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동안의 외침 ‘여기 사람이 있다!’
- 사과 없이 탄압만 하는 정권, 시신 공개와 관을 메고 청와대로
오는 7월 20일이면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반년이 된다. 살기 위해 망루에 올라갔다가 시신이 되어 내려 온 5명의 주검은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고 있다. 사람의 목숨도 살아생전 돈과 권력이 없으면 천대받는다.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소식지 <여기 사람이 있다>16호에는 “1월 20일 이후, 인권과 민주주의 시계는 멈췄다”, “야만과 폭력의 시계는 광폭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 땅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용산참사 해결에 나서자!”, “용산참사 반년, 우리의 힘을 모으자!”며 용산참사 반년, 범국민 추모주간(7.11~20) 행동을 제안하고 있다. 7.11일 서울역에서 열린 범국민추모대회에서 유가족들은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경찰특공대 폭력으로 참혹하게 숨진 시신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반년이 되는 7월 20일 관을 메고 청와대로 향하겠다고 선언했다. 더불어 진압작전 당시 경찰의 핵심 지위라인에 있던 인물들의 진술조서가 포함된 미공개 3000쪽을 즉각 공개할 것과 이 사건을 지휘한 천성관 서울지검장의 검찰총장 내정 철회를 요구하였다.
- 집 평수 넓히려는 마음속의 폭력
지난 4월 ‘삶이 보이는 창’이 발행한 ⌈여기 사람이 있다⌋(319쪽)는 조혜원 외 14인이 르포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현재 수배중인 범대위 박래군 공동집행위원장은 용산에서 확인하는 지독하게 불편한 진실이 폭력체계와 계급전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용산 남일당 추모현장이자 농성장에는 항상 경찰이 압박을 가하고 있고 뒤편 철거현장은 끊임없는 강제철거가 진행되면서 철거민들과 용역깡패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강남 땅 부자와 건설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가권력의 폭력이 자행되는 현장이다. 그러나 더 뒤편에는 이미 입주가 완료된 고층 아파트가 폐허가 된 용산 4단지를 유령처럼 내려다보고 있다. 전국철거민연합회(이하 전철연) 연대사업 위원인 인태순씨(현재 구속 수감)는 “집 평수 넓히려는 마음속에 폭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만든 권력이 집 없는 철거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이는 비단 이명박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군사독재정권을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도 강제철거와 폭력, 부동산 투기와 개발이익은 예외가 아니었다. 성남 단대지구 철거민 박명순씨 말대로 점점 더 “없는 사람은 아예 없고 있는 사람은 아주 많은” 세상이 되고 있다.
-사람들의 피를 먹고 그 육신을 깔고 들어서는 아파트는 미친 짓
망루에서 생활하는 용인 어정상가.공장 철거민 7명은 “도망가는 것 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망루로 올라왔다”고 했다. 경찰이 뻔히 보는 앞에서 폭력을 행사한 용역깡패를 경찰에 신고하면 ‘못 잡았다, 증거 가져와라’고 하고 사진 찍어 가면 ‘못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철거민들이 경찰을 건드리기만 하면 금방 폭행으로 몰려 사법처리 된다. 이 대목에서 르포작가는 “사람들의 피를 먹고 그 육신을 깔고 들어서는 아파트는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 용산참사 때 건물에서 뛰어내려 두 다리가 부러지고 허리 중상을 입은 순화동 철거민 대책위 지석준씨는 “평생 집 한 칸 못 지킨 아버지 보면서 한이 됐나 봐요. 내 꿈과 희망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것인가요?”라고 묻는다. 용산참사 현장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한다. 아내는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돌아가신 분들에게는 면목이 없다.
-내가 아버지였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유가족들의 아픔과 분노는 끝이 없다. 고 이상림씨 며느리 정영신씨는 “얘기하기 위해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인데...이 나라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예요. 뭐 하나 밝혀진 게 없다.”고 한탄한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죽음이 더 가슴 아프다. 고 윤용현씨 장남 현구씨는 “그저 바라봐야만 했다. 불안을 밥처럼 먹으며 견뎌낸 시간들이었다. 엄마가 원하는 건 진시된 사과”라고 말하며 “아버지, 사랑합니다.” 고 이성수씨 차남 상현씨는 “지극히 평범했던 가족들, 그리고 가난의 일상이었다. 철거가 되면서 교복이 없어져 체육복을 입고 등교했다. 어렸을 때는 크게 보였던 부모님이 천막생활을 할 때는 참 작아 보였다. 사랑한다고 앞으로 더 잘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없는 세상이 두렵다”고 한다. 고 양회성씨 차남 종민씨는 “속 썩이던 아들이었지만 늘 지켜 봐주시던 아버지는 나의 꿈이었다. 내가 아버지였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 한다.
-탐욕으로 썩어문드러지고 타락한 자본주의
작가는 ‘공권력이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우리는 불행한 기억으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적고 있다. 31년 전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씨는 “미래에는 이러한 현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그러나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은 더 참혹하게 돌아가고 있다. 책 출간 30주년 때 난쏘공의 작가가 한 말이다. “지금, 오늘날 한국에서 행복해 하는 자는 다음 두 부류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다.” 르포 작가는 “누군가의 눈물과 한 숨, 괴로움으로 편안한 우리, 범죄.학살 행위를 막지 못한 우리의 죄”를 질타한다. ‘군대나 경찰은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하고 민주주의는 남의 평화, 남의 자유, 남의 행복을 지켜줘야 한다.’는 바람은 오늘날 탐욕으로 썩어문드러지고 타락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중요한 건 침묵하지 않는 거예요
성남 단대지구 세입자인 김창수씨는 “재개발은 누구한테나 다 올 수 있는 일이예요.”라면서 제대로 된 순환식 개발을 강조한다. 유엔 사회권위원회 사회권 규약 일반 논평 4에는 ‘점유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강제퇴거, 괴롭힘 또는 기타 위협에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점유에 대한 법적 안정성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토지 공개념을 도입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자연에게 잠시 빌려 쓰고 있는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와 이를 통한 개발이익과 불로소득이야말로 오늘날 철거민과 빈부격차확대 원인이다. 용산동 5가 주거세입자 이영희 철거민대책위원장은 “중요한 건 침묵하지 않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말하지 않고 투쟁하지 않으면 토지를 둘러싼 가진 자들의 착취와 폭력을 멈추지 않는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객의 1000분의 1만이라도
그래서 연대투쟁이 필요하다. 지금 용산철거민들이 땅 부자와 건설자본의 용역깡패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경찰폭력에 의해 장례도 못 치루고 탄압받고 있지만 연대투쟁을 통해 이겨낼 수 있다. 철거민을 위해 투쟁했다는 이유로 수배되어 순천향병원 영안실에 갇혀 있는 남경남 전철연 의장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네.”라고 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끝났다. 사람의 목숨은 모두 소중하다. 유가족들이 용산농성장에서 경찰과 용역깡패에게 짓밟히고 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을 조문하고 추모한 사람의 숫자가 6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 추모객의 1,000분의 1이라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진정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좋은 뜻을 이어가고자 한다면 감상적 슬픔에만 젖어있을 게 아니라 세상의 억압과 모순에 저항해야 한다. 그래야 더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다. 한 거리 철학자는 작년 100만 촛불투쟁이 왜 이명박 정권을 이기지 못했는가에 대한 진단에서 거기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대다수의 일상적 삶이 ‘스몰 이명박’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 했다. 한 시대 하늘 아래에 살면서 반년이 되도록 장례를 못 치룬 용산철거민들의 시신을 그대로 두고 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다.
(2009.7.12, 일, 오마이뉴스 게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