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태열사여!
5월 4일 15시경 박종태동지가 운명한 산언덕을 20여명의 화물연대 지부장 등 간부들과 함께 찾아갔다. 언덕 위로 대한통운 대전지사 건물이 몇 채 덩그마니 들어선 밀집된 대덕구 3거리 넓은 도로 건너편의 다른 낮으막한 산언덕 위로 올라갔다. 산비탈 밭이 나 있고 밭가 아래로 펼쳐져 있는 언덕에 30여미터 아카시아 그루들이 하늘로 솟아 있었다.
대한통운 정문앞은 평소에 버스종점으로서 버스가 건물앞까지 들어갔으나, 대한통운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집회신고를 하러 경찰서에 찾아가자 이미 사측에서 연속 집회신고를 내 놓고 출입금지라인(폴리스라인)을 치고 있었고, 조합원들은 정문에서 수십미터 떨어진 도로가에서 집회를 개최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경찰은 플래카드를 빼앗고 농성텐트를 빼앗고 연행을 일삼으면서 집회농성을 억압하였다.
박종태동지는 수배중이라 이곳 산언덕에 숨어서 도로건너편 대한통운 정문앞에서 집회를 개최하는 지회와 연대단위 동지들의 집회모습을 바라보고, 경찰의 무차별적인 탄압으로 연일 집회가 밀리면서 동지들이 연행당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다가 그곳 언덕 소나무 아래를 운명의 장소로 선택한 것 같다. 동지들이 깨어 일어나서 자본과 공권력의 탄압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하기를 기원하였던 것이다.
저녁 7시 대전 중앙병원 입구 토로변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화물연대동지들과 민주노총 대전지역 동지들 운수노조동지 들 등 100여명이 모여서 첫 추모집회를 개최하였다. 동지가 평소에 몰던 컨테이너 택배차량을 도로가에 세워놓고 개최된 추모집회는 함께 하던 동지를 잃은 슬픔을 가누지 못한 광주지부 조합원동지의 박종태동지를 부르는 애타는 소리에 숙연한 분위기속에서 열렸다.
어느 광주조합원동지는 투쟁사에서 말하였다. “박종태동지는 잠도 자지 않고, 양말도 갈아신지 않고 새벽이 되면 동지들 곁에 찾아와서 함께 동지들 사이에 잠들곤 하였다. 살려고 하는 건지 죽을려고 하는 건지 신들린 것처럼 활동하였다. 무엇을 맡겨도 나라를 맡겨도 해낼 사람이었다. 박종태동지가 살아있어야지! 내가 죽고 우리들이 죽었어야 하는데....박종태열사여! 그는 우리곁을 떠났다. 이제는 우리들이 수많은 열사로 태어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