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후 1시, 시청 건너편 삼성본관 앞에 집결해 있던 사람들이 서울역쪽에서 현대자동차 동지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오자 삽시간에 거리로 투신?하여 집회 대오를 형성했다.
상공에서는 헬리콥터 두 대가 집회 대오 위를 여러 차례 저공비행하며 사이렌을 울려대서 제법 집회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그러다가 좀뒤 물러갔지만).
내 뒤로 얼마나 들어찼는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청앞에서 남대문 너머까지 빼곡이 찼으니 3만명은 왔다고 해야 할까? 아님 4만 명? 예상 대오는 십만명은 족히 된댔으니, 방방곡곡 톨게이트에서 막혀 못온 사람을 감안하면 그쯤? 나중에 행진하며 전교조 선생들을 만났는데 예년에 노동자대회때 온 숫자보다 훨씬 많았다. 엔엘파 계열 선생들에게 ‘동원령(참여 독려)’가 강력하게 내려갔음을 알 수 있었다.
속초에서 온 분들과 같이 앉았는데 먼데서 오느라 점심을 걸렀다고. 서울대 병원노조 조합원인 간병인 아주머니들 십여 명과 마주쳤다. 최하 50대요, 60대 연배도 많았는데 하루 24시간 꼬박 일해서 일당 5만원을 받는다니, 그런 과로에 저임금이 없다. 집회 나오는 거, 아주머니(할머니)들이 꺼리지 않았냐고 노조 활동가에게 물었더니 처음엔 약간 그랬지만 집회 한번 와보고는 좋아 하더라고 전한다(그래서 비-보장 노동자들의 계급성이 더 높다고 하지 않는가)
2. 집회는 ‘대충 날림’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뻔한 이야기들. 오종렬씨는 “자주민주정부 수립합시다아앗” 외쳐대고, 민주노총 이석행씨는 “가스 잠그고, 철도 멈추고, 확 스톱시켜 버립시다앗”하고 공허하기 짝이 없는 ‘파업 엄포’나 놓고.
그나마 시원한 연설 하나는, 올해 전태일상을 수상한, 삼성그룹에서 노조 인정투쟁 벌이는, 지금 갇혀 있는 김성환 동지의 부인인가? 하는 분이 “삼성 개0끼들아!”를 몇 차례나 외쳐댄 것이었다. 오죽 힘들게 싸웠으면....
드디어 권영길 후보가 단상에 오르고, “권영길!” 연호가 터져 나온다. 몇 마디 말하더니, 자기의 ‘입장(정견)’을 밝히겠단다.
① 에프티에이는 이렇게 날치기로 하지 말고, 국민투표를 해라. 그러면 승복하겠다.
(저 분, 큰일날 소리를 하네? 국민투표를 벌이면 찬성이 더 많을 게 분명한데? ‘절차 민주주의’ 주장을 잘못 꺼냈다가는 그 내용의 정당성마저 추인해주게 되는데, 사안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닌데...)
② 비정규 악법 폐기하고 새 비정규 차별금지법을 만들겠다.
(....민노당이 이것, 어리숙한 노동자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는데, 자본가들 벌어가는 돈의 엄청난 부분을 뺏어내는 일인데 ‘거리 항쟁’ 없이 그 법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 이것은 법 개정의 문제가 아니라 거리 항쟁 또는 대규모 총파업의 문제다...)
③ 이라크 파병 반대한다
④ 삼성 이건희는 진작에 감옥 갔어야 한다. 이건희를 ‘특검’에 붙여라. 재벌을 개편하여 국민기업으로 만들겠다.(...‘개편하여 국민기업으로’는 둘다 부정확하거나 애매모호한 개념이다. 지금의 계급 역관계에서 재벌을 ‘국유화’하라는 요구는 들이밀어 관철시키기 벅찬 요구라 할 수 있겠고, 그렇더라도 ‘재벌’을 해체하여 거기 속한 기업들을 흩어놓으라는 요구는 (덜 급진적이기 때문에 즉 소유권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대중을 상당히 설득할 수 있을뿐더러, 자본가계급의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줄이는 중요한 전술이 될 수 있다. 당장 중앙일보를 약화시키지 않는가)
3. 집회가 끝나고 명동, 무교동쪽으로 행진해 갔다. 가까이서 일본말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다보니 늙수구레한 일본 노동자들 이삼십 명이 구호를 외쳐댄다. 이들은 온통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지만, 안국동에서는 관서지방 레미콘지부 소속 삼사십 명의 노동자들을 보았다. 이들 중에는 30-40대가 많아서 반가웠다. 대오가 나뉘어 반은 광화문으로, 반은 안국동으로 갔는데 뒤의 대열을 따라갔다. 물대포가 잠깐 등장하고, 경찰이 시위대를 물리치려고 백미터쯤 진격했다가 경찰 쪽수가 많지 않으니 되돌아갔다. 뚫을려면야 뚫을 수도 있는데 시위대를 선동하는 부분이 없다. 웅성거리고들 서 있는데 ‘다시 광화문으로 오라’고 연락이 왔단다. 청계광장을 지나 세종로 대로에 다들 집결했는데 ‘파장’ 분위기다.
4. 대회를 평가해본다. 주최측은 무엇을 기대했을까? 십만명은 넘게 모일 거로 기대했을 터이고, 경찰이 원천봉쇄 위협은 했지만, 설마 톨게이트들에서 악착같이 막으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을 거라고 보인다.(불법집회로 규정한다고 정부가 엄포를 놓으니까 권후보가 ‘연단’에 서야 하는지도 고민하는 회의가 열렸다고 인터넷은 전한다)
토요일밤에 전술 대책 짤 때, ‘서울로 모이지 말고 각 지방에서 대회를 여는 방안’까지 거론되었다고도 한다. 원천봉쇄를 당연히 예상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주최측은 “많이 모여서 민노당 고정 지지자층의 대오를 탄탄히 한다”는 것을 우선 기대했을 터이고, 한 15만명쯤 모였으면 더없이 좋겠다고 희망했겠지. 그 바탕 위에서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날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여겼겠지. 권후보가 발대식 때 제시한 ‘가치(를 공유하는 정치세력들의) 연정(=연립정부)’을 더 구체화할 수 있는 그런 메시지!! 오종렬씨가 ‘자주적 민주정부 세웁시다’하고 외쳤는데 그 개념은 ‘가치 연정’과 아주 잘 어울린다.
5. 그러나, 민노당 지지세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경찰의 원천봉쇄로 많이 찌그러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정동영/이인제/문국현/권영길의 후보 단일화가 설령 성사된다 하더라도 별다른 ‘파괴력’이 없을 거라는 사실이 날로 분명해지고 있지 않은가.
이회창이 나타나니까 ‘3자 반부패 연대’ 제안을 문국현쪽에서 했던가? 선대본부장 최규엽은 그 회동에 나갈까, 했는데 권영길이 퇴짜 놓아서 무산되었다고 한다. 자주파 최규엽은 ‘후보 단일화’ 정치협상을 벌이고 싶었던 게고, 권영길은 그것을 ‘별로’로 여겼던 듯하다. 아무튼 권후보 연설에는 그런 내용이 들어있지 않았다.
권후보가 등단했을 때 사회자는 ‘권영길!’ 연호를 부추겼는데 그 연호가 별로 활기차지 못했다. 대열 앞에서나 따라했을 뿐, 뒤에는 파급되지 않았다. 그가 ‘만인보 순례’를 주로 농촌에서 했는데 믿었던 농민대열이 ‘원천봉쇄’ 탓에 별로 많이 참가하지 못했거니와, 농민들이 더 많이 왔더라면 ‘연호’가 더 커졌을까? 아무튼 ‘후보’를 열광하는 분위기가 별로 형성되지 못했고, 선거운동 분위기가 잘 뜨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6. 현장노동자 처지에서는 평가기준이 다르다. 허위허위 서울로 달려온 바닥 노동자들의 처지에서는 수많은 대오의 위세를 발휘해줄 ‘투쟁 분위기’가 떠야 집회에 온 보람을 느낀다. 주최측의 예상보다는 ‘투쟁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떴다. 안국동에서 물대포도 등장하고, 돌도 몇 개 던지기는 했다. 그러나 ‘전야제’를 투쟁적으로 치른다고 월드컵 상암점에 대오가 몰려 가기는 했는데 막상 민주노총 지도부는 투쟁을 독려하지 않고 사람들이 앉아만 있다가 왔단다(민노총의 지도력 부족이 심각하다!).
시내 행진하고 경찰과 얼마간 대치한 후, 정리 집회를 하고 마치는 ‘순서’가, 별다른 긴장감을 주지 못하는 이런 대회 방식이, 연례행사로 벌이는 대회에서는 ‘그러려니’하고 보아넘길 수 있어도, “백만을 모아낸다! 만인보 어쩌구...”하고 요란하게 광을 낸 대회로서는 너무나 식상하다.
7.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설령 ‘경찰 대치선’을 뚫고 더 진격했다 한들 무엇이 달라졌을까, 싶다. 그 돌파 투쟁은 11.11 민중대회 ‘기조’와 너무나도 어긋나는 것일뿐더러, 대통령 선거 국면에 진보변혁세력이 주되게 할 일은 ‘선거 무대’ 위에서 진보변혁세력의 메시지를 널리 퍼뜨리고,그래서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것이 아닌가. 대중 집회 또는 대중투쟁은 ‘보조적 구실’이나 할 뿐이니, 너무 ‘치열한 대결’에 연연할 것이 원래 없었다.
(그러니까, 비조직 대중에게 정치메시지를 열심히 퍼뜨려야 할 귀중한 시기에, 기본고정표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대회’를 연다는 것은 원래 방향착오였거나, 아니면 ‘우리 고정표를 건지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패배주의의 표현이 아니었던가?)
주최측의 의도와 달리, 아래에서 투쟁 흐름을 밀어올릴 수는 있다. 그러나 ‘커다란 목표를 위해 싸운다’하는 목표의식을 공유하고 있을 때라야 집회 참가자들이 더 열심히 싸울 것이고, 치열한 투쟁방식도 그래야 의미가 있게 된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요구 사항’은 여러 개가 산만하게 나열돼 있고, 분노를 조직해낼 만큼 ‘목표’가 뚜렷하지도 못했다. “경찰을 뚫을 수도 있는데...”하고 아쉬워하기 전에, “그 돌파가 의미 있으려면 대회의 목표가 더 치열하게 업그레이드되었어야 한다”는 사실을 되돌아봐야 한다.
이를테면 ‘이건희를 특검에 붙이라’는 흐리멍덩한 요구쯤으로 ‘치열하게 싸우자’고 사람들을 독려할 수 있을까? “재벌 해체!”의 초점을 분명히 하고, 이 싸움이 전체 노동자와 자본가의 한판 대결이 분명해질 때라야 돌격대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튀어나오는 것 아닌가?
8. 대회는 주최측에게도 별로 힘을 보태주지 못했고(세력 과시의 미진함, 후보 열광도 미흡),
그들을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에게도 힘을 느끼게 해주지 못했다. 15만명 넘게라도 왔더라면, 대회 자체가 무엇을 결실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세력이 이렇게 크구나’하는 흐뭇한 마음들이라도 나누지 않았겠는가. 뻔한 대회 진행도 더 사람들을 시들하게 했을 터이고.
이렇게 ‘세를 과시’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얻는 게 무에 있을까? 있을 것 같지 않다. 비조직 대중들에게 던져줄 무슨 뾰죽한 비전이나 새로운 메시지가 나온 것도 아니고, 이것이 보수세력(명박이 더하기 회창이)의 기세를 주춤거리게 할 무슨 계기가 된 것 같지도 않다. 원천봉쇄 때문에 ‘세 과시’를 하지 못한 것이라면, 그 원천봉쇄를 타격하는 거리 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기라도 해야 할 것인데, 그러지도 못했고, 그럴 뜻이 누구에게도 있지 않았고, 그렇게 했더라도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투쟁은 되지 못했으리라.
9. 진보/변혁세력의 위세가 계속 쭈그러들 위험 앞에서, 고민은 더 깊어져야 한다. 11.11 민중대회는 별로 진전의 계기가 되지 못했다. “여기, 우리 조직대오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주기는 했을망정.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