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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세계대공황하 노동운동의 방향과 과제
정윤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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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12일 12시 13분 5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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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11일 열린 한일 (궤도)노동운동리더토론회 토론문입니다. 참고로 싣습니다.

 

 

토론문 보완

-2009.9.7 정윤광

 

 

1. 글머리에

 

원래 발제자가 아닌 토론자로서 주제에 대해서 종합적인 글을 쓰기보다도 조상수동지의 발제문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을 제출하고, 첨부해서 토론 주체인 한국 궤도노동운동과 일본 JR총련의 활동에 대해서 약간의 느낌과 의견을 제시하였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에서 사전 워크샾이 진행되면서 수정 보완된 발제문이 나오고, 토론문이 추가로 제출되고 또 발제문과 토론문에서 나의 토론문에 대한 지적과 의견도 있으므로, 토론회장에서 발언으로 다 소화하기도 어려울 것이므로, 문장으로 다소간의 추가 의견을 제출하고자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워크샾을 통해서 사전 토론이 진행되고 발제문을 보완해서 제출하고 토론문을 추가 체줄함으로써 토론회를 보다 성과있게 만들어 가고 있다. 추가 토론문 제출에서 조상수동지발제문 관련해서 한 두가지 추가 언급을 하고, 주로 요모노동지가 나의 토론문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응답을 중심으로 하고자 한다. 될수록 긴 설명 하지 않고 요지를 말하겠다.

 

 

2. 공황으로 인한 대 파국의 전개와 제국주의 전쟁문제에 대해서

 

제2차세계대전 이후 70년대 초반까지의 장기간에 걸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호황의 원인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제2차대전전후에 쏘 동구에서 중국 베트남까지 광범위하게 확장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항하고 이를 봉쇄할뿐더러 제국주의국가와 광범위한 신식민지(제3세계)에서 인민의 사회주의적, 변혁적 투쟁과 반란을 저지하기 위해서 일정 수준의 복지정책이 필요했다는 것, ②양차 세계대전 전후의 노동자계급의 치열한 투쟁의 성과라는 것, 이로써 미국과 제국주의국가(선진 자본주의 국가)내부에서 케인즈주의와 사민주의적 복지주의를 실현한 것, ③유럽과 일본의 전후복구와 이들 지역과 주변지역에 대한 미국의 원조경제를 통한 잉여생산물과 자본의 투입, ④한국과 월남, 중남미 등에 대한 미국과 제국주의국가들의 침략전쟁에 의한 과잉생산시설의 가동과 막대한 무기와 군수품의 소모, ⑤냉전의 격화로 인한 군사력증강과 군사비 소모의 증대 등이 거시경제적 수요를 창출하거나 거대한 자본의 소모를 불러옴으로써 과잉자본과 이윤율저하를 완화하였다,

 

1929-30년대와 같이 10%대에 이른 주가폭락, 대대적인 금융기관과 산업체의 파산, 절반에 이르는 생산량 및 무역량의 감축, 20-30%의 실업률 등과 같은 파국적 상황으로 전개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발제문은 금년 가을이나 빠른 시기에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리라고 예측한다.

미국의 주요한 케인즈주의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지금 세계 각국 경제는 최저점을 서서히 통과하고 있으며 금년 하반기와 내년에는 경제가 회복되어갈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W자 형의 더블딥이나 또는 L자형의 장기불황을 예상하기도 한다. 이들은 이 어느 경우라고 할지라도 자본주의의 자생력은 죽지 않고 살아있고 조정을 거쳐서 다시금 자본주의는 재순환의 정상궤도로 진입할 것이라고 본다. 김영훈동지 역시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는 것 같다.

조상수동지 발제문이나, 보완문으로 제출된 내용마저도 현재의 세계대공황상태가 그 연속선에서 파국적인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예측에 동의토록 설득하기에는 대단히 불충분하다. 명확한 내용은 이런 것이 아닐까?

20세기 초까지 세계 자본주의는 주기적인 공황을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그리고 1870년대의 대공황 이후 20세기에 들어서서 1929-30년대의 세계대공황과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었고, 제2차세계대전 이후 70년대 초반까지 케인즈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주의로 장기 호황이 전개되었으나, 그 사민주의와 케인즈주의 정책마저도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인 자본의 과잉축적과 수요의 부족, 이로부터 초래되는 자본의 절대적 이윤율의 저하를 막지 못하고 경기침체를 겪게 되면서 노동자 민중에 대한 고도의 착취와 자본자유화, 고도의 금융공학에 의한 거대한 가공의 신용창출을 바탕으로 한 반동적인 신자유주의체제로 지탱하다가, 2008년에 들어서 이 시스템마저 붕괴됨으로써 다시금 세계대공황을 겪고 있다.

사민주의적 복지주의와 케인즈주의도 이를 대체해서 등장한 신자유주의도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해결치 못함으로써 발생한 현 세계경제공황을 다시 수정된 신자유주의나 (신)케인즈주의로 돌아가서 해결할 수는 없다. 현재 공황상태로 나타나고 있는 자본주의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을 것이고, 다소간의 부침이 있다고 할지라도 장기적 복합불황형태로 계속될 것이다. 이를 해결키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 사회 실현을 목표로 한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강력한 투쟁이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1929-30년대의 세계대공황이 제2차세계대전으로 발전하였고 이 과정에서 해결되어 갔듯이, 이번 공황이 그 연장선상에서 제국주의국가간의 전면전으로 발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조상수동지의 발제문에서도 이를 유동적인 것으로 보고, 노동자 민중의 주체적 투쟁 여하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한마디로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자본간의 경쟁과 대결은 자본주의의 근본 속성이고, 제국주의 국가는 일정한 영역과 범주에서 집적되고 통일된 자본주체를 대표하고 있으므로 그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과 모순 갈등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순 갈등은 어느 시점에서 크게 확장, 격화될 가능성을 항상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적인 요소를 일단 제외한다면) 1930년대와 비교해서, 제국주의국가간의 갈등과 모순은 상당히 완화되고 있고, 그만큼 적어도 상당기간은 열전(전면전)의 가능성은 약화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①세계 제1, 2차대전의 쓰라린 경험의 교훈, ②금융, 경제, 정치사회적으로 주로 제국주의 국가와 독점자본간의 이해의 조정, 통일을 위한 다양한 국제기구의 존재, ③기술, 산업, 정치, 경제 등 모든 측면에서의 전 지구화로 인해서 분할된 국가간의 열전보다도 세계적 차원에서, 또는 권역으로 확장된 형태로 갈등과 모순이 격화되는 경향이 강화된다는 것, ④이 세계체제는 역시 세계적으로 확산된 고도의 정보기술을 토대로 해서 세계화된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고 있으므로 19세기와 같이 제국주의열강들이나 국가차원의 자본의 대립과 갈등의 주체로서의 비중 역시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고 할 것이다. ⑤대립의 기본축은 이미 화석에너지 등 주요 자원을 제국주의국가가 선점하고 있으나, 신식민지국가(저발전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화석에너지를 비롯한 광물자원과 기타 자원이 필수적이므로, 이 자원의 획득과 분배를 둘러싼 투쟁과, 기축통화제도를 비롯한 기존의 세계 금융 경제시스템을 유지하려는 제국주의국가와 이를 변경 재편하려는 신식민지국가(저발전국가)간의 대립 투쟁이 될 것이다. ⑥그러므로 현재 세계는 세계화된 차원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간의 모순과 대립투쟁이 보다 중요한 축으로 드러나면서, 부차적으로 제국주의국가군(선진 자본주의국가)과 신식민지국가군(발전도상국가)간의 대립 투쟁이 부각될 것이다. 그 대표적주자가 미국, EU, 일본과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이 될 것이다. ⑦이러한 대립투쟁은 화석에너지와 자원소모적인 자본주의문명과 생활양식을 자원절약과 자연친화적인 문명으로 변화시키는 거대한 변화와 함께 진행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에 대한 착취와 자연에 대한 수탈을 토대로 해서 성립되고 발전해 온 체제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소비에 따른 자원고갈과 환경오염, 기후변화는 대량의 자원수탈에 토대를 둔 자본주의체제 자체의 한계로 드러나고 있고, 인간과 자연(지구)자체의 존속을 위협하는 지경에 다다르고 있다. 이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투쟁이 전개되어야 하고 노동자계급이 이 투쟁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3. 요모노동지의 발제문과 보완 발제문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

 

1)사회주의 혁명의 목표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의 문제

 

요모노동지는 발제문보완에서 나의 토론문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실현해야할 「새로운 사회주의」혁명의 구상을 확실히 놓고서, 그를 향한 사회주의당 건설을 추진하는 것이 강조되고 있지만, 그것을 우리가 지금 서있는 이 자리에서 어떻게 추진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고 “사회적인 모순의 격화 속에서 전투적인 투쟁이 요구되고 있는데, 그것이 잘 안 되고 있는데 대한 초조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지금의 일본에서는 전투적인 투쟁의 기반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지만, 한국에 있어서도 상당 정도 붕괴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현상에 입각하면서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며, 전투적인 투쟁의 재현, 부활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착실하고도 끈질긴 노력을 조바심내지 말고 계속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제기하고 있다.

 

사회주의를 노동자계급운동이 목표로 해야 할 당연한 사회상으로 제시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과학적 사회주의는 이제까지 인류가 도달한 최고의 지적 산물이다. 다 알다시피 사회주의사회는 근본적으로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공적 소유를 토대로 해서 노동자계급이 주체가 되어서 생산과 정치사회를 운영하는 것이다, 사적 지배와 통제 및 시장메커니즘을 통한 잉여가치 생산과 착취의 자본주의 운영원리를 청산하고 직접 생산자들의 필요에 의한 생산과 교환 소비사회를 지향한다. 형식적 실질적 자본독재를 폐지하고 노동자계급(과 인민)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시한다. 이러한 사회주의적 기본 원칙들은 조금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찬성한다.

현재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고도로 발전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은 명실상부하게 전 세계 인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비록 자본주의의 고도의 발전과 복잡한 체계화, 계층화에 의해서 노동자계급의 존재형태 역시 복잡하고 다양한 계층화된 형태를 띠고 있을 지라도 이러한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현 세계에서 부르죠아적 민주주의 기본원리인 민주주의는, 자본지배를 벗어나는 즉시 민주주의 자체의 원리에 의해서 바로 전 세계 인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민주주의로 전화하는 것이다. 전 세계 산업 특히 공업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함으로써 인류가 필요로 하는 생산물을 생산하는 데 드는(필요) 노동력은 크게 감소된다. GDP에서 써비스산업의 비중이 미국 78%, 일본 65%, 한국 58%이다. 실업자와 반실업자를 없애고 불필요한 투기적 금융영역, 군 감옥 경찰 정보 영역, 투기적 퇴폐적 문화써비스 산업 등등 소모적 써비스영역의 노동력 수요를 폐절한다면 전 세계 노동가능 인구의 노동시간은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고, 나머지 시간은 노동의 질을 높이고 문화생활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학습과 교육훈련, 휴식, 문화, 놀이, 공동체생활과 상호 호혜적인 써비스 등에 사용할 수 있다. 너무 성숙해서 물러터진 자본주의는 계속될수록 질곡이요, 질병이요(에이즈, 광우병, 조류독감, 돼지인플류엔자를 보라!), 인간 세계와 인간이 사는 자연과 지구를 파멸로 몰아넣는 일이요, 현재 세계는 자본주의 사회를 폐절해서 마르크스가 말하는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대로’취하는 사회주의사회를 실현할 기술적 조건과 생산력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방법으로 노동운동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할 것인가? 사실 이 지점에서 제시하는 방안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한국 노동운동은 지금 바닥까지 무너져 있고, 내가 아는 한 전 세계 노동운동과 변혁운동 역시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에는 대단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동은 바닥까지 와서 다시 상승하지 않는가? 나는 한국과 세계 노동운동을 그렇게 본다. 이러한 시각하에서 한국에서 시작되고 있는 실천을 소개하고 이미 말했듯이 몇 가지 실천적 방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1월 민주노총의 결의에 의해서 만들어졌지만 내부 민주주의 실현의 실패와 노동자계급 대표성과 진보정당으로서 보수정당과 구별되는 강령과 정책의 독립성과 실천 행동에서 실패함으로써 노동자계급과 기층 민중의 강력하고 전폭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였다. 그 결과로써 민주노동당은 2008년 4월 총선 전 분열해서 현재 한국에는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존재한다. 이들 진보정당은 대단히 취약하고 지지율은 합해서 10% 전후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정당들 역시 노동자계급의 대표성을 전형적으로 실현해내지 못하고 진보정당으로서의 급진성과 기세를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그 진보성에서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 정당들은 혁명적 강령과 전술을 구사할 자기 전망과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으로 해서 한국에는 현재 전투적 변혁적 노동운동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에서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내가 조상수동지의 발제문에 대해서 지적한 것은, 조상수동지는 사회주의실현을 명확한 목표로 제시하고 있으므로, 발제문이 공허하지 않고 현실성과 실천성을 가지려면, 현재 한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운동에 대해서 지지나 반대나 평가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전투적 변혁적 노동운동(대중운동)에 대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서울지하철노조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대체로 노동운동이 무너져 있다. 특히 대공장노동운동이 무너져 있다. 신자유주의적, 반동파쇼적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패배, 퇴각하거나 양보교섭으로 밀리고 있다. 그리고 자체의 고용과 안정을 방어하기 위해서 비정규직과의 단결뿐만 아니라 정규직간의 광범위한 연대투쟁마저도 외면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자유주의정부(개혁보수) 10년간에 근로자파견제법, 정리해고법, 비정규법, 공공사업장 파업권박탈과 권리억압법 등 온갖 노동악법이 제정, 개악되고,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약 20%인 300여만명이 증가되어 1500만 전체 노동자의 60%를 넘어섬으로써 정규직보다도 비정규직이 일반화되어 고용은 불안정해지고 노동자계급은 양분되었다. 빈부격차 역시 증대하고 노동자와 자영업자는 더욱 빈한하게 되었다. 이러한 노동자권리박탈과 착취강화에 대항해서 노동자계급은 치열하게 저항했으나 검경에 의해서 탄압당하고 무수한 노동자들이 죽음을 당하였다.

이명박정권통치하 현재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극심해졌다. 민주주의 후퇴와 착취강화, 실업, 해고, 비정규직화, 임금감축, 노조무력화, 빈부격차확대, 기본적 인권의 침탈, 자본과 부자에 대한 세금감면과 민중에 대한 증세, 남북관계 악화, 저항에 대한 폭력적 무단적 탄압 등 온갖 반동적 파쇼적 통치가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전 세계적 공황상황이다. 한국도 예외없이 공황이 밀어닥쳐서 그 피해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노동자계급은 이에 처절하게 저항하고 있다. 특고 비정규직 노동자 박종태열사 투쟁, 대량해고 공격에 대한 쌍용차투쟁, 독점자본과 그 대행기구인 자본가 정권에 의한 용산 철거와 철거민 학살에 대항한 투쟁 등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위력을 보이지 못하고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대공황하에서 이러한 반동파쇼적 탄압이 가해지는 한국에서 노동자계급대중의 투쟁은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그것은 89-90년대 쏘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중국베트남 등 사회주의국가의 시장경제편입과 관료화에 따라서 죽은 사회주의를 새로운 형태로 살려내는 것이다. 그 한가닥이 혁명적 사회주의당의 건설이라면 다른 한 가닥은 전투적 변혁적 노동운동의 건설이다. 서울지하철노동운동이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90년대까지 한국 노동운동의 중심축에서 역할을 해 왔지만 서울지하철노동운동 역시 당시 시대적 한계를 선도적, 주체적으로 극복하지 못하였다. 전투적 노조주의를 넘어서지 못하였고, 변혁적(혁명적) 내용을 채워내지 못하였다. 고인 물이 썩듯이 서울지하철노동운동 역시 이완되면서 97년 말 한국에 닥친 IMF관리하의 공황상황에서 자본의 순차적이면서(금융, 자동차 제조업, 공기업 등으로) 거센 공격에 처절하게 저항하였으나 패배하면서 무너져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러한 상태에서 다시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 조건은 노동운동이 바닥까지 무너져 있다는 것, 대공황이 세계를 휩쓸고 있고 동시에 자본은 복지주의 케인즈주의에 이어서 신자유주의마저도 실패한 한계를 드러내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것, 한국사회 노동자들은 김대중, 노무현에 이어서 반동 파쇼적 이명박통치 아래 혹심하게 착취당하고 탄압받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 현재 노동운동을 다시 세워야 할 조건인 것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사회주의 사상을 구축하고 이러한 이데올로기로 선진노동자들을 교육훈련하고 투쟁으로 단련하고, 무너진 노동운동을 혁신하고, 전투적일 뿐만 아니라 변혁적(혁명지향적) 노동운동을 다시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박종태열사투쟁에서 운수 화물노동자들은 쳔여개 만장을 이용해서 1만여 경찰병력을 무력화해서 전투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자본의 정리해고공격으로 생존권을 박탈당할 위기에 빠진 쌍용차노동자들은 경찰의 포위공격에 대해서 화염병과 새총으로 대항하였다. 노동운동이 테러리즘화하는 경향을 제어해야 함과 동시에 자본의 무단 폭압에 대해서 대항폭력을 다시금 조직해야 하는 과제 역시 새로운 전투적 변혁적 노동운동을 건설하는 과제의 하나가 될 것이다.

현재 자본은 고도로 전 세계화되어 있다. 현대자동차만 하더라도 미국, EU와 중국, 남미, 인도, 동구 등 세계 각국에 공장을 세우고 있다. 자동차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생산물량으로 다른 라인 노동자들과 싸우는 우물안 개구리 수준에 머문다면 자본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다시금 떨쳐 일어서서 전 세계적으로 전투적, 번혁적 노동운동을 다시 세우고 함께 단결해야 할 것이다. 필리핀과 중남미,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과 함께 태국, 인도, 중국 노동자들과 단결하고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 투쟁하여야 할 것이다. 국제교류센타가 동남아(호주, 폴란드)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것은 사업방향을 올바르게 잡았다고 본다. 일본, 한국 궤도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운동을 다시 세움과 동시에 동남아와 인도, 중국 궤도노동자들의 투쟁에 깊숙이 연대하고 그 조직화에 적극 나서야 하고, 화물, 항만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에 연대해야 하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노동자(정치)학교 설립 역시 노동자계급을 철저히 사상적으로 훈련하고 단련키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이 점 조상수동지 발제에서도 역시 강조하는 바이다. 노동운동의 사상적 기초를 강화하고 정확한 정세를 파악하고 운동의 진로를 올바르게 잡기 위해서 세계 자본주의의 실사구시적 연구에 동참해야 할 필요성도 여기서 나온다.

 

2)병상의 환자와 신자유주의 비교에 대해서

 

요모노동지는 원래 발제문에서 1931년의 독일에서、한 노조 지도자 타르노프가 병상의 환자를 예로 들면서 자신의 고뇌를 표현한 것을 언급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이 환자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는……자본주의의 병상에서 그저 단순히 진찰하기만 하는 방관자로서 서 있는 것인가、그렇지 않으면 치료하는 것에도 애쓰는 의사의 입장으로 입회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또 우리는、환자의 죽음을 기다리다 못해、독을 써서 환자의 죽음을 재촉하고 싶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는 유산상속자인 것은 아닌가?”.....“병상에 누워있는 빈사상태의 신자유주의에 대해、의사로서 치료에 애써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유산상속을 기다리는 상속인으로써 독을 써서라도 그 죽음을 앞당기게 해야 할 것인가?”.....“지금 병상에 누워있는 것은、빈사 상태에 있는 신자유주의이다。그러나 잘 보면、거기에서 실제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은 「우리들」노동자들이다。「놈들의 세상」의 파탄을 재촉해、그 폐허 위에 「우리의 세상」을 만들면 된다는 생각은、그 속에서 살고、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있는 사고방식은 아닐까?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의 혁명 때문에、현재의 노동자가 희생되는 것은 본말이 전도(本末転倒)되는 것 아닐까?”라고 멀하고 있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와 병든 신자유주의(자본주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①사회체제는 하나의 객관적인 시스템이지 보호하고 치료해야 할 인간 개인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등장한 하나의 사회체제이고, 이전의 여러 단계의 사회체제들처럼 변화하고 사멸해갈 체제인 것이다. 고대 노예제에서 중세 봉건제로 또 봉건제에서 자본주의체제로 사회체제가 발전해 온 것처럼 자본주의 역시 영구적 체제가 아니라 변화발전해서 다른 사회체제로 전화해 갈 체제인 것이다. 사회체제인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신자유주의를 인간인 환자와 동등한 비유대상으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②자본주의를 인간인 환자와 비유함으로써 이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가져오는 오류를 범한다. 환자는 인간이다. 인간은 인격체로서 대우하고 그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 환자는 병든 인간이고 그만큼 더 보호받아야 하고, 병은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야 한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를 환자와 동등한 격으로 비유하는 순간 우리는 자본주의를 보호하고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야 한다는 의무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타르노프와 마찬가지로 요모노동지는 신자유주의를 환자와 동등한 위치에 놓음으로써 스스로 신자유주의를 보호하고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류역사상 사회체제 발전의 과정에서 그 한 단계로서 등장하였다. 자본주의는 그 이전 사회체제인 봉건주의보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크게 확장하였고 생산력의 고도의 발전이라는 공적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 체제는 여전히 지배 착취의 계급사회이다. 더구나 신자유주의체제는 사회복지주의 또는 케인즈주의조차 역행시킨 반동적, 퇴행적 자본주의 체제이다. 이는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③또한 요모노동지는 자본주의사회와 자본주의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하지만 피착취계급인 노동자를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사회체제로서 계급사회이다. 자본주의사회는 지배 착취계급인 자본가계급과 피지배 피착취계급인 노동자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본주의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자본가계급이고 노동자계급은 종속적 역할을 한다. 물론 계급투쟁의 진전에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내에서도 노동자계급의 역할은 상승하고, 마침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변혁해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노동자계급을 자본주의 그 자체와 동일시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주도적인, 지배 착취계급인 자본가계급의 주도성 그 착취와 탄압에 대항해서 투쟁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상대적 지위와 역할을 증대시키고 주도성을 확보해 나간다.

④환자의 치료와 자본주의의 개량(개선)을 동렬에 놓고 본다고 할지라도, 자본주의의 개량과 자본주의의 극복, 폐기를 상호 배타적인 대립물로 볼 이유는 없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체제내의 자본가계급의 탄압과 착취에 맞서서 투쟁함으로써 이 탄압과 착취를 분쇄 또는 감소시키고 노동자계급의 권익을 신장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개량, 개선이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의 개량을 통해서 노동자계급의 생활과 권익을 개선하고, 스스로의 노동능력과 투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승리의 경험을 통해서 조직투쟁력을 더욱 강화하고 자본가계급의 탄압착취를 약화시키며 법과 제도를 개혁, 자본주의를 극복,폐기하고 근본 혁명을 추구하기에 유리한 환경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보다 나은 사회체제가 사회주의이든 ‘또 다른 세계’이든 대안세계이든 말이다. 자본주의 내에 있는 피지배, 피착취계급인 노동자의 권익을 개선하는 것이 자본주의를 개량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개량은 (장기적으로)자본주의를 계속 유지시키는 것이고, 자본주의를 극복 폐기하려면(죽이려면) 자본주의를 치료하고 개량하면 안된다고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⑤신자유주의를 환자와 비유한 요모노동지의 글 내용에서는 치료와 개선은 있으나 이를 근본적으로 변혁-혁명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요모노동지는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신자유주의의 개선을 말하면서 단결 투쟁 연대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고 극복하는 다른 세계의 상에 대해서도, 그리로 가는 길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고 있다. 이 지점이 내가 토론문에서 요모노동지의 글과 그동안 내가 보아온 JR총련 노동운동의 한계로서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목표가 불분명하고 운동이 근본 변혁이 없이 안전, 환경, 반전평화 같은 시민운동적 성격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연유이다. 그러나 JR총련 노동운동에는 분명히 현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서는 지향이 있고, JR7투쟁과 비정규직투쟁, 정년단체의 교육훈련과 투쟁 등 내부적 실천들을 보여주고 있음을 말하였다. 그리고 요모노동지가 발제문 보완에서 아스비용 볼을 말하면서 제기하는 ‘다른 세계’ 역시 그러한 모색의 일환으로 볼 것이다.

 

3)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가?

 

요모노동지는 발제문보완에서 작년 오끼나와포럼에서의 아스비용볼이 제기한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노선은 기본적으로 아스비용볼의 노선에 동의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회운동적 노동운동 또는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조상수동지도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격에 대향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노동운동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이 문제에 관해서 깊이 들어갈 여유는 없으나 신자유주의 또는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으로 전형화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좀 더 포괄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상수동지는 노동운동이 사회주의 사회 실현을 명확한 목표로 하고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노동운동의 성격을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으로 말하고 있는 점에 비해서 요모노동지는 사회주의 목표가 명확치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요모노동지는 사회운동적 노동운동 그 자체로서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실현해가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운동은 반드시 마르크시즘에 기반하고 있지 않고,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명확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요모노동지가 동의하는 아스비용 볼의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은 자본주의내에서의 개량(개혁)운동인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운동인가? 아스비용 볼은 70년대 후반 이후 케인즈주의에 기반한 계급타협인 ‘사회적 파트너쉽’( 사회적 합의주의)이 자본측에 의해서 파기되었고, 이 타협을 가능케 한 물질적 기초가 이미 붕괴되었으므로 현 시기에 적용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아스비용 볼은 ‘사회적 파트너쉽’이 다시 복원될 수 있다면 계급적 타협에 기초한 사회적 파트너쉽체제를 근간으로 한 케인즈주의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인지? 그리고 현 시기 케인즈주의가 복원될 수 있다고 보는지? 그게 아니다. 아스비용 볼은 “정말로 사회를 바꾸려 한다면 케인즈주의를 넘어서 전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케인즈주의의 정책은 이미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추구해야 할 사회의 상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않고 있고, 다만 이를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규제와 자본에 대한 통제를 넘어서서“소유를 민주화하는 것”을 주요하게 제시하고 있고, 그 주체로서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을 들고, 그 운동형태를 사회운동적 노동운동, 또는 노조운동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략으로서 ①사회적 파트너쉽의 파기, ②정규직 비정규직의 괴리 메움, ③외국인 노동자와 연대, ④국제적 관점하에서의 지역적 투쟁의 통일, ⑤조합원의 조직화를 들고 특별히 진정한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조상수동지의 발제문에서도 주요하게 들고 있는 내용들이고 나 역시 이러한 지점들이 현재 노동운동을 다시 세우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모노동지 역시 아스비용볼의 관점에 대체로 동의한다고 본다. 그리고 요모노동지는 새로운 사회상에 대해서는 “사회주의라든가 공산주의라고 하는 말 그 자체에 지나치게 구애되거나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다른 세계’를 생각하는 것은 노동운동에 있어서도 필요한 것이며, 특히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그것은 중요성을 더 해 간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지점에 이르러서 요모노동지와 조상수동지, 그리고 나의 의견이 상당히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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