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에 임하며 노동자의힘과 사노준을 전면 비판한다 !
1 . 마지막까지 배신자를 감싸 안은 노힘
노힘은 2월 8일 해산총회를 열어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을 위해 발전적으로 해소하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노힘은 이날 ‘발전적 해소’를 한 게 아니라 배신자들을 감싸고 도는 ‘또 다른 역사적 배신’을 했을 뿐이다.
“이날 해산 건에 앞서 심의안건으로 다룬 '회원 징계건'은 부결됐다. 현대자동차지부 투쟁 평가와 관련해 '제명' 안이 올라온 울산기본단위 윤해모, 조창민 회원 징계에 찬반토론을 벌이고 표결에 붙인 결과 참석한 회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지 못했다. 두 회원에 대해선 앞서 중앙위원회에서 징계가 확정된 울산기본단위 회원 7명과 같은 수준의 징계(경고)를 내리고, 반성문을 공개하는 것으로 정리했다.”(<'노동자의힘' 10년 만에 해산>, 참세상)
‘제명’이 거론됐던 민투위 노조 관료들은 2005년 류기혁 열사를 ‘열사’로 인정하지 않았던 배신자 집단의 일원이다. 그리고 2001년 효성 파업 때 연대총파업 전날 파업을 철회해 효성 파업을 패배로 몰고 갔던 자들의 일부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2007년 말 현대차 지부장 선거에서 ‘상시야간조’ 도입을 선거공약으로도 주장했다. 그리고 작년 주간연속2교대 투쟁 때는 부품사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생존권 쟁취를 현대차 지부가 정확히 내거는 것은 ‘월권’ 행위라고까지 얘기하기도 했다. 현대차 자본의 ‘2년 연속 무쟁의’ 염원에 보조를 맞추려고 전면파업을 극구 회피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엔 ‘UPH UP으로 노동강도는 대폭 높아지고, 실질임금은 삭감되며, 비정규직, 부품사 노동자들의 고용은 나몰라라 하며, 기존 주간연속2교대 노사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형편없는 주간연속2교대안을 철저한 밀실교섭 끝에 자본과 야합해 관철시켰다.
그래서 1차 잠정합의(의견일치) 때는 울산공장 대의원들 다수가 본관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며 교섭을 저지했으며, 2차 잠정합의 때는 역사상 최고치로 압도적 부결이 나왔다. 사측과 민투위의 야합집행부는 1,2차 잠정합의안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형편없는 안을 새로운 잠정합의안이라고 뻔뻔스레 내놓고는 다시 밀어붙여 간신히 통과시켰다. 그 주간연속2교대 노사야합은 거의 그대로 기아차 노사야합으로 이어졌다. 결국 민투위는 10년 동안 ‘주간연속2교대로 노동시간 혁명’을 떠들어왔지만 실제로는 자동차, 금속 자본가들에게만 좋은 ‘아주 나쁜 선례’를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평범한 현장 노동자들도 민투위를 ‘어용’이라고 주저없이 부르며, 대의원 선거, 사업부 대표 선거 등에서 준엄하게 심판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제명이 거론됐던 자들은 노조 집행부에서 사퇴하기로 했다가 그걸 뒤집어 현장노동자들을 또다시 우롱하기도 했다.
노힘은 이런 자들을 단호하게 ‘제명’하지 못하고, 징계라고도 부를 수 없는 ‘경고’ 조치를 취하면서 다시 감싸 안았다. 총회의 구체적 진행과정은 알지 못하지만,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는 것은 “최소한 3분의 1 이상”이 배신자들을 적극 감싸 안았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적 배신자들을 적극 감싸 안은 이들 또한 다른 곳에서 비슷한 배신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런 배신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정도로 계급적 책임성이 심각히 떨어지는 자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실상 배신을 정당화해주는 행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더 큰 문제는 바로 노힘 지도부에 있다. 지도부가 배신자들을 ‘제명’으로 단호하게 응징하겠다는 굳센 의지를 가졌다면 ‘제명’을 충분히 관철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힘 지도부가 ‘정치적 재조직화’ 운운하며 배신자들 및 그와 비슷한 부류의 노조 관료들과도 계속 동거하겠다는 태도를 지녔기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사노준은 노힘의 결의를 토대로 결성된 조직이다. 그 점에서 사노준의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운동’은 노동자계급의 배신자들과도 함께 ‘당’을 건설하겠다는 이번 노힘 총회의 결정 위에 서 있는 꼴이 되었다. 따라서 그런 행태를 그대로 두고 본다면, 민족주의 민주노동당, 사회민주주의 진보신당을 뛰어넘어 노동자의 희망을 만들어가야 할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투쟁’은 관료들의 정치놀음판으로, 잘해야 ‘우스갯소리’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만약 사노준 활동가 가운데 조금의 양심이라도 있는 동지라면, 배신자를 감싸는 또 다른 배신에 대해 정치적 생명을 걸고 결사적인 투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제명이 거론된 배신자들은 물론이고 배신자들을 감싸는 또 다른 배신자들을 단호하게 축출하기 위해 투쟁하고, 그걸 관철시킬 수 없다면 배신자를 감싸고 도는 집단으로부터 소수라도 단호하게 분리해 나와야 할 것이다.
2 . 사노준은 좌파 노조관료들의 당을 만들려고 하는가 ?
사노준은 사노련과 함께 ‘사회주의 당건설운동 전면화를 위한 토론회’를 하면서 동시에 노건추와 함께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을 위한 전국공동토론회’를 한다. ‘목표와 내용만 괜찮다면’ 여기저기와 토론회를 하는 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사노준의 목표와 내용 모두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노힘은 온갖 개량주의, 중도주의 정치세력들까지 다 끌어 모아 ‘좌파연합 당’을 만들려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2007년 ‘좌파연합’ 건설 시도였다. 왼쪽에는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을 끼고, 오른쪽에는 해방연대, 다함께는 물론 사회당까지 끼고 ‘좌파연합’을 통해 당으로 한 발 나아가보려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한 번 모이고 끝나는 걸로 참담하게 실패했다. 대중투쟁을 밀어가는 데에서는 여러 이질적 세력도 같이 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노동자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사회주의노동자당을 건설하는 데에서는 상당히 높은 정치적 통일성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황, 전쟁, 혁명 같은 거대한 격변 속에서 노동자당들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산산이 파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좌파연합을 통한 당 건설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지금 노힘이 주도해 만든 사노준은 ‘사회주의노동자당 준비모임’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도, 이미 실패했고(외국 사례까지 포함하면 수백 번 넘게 실패했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좌파연합을 통한 당 건설’을 다시 추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노준이 노건추와 함께 토론회를 하는 것은 노건추에 노조 간부들이 어느 정도 참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노건추는 사실상 진보신당으로 노동자들을 끌고 들어가기 위한 ‘노동자 유혹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 참가하고 있는 주요 노조 간부들은 대개 민주노총, 금속연맹, 공공연맹 등에서 좌파 노조 관료로 활동했으며, 결정적 순간에 또 다른 배신을 저질렀거나 거기에 동참했던 자들이다. 따라서 사노준이 노건추와 공동토론회를 통해 공동의 당 건설을 추진한다면, 그건 현실적으로 당 건설에 참여할 좌파 노조 관료들의 숫자를 늘리는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 것이다.
노힘은 오랫동안 ‘노조 뒤에 숨어서’ 활동할 뿐 ‘자신의 정치’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그야말로 조합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노힘은 자신들의 많은 노조 활동가들을 ‘노조 활동을 하는 사회주의 노동자’로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정신을 잃어버린 조합주의 간부로, 심지어는 배신자’로 전락시켜 왔다. 그래서 노힘은 ‘좌파 노조 관료들의 정치적 도구’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런데 노힘은 결국 ‘사노준’마저 더 많은 ‘좌파 노조 관료들의 정치적 도구’로 만들려 하는 게 아닌가? 어떤 세력도 정지해 있을 수 없다. 노힘과 사노준은 지금 전진하고 있는가 퇴보하고 있는가? 노힘과 사노준 활동가 말고 어떤 노동자투사가 지금 노힘과 사노준이 전진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3 . 사노준의 노선은 ‘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노선 ’ 이 아니다 !
우파들은 ‘대동단결’이란 미명 아래 오랫동안 올바른 비판에는 재갈을 물리면서 타협과 배신을 일삼아 왔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민주대연합’을 추진하는 것은 그 최신판일 뿐이다.
그런데 좌파 안에서도 ‘대동단결’을 내세워 무원칙한 정치연합, 더 나아가 정치적 야합까지 추진하고, 정당화하는 경향은 오랫동안 있어 왔다. 노힘은 작년 하반기 3단체(사노련, 해방연대, 노힘) 토론회 발제문에서,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사노준은 이번 토론회 발제문에서 일관되게 ‘써클(정파) 운동으로는 안 되니, 간단한 몇 가지 원칙에 동의하면 대충 함께 하자’는 기조를 반복해서 제기하고 있다. 이것은 ‘토론회와 노동자공동투쟁 등을 통해 사상적, 실천적 검증을 거치지 않고 당을 만들 수는 없다’는 사노련의 입장을 비판하면서 ‘공동의 당 건설을 전제로 토론’하고, ‘빨리 당 건설 추진위를 함께 만들자’고 거듭 촉구했던 것에서도 잘 드러났다.
사노준의 이런 입장은 민노당, 진보신당을 넘어서는 진짜 노동자당, 즉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하길 바라는 노동자투사들의 열망을 ‘악용’해 대충 중도주의 정당, 좌파 개량주의 당을 만들려는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만드는 것은 지금 몰아닥치고 있는 공황기에서 한국 노동자계급은 물론 전 세계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사활적 과제다. 그렇기에 당 건설 문제에서는 ‘엄격한 계급적 잣대’가 필요하며, ‘철저한 사상투쟁, 실천투쟁을 통한 검증’이 필수적이다. 사노준의 대충주의는 한국 노동자계급이 가지고 있는 작지만 소중한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 자산을 ‘정치적 도박’으로 날려버릴 위험을 다분히 안고 있다.
이번 사노준 발제문에는 “혁명을 승인하는 것과 지금 건설하고자 하는 당이 곧 바로 혁명정당인가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는 문구가 있다. 이 문구 뒤에는 혼란스런 내용이 뒤따른다. 사노준이 혁명정당 건설을 분명하게 표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중도주의)‘개량정당’을 만들겠다는 선언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사노준이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이 아니라 애매모호한 중도주의 조직일 뿐이라는 점이 ‘사노준의 당관’에서 너무나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사노준의 흐리멍텅한 중도주의 당관은 ‘당 건설 일정 박기’에도 잘 나타난다. 사노준 발제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일정 제시는 ‘일정박기’가 아니다. 그것은 먼저 전체 정세와 정치적 흐름을 감안한 큰 틀에서의 목표 제시이자 정치적 긴장과 동력을 추동하기 위한 기제이다. 무엇보다 당 건설운동을 직접적 과제로 삼고 있다는 하나의 실질적 징표이기도 하다.”
‘1년 내 당 추진위 건설, 2년 내 당 건설’ 같은 일정박기가 ‘정치적 긴장과 동력을 추동’할 것이라는 건 사노준의 환상일 뿐이다. 당 건설의 정치적, 조직적 동력을 충분히 확보한 다음에 ‘일정을 제시’할 때만 그 일정은 ‘부도 수표’로 끝나지 않고 실제 당건설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만 ‘일정 제시’는 ‘정치적 긴장과 동력’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다. 계급투쟁이 고양돼 노동자투사들이 생존권 투쟁과 함께 대대적으로 정치투쟁에 나서고, 정치투쟁을 앞장서서 이끌고 갈 진짜 노동자당 건설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드러낼 때, 그리고 혁명적 사회주의세력이 지속적이고 헌신적인 투쟁으로 그런 열망을 받아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준비돼 있을 때 혁명정당은 실제 일정에 오를 수 있다.
따라서 진짜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하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일정박기가 아니라 치열하게 노동자투쟁을 일궈내고, 거기에 결합하는 한편 올바른 강령, 조직, 전술 노선을 정립하면서 노동자투사들이 당 건설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일정을 박아야 “무엇보다 당 건설운동을 직접적 과제로 삼고 있다는 하나의 실질적 징표”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착각이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을 건설하겠다고 하면서 현장에서 사회주의 정치선동조차 하지 않는 세력, 아니 배신자들을 감싸고 도는 조직이 일정을 제시하면 어느 누가 ‘당 건설을 직접적 과제로 삼고 있다’고 실제로 믿어주겠는가?
사노준은 ‘일정박기’와 같은 정치게임을 통해 자신들은 ‘당 건설운동을 직접적 과제로 삼고 있는 반면’ 사노련 등 다른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은 ‘당 건설운동을 직접적 과제로 삼고 있지 않다’고 직간접적으로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는데, 그런 속임수에 넘어갈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투사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사노준 식의 ‘일정박기’는 수많은 선진노동자 투사들과 함께 노동자민주주의 방식으로 당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선진노동자 투사들 또는 그런 투사들이 될 수 있는 노동자들을 배제한 채 위로부터 관료적으로 당 창건을 ‘선포’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리가 건설해야 할 진짜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노동자계급이 인정하고,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진정한 ‘노동자계급의 전투사령부’여야 한다. 그런데 사노준처럼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일정을 박으면, 사노준이 만들겠다고 하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이란 노동자투사들에게 그저 사노준의 새 이름, 즉 아주 작은 중도주의 써클 정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후에 진짜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투쟁에 선진노동자 투사들이 열정을 갖고 참가하는 것을 방해하게 된다.
작년 10월 3단체 토론회 때 노힘은 “왜 21세기 사회주의인가? 20세기 사회주의운동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그 한계와 오류를 넘어서며, 21세기라는 현대사회의 조건을 조응하는 것으로서, 21세기 사회주의이어야 함. 변혁을 체제 내적 개혁으로 한정하고 당-노조 양날개론에 입각해 선거주의 집권노선을 취한 사민주의운동의 오류를 극복해야 함. 노동자권력이 당/국가관료의 권력으로 변질되고 당-노조 전달벨트론에 입각해 당이 대중을 계몽하고 지도한다는 공산주의운동의 오류와 한계를 극복해야 함.”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주의를 상황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자는 원칙적 주장은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리고 사민주의나 스탈린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도 적극 공감한다. 하지만 반혁명 사상인 스탈린주의와 맑스주의 혁명사상의 연장인 레닌주의를 엄밀히 구분하지 않은 채, 그리고 무엇이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성과이고 무엇이 한계 및 오류인지를 명백히 하지 않은 채 ‘21세기 사회주의’를 내거는 것은 노힘이 사상적으로 흐릿하다는 점을 보여줄 뿐이다. “혁명적 사상의 전통이 없는 조직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고 어느 뛰어난 사회주의 혁명가가 말했다. 맑스, 레닌, 로자, 트로츠키로 이어지는 혁명사상의 전통을 확실하게 ‘계승’하지 않고서 어떻게 사민주의와 스탈린주의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노힘은 ‘21세기 사회주의’라는 말로 마치 자신들의 사상이 ‘새롭고 참신한’ 것인 양 포장하고 있는데, 이미 수십 년 전에 파산한 낡은 중도주의를 화려하게 색칠하는 것일 뿐이다.
또 사노준의 발제문은 “사회주의 정당의 골간은 현장과 지역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전통에 따르면, 사회주의 정당의 골간(조직적 기초)은 ‘현장소조’이며, 지역소조는 다만 곁가지일 뿐이다. 사노준 발제문에는 “지역은 일상과 삶이 영위되는 생활의 거점/장소를 가리킨다”고 나와 있는데, 사노준은 노동자계급을 현장에서 하나로 단결시키고 생존권 투쟁과 정치투쟁의 주체로 세워내는 데 (상대적으로) 집중하는 대신, 여러 거주지별로 쪼개고 그런 거주지에서 다른 계급, 계층과 ‘사회운동, 지역운동’이란 이름으로 뒤섞여 활동하게 하는 데 ‘사회주의 현장운동’과 비슷한 정도로 무게를 두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지역구 중심으로 활동했던 사민주의, 의회주의 전통으로 귀결되거나 적어도 ‘(노동자계급의 생산과 투쟁의 거점인)현장’과 ‘(여러 계급, 계층의 주민들로 이루어진)지역’ 가운데 중심을 못 잡고 오락가락하는 전형적인 중도주의 조직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사노준은 여러 측면에서 모호한 사회주의 노선(즉 중도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과도 토론회를 하고, 아무리 높이 쳐도 ‘무지개 사회주의’를 넘지 못하는 노건추와도 동시에 토론회를 하면서 정치적 줄타기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사노준의 양다리 걸치기는 중간에서 오락가락하는 게 본질인 ‘중도주의 정치’를 정확히 보여주는 또 하나의 창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노준의 사회주의 노선, 당 건설 노선, 조직 노선 등은 전반적으로 전형적인 중도주의 노선으로서 노동자계급이 채택해선 안 되고, 채택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토론회에서 혁명정당의 강령, 조직, 전술노선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확하게 밝힐 것이다. 그러면서 사노준의 사상, 정치, 조직, 실천 상의 중도주의, 기회주의에 대해서는 단호한 사상투쟁을 벌일 것이다. 선진노동자 투사들과 사회주의자들에게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투쟁에 함께 할 것을 적극 제기할 것이며, 그런 당 건설 투쟁으로 나아가는 데에서 사노련이 가지고 있는 약점에 대해 선진노동자 투사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올바른 문제제기를 한다면 겸허하게 듣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토론회가 혁명적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투쟁의 역사적 도정에서 작더라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분투할 것이다.
2009년 2월 12일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울산지역위원회