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사람을 병나게 해서야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환자가 되어 병의원을 찾습니다. 병원에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사무관리직, 간병인 등 여러 직종의 의료종사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일을 하지만 결국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종합치료사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환자에게는 병원 직원 어느 한 사람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그 중에서 간병인 노동자는 환자 곁에서 환자와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부산에 있는 센텀 병원에도 간병인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간병업무를 담당한 여성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장시간 근무에도 불구하고 오직 환자들의 쾌유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왔습니다. 장시간 노동이나 저임금에 대한 불만보다는 센텀병원 간병인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로 힘든 일을 감내해 왔습니다.
그런데 병원은 우리 간병인 여성노동자들을 계약해지 하고 말았습니다. 노동법적으로는 ‘부당한 해고’이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빼앗은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이는 매우 부당한 조치입니다. 간병인 노동자들은 오로지 병원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간병업무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쫓다니요? 이게 무슨 일입니까? 노동자는 쓰다버리는 물건이 아닙니다. 선진국 문턱에 있다는 한국 사회에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국제적으로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노동자는 소중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고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존재입니다. 노동자가 일터에서 쫓겨나면 노동자 자신은 물론이고 가정은 파탄지경에 몰리게 됩니다. 실업문제는 당사자들의 문제만이 아니고 전 사회적 문제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법상 법정 노동시간은 주당 40시간입니다. 연간(52주)으로는 2080시간입니다. 그런데 24시간 맞교대로 일하는 간병인 노동자들은 365일 중 182일을 일하니까 연간 총 노동시간은 4368시간이 됩니다. 그 동안 24시간 맞교대로 일한 간병인 노동자들은 야근이나 특근수당도 받지 못했습니다. 법으로 정한 노동시간보다 두 배가 넘는 시간입니다. 야근이나 특근 할증은 적용하지 않더라도 최저임금 기준으로 시급 4000원을 적용하면 1년에 최소한 1747만원은 받아야 합니다. 법적인 할증료를 적용하면 2000만원도 훨씬 넘습니다. 그러나 센텀 병원에서 일한 간병인 노동자들은 월 100만원 남짓 받고 일했습니다. 이 돈으로 가정을 지키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센텀병원에서 일한다는 긍지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대가는 냉정하게도 간병인 노동자들을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병원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소중한 곳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미리 예방조치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병원이 멀쩡하게 일하던 간병인노동자를 해고하여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는 병원의 의무와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부산지역사회에서 센텀병원이 차지해 온 의료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병원이 사람을 아프게 하면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입니다. 병원 건물밖에 수술성공률이 높고 질 높은 의료진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고 자랑하면서 안으로는 힘없는 간병인노동자를 해고한다면 지역사회가 이런 병원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혁명에 앞장 선 사람들 중에 의사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환자를 치료하는 일보다 환자를 발생시키는 잘못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청진기를 내려놓고 투쟁했습니다. 병이 든 뒤의 치료보다 사회적으로 병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잘산다는 지구상 30여개 나라 중에서 한국은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입니다. 여성간병인 노동자들이야말로 이런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입니다. 여성간병인 노동자들이 센템병원에서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환자들을 제대로 볼보지 않았습니까? 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병원에 손해를 끼쳤습니까? 지금 간병인 여성 노동자들은 그런 거창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자리로 돌아가겠다는 아주 작은 소망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병원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은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이 꾸려가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 한 많은 삶의 얘기를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넋두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센텀병원 병원장과 경영진은 간병인 여성노동자들을 즉각 원직 복직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환자들이 기다리는 병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환자들을 돌보며 간병인 노동자로서 의미 있는 노동을 하고자 합니다.
(2009.11.5, 노동해방 선봉대 부산지역 투쟁 현장 결합 센텀병원 집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