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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칠괴동의 77일
red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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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01일 13시 39분 52초

끝나지 않은 칠괴동의 77일

2009년 8월 21일 조건준 금속노조 정책국장

매일 헬기로부터 비처럼 퍼붓던 최루액보다 차라리 단수조치로 물을 쓸 수 없는 화장실의 가스가 더 독했다. 죽일 듯 달려드는 동료사원들과 무기를 겨누고, 볼트와 너트가 빗발치고, 휘두르는 쇠파이프로 뼈에 금이 가는 것은 일상이었다. 전투 중에 예기치 않은 화재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자칫 도장공장으로 불이 옮아 붙으면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엄습해 오는 불확실성은 스스로 감지할 수 없는 내면 깊숙이 파고들었다.

77일, 그 숫자가 감춘 사실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연일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2009년 8월6일 노사 간 합의로 종료됐다. 벌써 평가에 대한 얘기들이 튀어나온다. 어떤 언론에서는 “노조의 떼쓰기가 통하지 않았다”며 자본의 승리를 선언하기도 했다. 반대로 “영웅적 투쟁”이라는 평가들이 노동운동 내부에서 나오기도 한다.

구속자만 60명을 훌쩍 넘어섰다. 점거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경찰의 소환조사에 시달리고 있다. 공황장애·대인기피증 등 숱한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더 심각한 불안상태에 휩싸여 있다. 대타협정신으로 합의를 했다지만 정리해고자 중 누가 고용관계를 유지하고 누가 떠나게 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확정되지도 않았다. 손배가압류를 비롯한 민형사상의 문제만이 아닌 77일간의 투쟁 속에서 내면 깊이 파고든 보이지 않는 상처는 어찌할 것인가!

현재 상황에서 평가를 논한다는 것은 ‘사치’를 넘어 ‘죄악’이다. 지금은 평가할 때가 아니다. 수많은 상처와 불확실성, 지속되고 강화되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연대가 시급한 상황이다.

눈을 감고 숱하게 되새겼지만 77일간을 온전한 정신으로 평가할 자신이 아직 없다. 다만 불완전한 정신과 아직 끝나지 않는 상황을 안고 몇 가지 화두를 스스로에게 던질 뿐이다.

 

계급투쟁의 전형인가? 벼랑 끝 저항인가?

 

한쪽에서는 말한다. “근래 보기 드문 장기간의 격렬한 투쟁이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77일간이라는 유례없는 장기간의 격렬한 투쟁이 진행된 것일까? 몇 가지가 떠오른다.

첫째, 지금은 느낌이 덜하지만 경제위기가 닥치자 책임론이 불거졌다. 노동자들은 늘 고통전담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쌍용차에서 그 책임은 너무나 분명했다. 이른바 ‘먹튀’인 상하이자동차가 망쳐 놓았는데 왜 노동자가 책임을 져야 하냐는 투쟁의 정당성과 확신이 있었다.

둘째, 주인 없는 법정관리회사에서 사측의 노무관리나 대응전술이 극히 취약했다.

셋째, 자본주의라는 사회라면 크게 다르지 않은 ‘해고=생계불안’의 법칙은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한국 사회에서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정리해고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격렬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넷째, 이명박 정부의 노동에 대한 태도로 볼 때 진작 진압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예상치 못한 정세와 노조의 도장공장 장악에 따른 제2의 용산참사 우려 등이 치열한 전투를 장기화시켰다.

그러나 쌍용차 투쟁이 ‘전형적인 계급투쟁’이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 꽤 있다. 다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인 세상에서 대공장 정규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르게 보는 시각도 있다. 1차 노동시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2차 노동시장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저항했다는 것이다.

 

영웅적 투쟁인가? 실패한 투쟁인가?

 

장기간의 유례없는 고강도 투쟁에도 불구하고 1천800여명의 노동자들은 희망퇴직으로 이미 공장을 떠났다. 노사가 합의한 8월1일자 686명의 조합원 중에 329명은 무급휴직과 영업전직으로 고용관계를 유지하지만 357명은 희망퇴직과 분사를 통해 일단 고용관계가 해소된다. 특히 마지막까지 저항한 조합원 가운데 288명은 무급휴직과 영업전직으로 고용관계를 유지하고, 278명은 희망퇴직이나 분사를 통해 일단 고용관계가 해소된다. 정리해고를 완전히 막아 내지 못했고 최후까지 저항한 노동자들 또한 무급휴직과 희망퇴직 등으로 그 운명이 엇갈리게 됐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결코 성공한 투쟁이라고 할 수 없다. 더욱이 점거파업이 종료된 후 사법처리와 민사상의 불이익을 생각한다면 상처는 길게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정리해고라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충돌을 일으키는 것인지를 보여 줬고 혹독한 공격에 굴하지 않고 77일을 버텼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영웅적 투쟁”이라고 이름 붙일 것이다.

 

다수자 운동인가? 소수의 투쟁인가?

 

애초에 가졌던 불안감 중의 하나는 분명한 현실이 됐다.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리는 순간 노동조합은 다수 조합원을 단결시키는 데 실패했다. 노동운동 특히 대중운동으로서 노조운동은 다수자 운동이다. ‘소수의 투쟁대오’ 대 ‘다수의 투쟁하지 않는 대오’라는 분열은 다수자 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단지 나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나뉜 서로는 적대적인 관계가 됐다. 본인들만이 아니라 가족들도 서로 극단적인 적대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대타협을 했다고 하지만 희망퇴직을 선택할 사람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를 걱정한다. 금소노조 계획에 따르면 9월에 선거를 한다. 지금 상태라면 투쟁하지 않았던 다수가 집행부에 당선될 것이다. 이 경우 투쟁한 사람들에 대한 고용보장은 휴지 조각이 돼 버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더 나아가 아예 민주노총을 탈퇴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 할 정도다.

 

파시즘에 대한 기시감(旣視感)

 

77일을 거치면서 파시즘의 대중심리가 어떻게 탄생하는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은 자’들은 해고로 생존의 벼랑에 몰려 부당함에 맞서 저항했다. 투쟁하는 노조에 대해 ‘산 자’들은 물리적 충돌과 함께 감정적 적대감을 높였고, 여기에 사측의 “노조 때문에 다 망한다”는 이데올로기가 결합하면서 가족들까지 갈라지고 적대자가 됐다. 아수라장의 고통을 안고 노조간부의 부인이 자살한 사건의 본질이 그것이었다.

욕망의 정치라고 했던가? ‘산 자’든 ‘죽은 자’든 ‘생존의 욕망’이 있다면, 그 생존의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욕망의 정치가 아닌 이성에 의한 정치로 해결될까? 이성 또한 양가적이지 않았던가? 한쪽에서는 일자리를 나누고 고통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을 제시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일단은 일부를 희생시키고 나중에 회사가 잘되면 살려 주겠다는 방법을 제시했다. 욕망만이 아닌 ‘생존의 방법’ ‘주장하는 이데올로기’가 달랐다.

유럽에서 등장한 파시즘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역사 속에서 본 듯한 사건이지 않은가? 말 그대로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진 것인데 우리는 6·25전쟁이나 파시즘으로부터 무엇을 배웠을까? 내가 너무 과도한 생각을 한 것일까? 이런 문제에 대한 극복방안을 만들지 못한다면 노동운동은 극단적 소수의 과격고립운동이 될 것이고 다수의 대중은 이에 저항하는 파시즘적 군중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군사적 전투주의와 사회적 연대전략

 

쌍용차는 법정관리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노사 문제에 법원이 개입했다. 또한 경제정책을 통제하는 정부는 물론이고, 같은 외자기업이자 공적자금 지원 문제가 맞물린 지엠대우차도 연관된 문제였다. 중국자본이 들어와 있어 외교적 문제까지 개입된 사안이었다.

그렇다면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 또한 당연히 광범위한 연대를 통해 맞서야 한다. 그래서 지역대책위나 범국민 대책위를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투쟁의 주체들은 공장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옥쇄파업’을 핵심적 투쟁방법으로 선택했다. ‘나가는 것’보다는 도장공장을 ‘지키는 투쟁’을 한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왜 공장을 지키는 투쟁을 해야 했을까? 그것만이 유일한 선택이었던 것일까? 차분히 그리고 세세히 돌아볼 문제이지만 일단 노동자들은 밖으로 나가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때문에 도장공장이라는 가장 익숙한 장소와 무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는 단지 장소나 무기에만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연대전략을 중심에 둔다면 당연히 그에 맞는 요구와 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정당의 지지와 설득력 있는 대안을 통해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한 무급순환휴직 등이 내부에서 논쟁거리가 됐던 현실도 평가돼야 할 것이다.

 

처절한 당사자들과 무력한 지원자들

 

공장 중심의 군사적 전투주의는 당사자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들만이 선택하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공장 안에서는 화염병·새총·쇠파이프들이 동원된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됐다.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때만 해도 경찰에 의해 공장에서 밀려난 뒤 밖에서 화염병을 던지면서 싸웠다. 그러나 이번 쌍용차 투쟁을 지원하고 연대하기 위해 달려온 수많은 다른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 정당은 이런 투쟁을 하지 못했다.

공장 안은 뜨겁다 못해 처절한 전쟁이 벌어졌지만, 공장 밖은 차갑고 무력했다. 이를 단순히 완성차의 노조지도자들이나 금속노조의 지도부, 노동운동과 진보운동 지도자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하면 결론이 뭘까? 전투적인 지도부를 뽑으면 해결되는 문제일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금속노조를 구성하는 다수 대공장 노동자들은 그런 전투주의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아니 쌍용차 해고자들처럼 화염병이나 쇠파이프를 드는 것은 고사하고 연대파업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오래된 노조들은 그렇다 치고 그렇게 전투성을 외치는 노동운동단체나 조직들은 왜 공장 안과 같은 격렬한 투쟁을 하지 못한 것일까?

“쌍용차 점거파업 노동자들은 영웅”이고 반대로 “공장 밖의 모든 이들은 무력한 자들”이라는 결론 을 내리기에 앞서 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전진인가 ? 반복인가?

 

“한국사회는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기 때문에 정리해고에 맞서 처절한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맞는 얘기다. 현실은 그러하다. 그러나 운동이 뭔가? 현실을 바꾸자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사업장별로 정리해고자들이 죽도록 싸우면 사회안전망이 개선되는 것인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반복해야만 하는 것인가?

이번 쌍용차 투쟁에서도 희망퇴직자와 비정규직을 포함해 최소 2천명 이상이 공장을 떠난다. 투쟁을 통해 고용이 유지된 사람은 이에 비하면 소수다. 그런데 다수의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은 노동운동의 핵심 고민이 아니다. 노조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 단지 몇 명이 공장에서 나가지 않느냐는 것만이 주요 관심사다.

그렇다면 쌍용차 투쟁은 낡은 사회의 프레임과 그 프레임 위에서 한계를 가진 투쟁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새로운 전략을 개발하지 못한 채 쳇바퀴 돌듯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가?

 

산별적 투쟁인가? 기업적 투쟁인가?

 

“도대체 산별노조라는 금속노조는 뭘 하고 있나.”

투쟁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강하게 불만을 표시했다. 2000년 대우차가 부도났을 때는 산별노조가 없었는데도 완성차들이 같이 파업도 했는데, 산별노조가 건설된 지금은 그런 것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그럼에도 불만을 특별히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집회와 모금, 연대의 확장, 정책적 지원 등이 가능한 것이었다.

반론도 있었다. “쌍용차 니들은 과거에 바로 옆에서 투쟁하는 사업장에도 제대로 연대한 적이 있나?” “쌍용차에서 같이 한솥밥 먹던 다수의 조합원들도 같이 싸우기는커녕 적이 돼 있는데 남의 집 사람들한테서 뭘 바라나.”

하지만 같이 싸움을 했는가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쌍용차의 구조조정에 맞서는 투쟁의 내용은 과연 산별노조에 걸맞은 것이었을까? 기업에서 잘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과연 산별노조 고용정책의 핵심일까? 그렇다면 과거 기업별 노조에서 주장하던 고용정책과 뭐가 다를까?

애초부터 투쟁의 요구와 내용도 산별노조와 딱 맞아 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던가! 도대체 산별시대를 만들자고 하면서 우리가 만든 것은 무엇이었던가?

 

“인간이 만든 자동차를 타야지”

 

투쟁이 한창이던 때 노조는 사측의 단수조치를 막으려 펌프장에 천막을 설치했다. 이 천막 주위에서 만난 쌍용차의 비해고 노동자가 던진 얘기는 아직 내 가슴에 깊이 자리 잡았다.

“이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에요. 이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짐승을 사냥할 때도 이렇게는 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사람이 만든 자동차를 타야지, 짐승이 만든 자동차를 탈 수는 없지 않습니까. 회사의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참담한 얘기는 또 있었다.

“칠괴동에 동물원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77일의 혹독한 경험을 통해 학습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77일간의 혹독한 투쟁을 한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에게 “영웅”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으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영웅’이 될 것인지, 아니면 ‘생존의 본능에 따른 저항자’에 불과한 것인지는 어쩌면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77일보다 더 혹독한 전투’다. 정부와 사측이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해 사법처리와 징계 등 ‘복수전’만을 꿈꾼다면 우리 사회에 희망은 없다. 노동운동 또한 77일의 경험을 혹독한 자기학습을 통해 성찰하고 개선하지 않는다면 칠괴동만이 아닌 또 다른 곳에서 인간의 세상이 아닌 야만의 동물원을 만나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가 출간한 노동운동비평서 ‘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조건준 지음) 2판에 실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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