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동영과 권영길, 누가 진보적인가? 교육부문만 놓고 보자.
2. 우선, 동영이는 ‘입시폐지’를 큰소리로 외쳤다. 민노당은 그렇게 외치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볼 여유와 관심이 없는 대중은 그 사실만으로 판단할 터이니 대다수 민중에게 그들의 힘든 문제를 어루만져주고 확실한 의지를 보여주는 정치인은 영길이가 아니고 동영이다.
3. 내용을 들여다봐도, 동영이는 그동안 ‘전교조’가 주장해온 것을 ‘몽땅’ 받았다. (교찾사는 대학평준화까지 주장했지만 전교조 주류는 그러지 않았다). 교육예산도 지디피의 7%로 늘리고,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에서 25명으로 바꾸었다. ‘수능’을 자격고사로 바꾸고, 본고사도 없애고, ‘내신’ 위주로 간다.... 물론 전교조가 주장하지 않은 ‘영어교육 강화’도 내세웠지만.
물론 ‘실제’를 따지자면야 민노당에 더 좋은 세부안이 있는 것이야 사실이지만, 그거는 일부 사람만 아는 것이고 국민대중이 그거를 몰라준다고 원망할 수는 없지 않은가.
4. 동영이쪽에 정책 자문을 해준 교수의 장광설에 따르면, 걔가 그렇게까지 ‘좌선회’할 줄은 몰랐다는 거다. 최근에 확 돌아선 것이고, 다른 부문의 공약에서도 계속 ‘좌선회’할 것으로 예상된단다. 현 집권당이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것이, 동영이캠프가 제대로 준비한 공약/대안이 ‘교육부문’밖에 변변히 없는 것을 자기도 확인하고 놀랐단다.
아무튼 ‘교육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왔고, 오히려 한겨레신문이 “야, 그거 현실성 있어? 위태로와보인다”고 비웃을 정도다.
민중에게 스펙터클만 제공하는 부르주아 선거란 것이 그런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치인이 <사민주의 색깔로 하루 아침에 둔갑하고> 나서는 선거! 동영이의 겉 다르고 속 다름을 욕해봤자 하릴없는 일이다. 하루 아침에 “왼쪽의 색깔”을 동영이에게 빼앗긴 민주노동당이 자신의 나약한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반성할 일이지.
5. 강서지회 강연회때, (엔엘파 골목대장이고, 지금 정세에서는 민노당의 정치방향을 뒷전에서 요리할 실력자인) 최규엽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는데, 하나는 권영길이가 ‘연립정부’ 제안했는데 그 대상에 정동영이 당도 포함된 거냐? 또 하나는 ‘비정규직의 문제를 진짜로 해결하기 위해서’ 민노당은 발본쇄신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저 집회에서 구호 한두번 외친다고 생색낼 일은 아니지 않으냐?
첫 질문에 대해 그는 “민노당은 진보대연합을 하기로 정했다. 어쩌구....” 그러니까 ‘연립정부 제안’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거니까 시빗거리로 삼지 말라는 뜻이다. 물론 그를 포함해 민노당 지도부들은 동영이네 당이 얼마나 엉터리이고, 신자유주의 친화적인지 열심히 떠들어댄다. ‘에프티에이에 반대해야 하고, 비정규 문제의 해결 의지가 있어야 하고, 평화통일 찬성이어야 한다’고 그네는 ‘단서 조항’을 달았지만, 그거야 동영이네가 ‘태도’만 조금만 바꿔도 되는 일이니, 지금으로서는 그네들이 “전격적으로” 후보 단일화를 추진할 때 막아내기가 간단치 않다. 그저 심상정 노회찬이가 ‘그거 문제 있다’고 중얼거리다가 마는 정도가 아닐까. 당내 좌파라는 부분은 “우파의 방향이 문제 있어요”하고 소리 한두 번 내다가 ‘역부족’이라며 따라가는 행태가 반복될 것이다.
물론 둘째 질문에 대해 그는 얼버무렸다. “진짜로 해결하려면 민중이 거리에서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시인한 뒤에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 답변도 “집회에서 몇 번 떠들고, 국회에서 법 개정을 거론하는 정도로 비정규 문제가 해결되는 거 아니잖으냐?”고 미리 쐐기를 박으며 질문했기에 그런 답변을 끌어냈지, 점잖고 착한 청중들 앞에서는 “민노당이 비정규 해결 위해 나름으로 노력해 왔다”고 강변을 해댈 것이었다.
6. 문국현이는 더 이상 치고 올라가기 어렵다고 볼 일이다. 얼마동안 상승세였으나 그뒤 주춤거릴 때, 이회창이가 등장하여 ‘관심 거리’에서 멀어져 버렸다. 그들이 ‘약간의 참신함’을 보여줄 거리는 없지 않으나, 그렇게 폭발력 있는 내용도 아니고(--노동시간 좀 줄여서 일자리 나누자는 게 좋은 말이기는 하나, 자본가들이 과연 그렇게 해줄지, 국민대중은 믿지 않는다--) 그것 말고 전해주는 메시지가 없는데 그들은 자기네가 대단한 ‘정치 상품’인 줄 착각하고 있다.
그는 후보 단일화에서 적당한 때 물러나서 일정한 ‘지분’을 챙기고 총선에서 ‘한 구석’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일 터인데, ‘우물 안 개구리’의 자만심을 버리지 못해 ‘못 먹어도 GO’로 갈 경우, 그래서 명박이네가 집권할 경우, 선거 이후에 (부르주아적) 시민운동의 입지 자체가 사라져버릴 위험도 높다.
7. 명박이네가 당선될 경우, ‘초창기’의 그림이 쉽게 예상되는데, 대중이 무현이 정권에서 혜택 누리던 정치그룹들을 전격적으로 솎아내서 ‘군기 잡기’에 들어갈 것이다. 대표적으로, ‘민주화 운동권’이 진출해 있는 ‘민주화 기념 사업회’와 관련하여 정부에서 파견한 공무원들을 철수시키고, 비리 사안 한두 게 적발해내면 바로 척결이 될 터. 시민단체쪽은 ‘참여연대’가 정부에서 받아먹은 돈을 ‘영수증 관계’로 들춰내면 바로 ‘부정부패 단체’로 몰아붙일 수 있다. 김대중 노무현정권과 밀월 관계를 누려온 사람들에게는 철퇴가 내려진다.
8. 최규엽이는 ‘약장사’라는 사실을 엊그제 실감했는데, “김경준이가 들어오면 검찰이 명박이를 ‘기소’해서 그는 후보 자격을 박탈 당할 것”이라고 단정지어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대선판이 요동칠 터이고 그러니 우리가 분발해볼 여지도 있다. 어쩌구”하는 것인데, 그런 ‘아전인수’의 말로 민노당 지지자들을 현혹하여 계속 기대를 품게 만드는 것이다. 명박이에게 최악의 사태로 치달으리라고 단정지을 근거는 지금 아무 데도 없다. 오히려 김경준이가 귀국은 했지만 ‘별 내용이 없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봐야 한다. 회창이가 꼭 그런 ‘유고’를 철석같이 믿고 선거판에 뛰어들었다고 간주하는 것은 정치를 ‘삼류 주간지 가십거리’ 정도로 인식하는 소치다. 회창이는 ‘중도 실용주의’로 명박이가 나아가니까, ‘극우 세력의 독자적 정립’도 가능하겠다 싶어 나선 것이고, 노동자 민중이 부르주아들에게 아무런 정치적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부르주아 세력들이 ‘각개 약진’하려는 추세의 일환일 뿐이다. 아마 총선에 가서는 노무현이 동네가 또다른 정당을 결성할 수도 있으리라.
9. 이런 판에, 11일 노동자 대회는 열린다. 밑바닥 민중이 진보운동세력에 대해서라도 개입력을 가지려면 이 대회가 주최자들 뜻대로 ‘많은 사람이 모여서 얌전하게 주최측의 정치 메시지를 경청하는 자리’로 귀결되는 것을 파토낼 일이다. 경찰이 원천봉쇄 말을 해대는 것은 이 집회가 주최측의 의도와 달리, 거리투쟁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에서다. 얌전한 집회로 귀결된다는 것은 이를 주최한 민노총 민노당이 “민중의 불만을 적당한 선에서 잠재워줄 방파제”로 구실한다는 말이다. 민노당은 “자, 이렇게 우리는 많은 대중을 고정표로 확보했다. 우리는 협상 파트너가 될 만큼 실력이 있다. 그러니 정동영, 문국현아, 우리와 연립정부 협상을 해보자.”고 나서고 싶으리라. 권영길이가 ‘민중대회와 ’연립정부‘ 제안을 선거운동의 두 축으로 삼겠다“고 밝힌 뜻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 진보변혁세력이 부실한 것이나마 하나의 정치 거점으로서 확보한 민주노동당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엔엘파의 ‘민노당 탈색화’ 프로그램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 민중대회가 투쟁의 장소가 될 때라야 그럴싸한 정치적 애드벌룬을 띄우려는 그들 속내가 빛이 바래게 할 수 있다. 경찰이 ‘원천봉쇄’ 소리를 높이는 까닭도, 전기노동자 정해진의 죽음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건설노조, 운수노조 쪽에서 일어났기 때문이고, 화요일 한전 앞 5천명의 노동자 집회는 대단히 격렬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리로 나갈 수 있다’는 위협은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