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회연대의 꿈’은 실현될 수 있을까
<민주노총>의 새로운 도전이 걱정스러운 이유
곰과 사슴의 ‘연대’
곰과 사슴을 키우는 동물농장이 있었다. 농장주인은 곰쓸개와 사슴뿔을 정력제로 팔아 고수입을 챙기고 있었다. 농장의 곰들은 쓸개즙을 추출하는 빨대를 가슴에 꽂고 있었고 사슴들은 주기적으로 뿔을 잘려야 했다. 그 대가로 주인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호의호식하며 방탕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동물사육에는 먹이가 필수인 법. 그런데 주인은 곰과 사슴에게 똑같은 먹이를 주지 않았다. 곰에게는 고기와 기름이 섞인 사료를 주고 사슴에게는 풀만 먹인 것이다. 사슴들은 이게 불만이었다.
한 사슴이 동료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곰에 못지 않은 이익을 얻게 해주는데 어째서 우리는 풀만 먹어야 하는가?”
동료들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 맞아!” “이건 부당해!”
그 사슴이 다시 말했다. “참고만 있어선 안 돼. 우리한테도 좋은 먹이를 달라고 주인에게 따져보자!”
그리하여 사슴들은 주인에게 양질의 사료를 달라고 집단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주인은 그 요구를 들어주기는커녕 앞장섰던 사슴들을 잡아 고기로 팔아먹고 새 사슴을 들여놓는 쪽을 택했다. 뿔을 제공해줄 사슴은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오래 전부터 농장을 탈출하려고 애썼지만 힘이 모자라 고민하던 곰들이 이 모습을 보고 회의를 열었다.
한 곰이 말했다. “다 알다시피 우리 힘만으로는 울타리를 부수고 자유로운 숲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 사슴들과 힘을 합쳐야 해.”
다른 곰들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 맞아!” “힘을 합쳐야 해!”
곰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사슴들은 먹이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우리보다 힘이 약해. 우리 먹이를 사슴들에게 나눠주는 게 어떨까? 그러면 사슴들도 힘이 세질 테고, 우리와 힘을 합쳐 울타리를 부술 수도 있을 게 아니야.”
다른 곰들이 말했다. “그래, 그래. 우리 먹이를 나눠주자.” “맞아. 그렇게 하면 주인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거야.”
처음의 곰이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앞으로 우리 먹이를 사슴들에게 나눠주자.”
그리하여 곰들은 자기가 먹어야 할 먹이의 일부를 사슴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슴들의 건강이 차츰 나아지고 곰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도 생기는 것이었다. 농장주인은 종전보다 더 많은 먹이를 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었다. 곰들은 애초에 기대했던 대로 모든 일이 잘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곰들은 생각했다. ‘이젠 사슴들도 힘이 세졌을 테니 같이 힘을 쓰면 울타리를 무너뜨릴 수 있을 거야.’
곰들은 사슴들과 약속을 하고 동시에 울타리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울타리는 약간 상처를 입었을 뿐 무너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먹이를 사슴에게 나눠주는 동안 곰들의 체력이 떨어진 데다 주인이 그동안 더 튼튼한 울타리를 쳐놓았기 때문이었다.…
방법이 잘못된 연대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음을 한 편의 우화를 통해 은유해 보았다. 농장주인에게 착취당하는 입장에 있는 곰과 사슴이 힘을 합치려 하고, 그러기 위해 서로를 돕는다는 생각까지는 옳았지만 주인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먹이를 나누는 방법으로는 울타리를 부술 수 없었다는 얘기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회연대전략’을 보면서 드는 걱정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의 새 깃발, ‘사회연대전략’
<민주노총>이 ‘사회연대전략’이라는 새로운 노선을 본격적으로 꺼내든 것은 지난 4월1일 임성규 신임 위원장이 선출 되면서부터다. 임 위원장은 “지금까지 민주노총의 활동은 정규직 노동자만을 위한 투쟁으로 비쳐져 왔다”면서 “자세를 낮추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사회연대에 기반한 노동운동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사회연대노총’으로의 변신을 선언한 것이다. 사회적 약자계층을 위한 ‘제대로 된 사회보장제도 수립’이 그의 포부다.
이후로도 그는 “정규직-조합원 중심의 경제적 실리주의에서 벗어나 미조직 노동자, 사회적 약자, 소외된 서민들과 소통하고 함께 하는 사회연대운동에 기반한 노동운동을 펼치겠다”, “과거의 ‘사회연대운동론’이 재정 대책 없이 ‘구호적 주장’에 그쳤다면 이제는 세부사항을 구체화해 그 내용들을 ‘사회보장법’으로 통합해 나가야 한다.”며 ‘사회연대’ 의지를 거듭 드러냈다. 이같은 <민주노총>의 행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사회연대전략’은 임성규 지도부가 전격적으로 제기했지만 갑작스레 나온 것은 아니다. 지난 2006년 말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현, 새 세상연구소)에서 ‘사회연대적 노동 운동론’이 제기되어 한 차례 논란을 빚은 바 있고 지난해 말부터는 금속노조가 바통을 이어받아 논의를 주도해 나갔다.
지난 연말 <중앙일보>와 <MBC>가 ‘금속노조가 일자리 나누기를 공식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해 파문이 일었고 올 1월에는 정갑득 위원장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모든 종류의 해고 금지와 총고용 보장 △재벌기업 잉여금의 사회 환원 등 ‘5대 요구안’을 담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금속노조 사회선언>을 발표해 본격적인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이다. 이 선언은 노동운동계 안팎에서 논의돼온 ‘사회연대전략’을 노동운동 지도부가 공식 확인한 첫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금속노조는 지난 2월 이른바 ‘민주노총 성추문 사건’이 발생한 뒤에도 <고용연대전략 3대 방안>을 발표하는 등 ‘사회연대전략’ 논의를 앞장에서 이끌었다. 그 뒤로는 새 지도부가 들어선 <민주노총>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이다.
임성규 위원장은 “지금의 민주노총은 이미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구조이고, 우리 밥솥을 던져야 민주노총에 희망이 생긴다”며 “임금의 일부를 사회적 간접임금으로 돌려 ‘기업임금노선’으로부터 ‘사회임금노선’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하는 등 논의를 구체적인 단계로 진전시키고 있다.
‘선(先)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가 핵심
<민주노총>이 5월1일 노동절 대회를 전후하여 하나씩 꺼내놓고 있는 ‘사회연대전략’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소득연대’, ‘고용연대’, ‘생활연대’, ‘복지연대’로 요약할 수 있다. 임금격차 해소와 사회임금 확보를 통한 ‘소득연대’,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안전망 구축을 통한 ‘고용연대’, 지역사회 기여와 지역공동체 형성을 통한 ‘생활연대’, 보편적 복지 향상과 사회안전망 확보를 통한 ‘복지연대’라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급조된 느낌마저 주는 생소한 개념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일반인들이나 현장 조합원들 속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적지 않은데 핵심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노동운동 자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다. 현재의 민주노조운동은 변화된 환경과 민심에 부응하지 못해 ‘위기’을 맞았고 특히 <민주노총> 조합원의 80% 가량을 차지하는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주의’와 ‘노조의 이익집단화’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에 대한 반감만 커지고 비정규직이나 소외계층과 같은 서민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사회연대전략’과 관련한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다.
다음, 그러므로 자신의 ‘기득권’을 희생하는 태도를 보이자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위기가 ‘이기주의’와 ‘이익 추구’에서 기인하므로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부터 자신의 이익(고용과 임금)을 약자들(비정규직 등)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연대전략’의 핵심인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중 일부를 떼어 사회기금화하자는 것이나 노동시간 단축-조정을 통해 소외계층의 고용을 보장하도록 하자는 것이 이같은 논리에서 제시되는 대안들이다.
다음, 이렇게 하면 <민주노총>에게 씌워진 부정적 이미지가 불식되어 사회적 인식도 개선되고 비정규직을 비롯한 각계각층 서민대중과의 연대를 실현할 토대가 닦여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전략’은 ‘사회연대’라는 명패를 달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여기까지가 기본 골격의 전부인데 <민주노총>은 한 발 더 나가 ‘복지국가’를 꿈꾼다. ‘사회연대전략’의 추진 과정에 정규직 노동자만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한 ‘사회적 압박’을 형성해 정부와 사측도 자기희생과 동참을 감내하도록 강제하고 모든 사회 주체들의 합의 속에서 저소득-소외계층의 생계와 복지혜택을 보장하는 것을 제도화(법제화)함으로써 한국을 서유럽형 복지사회로 변모시켜 가고자 하는 ‘원대한 구상’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벗어나 국민적 연대의 실현으로, 나아가 민중주체의 복지국가로! 달콤하고 환상적인 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 꿈을 실현하려면 우선 <민주노총> 조합원들부터 자기 희생을 결단하는 ‘양보’를 감행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보 없는(!) 양보와 희생에 동의할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렇게 한다 해도 과연 정부와 사측이 “우리도 양보하마”하고 납작 엎드려줄까? 그리하여 ‘노-사-정 모두가 상생하는 복지사회’를 보게 될 꿈 같은 날이 올까? ‘사회연대전략’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이 소박하고 당연한 물음들에 대한 ‘공증’과 ‘담보’를 보여줘야 한다.
근무시간 줄여서 고용 불안 해소된다면…
노동운동이 ‘연대성’을 핵심기치로 삼는 것은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일이다. 오늘날의 노동자들은 ‘가진 것이라곤 자본의 철쇄와 부양해야 할 자녀밖에 없던’ 마르크스 시대의 노동자들이 아니고 계급 구성의 변모로 인해 노동대중 각자의 처지도 끊임없이 차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장 안에 갇힌 투쟁을 넘어, 공장 밖의 사회적 의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민주노총>의 선언은 아주 반갑게 들린다.
사회환경의 변화를 바로 보지 못하고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물에 만족해하는 한계를 극복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 광범위한 서민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운동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자각과 의지도 높이 평가해줄 만하다.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시간상한제 도입을 통해 전반적 고용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제안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한국의 ‘장시간 노동’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노동자계급의 요구인 것이다. 게다가 그를 통해 고용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면 더더욱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물론 한국의 노동자들이 다른 나라 노동자들보다 유난히 일을 사랑해서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잔업과 특근에 매달려서라도 쥐꼬리만한 수당을 타야 가족을 부양하고 알량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현실적 이유’ 탓일 뿐이다. 그럼에도 대량 해고와 비정규직의 폭발적 확산에 직면한 현 상황에서 조금 양보해서라도 고용 불안과 해고 사태를 완화하자는 주장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백 번 양보해도 참아주기 힘든 ‘낭만적 양보론’
하지만 ‘정규직의 양보’를 ‘사회연대전략’의 중심에 놓는 것은 아슬아슬해 보인다. 양보는 강한 쪽이 약한 쪽에게 하는 것이다. 상대적 강자가 상대적 약자에게 양보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강자 앞에서 약자끼리 하는 양보는 자칫하면 절대강자의 잘못을 덮어주는 ‘약자끼리의 희생’에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신의 ‘고용 안전판’으로 여기고 있다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냉랭하고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노-노 갈등이 깊어지고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은 일정 부분 타당하다.
하지만 정부와 자본측이 대대적으로, 지속적으로 취해온 선전공세와 여론조작에 휘말려 ‘고통 분담’, ‘상생’과 같은 저들의 프레임에 빠지는 것은 결국 노동대중의 계급적 이익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나 후퇴와 타협에 빠지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분명히 하건대, <민주노총>은 ‘귀족노조’가 아니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득권층’이 아니다. 적어도 사회안전망이 극도로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월 200~300만원의 임금으로 생계와 주거, 육아, 교육, 의료를 모두 해결해야 하는 임금노동자들에게 ‘귀족’이니 ‘기득권층’이니 하는 것은 망발 수준의 언사다. 이 나라에서 ‘고통 분담’은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 외에 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기업이 잘돼야 노동자도 잘산다”는 달콤한 말에 속아 반세기 이상 고혈을 빼앗겨온 이 땅의 노동대중이다. ‘보릿고개’를 경험한 사람들이 한동안 소득이 올라가 ‘웰빙’과 ‘명품’을 바라보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거기까지다. 대미-대일 무역에 의존하는 한국경제가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앞에 난파될 운명에 처하자 ‘국민소득 2만불’의 신기루도 사라지고 날로 가중되는 고용 불안, 물가고, 사교육비 지출, 노후 불안으로 삶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대재벌은 위기 상황에도 막대한 이윤을 축적, 집중시키고 있지만 노동대중은 제조업과 중소기업이 붕괴되고 자영업이 해체되는 대재앙을 맞고 있다. ‘재벌은 잘돼도 노동자-서민은 망하는’ 현실을 체험하는 중이다. 그래서, ‘노동자의 양보를 통해 자본과 정부의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발상이 순진하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비현실적이라는 얘기다.
정부와 사측의 ‘고통 분담론’ 공세에 대응한 반격의 의미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경제와 민생을 살리자’는 국민적 요구를 반영하려 했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저 막무가내식 MB정부와 파렴치한 대재벌에게 의무와 책임을 강제할 수단이 무엇이란 말인가. 자칫하면 포부 있게 출발한 ‘사회연대전략’은 ‘정규직 조합원들의 양보’로 그칠 위험성이 큰 것이다. 노동운동의 새 전망을 열어보려는 의도와 지향은 이해되고 공감할 수 있지만 그 실행방안에 심각한 문제가 잉태돼 있다는 점, 이것이 우려를 자아낸다.
올바른 실천적 대안, 그것이 문제
현장조합원 대중의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또 이후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잡음과 분열이 잇따를 수 있는 실천방안은 심사숙고되어야 마땅하다. 이미 ‘사회연대전략’이 공론화되기 시작할 때부터 숱한 반대의견에 부딪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일이 열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1998년 현대자동차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했지만 사측은 이를 거부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자칫하면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한 채 사측에 악용되기만 할 가능성 있다. 민주노총의 ‘양보’ 논의를 빌미로 자본측이 비정규직 해고에 대한 정규직의 개입을 차단하고 과거 노동운동의 성과물마저 빼앗아갈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라며 ‘사회연대전략’의 취약점을 지적한 바 있다.
노동계의 ‘사회연대’ 논의에 대응해 정-재계가 취한 조치를 보면 위험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지난 2월23일 <한국노총>과 정부, <경총> 등은 <민주노총>만 배제한 채 ‘경제위기 극복과 상생을 위한 합의문’을 채택했다. ‘노동계는 파업을 자제하고 임금 동결과 삭감, 반납에 동의하며 경영계는 해고를 자제하고 고용 유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게 합의문의 골자였다. 당시 <민주노총>은 이에 대해 “노동자의 임금 삭감, 파업 포기만 있고 정부와 사측의 책임과 역할은 없다”며 “오직 노동자에게만 모든 고통을 떠넘기는 합의”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절대회 이후 ‘사회연대전략’과 관련한 대화를 정부측에 요구했지만 이 정부는 5월16일 <화물연대> 집회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등 훨씬 강화된 탄압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2차 북핵실험 등이 이어지면서 아예 노동계를 무시하는 길로 가고 있다.
혼미한 정세 속에서 7월 비정규직 대량해고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은 금융위기를 절호의 기회로 보고 신규채용 감소와 비정규직 확대로 치닫고 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꿈인 ‘안정된 양질의 일자리’는 희귀해지고 실업과 고용 불안의 암울한 현실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 와중에도 정부와 기업은 입만 열면 ‘일자리 나누기’를 되풀이하면서 노동대중을 기만하고 있다.
‘공정한 양식’과 ‘양심적인 고통 분담’은 전혀 고려조차 않고 있는 정부와 사측을 상대로 ‘노동자의 선(先) 양보’를 꺼내드는 것이 ‘사회연대’와 ‘복지사회’로 가는 보증수표일 수는 없다. ‘정규직의 양보’를 전면에 세울 것이 아니라 한국 비정규직 제도의 악랄하고 추악한 본색을 폭로하고 고용시장의 차별구조를 철폐시키는 데 주력해야 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바라건대, 노동절대회의 선언문에서 밝힌 것처럼 “파국으로 치닫는 자본주의의 질주를 막아내고 경제위기를 빌미로 노동자, 서민의 삶을 파괴하는 MB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중단시키기 위한 무기로서의 사회연대”를 보고 싶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