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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선방한 투쟁의 교훈과 이후 과제 ─ 쌍용차 노동자들의 77일간 영웅적 파업이 보여 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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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17일 15시 57분 43초
아쉽지만 선방한 투쟁의 교훈과 이후 과제
쌍용차 노동자들의 77일간 영웅적 파업이 보여 준 것

쌍 용차 노동자들의 점거 파업이 8월 6일 아쉬운 절반의 성과로 마무리됐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용기와 투지를 불태우며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한 거센 투쟁의 불길은 77일 만에 사그러들었다. 77일 만에 밖으로 나온 노동자들은 대부분 최선을 다했다는 당당함을 보이고 있다. 전지윤 기자가 경제 위기 속에서 저항의 가능성을 보여 준 쌍용차 투쟁을 평가하며 교훈과 과제를 끌어낸다.

왜 쌍용차는 노동유연화의 실험 대상이 됐는가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 속에 쌍용차가 올해 초 법정관리 상태가 되면서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 복지 축소 등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다.

반면 2004년에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한 정부와 쌍용차 인수 후 기술 유출만 한 ‘먹튀 자본’ 상하이차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위기의 주범인 정부와 사측은 되레 쌍용차 생산직 노동자 2명 중 1명인 2천6백46명을 해고하려 했다.

이것은 세계경제 위기 속에 한국 자동차 산업을 구조조정하려는 계획의 일부였다. 세계 자동차 산업은 약 3천만 대가 과잉생산된 상태였고 이 때문에 GM, 크라이슬러 등이 무너지고 인수 합병이 벌어지면서 치열한 경쟁과 구조조정이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 지배자들의 야망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해 GM 등이 몰락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5개인 자동차 업체를 3개 안팎으로 합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지식경제부 내부 문건이 유출된 바 있고 도요타 등을 따라잡으려면 노동자를 더욱 쥐어짜야 한다는 주장이 거듭 제기됐다.

이런 구조조정과 고통전가는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위기에 처한 한국 자본주의 전반에 필요한 과제다. 지배자들은 이 과제 추진의 최대 걸림돌을 ‘강성노조’라고 본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쌍용차를 표적으로 삼았다. 쌍용차는 한국 자동차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퍼센트밖에 되지 않고, 노조도 상대적으로 소규모일 뿐 아니라 지난 몇 년간 노사협조적 우파 지도부가 이끌어 온 상대적 약체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쌍용차노조를 파괴해 자동차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퍼센트 이상이며 민주노총의 오른팔ㆍ왼팔이라는 현대ㆍ기아차 노조를 공격하는 디딤돌로 삼으려 한 것이다.

저들은 이런 계획과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몇 가지 전략을 사용했다.

첫째, 저들은 노동자를 위축시키려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청산밖에 없다’ 고 끊임없이 협박했다. 연관업체와 금융기관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관련업체까지 최대 20만여 명의 고용에 영향을 미칠 청산은 경제적ㆍ정치적 후폭풍 때문에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지적처럼 이명박 정부는 막바지에 “쌍용자동차를 공중 분해시키고 협력업체 직원 등 20만여 명의 일자리를 날려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강성 노조를 길들이고 정리해고를 강제”하려는 의도까지 드러냈다.

둘째, 저들은 끝없이 노동자들을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라치기 하며 이간질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희망퇴직 신청자와 비신청자를, 해고 대상자와 비대상자를 이간질해 노동자들의 단결과 힘을 약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저들은 “정리해고 명단이 통보되면 노조가 [산 자와 죽은 자] 두 분파로 나뉠 것”(이유일)이라고 봤다. 그리고 2차 해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협박으로 ‘산 자’들을 강제 출근시켜 구사대 노릇을 강요했다. ‘산 자’에게 칼을 쥐어 주고 ‘죽은 자’의 등에 꽂으라고 강요했다. 8월 5일 살인 진압 과정에서 추락해 허리가 부러진 ‘죽은 자’ 형이 입원한 병원에 ‘정상조업’ 완장을 찬 ‘산 자’ 동생이 달려 온 모습은 저들이 만들어낸 끔찍한 비극을 생생히 드러냈다.

셋째, 이명박 정부와 사측은 무자비한 폭력과 물리력으로 쌍용차 평택공장을 전쟁터ㆍ생지옥으로 만들었다. 경찰 헬기는 노동자들의 살갗이 벗겨지게 하는 발암물질이 섞인 최루액을 비처럼 쏟아 부었다. 경찰은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테이저건과 나무방패를 뚫는 폭동진압용 다목적발사기까지 쐈다.

8월 4~5일의 살인 진압에서 저들의 야만적 폭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이 점거한 도장공장이 30만 리터의 신나와 페인트가 가득한 그야말로 ‘화약고’라서 진압 과정의 실수로 폭발이 일어나면 인명 몰살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명백한데도 저들은 살인 진압을 강행하려 했다. 그 와중에 노동자 2명이 추락하고 화재가 일어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것들은 모두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와 그 지배자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야만적일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영웅적 점거 파업

쌍용차 점거 파업이 보여 준 것은 단지 지배자들의 야만과 폭력만이 아니다. 77일간의 파업은 이런 야만과 폭력에 맞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동자들의 빛나는 의지로 눈부셨다.

제대로 물과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자고 씻지도 못하며 경찰과 용역 들이 휘두르는 온갖 살상무기에 다치고 최루액과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면서도 노동자들의 불타는 태양 같은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전쟁터ㆍ생지옥 속에서 막바지까지 4백50명이나 버틴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실로 영웅적인 투쟁이었다.

쌍용차 점거 파업은 화물연대의 박종태 열사 투쟁과 더불어 상반기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는 구실을 했다. 5월말에 <연합뉴스>는 “올해[하투]는 산하조직이 앞장서고 총연맹이 뒤따르는 방식”이라고 했다. 나아가 쌍용차노조는 서울 시청광장에 10만 명이 결집한 6월 10일 범국민대회에 참가해 자신들의 투쟁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했다. 민주 수호를 위한 투쟁과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의 결합을 시도한 이 모범적 시도는 두 투쟁 모두를 고무했다. 경제 위기 시기에 노동자 투쟁이 정치 투쟁과 결합할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쌍용차 파업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이 굴뚝에 올라가고 파업을 함께하는 아름다운 투쟁이기도 했다. “농성장 안에는 정규직ㆍ비정규직 구분이 없다”, “함께 파업 하면서 나도 같은 노동자라는 존재감을 느낀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증언은 진정한 정규직ㆍ비정규직의 연대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강경 투쟁 때문에 여론이 외면했는가?

보수 언론들은 쌍용차 투쟁이 “강경 투쟁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유감스럽게도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도 “민주노총이 무조건 강경 투쟁만 하는 것으로 비춰졌는데 노동운동도 변신해야 한다”(<서울신문> 8월 8일치 인터뷰)며 이런 논리를 수용한다.

그러나 쌍용차 파업은 오히려 단호하고 강력한 점거 파업이 투쟁의 정당성을 선전하며 지지를 넓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보여 줬다. 파업이 지속될수록 고립되기는커녕 각계각층의 지지가 이어졌다.

6월 중순 여론 조사에서는 63퍼센트가 쌍용차 정리해고에 반대했고 79퍼센트가 경찰력 투입에 반대했다. 7월말 여론조사에서도 69퍼센트가 쌍용차 위기의 책임이 정부와 사측에 있다고 답했고 53퍼센트가 사측이 양보해야 한다고 답했다. 곳곳에서 임금 삭감과 해고가 벌어지는 경제 위기 속에 많은 사람들이 쌍용차에서 벌어지는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했다.

이런 여론의 압력 때문에 국가인권위도 긴급 구제 신청을 했고, 2004년에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한 장본인인 민주당조차 정부를 규탄했으며 가톨릭 추기경과 조계종 총무원장까지 경찰력 투입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가족대책위 여성들의 헌신적이고 끈질긴 투쟁과 호소도 이 과정에서 큰 구실을 했다.

쌍용차 파업에 대한 지지 여론은 단지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국제적으로 번졌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홍콩, 남아공, 브라질, 터키 등에서 지지 메시지와 집회 등이 이어졌다. 영국에서 공장 점거 파업중인 베스타스 노동자들은 쌍용차 노동자들과 연대 메시지를 주고 받았고 브라질 금속노조는 현지의 쌍용차 판매점 봉쇄를 약속하기도 했다. 쌍용차 투쟁은 세계적 경제 위기와 고통전가에 맞선 저항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BBC 방송은 “베스타스 노동자들은 한국 쌍용차 노동자들로부터 연대 메시지를 받고 분명 놀랐을 것이다. 두 공장 노동자들의 전술은 동일하다. … 두 곳에서 벌어진 저항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전 세계적 흐름의 일부다. …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공장 점거 투쟁을 보게 될 듯하다”(8월 7일치)고 보도했다.

연대 투쟁의 부족이 낳은 아쉬운 결과

앞서 지적했듯 쌍용차가 자동차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그래서 파업이 미치는 경제적 효과도 제한적이었다. 쌍용차나 협력업체는 파업의 타격을 받았지만 자동차 산업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현대ㆍ기아차는 사상 최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따라서 모든 점거 파업에서 그렇지만 쌍용차에서는 특히나 더 연대가 필요하고 중요한 상황이었다. 단호한 점거 파업과 강력한 연대 투쟁ㆍ파업을 결합시켜서 저들을 물러서게 해야 했다. 박노자 교수의 지적처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표명하기 위해 현대ㆍ기아자동차의 노동자들이 만약 라인 가동을 멈추었다면 지배자들은 ‘살인 진압’ 벌이기 전에 몇 번 더 생각해 봐야 했을 것”이다.

물론 수많은 학생들과 진보정당과 사회단체들은 매우 헌신적으로 연대했다. 이들은 용역ㆍ구사대의 폭행과 연행ㆍ구속까지 무릅쓰면서 쌍용차 투쟁 연대에 최선을 다했다. 연대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 준 이들의 모습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외부세력만 없었어도 합의는 보다 빨리 이뤄졌고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중앙일보>의 불평은 ‘연대 투쟁 때문에 대량해고와 살인 진압을 맘대로 못했다’는 말일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조합원들을 대규모로 동원하고 주요 기업에서 생산에 타격을 가하는 노동조합들의 연대 투쟁과 연대 파업이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는 이런 투쟁을 지도하는 구실을 하지 않았다.

일부 연대 집회 등을 조직하고 연대 파업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이들 지도자들은 실질적인 연대 투쟁과 파업을 진지하게 건설하기보다는 중재와 적절한 양보를 통한 타협을 추구했다.

그래서 쌍용차 한상균 지부장도 “공장을 사수하고 있는 사람들 눈에는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이 중재자 역할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아쉬워했다. 이런 상황은 상층 간부들의 협상에 의존하는 산별노조보다는 기층 노동자들의 연대와 투쟁에 의존하는 산별노조가 절실하다는 점을 보여 줬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는 물과 식량 전달이 가능할 만한 수만 명 규모의 연대 집회가 아닌 기껏 수 백, 수 천 명이 모인 연대 집회를 조직하고는 김빠지는 연설을 해서 참가자들을 힘 빠지게 했다. 협상이 벌어질 때는 협상만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협상 결렬 후 곧장 이어진 살인 진압에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가대위 여성들은 이번 투쟁의 또 다른 주역이었다.

쌍용차에서 대량 해고가 성공하면 현대ㆍ기아ㆍGM대우 등으로 이어질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자동차 3사 노조 지도부도 ‘살인 해고’를 막는 데 진지하지 않았다. 현대차 윤해모 지도부는 무책임하게 사퇴해 쌍용차 투쟁 연대 등을 회피했고, 기아차 김종석 지도부는 기아차 파업과 쌍용차 파업을 연결시키는 데 소극적이었다. GM대우차 지도부는 임금 동결로 임단협을 조기 타결해 버렸다.

이들 지도자들은 ‘기층의 동력이 부족했고 호소해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변명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쌍용차 파업은 명백히 여론의 큰 지지를 받았고 현장 노동자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현대차 등 현장에서 의미 있는 수의 지지 서명과 모금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대차 대의원대회에서 쌍용차 연대파업 안건이 49퍼센트의 지지로 아깝게 부결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가능성을 확대ㆍ발전시키지 않은 지도자들에 있었다.

심지어 8월초 살인 진압이 시작되는 상황에서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자들은 하루 파업조차 선언하려 하지 않았다. 이 같이 연대 투쟁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부는 감히 몇 번이나 살인 진압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8월 4일 평택공장 앞에서 살인 진압에 항의하는 학생과 노동자들

그 점에서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이 “보름 전쯤 쌍용차 노조지도부와 안을 만들었는데 쌍용차 내부 농성자들이 이걸 안 받아들였다. 지금 안은 그때보다 후퇴한 것”(<서울신문> 8월 8일치 인터뷰) 이라고 평가한 것은 경악스럽다. 이것은 마치 노동자들이 굴복을 거부하고 강경 투쟁한 것을 탓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런 투쟁이 없었다면 정리해고를 절반이나마 줄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임성규 위원장은 연대 투쟁 건설은 뒷전에 미루고 타협이나 종용하던 태도부터 반성해야 할 것이다. 평택공장 앞에서 용역과 구사대에 굴욕적인 폭행을 당하며 제2의 용산참사가 벌어지면 어쩌나 하며 마음 졸이던 많은 사람들에게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연대 투쟁 건설 방기는 환멸을 넘어 범죄적 배신으로 보였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파업에도 불구하고 대량 해고를 절반밖에 막지 못한 것의 책임과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얄미운 양보론 유감

조중동 등은 파업이 끝나고 나서도 ‘충분했던 물과 식량’, ‘호화판 농성’ 등 소설까지 써대며 노동자들을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 자유주의 개혁 언론들은 조중동처럼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진 않았지만 유감스럽고 얄미운 양비론과 양보론을 펴며 노동자들의 사기와 투쟁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겨레>는 쌍용차 노조에게 “일정 수준의 정리해고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고 <경향신문>도 “‘총고용 보장, 정리해고 철회’라는 당초 요구에 지나치게 얽매”였다며 노조를 비판했다. 그러나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사실상 죽음과도 같은 ‘살인해고’를 일부 수용하는 게 ‘유연한 태도’라는 말은 헛소리일 뿐이다.

나아가 <한겨레>는 “전부를 얻든가 아니면 빈손으로 돌아서는 ‘끝장 투쟁’ 방식은 이번에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즉, 적절한 양보 교섭을 했다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쌍용차노조는 5월 21일 파업에 돌입하기 전에 이미 몇 차례나 임금 삭감 등의 양보안을 제시한 바 있다. 양보안에 대한 사측의 반응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원칙대로 밀고 나간다”(5월 15일 사측 유인물)였다. 사측이 물러선 것은 노조가 점거 파업을 사수하며 양보안까지 철회해 버렸을 때였다.

그 점에서 “현장 싸움에 매몰된 진보진영의 투쟁 방식도 되돌아봐야 할 때”라는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의 평가도 부적절하다. ‘현장 싸움’이야말로 정리해고를 일부라도 저지할 수 있게 한 진정한 동력이었다. 문제는 ‘현장 싸움’에 대한 연대 투쟁 건설을 방기한 지도자들에게 있었다.

물론 ‘현장 싸움’과 연대 투쟁의 결집점이 될 대안적 요구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한겨레> 등이 말하는 ‘산업 발전 정책’이나 ‘고용안정협약’ 등이 아닌 공기업화였다.
공기업화를 통한 고용 보장 요구가 필요했다

6월 10일 범국민대회에 참가해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는 쌍용차 노동자들

쌍용차 파업이 타결된 8월 6일 MBC ‘100분 토론’에서 전경련 상무 배상근은 역겹게도 “썩은 살을 도려내”듯 정리해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쌍용차를 망친 ‘썩은 살’은 상하이차와 부패하고 무능한 관료들인데 애꿎은 노동자들을 ‘살인 해고’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수익을 내지 못하고 사실상 파산한 기업에 대안이 없지 않느냐는 의문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세계적 과잉생산 때문에 쌍용차 노동자의 고용을 유지하고 자동차를 만들어도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단국대 김태기 교수는 “선장은 전체 선원을 살리기 위해 소수의 선원들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100분 토론’)고 했다.

이런 논리 때문에 쌍용차노조도 파업 돌입 전에 거듭 임금 삭감과 복지 축소를 담은 양보안을 제시했다. ‘진보도 경쟁력 강화의 산업 정책과 성장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는 개혁주의자들과 노동조합 상층 간부들은 이런 함정에 빠져 노동자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러나 노동자를 희생시켜 회사와 경제를 살리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세계적 과잉생산은 한국의 모든 자동차 회사가 문닫아도 해결될 수 없다. 세계 시장은 3천만 대가 과잉인데 한국의 내수와 수출 자동차를 모두 합쳐도 6백만 대가 안 된다. 이윤을 위한 세계적 경쟁 자체가 끊임없이 과잉생산을 낳기 때문이다. 따라서 GM, 도요타, 쌍용차, 현대차 등의 노동자들이 끝없이 경쟁하게 만드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더구나 노동자 임금 삭감과 해고는 과잉생산 문제를 악화시킨다. 당장 쌍용차 노동자들은 자동차 할부금도 못 갚고 신차 구입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됐다. 따라서 위기 속에 해고와 이윤 회복, 경쟁 격화와 위기의 재등장, 되풀이되는 해고는 끝없는 악순환일 뿐이다.

쌍용차노조가 주장했듯이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고 임금을 지급하려면 정부가 부자 감세나 4대강 정비 등에 쓸 돈의 극히 일부만 있어도 된다. 그래서 쌍용차 노조는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 요구는 ‘쌍용차를 망친 자들은 어디 가고 왜 국민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고 이후 재매각이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쌍용차를 재매각하면 상하이차 매각 과정의 재앙이 고스란히 반복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사기업이 이런 잉여인력과 강성 노조를 인수하겠느냐’는 저들에 맞서 국가가 책임지고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연관업체 20만여 명의 고용도 안정시키라는 공기업화 요구가 필요했다.

공기업화를 통해 과잉생산된 자동차가 아니라 친환경적 대중교통 등을 만드는 데 인력과 설비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제2차세계대전 때 GM의 자동차 공장을 폐쇄하고 무기ㆍ전투기를 만드는 공장으로 바꿔 가동시켰다. 이런 식의 전환이 노동자들의 삶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또 ‘과잉인력’은 금속노조가 요구해 온 노동시간 단축과 주간연속2교대제 등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 그러면 어떤 노동자들은 골병이 들도록 밤새 일하고 어떤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는 모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미쳐 버린 이윤 경쟁의 포로인 지배자들은 이같은 합리적인 대안을 한사코 거부한다. 따라서 공기업화를 통한 고용 보장 요구는 점거 파업과 연대 파업 같은 강력한 대중 투쟁의 뒷받침을 받을 때만 실현 가능하다. 이런 투쟁은 배를 낭떠러지로 몰고 가는 선장을 교체하고 선원들이 배의 통제권을 장악하는 근본 변혁을 위한 투쟁과 연결될 수 있다.

노동자들은 패배했는가?

보수 언론들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백기투항”했다고 평가하며 ‘그토록 처절하고 강력하게 싸워도 결국 얻은 게 별로 없다’는 패배주의적 생각을 퍼뜨리려 한다. 안타깝게도 진보진영의 일부에서도 그런 평가를 공유하고 있다.

예컨대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회사 쪽이 승리한 거”라고 말한다.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자본의 승리로 끝났[고] … 이명박 정권의 공격은 거침없이 계속될 거”라고 평가한다. 손호철 교수는 “사실상 ‘노동조합의 항복’”이라고 했다.

그러나 쌍용차 투쟁은 결코 저들의 일방적 승리나 노동자들의 일방적 패배로 끝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처절하고 강력한 투쟁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의미있는 성과를 낳았다.

“백기투항을 원한다면 8백50개 관을 준비하는 게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노동자들의 투지와 기세는 지배자들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다. 파업 침탈을 시도하던 경찰과 용역깡패, 구사대들이 노동자들의 기세에 밀려 꽁무니를 빼며 도망치는 일이 거듭 벌어졌다. <조선일보> 경제부장 윤영신은 “이명박 정부는 평택을 ‘해방구’로 만든 쌍용차 노조의 불법에 무기력한 모습”이라며 “엠비노믹스는 이제 형체를 찾기 힘들어졌다”고 했다.

온갖 협박과 폭력으로도 노동자들의 사기와 투지를 꺾을 수 없었던 정부와 사측은 조금씩 물러서야 했다. 무엇보다 2천6백46명 중 희망퇴직자 등을 제외하고 최종적으로 6월 8일 정리해고를 통보한 9백76명을 반드시 해고하려던 저들의 시도는 실패했다.

저들은 6월 26일 이중 1백50명을 무급휴직으로 구제해 고용을 유지한다는 ‘최종안’을 던졌다. 8월초에는 다시 3백90명을 무급휴직 등으로 구제한다는 소위 6:4 ‘최종안’을 던졌다. 다시 며칠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52:48로 4백70여 명을 구제한다는 ‘최종안’이 타결됐다(6백40명을 기준으로 한 48퍼센트와 8월초에 사측이 파업 이탈을 유도하면서 무급휴직을 약속해 준 노동자를 합친 숫자).

동지애와 결속력

정리해고가 실패하면 “9백70명 인원들이 무지무지한 압력단체가 되면서 … 모든 문제를 다 쥐고 흔들 것”이라던 법정관리인 박영태의 걱정대로라면, 여전히 5백여 명의 ‘무지무지한 압력단체’는 남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정리해고와 관련되는 회사 입장이 거의 다 관철되었다”(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평가는 사실과 맞지 않다.

희망퇴직금을 거의 두 배로 늘린 것, 복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학비 지원을 지켜낸 것, 비정규직 고용 승계를 약속받은 것 등도 초인적인 투쟁이 낳은 성과일 것이다. 무엇보다 77일 동안 전쟁터ㆍ생지옥을 함께 견뎌 낸 투사들은 이미 어제의 그들이 아닐 뿐 아니라 이들의 동지애와 결속력도 막강해졌다.

그래서 <한국경제>는 “[사측이] 구조조정 원칙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노조에 지나치게 양보”했고 “국내 최고 수준의 투쟁력을 입증한 ‘강성 노조’를 계속 끌고갈 수 밖에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더구나 쌍용차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미디어법 날치기 후폭풍과 더불어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운운하며 몇 가지 보잘것없는 조삼모사식 양보라도 내놓게 만든 동력이었다. 이명박이 차마 미디어법 날치기와 함께 비정규직법 개악을 시도하지 못한 것도 이런 압력 때문이었다.

물론 최종 타결 내용은 77일간의 결사항전을 벌인 노동자들에게 결코 내키지 않을 내용이다. 쌍용차 한상균 지부장도 “목숨을 걸고 투쟁했지만, 힘이 부족해 정리해고를 끝장내지 못했습니다. …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하고 말했다. 함께 전쟁터ㆍ생지옥을 건너 온 동지들 중에 누가 남고 나갈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도 남아 있다. 이처럼 아쉬운 선방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의지와 투쟁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은 왜 보수적으로 행동하는가

쌍용차 투쟁에 함께한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총ㆍ금속노조 지도자들의 연대 회피에 실망하고 분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겁 많거나 타락한 몇몇 개인들 때문이 아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점하는 독특한 사회적 위치를 봐야 한다.

칼 마르크스는 노동조합은 그 한계가 무엇이든지 간에, 노동자들이 함께 단결해 싸울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무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노조는 착취의 원인이 아니라 착취의 결과에만 반대한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 자체를 철폐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조건을 개선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도 “러시아ㆍ쿠바 혁명처럼[할 게] … 아니라면 자본주의 구조를 인정할 거냐 말 거냐 이것부터 정리해야 한다”(<서울신문> 8월 8일치)고 말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내에서 특정 부문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두고 사장과 투쟁 또는 협상을 하는 방향으로 이끌리게 된다. 이러한 임단협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상근자들은 독자적 계층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바로 노조 상층 간부들이다. 이들은 현장에서 멀어져 자본과 노동 사이를 중재하며 갈수록 보수화되곤 한다.

영국 노동당의 개혁주의자였던 시드니 웹과 베아트리스 웹 부부는 1894년에 어떻게 노동조합 활동이 전투성을 잃어 가는지 관찰했다. “우리는 노동조합의 지도부가 보통의 열정적이고 무책임한 선동가에서 자신들의 탁월한 사업 능력으로 평범한 노동조합원들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선택된 영구적 유급 간부층으로 변화하는 것을 지켜봤다.” “파업에 수반되는 힘들고 달갑지 않은 일에 대한 싫증을 무의식적으로 갖게 된 그는 조합원들의 요구에 별로 공감하지 않게 되고 마침내 조합원들의 상당 부분이 거부하는 협상에 타협하고 만다.”

보수화 압력

노동조합 상층 간부들의 관심은 기업주들과 타협하는 일이다. 투쟁에서 패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전면적 대결의 위험은 피하면서 중재를 계속하는 것이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도 “정부든 자본이든 협상이 중요하다. … 교섭 책임이 민노총에 있었다고 한다면 [쌍용차 투쟁 결과가] 조금 달랐을 수도 있다”며 협상 중시 태도를 드러냈다.

물론 위기에 몰릴 경우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조합 조직을 방어하기 위해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체제가 위기에 처하는 경제 위기 시기에 이들의 투쟁 회피와 보수성은 더 심해진다.

사람들은 노동조합 상층 간부들의 나약함을 보면서 상층부의 사람들을 바꾸면 해결된다고 믿곤 한다. 물론 노조 지도부 좌와 우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다. 게다가 좌파 지도부 선출은 조합원들의 싸우려는 의지를 북돋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좌파 지도부라도 여전히 모든 노동조합 상층 간부들처럼 보수적 압력의 영향을 받는다. 이번에 투쟁을 회피하고 사퇴한 현대차 윤해모 지도부는 대표적인 좌파 지도부였다. 아래로부터 투쟁보다 좌파 지도부 건설에 더 치중해 온 현대차의 수많은 ‘현장조직’들은 이런 상황에서 무기력하기만 했다.

따라서 노동조합 상층 지도부에게 가해지는 보수적 압력에 맞서고 이를 상쇄하기 위한 독립적 움직임이 중요하다. 이는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압력을 넣고 현장 노동자들의 지지와 행동을 조직하는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이 네트워크는 더 좌파적인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비록 이것이 아래로부터 투쟁 건설보다는 덜 중요하지만 말이다.

이 네트워크는 노동조합 상층 간부들이 노동자들을 올바르게 대표할 때는 지지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독립적 활동을 펼쳐야 한다. 이번 쌍용차 투쟁 때 바로 이런 행동이 절실히 필요했다.

전망과 과제

쌍용차의 투사들은 영웅적인 투쟁으로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그래서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구조조정이 필요할 때마다 회사가 전쟁터로 변하는 상황을 겪어야 한다면 누가 …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인가” 하고 우려했다. 더구나 이번 쌍용차 파업에 대한 야만적인 고사 작전과 살인 진압 시도는 이명박과 노동자ㆍ서민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피와 눈물의 강물을 더 깊게 하며 반이명박 정서와 증오심을 더 심화시켰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지금 악랄한 보복과 뒤통수 치기에 나서고 있다. <조선일보>도 “쌍용차를 이 지경으로 몰아간 노조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그 책임을 묻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철저한 보복을 주문했다. 따라서 쌍용차의 투사들은 즉각 자신들의 결속력을 이용해 비대위 등을 구성하고 노조 무력화 보복과 9월 노동조합 선거에서 우파 지도부 건설 시도, 재매각과 구조조정 시도 등에 조직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쌍용차 투쟁을 지지했던 모든 사람들은 이번 투쟁의 교훈을 곱씹으며 다음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이명박은 최근 “기업 구조조정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며 구조조정과 고통전가를 할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한국경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언제든 [쌍용차와]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쌍용차 투쟁이 끝난 바로 다음날 부산항과 울산항의 예인선 노동자들은 ‘수출입 마비의 물류 대란’을 가져 올 수 있는 파업에 돌입하며 고통전가에 맞선 저항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 줬다.

다음의 ‘유사한 사례’ 때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보여 준 단호한 점거 파업에 반드시 강력한 연대 투쟁과 파업을 결합시켜야 한다. 물론 현재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현장 조합원들이 투쟁 회피적 지도부를 뛰어넘는 높은 자신감과 투지, 정치 의식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 위기에 다소 위축돼 있는 많은 노동자들이 부문의 벽을 넘는 연대나 정치 투쟁으로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고 연대를 추동할 현장 활동가들의 규모와 결속력도 그다지 높지 않다. 지난해 촛불항쟁이라는 절호의 기회에 파업에 나서지 못했던 정치적 한계가 이번에는 쌍용차 연대 투쟁의 부족함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의 민주주의 후퇴 시도와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는 활동가들과 현장의 투사들은 노동자들과 피억압 대중의 자신감과 정치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선전 선동을 하며 투쟁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

경제 위기 속에 체제에 맞서기보다 양보에 기울고 연대보다는 부문주의를 부추기는 노동조합 상층 지도부를 투쟁에 나서도록 압박하거나 그들이 투쟁을 회피할 때는 독립적인 투쟁을 건설하기 위한 현장 노동자와 투사 들의 네트워크를 건설해야 한다. 이번에 현대차에서 쌍용차 투쟁에 대한 연대를 호소하며 5천여 명 조합원의 지지 서명을 받은 현장 활동가들의 노력은 그런 네트워크 건설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투사들의 네트워크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은 이런 네트워크 건설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연대를 고무할 수 있고 자신감을 증대시키는 정치와 주장을 제시할 수 있다. 나아가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은 현장 노동자들의 경제 투쟁을 정치 투쟁과 연결해 상호 결합ㆍ발전시키는 구실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지난한 과정일 수 있고 많은 인내심과 참을성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지난해 촛불항쟁 이후 노동자ㆍ피억압 대중의 자신감과 정치의식이 조금씩 고양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4월 재보선 때 울산에서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의 당선과 김상곤 후보의 경기도교육감 당선은 그것을 반영하는 지표였다. 특히 한나라당에 빼앗겼던 울산에서 진보정당의 의석 재탈환은 상징적이었다.

이것은 경제 투쟁 자체의 진전만이 아니라 촛불항쟁같은 정치 투쟁의 충격으로도 노동자들의 의식과 자신감이 고양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경제 투쟁과 정치 투쟁에 모두 개입해야 하고 두 투쟁을 연결하며 체제에 도전하는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수많은 노동자와 피억압 대중이 이번에 쌍용차의 투사들이 보여 준 것 같은 투지와 용기를 가지고 함께 연대해서 싸울 수 있도록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와 조직을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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