사회적해방을 달성하는것을 목적과 사명으로 하였다. 김일성 주석께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심으로서 조선의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주류인 무장투쟁을 직접 담당하고 이끌어나갈 원동력이 마련되게 되었으며 선군의 기치따라 조선 혁명을 끊임없이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근본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은 선군사상을 구현한 김일성 주석의 선군혁명령도가 시작되였음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변으로 된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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