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에는 진보성이 없는가?
한국의 탈민족주의자들은 민족주의는 집단적 자기에 대한 집착이며 따라서 이를 해체하는 것은 한국에서 절실한 실천적 과제로 된다고 주장한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민족주의는 반역이며 이것이 진보의 편일 수 있은 것은 식민지에서 뿐이라고까지 말한다.
민족주의를 이렇게까지 기피하는 까닭을 알고자 그들의 주장을 살펴본 즉 민족주의는 권력에 의해서 이용될 수 있는 위험한 개념이며 지난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국민형성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민족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의문스러운 주장이다.
먼저,민족주의라는 이념이 그렇게도 신성시하는 민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은 세상에 태어난 후 가정에서는 부모의 슬하에서, 또한 배움터에서 학우들과 어울여 성장하며,나중에는 사회생활을 누리며 살아 가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라고 말한다. 이를 개별적 인간 차원이 아니라 더 큰 시야에서 보면 인간은 누구든 일정한 영토내에서 같은 언어와 경제,문화 생활을 누리는 집단속에서 살아 가는데, 이 집단이 바로 민족이다.
그런데 세계에 3천여가 존재한다고 하는 민족집단들이 모두 평화로운 환경에서 유지되고 발전되어 왔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어떤 민족은 강대한 민족이나 국가에 의해서 늘 위협을 받아 왔으며,그 과정에 어떤 민족은 존망의 위기에 처하기까지 했었다.
가령 한개 가정을 봐도,그 집의 가장은 항상 식구들을 먹여 살리노라 힘쓸뿐 아니라 그 누가 가정의 이익을 침범하려 한다면 설사 자기 한 몸이 희생되는 일이 있더라도 그와 맞서 싸우기도 하는데,그 근저에 있는 것은 가족애이다.
민족주의 역시 한영토(나라)안에서 살아 가는 집단,다시 말해서 큰 의미에서의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감정에 바탕해서 자기 민족의 이익을 지켜 나가려는 이념을 일컷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민족주의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가 갖는 감정인 겨레사랑,나라사랑에 바탕한 이념인 만큼 민족주의 자체는 그 출발서 부터가 진보적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민족이란 어떤 이론가나 엘리트 집단이 민족주의를 만들어 냄으로써 태어난 《상상의 공동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 주장대로라면 이조 말기에 국권이 외세에게 침탈당할 위기에 처한 속에서 동학사상이나 위정척사 사상,개화사상과 같은 민족주의 사조가 발생했는데,그때까지 우리 민족은 없었다는 해석이 된다.아마도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2차대전후 식민지 해방속에서 《민족,국가 형성》이 관심사가 된 것을 배경으로 1960년대 무렵부터 서양에서 싹텄다고 하는 근대주의적 해석을 교조적으로 도입한 모양이다.
우리 민족을 두고 누구나가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이라고 말하는 것 처럼 한반도에서는 민족주의 사조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형성되었다. 때문에 주체적 시각에 선다면 민족이 있어 민족주의가 생겨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의 진보성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이념,겨레사랑,나라사랑의 이념이라는데 민족주의의 진보성이 있다고 할 때 탈민족주의자들이 민족주의 자체를 반역이라고 보는 까닭은 무엇인가?또한 민족주의의 진보성이 식민지 시기에 국한된다면 해방후에는 민족주의에서 이 진보성이 사라졌다는 것인가?멀게는 김구,김규식 등 5.19단선에 반대한 민족주의자들의 소행과 그를 상징하는 4월연석회의,이것이 반역이라면 사람들이 어째서 그들을 50년이 넘토록 기리는가?또한 가깝게는 한국에서 최근년간에 두번에 걸쳐 벌어진 촛불시위,이는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데 대한 분노의 분출이자 또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로 국민의 생명 위협한 MB정부에 대한 분노의 분출로 둘 다 한미간의 민족적 모순이 밑바닥에 깔려 있어 사람들이 《촛불민족주의》라고도 부르는데,이를 반동시하는 것은 MB정부나 뉴라이트 뿐이다.
결국 민족주의가 누구 편에 서는가에 따라서 좋게도 나쁘게도 바뀌는 것이지,민족주의 자체를 반동시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탈민족주의논자들은 과거에 부르주아 계급에게 이용된 강대국(패권) 민족주의나 한국에서 우익세력에 의해서 이용되고 민족주의의 원래 위상을 상실한 부르주아 민족주의만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자기 민족의 이익만을 신성시하고 타민족의 이익을 예사로 침범했던 강대국 민족주의는 엄밀히 말해서 겨레사랑,나라사랑의 이념인 원래 민족주의와 거리가 먼 국수주의나 배타주의이다.
그리고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한계는 3.1운동 때 윌슨의 민족자결론에 기대를 걸거나 무저항주의를 설교하면서 나라의 독립을 일제에게 청탁하는 방법을 택하고는 결국 경찰에 자수했던 것과 같은 당시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 주도세력의 취약성,또한 이것이 훗날 일제의 문화통치속에서 민족개량주의로 변질된 데서 여실히 드러났었다.
또한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0년대에 강제되었던 《한국적 민족주의》나 《민족주체성》 역시 서중석 교수의 지적처럼 외세비판,그것과 연결된 민족 자주성의 강조를 오히려 철저히 금압하고 주한미군 유지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미군의 횡포에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로 위장한 냉전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었다.
따라서 우리는 원래 의미에서 말하는 민족주의와 이처럼 특정 계급에게 이용 당한 민족주의를 갈라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