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는 배타적인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100년래의 세계적인 경제위기속에서 《신자유주의의 파탄》과 《자본주의의 붕괴》가 거론되는,참으로 《사회주의의 종말》과 《자본주의 승리》가 고창되었던 20년전과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지구촌 곳곳에서 《마르크스의 부활》이 거론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그러한 가운데 부각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체 게바라이다.
아르헨티나의 부유한 의사 가정에서 나서 자란 게바라는 20대 청춘기에 남미주를 여행하면서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큰 충격을 받았으며,대학을 졸업한 다음 군의가 되라는 모국의 강요를 거부하고 혼자 볼리비아로 도망쳤다가 그 곳에서 카스트로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의사가 아니라 혁명가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혁명활동을 벌인 곳은 모국인 아르헨티나가 아니라 쿠바였다. 그리고 쿠바 혁명이 성공하자 그는 이번에는 볼리바아에 가서 그 곳에
혁명활동을 하다가 짧은 인생을 마쳤다. 왜?
《세계 어느 곳에서 누군가가 저지르는 부정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부터 깊이 슬퍼할줄 아는 인간이 되거라.그것이야 말로 혁명가로서의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니》
게바라가 쿠바를 떠나면서 죽음을 각오해서 딸에게 남긴 편지의 이 한구절이 위에서 제기된 의문을 풀어주고 있다.
그로 하여 세상 사람들은 게바라를 혁명가로서는 물론 프로레타리아 국제주의에 가장 충실했던 인물로 기억하며 《국제주의자 체》의 공적을 지금도 기리고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게바라 자체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쓰자는 것이 아니다.그의 이야기와 직접 관련이 되든 안되든 이같은 국제주의와 민족주의가 마치나 대립되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민족주의를 덮어 놓고 배타주의로 내모는 일부 사람들의 견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국제주의란 무엇인가?지구상에 많은 나라나 민족들이 있는데 그들 사이에서 서로 지원하며 연대하는 것이 국제주의이다. 한편 민족주의는 역시 지구상에 존재하는 민족들이 각기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며 그 이익을 지켜 나가자는 것이다.
그럼 이 양자는 서로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관계에 있는가?
결론부터 말해서 대답은 그 정 반대이다.다시 말해서 국제주의와 민족주의는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우선 양자는 요즘 세상이 《지구화시대》라면서 마치 지구상의 국경이 다 철폐된 듯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세계는 지금도 국가와 민족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현실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구태어 차이를 찾는다면 국제주의는 국가간,민족간의 지원과 연대에 강조점을 두고 민족주의는 개개의 민족의 이익에 강조점을 둔다는 것이다.
결국 세계가 국경을 두고 국가단위,민족단위로 구성되고 매 국가와 민족 단위로 자기 이익을 지키고 융성번영을 이뤄나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이렇게 보면 국제주의는 민족주의를 전제로 한다.그래서 민족주의를 떠난 국제주의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자기 부모,처자가 당장 굶어 죽게 되었는데 나 몰라라 해서 남의 집 걱정이나 하거나 사회적 공헌 운운한다면 세간에서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보겠는가,마찬가지로 자기 나라,자기 민족의 운명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이 아무리 국제주의에 충실한다고 해봐야 아무런 현실성도 없을 것이다.
혹시 민족주의가 국제주의와 모순된다거나 배타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민족주의를 마치나 자기 민족의 이익 밖에 안중에 없는,혹은 자기 민족의 이익을 위해서는 타민족의 이익을 예사로 침범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 않겠는가,만약에 그렇다면 이는 정수일 전 대국대 교수가 지적한 것 처럼 민족주의가 아니라 민족이기주의이자 민족배타주의이다.
진짜로 배타적인 것은 민족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부르주아 혁명 이후 서유럽에서 근대적 민족국가 형성과 더불어 자본가들의 이익에 이용되어 변질되었던 프랑스의 슈비니즘이나 독일의 아리아족 월등주의와 같은 강대국 민족주의이며,또한 다른 나라나 민족의 운명을 짓밟고 세계를 잘난 미국의 모양으로 획일화 하려는 《세계화》론이다.
그리고 체 게바라는 그 같은 세력,그 것도 우두머리격인 미국이 세계에서 남의 나라나 민족의 이익을 침범하고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을 반대해서 싸운 것이다.
애국애족이 무엇이고 국제주의가 무엇인지 말을 해도 똑똑히 알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