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해야 할 노동자정치세력화 과제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진영은 전노협과 민주노총을 거쳐 오면서 끊임없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장해 왔다. 궁극적으로 노동해방과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였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사업장 내 현장권력에서부터 추상적이긴 하지만 국가권력을 쟁취하는 데 까지 그 목표로 삼았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산업(별)노조건설과 함께 민주노조운동의 양 수레바퀴였다. 민주노총 산하 여러 연맹들이 산업노조로 전환하였거나 전환 중에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자본이 만든 산업분류표상 울타리를 치고 기업노조에서 형식만이 전환된 소위 무늬만 산업노조에 머무르거나 그 조차도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다. 초기 산업자본주의 시대 (산업)자본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계급적 연대체로서의 산업노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자본운동에 대응하는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목표는 희미해져 가고 있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역시 섣부른 의회주의로 빠져들었다. 조급주의, 소영웅주의, 출세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노동자 국회의원 단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던 시절의 노동자정치세력화 전망은 그런대로 낭만적이었다. 그러나 의회진출 10년 만에 노동자중심의 진보정당들을 패권주의에 빠졌거나 노동자 계급의 토대 없는 집권전략의 망상에 사로잡힌 채 신자유주의보수정당들과 무분별한 선거연합까지 하고 있다. 노동자정치는 대중적 토대와 뿌리 없이 의회에 진출하거나 관료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은 당면한 자본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일상 활동, 교육, 선전, 집회, 대중파업 속에서 함양되는 것이다. 투쟁과정에서 연대를 실천하고 노동자 계급의식을 고양함으로써 노동자정치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정규직중심의 조직된 노동자들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운동의 중심이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있다는 주장도 섣부르다. 여전히 조직된 노동자들이 투쟁의 중심에 서야 한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연대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연대는 미약하고 투쟁은 고립 분산적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23년이 흘렀다. 1996년 말 노동악법개정(노개투) 총파업 때까지 10여년은 투쟁의 상승기였다.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도 없던 시절인 노개투 총파업으로 날치기로 통과된 정리해고법을 폐기시켰고 80%가 넘는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 이후 민주노총으로 대변된 민주노조운동은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밀려 끊임없이 하강하고 있다. 활동가들 중 일부는 민주노동당을 통해 진보정치에 뛰어들었고 일부는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에 포섭되었다. 자본은 노동운동을 체제내화하면서 노동계급 내부를 분할지배 했다. 자본은 경제성장의 물적 토대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착취를 통해 전투적 경제주의 노동운동을 개량화하는데 성공했다. 투쟁은 점점 약화되었다. 노동자들은 개별화되었고 두려움과 공포가 커졌다. 연대는 점점 더 약화되고 있다.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이 아니라 열 명으로도 안 된다는 것을 체험했다. 급기야 투쟁이 아니라 의회나 지방자치를 통한 정치적 진출을 통해 노동자들의 정치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신자유주의 야당과의 민주(선거)대연합을 통해 국회의석 과반수를 얻으면 노동악법을 개정하고 자본의 탄압을 막아낼 수 있다는 소리까지 한다.
노동자정치세력화는 민주노조운동의 선언과 강령의 빛바랜 글씨로만 남았다. 고작 10년 남짓한 기간에 노동(자)정치는 사라지고 앙상한 의회주의와 정치허무주의만 남았다. 반면 오늘날 급변하는 자본주의 환경은 노동자 민중들의 현재적 삶조차 보장하지 않는다. 무한착취 시대다. 지금의 자본은 예전의 재벌수준이 아니다. 초국적 금융투기자본과 세계주식회사로 불리는 다국적기업들이다. 정권 역시 정격유착을 통해 재벌을 옹호하는 것을 넘어 자본의 대리기관이다. 자본이 실질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광풍이 몰아치는 지금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관망과 허무와 냉소주의를 벗어던지고 노동자정치 실천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파탄 난 노동자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o. 노동운동 복원
- 민주노조운동을 재구성한다.
- 계급적 산업노조건설을 추진한다.
- 노동현장 일상 활동을 강화한다.
- 자본운동에 대응하는 정치투쟁을 전개한다.
- 특정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폐기한다.
o. 계급적 연대 실천
- 노동계급 내 연대를 강화한다.
- 비정규직․실업자와 연대하고 조직화한다.
- 소수자운동을 지지하고 연대한다.
- 국제주의 노동운동을 전개한다.
o. 노동자정치 실천
- 노동자 정치의식을 제고한다.
- 방관, 냉소, 소극적 태도를 벗고 적극적으로 나선다.
- 단기간의 성과보다 세대를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추구한다.
- 반신자유주의를 넘어 정치적 대안을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